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판 궁정동 시해사건
94. 7. 8.북한은 김일성이 지병인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공식발표 했다. 그러나 일부 외신 및 국내 언론에서는 神과 같은 용신에 칼을 댄 사실을 예로 들며 정상적인 사망이 아니라고 판단하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가 입수한 정통한 소식통에 의하면 김일성의 비명횡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은 80세의 고령으로 심신이 허약해진데다, 밤마다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는 그가 1945년 37대초에 집권한 이래 70여년간을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면서 2000만 국민들을 노예와 같이 헐벗고 굶주리게 하였으며 권좌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 많은 인명을 무고하게 처단했던 죄업의 대가를 받게 되는 신호일 것 이다.
「사람은 죽음이 가까이 오면 악마와 같은 괴수일지라도 마음이 선해진다」는 옛말이 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죽기 전에 인민들에게 하얀 쌀밥과 고깃국을 실컷 먹이고 싶었다. 그러기 때문에 대미·대북 수교를 추진하였고, 인민들의 생활을 좀더 좋게 하고 남북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남북 정상회담도 서둘러 추진했다.
김일성은 평양에서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의 회담시, 남쪽에는 1000만의 실향민들에게 분홍빛 선물을 안겨 주고, 그 대가로 경제적인 원조를 받아 북쪽의 인민들에게 배를 태워 준다.
그런 후 서울의 정상회담에 개선장군인양 입성하여 자신의 죄를 면제받고 영웅으로 입성한다는 대남 전략구상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대남전략에 수뇌부 측근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후계자이면서 아들인 김정일과 가장 신임하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 등이 「남조선은 차려놓은 밥상과 마찬가지로 먹기만 하면 되는데‥‥ 40년동안이나 피와 땀을 흘리면서 이룩해 놓은 혁명과업 업적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사망 발표일로부터 8일전인 94. 7. 1.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최광 총탐모장 등 몇명의 군부 실력자들과 묘향산 별장에서 휴양하고 있는 김일성을 찾아갔다. 그 자리에서 김정일을 비롯한 방문자들은 김일성의 대남 정책기조를 무력적화통일 방향으로 전환해 주도록
간곡히 설득했으나 무위로 끝이 났다. 김일성은 주연상을 차려오도록 지시하여 프랑스에서 수집한 나폴레옹 꼬냑,북한의 명주인 백사주 등 여러 종류의 고급술과 묘향산의 심산유곡에서 채취한 산삼 및 신선한 산채나물 들이 안주로 나왔다.
김일성은 건강상의 이유로 평소 술을 삼갔으나 이 날은 군 수뇌부 중진들의 간청을 무시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산삼으로 담근 술을 글라스째 들이킨 후 동석한 사람들에게 술잔을 계속 돌렸다.
몇 순배를 연거푸 들이켜 얼굴이 달아오르고 마음이 격해진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김일성의 마음을 돌리도록 「대남 적화통일의 준비완료 내용과 건의에 대한 당위성」을 재강조했다.
김정일을 비롯한 군부 실력자들도 오진우의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배신감을 느낀 김일성은 극도로 화를 내면서 경호원을 호출하려고 인터폰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김정일이 제지하였고 누군가 김일성의 책상위에 놓여 있던 권총을 잡아 김일성을 쏘았다.
경호원들은 최고 수뇌들의 모임이라 외곽경호만 강화하고 있을 뿐 근처에는 없었다. 15년전 서울의 궁정동에서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해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북쪽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 믿거나 말거나,,, ㅎㅎㅎ
참고로 출처는 엠파스 지식거래소의 답변중에서 추출한 것입니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믿거나 말거나지만....가능성은 있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