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천강문학상 시상식은 오후 4시에 시작되었지만,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였습니다.
전날 설치하기로 했던 무대가 설치되지 않은 비상사태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이른 아침 무대 설치를 확인하러 나선 회장님과 사무차장님의 제보에 그렇잖아도 뒤채이던 사람들은 그 쪽잠마저 포기하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처음엔 걱정으로 기울었지만, 이내 오늘 시간이 많음을 알고 안심했으며, 그래도 책임감에 다시 복잡해지다가,
결국 여러가지 머릿속을 정리한 간결한 행동만이 가장 깔끔하다는 걸 알고 여유롭게 마음 먹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무대를 시찰하러 나갔다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지어진 무대에 안도하면서부터 아침이 훤히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가 저무는 시간이 왔습니다. 무대가 진행되고 사이사이 하루를 위로해줄 음악이 오후의 햇살에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빠지는 것이 마음에 얹혔지만, 붙잡을 수 있는 힘이 없는 우리는 조용히 제 안으로 음악을 넣을 수밖에요.
의령 군민들이 천강 문학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나름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이 식장에 초대했지만,
일요일 오후는 또 그럭저럭 생활에 휴식 같은 날인지 아는 지인들의 몇몇 방문이 있었을 뿐, 빈자리는 그저 안타까웠습니다.
회원들이 한 사람에 5명만 책임졌어도 햇살에 빈의자만 반짝이게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후회가 슬몃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많은 관심을 가진 덕분에 이나마 조금 더 즐겁게 행사를 치룬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더 겸손한 마음으로 더 낮아져야겠다고 또한 마음먹었습니다.
우리는 무대가 끝나면 위로와 축하보다는 자기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가 쏜 것이 화살일 줄 알았으나 부메랑이 될 때가 있습니다.
언제나 사려깊게 그러면서도 간과하면 안되는 중요한 순간엔 칼처럼 빛나는 예리함으로 직시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해 농사는 끝이 났지만 이세상에 끝이란 단어 중에 진짜로 끝이라는 건 없는 거나 다름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다음해엔 거름을 더 잘 넣어야 겠다고 다짐하는 것부터가 또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족은 항상 이렇게 길게 나오나 봅니다. 마지막 무대가 하나 남아 있는데 말입니다.
행사의 모습을 진열하다가 옆길 새었더니, 그 길에서 아는 사람 만나 열심히 수다 떠는 아줌마처럼 잠시 딴길에 서 있었네요.
이제 그 분을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바위섬'과 '직녀에게'의 가수 김원중 님이 오셨습니다.

그는 무대 뒤에서 기타 하나 걸치고 생각보다 뽀글거리는 긴머리와 굵은 검테안경(금테가 아니라 검은테두리 안경),
별로 연예인스럽지 않은.. 아니 이미 연예인이라는 차단한 가림막과는 이별한 자유로운 가수의 모습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생각보다 머리가 조금 컸으며 키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실망스럽진 않았습니다. 외려 연예인답게 친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곳을 다녀 보았지만 의령은 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이 상당히 좋다고 하였습니다.
말 속에 기름기가 없음을 단어 하나 말투 하나로도 알 수 있었기에 듣기에 무척이나 진솔되게 와닿았습니다.
그는 첫 노래로 무얼 부를지를 올라가기 전까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노래가 김용택의 19禁 시 '우화등선'이었습니다.
우화등선
형
나 지금 산벚꽃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아래 서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피는 산아래 앉아
밥먹자고 하면 밥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어버릴 년
어디 없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래는 광주의 학살을 자행한 군사정부 시절에 전 국민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가삿말과 서정적인 멜로디, 김원중의 진실된 목소리가 완벽하게 은유를 택한 덕분에 이 노래는 금지곡이라는 박해도 피했던 것입니다.
바위섬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 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바위섬 너는 내가 미워도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다시 태어나지 못해도 너를 사랑해
이제는 갈매기도 떠나고 아무도 없지만
나는 이 곳 바위섬에 살고 싶어라
그는 노랫속 가사처럼 그곳 광주를 떠나지 않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가을이 빨간 이유
하늘은 왜 이리도 푸른지
미치도록 아름다운 올해 가을
단풍 저리 붉게 우는 날 알게 되었어
이별의 계절 슬프도록 아름다운 올해 가을
가을이 빨간 이유를 나도 알았어
붉은 가을 이별의 계절엔 그리움도 흔한지
깊은 숨을 쉬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넌 눈물이 있으니 참 좋겠다
눈물 보일 수 없는 난 어쩌겠니
내 눈물은 돌이 되어 쌓이는지 가슴이 무겁다
붉은 가을 이별의 계절엔 그리움도 흔한지
깊은 숨을 쉬면 가슴이 아프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넌 눈물이 있으니 참 좋겠다
눈물 보일 수 없는 난 어쩌겠니
내 눈물은 돌이 되어 쌓이는지 가슴이 무겁다
넌 눈물이 있으니 참 좋겠다
눈물 보일 수 없는 난 어쩌겠니
내 눈물은 돌이 되어 쌓이는지 가슴이 무겁다
가슴이 무겁다

그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는 역시 '직녀에게'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바위섬'보다 더 믿는 노래. 더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래 중 하나였습니다.
문병란 시인의 직녀는 노둣돌이 없어도 만나야 하는 북녘의 그 사람입니다.
그 서슬퍼런 분단의 노래는 애절한 곡조에 실려 이별의 정한에도 어울렸습니다.
한때 군사정부의 금지곡이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민중가요라는 지하철을 타고 이어지던 노래였지요.
지금은 계시지 않는 대통령이 사랑했던 노래라고 하였습니다.
그 대통령께 바치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는 그 어떤 말랑한 감성보다 진솔되게 소리쳤습니다. 특히 우리는 만나야 한다는 그 마지막 소절..
직녀에게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한다
슬픔은 끝나야한다
우리는 만나야한다

그와는 무대의 뒤풀이를 함께 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의령에 첫 발을 기분좋게 디딘 가수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융숭한 대접이 고작 사진 몇 장 박는 것이, 즉 우리가 즐기는 것이었지만,
우리가 좋으면 그도 좋을 것이므로 그렇게 어우러졌습니다.
노을이 서서히 주위를 물들여 주었습니다.




모두가 어우러지고 서로 와서 같이 찍자고 손짓하는 장면들.. 축제의 뒤풀이는 이렇게 웃으며 춤추는 분위깁니다.

의령문인협회 밝은 언니들 사이에 양창호 회장님 청일점으로 서셨습니다.



축제는 끝이 나고 익숙한 습관으로 우리는 다시 내년 앞에 섰습니다.
냉정히 말해 더 잘해야겠단 마음입니다만 마음으론 서로에게 등 두드려 주고 차근차근 그날을 되짚어 보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로 남았습니다.
그것은 허전함이 자리하기 가장 쉬운 시간에 노을이 아름답게 번지는 것을 시적으로 이해하는 기분과 같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음을 기약하며 이렇게 웃으며 내년을 기약합니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수상자 여러분에게는 진심어린 박수를,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행운예약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시간이길
이 자리를 빌어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