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나폴레옹 모자 26억에 샀다, 내 사전에도 불가능이란 없다
1% 가능성에 도전한 사람… 나폴레옹은 어릴 적 우상
라디오서 경매 얘기 듣고 '아, 저거 내가 사야지'
적성에 맞으면 누구나 천재
초등 4학년 땐 병아리, 6학년부턴 돼지 키워… 고3때 집 열 채 값 벌었죠
조류독감 등 시련 때마다 나폴레옹 떠올리며 견뎌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나폴레옹 모자 사진을 화면에 띄운 노트북 컴퓨터를 들어 보이며 “나는 단순한 모자가 아니라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샀다. 내 생활신조가 바로 ‘끝없는 도전’”이라고 했다. 문화재급 유물인 26억원짜리 ‘나폴레옹의 모자’는 현재 프랑스에서 국외로 반출되기 위한 수속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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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유로(약 20억7000만원), 150만유로 나왔습니다. 더 부르실 분 없습니까? 나폴레옹 황제의 전설적인 모자, 150만유로에 낙찰되었습니다!"
'모나코 왕실 소장 나폴레옹 컬렉션' 경매가 열린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프랑스 퐁텐블로 오세나 경매소, 박빙 끝에 '나폴레옹의 모자'를 낙찰받은 동양 남성에게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경매 수수료를 포함한 실제 지불 금액은 188만4000유로(약 25억8000만원). 이날 외신은 일제히 '모자의 새 주인'에 대해 보도했다. "한국 치킨업계의 거물, 나폴레옹의 모자를 사다." 김홍국(57) 하림 그룹 회장을 지난 1일 그룹 계열사인 NS홈쇼핑 판교 본사에서 만났다.
회장실 입구 복도에 피카소의 '꽃을 든 여인'과 반 고흐의 '귀를 자른 자화상'이 걸려 있었다. 접견실 벽은 피카소의 '수탉'이 차지했다. 진품이라면 수백억 원을 호가하겠지만 모두 복제품이다.
"그림? 지인들 전시회 때 예의상 사주는 거 빼놓곤 안 산다. 비싸니까. 진품보단 카탈로그나 포스터 보는 걸 좋아한다. 경매? 이번에 처음 해 봤다."
'미술계의 숨겨진 큰손'일 줄 알았더니 '초보 컬렉터'였다. "경매 일주일 전쯤인가. 나폴레옹 모자가 경매에 나온다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순간 '아, 저거 내가 사야 하는데'하고 며칠 후 직원을 보내 응찰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지만 이유는 충분했다. 나폴레옹은 김 회장의 '우상'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을 평소 흠모해 왔다. 1%의 가능성을 보고도 도전하는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매 소식을 듣고 '무심코' 샀다"고 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26억원은 '무심코' 쓰기엔 많은 돈. 그러나 김 회장은 "주변 사람들이 26억원 들여 260억원 이상의 홍보 효과를 봤다고 말한다"고 했다. 마침 내년이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인 워털루 전쟁 200주년이라 이번 경매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전 세계 언론에 우리 회사가 보도되면서 회사 브랜드 파워가 올라갔다. 미국에 삼계탕을 수출하고 있는데, 경매 보도 이후 미국서 삼계탕이 매진됐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폴레옹을 가지고 마케팅을 한 셈이 됐다."

김홍국 회장이 모자와 함께 낙찰받은 나폴레옹 초상화. 폴 들라로슈의 작품이다.
/하림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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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웃돈을 얹어줄 테니 팔라는 제의도 들어왔다. 김홍국 회장은 "프랑스에서 모자가 도착하면 한 번 씌워 달라는 전화가 정치인들로부터 많이 걸려 온다. 나폴레옹 이미지를 선거 때 이용하려는 건가 보다"라며 웃었다.
전북 익산 출신인 김 회장의 '사업'은 사실상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됐다. 외할머니가 선물한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팔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턴 돼지 18마리를 사다 양돈도 했다. 이리농고에 진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 때엔 축산업 사업자 등록을 했다.
그는 "고3 때 이미 4000만원 정도 모았다. 당시 익산 시내 단독주택 한 채 값이 300만원이었으니 집 열 채 값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을 30년 만에 연매출액 4조8000억원대의 하림 그룹으로 키웠다. ㈜하림, 천하제일 사료, 팜스코, 선진, NS홈쇼핑 등이 계열사다. 2011년엔 미국 닭고기 업체 앨런패밀리푸드를 인수했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하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섬 소년이 세계의 정복자로 도약하는 나폴레옹의 인생과 비슷한 점이 있다. 김 회장은 "내가 자수성가해서 그런지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공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더라"며 "특히 긍정, 도전, 미래를 향해가는 정신에 대해 '필(feel)'이 통한다"고 했다.
공부보다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아들에게 부모님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형제들이 대부분 공직자다. 부모님도 교육자셨다. 가족 중 아무도 내 일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적성에 맞는 일을 해야 빛을 발한다. 적성에 맞는 일을 하면 누구나 천재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실패해도 일어날 수 있다."
김 회장도 여러 번 실패를 겪었다. 스무 살 무렵 닭·돼지 값이 폭락하면서 쫄딱 망했다. IMF 때도 겨우 고비를 넘겼다. 가장 큰 고난은 지난 2003년 겪었다. 하림 공장 중 가장 규모가 컸던 익산 도계(屠鷄) 공장이 화재로 몽땅 타 버렸다. 시련이 닥칠 때마다 나폴레옹이 힘이 됐다.
"좌절이 덮칠 때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의 말을 생각했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포기하지만 않으면 나와 기업이 모두 성숙해지더라. 나폴레옹과 '필'이 통한 건 그의 '긍정' 때문이다. 부정적인 사람은 모든 기회를 포기하고 남을 원망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은 1%의 가능성만 보고서도 모든 기회를 다 잡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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