52일차.141024.금. 여수시 소라면 장척마을-화양면 원포마을
지도와 GPS를 이용해도
때론 길을 놓치기 일쑤다. 달천에서 바닷길을 살짝 놓친다. 억울한
느낌이다. 종이지
도에는 길 표시가 없고 GPS상에는 길이
잘 나 있는 것이다.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잘 확인해야겠다. 바닷
가엔
가끔 낚싯대를 드리워 놓은 사람들이 보이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풍경이다. 잠을 잘 때는 고민스럽다가
도
걷는 중에는 그래도 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오늘밤 잠자리가 약간
걱정스럽다. 이슬이 많이 내려 텐트는 곤란할
것 같다. 옥천슈퍼에서 사발면을 먹는데 아주머니가 김치에 공
기밥까지 내주신다. 어제는 너무 잘 먹어서인지 화장실에 자꾸 초대를 받는다. 바다는
쉽사리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어렵게 힘들게 내륙길을 걷고 언덕길을 넘으면 태양이 은백의 보석을 무한정
뿌려놓은 바다가 나타
나고 순간순간 쌓이는 피로가 일시에 풀린다. 이런 매력 때문에 걷기가 중독이 된다. 힘들면 쉰다. 그런데 내
몸은 바로 걷기를 주장한다. 걷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가을답게 선선한 바람이 잔 땀을
말려주고 더워
진 몸을 식혀준다. 수 백 년의 유래를 간직한 장수약수에서 식수를 충분히 보충한다. 장등마을에 도착했지만
정자는 보이지 않고 해변진입로를 찾느라 헤매고 민박집이 많아 마을회관 이용은 엄두도 못
내고 세포삼거리
까지 진행한다. 여기서도 정자를 찾지 못해 백일도 방향으로 진행하다 내일 가야 할 방향으로
수정을 한다.
박규현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한상규와의 자전거여행기
잘 읽었다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란다.
그렇다. 현재 내가 제일 행복한 놈이다. 석개마을에 정자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진행하지만 날이 어두워져
마을 자체를 찾지 못하고 지나친 듯 하다. 아무렴 어떠랴. 밤새도록 갈 때까지 가보자. 내가 야간 도보여행을
한다고 누가 뭐랄
거냐. 나는 무죄다. 공사중인 도로를 야간에 다니기란 매우
위험하다. 오가는 차량을 피해
헤드랜턴과 휴대폰 랜턴으로 나의 존재를 알리고 한 쪽으로 기대어 차량이
지나갈 때까지 멈춰야 한다. 이러
기를 수 없이 반복하고 나서 마을이 나타났지만 너무 어두워 정자도 마을회관도
찾기가 어렵다. 마침 임시버
스정류소가 나타난다. 한 평 정도
크기의 컨테이너 박스다. 문도 닫고 창문도 모두 닫으니 아담한 독방이 된
다. 오가는 차량 불빛이 방해가 되어 한 쪽 창에 껌을 씹어 접착제로 이용하여 신문지를 붙인다. 오후 7시에
이 정류장을 이용할 손님은 없을 듯 하다.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가끔 정차를 하지만 내리는 사람은 있어도
타려고 대기하는 사람은 없다. 늦가을 바람도 피해야 하고 이슬도 피해야 한다. 하룻밤 신세 지는데
버스정류
소면 어떠냐. 여전히 나는 무죄다. 영균이가 스스로
베이스 캠프를 자청하여 전화를 건다. 오늘 상황을 자세
히 알려주니 반가워하고 즐거워한다. 나도 즐겁다. 오늘 도보여행 중에도 가끔 박스형 버스정류장을 보았는
데
바로 오늘 내가 이용하게 될 줄 몰랐다. 여전히 나는 운이 좋은 놈이다. 잠자리 아래로는 또랑 물이 흐르고
있어 밤새도록 물소리를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