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국화의 유래 - 무궁화가 정식으로 대한민국의 구고하가 된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1953년 동아일보에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제하에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우리 나라에도 신문화가 들어옴에 따라 서양인이 왕래가 빈번하였다. 그 당시 선각자였던 윤치호씨 등의 발기로 양악대가 조직되어 애국가를 창작하고 애국가의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이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남궁 억 선생이 한말 칠곡부사로 있을 때 윤치호씨와 상의한 후에 국화로 정했다."라는 기록이 있다.이 두 가지 기록은 서로 일치되는 것으로 몇몇 개인의 의사라기 보다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와 무궁화의 관련 때문이고 이러한 결정은 모든 국민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그래서 이후버터 무궁화는 우리의 나라 꽃으로 민족의 얼을 상징하게 되었고, "무궁화 동산"이라 하면 우리 나라를 지칭하는 뜻이 되었다. 2. 국화에 담긴 정신 *꽃말에 담긴 정신 - 예로부터 서양 사람들은 무궁화를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으로 생각해 왔었다. - 무궁화는 '히비스커스'라고 하는데 '히비스'란 이집트의 아름다운 여신이며 '커스'란 닮았다는 뜻이다.그러므로 '아름다운 신을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 무궁화를 '샤론의 장미'라고도 한다. '샤론'이란 성경에 나오는 성스러운 땅인데, 신에데 바치고 싶은 꽃 또는 '성스러운 땅에서만 피는 꽃이란 뜻이다
나라꽃(國花)은 한 국가 한 민족이 그 국가 그 민족의 상징으로 삼고, 온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나 식물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나라꽃은 자국의 고유식물이나 보편화된 자생식물로 선정되는 것이 보통이나, 때로는 외래식물을 나라꽃으로 정하는 사례도 있다. 한 나라의 나라꽃은 대부분 모든 면에서 아름답고 보기 좋은 꽃이나 식물들이 설정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보잘 것 없는 꽃이나 식물들이 나라꽃으로 제정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법률로 정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나라꽃 제정에 있어서의 그 공통점은 그 나라의 국민성을 상징할 만한 특성을 지니고 있거나, 역사와 특수한 관계가 있거나, 역사에 깊이 관련된 전설이 있는 꽃이나 식물이 대상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을 한 나라의 상징으로 정하여 쓰기 시작한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 고증된 일이 없다. 대체로 19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양 여러 나라 왕실의 문장이나 훈장, 화폐 등의 표상으로 가장 많이 쓰여 온 식물들이 그 나라를 상징하는 나라꽃으로 자연스럽게 굳어진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밖에, 널리 알려진 전설이나 또는 문학을 통해서 그 나라 민중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꽃들이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자연스럽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사료된다.
나라꽃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장미를 대영제국의 나라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잉글랜드만을 대표하는 꽃일 뿐이다. 장미는 처음에는 영국 왕실의 휘장이었던 것이 일반국민들도 누구나 장미를 좋아하게 됨에 따라 결국은 잉글랜드의 나라꽃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민족이나 부족이나 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없는 나라들이 지구 위에는 많았지만, 제2차 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탄생되면서 국가와 함께 나라꽃을 새로이 법률로 제정한 나라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다.
2. 우리 나라꽃 무궁화의 유래
우리 나라의 나라꽃은 무궁화로서 오랜 역사 속에 우리 민족과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 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나라꽃이 된 대표적인 예다. 우리 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는 법률이나 제도로 정한 바는 없으나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배달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아 왔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근역(槿域), 근화향(槿花鄕)이라 불렀는데 이는 '무궁화의 나라'라는 뜻이다. 또 지금까지 전하는 동양 최고의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군자국 유 훈화초 조생모사(君子國 有 薰華草 朝生模死)'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때의 '훈화초'는 바로 무궁화를 일컫는 것으로 '군자국(우리나라)에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는 뜻이다. 이밖에도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고금주(古今注)에서 인용한 '군자지국 지방천리 다목근화(君子之國 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대목이 있고, 동경잡기(東京雜記), 해동역사(海東繹史) 등 많은 문헌에서 우리 나라를 무궁화의 나라로 일컬어 왔다. 특히 고려 예종 때는 고려를 스스로 '근화향(槿花鄕)'이라 칭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종합하여 보면,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군자의 나라는 사람들의 민족성이 군자답고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는 나라'라고 예찬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무궁화로 상징하여 '무궁화 피는 화려강산'으로 인식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역사도 국어도 국기도 없고 애국가를 부를 수조차도 없었던 일제하에서 그 어느 나라의 국화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우리의 무궁화는 민족혼을 일깨우는 '겨레의 꽃'으로 온 겨레의 가슴에 연면히 자리하여 왔다. 21세기를 시작하는 1월의 문화인물 한서 남궁억은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세우고 황성신문 사장에 취임하여 열강의 침략을 폭로하던 개화파 거두였다. 그가 말년에 절망 속에서 잡은 계몽과 의식화의 무기는 어떤 단체도 아니요 펜도 아니었다. 한 그루 무궁화 나무였다.
우리의 조국이 광복된 후에는 입법, 사법, 행정 3부(三府)의 표상으로 무궁화가 사용되었고, 국기의 봉도 무궁화 꽃 형태로 제정함으로써 명실공히 무궁화는 '나라꽃 겨레꽃'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나라꽃 무궁화의 내력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무궁화(無窮花)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노래말이 애국가에 삽입된 이후 더욱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와 같은 무궁화에 대한 우리 민족의 한결 같은 사랑은 일제(日帝) 강점기에도 계속 되었고, 광복 후에 무궁화를 자연스럽게 나라꽃 國花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백여 품종의 무궁화가 자라고 있는데, 꽃 색깔에 따 라 단심계, 배달계, 아사달계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정부는 이들 가운데서 꽃잎 중앙에 붉은 꽃심이 있는 단심계(丹心系) 홑꽃을 보급 품종으로 지정하였다.
무궁화는 7월 초순에서 10월 하순까지 매일 꽃을 피워 보통 한 그 루에 2천∼3천여 송이가 피며, 옮겨 심거나 꺾꽂이를 해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어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잘 나타내 주기도 한다.
우리는 민족과 함께 영광과 수난을 같이해 온 나라꽃 무궁화를 더욱 사랑하고 잘 가꾸어 그 고귀한 정신을 길이 선양해야 할 것이다.
꽃말은
'一片丹心(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은 직역하면 '한 조각 붉은 마음'이고, 풀이하면 '오로지 한 마음'입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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