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 매운탕
붉돔(도미)으로 매운탕을 끊였다. 아마 내가 지금껏 만들었던 매운탕 중에서 가장 근사하게 요리 된 것 같다. 예전부터 생선 매운탕을 좋아했던 남편은 입맛에 맞는지 그것 하나로 저녁 식사를 했다. 딸도 생선살이 부드럽고 시원하다며 한 대접이나 먹었다.
결혼 전까지 내륙지방에서 살았던 나는 생선을 별로 즐겨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생선을 재료로 한 음식 솜씨는 그저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웬일인지 내가 먹어봐도 매콤하면서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감기를 2주째 앓아온 난 입안이 어찌나 쓴지 마치 키니네를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병원에서 퇴원한 남편 역시 '입맛이 쓰다'를 되풀이 하며 음식을 겨우 넘겼는데 매운탕은 맛있다며 모처럼 밝은 표정이었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주부들은 허구한 날 가족의 음식을 챙기느라 늘 신경이 쓰인다. 어른들이나 환자라도 있는 가정은 더 말할 나위없다. 어쩌다 집을 떠날 일이 있으면 날을 새서라도 국이나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가득 넣어 놓고 가야만 마음이 편하다. 돌아와서 뚜껑도 열어보지 않은 음식들을 처리하느라 곤욕을 치를망정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게 주부들의 가족 사랑이다.
이번 감기는 어찌나 혹독한지 두통과 한속에 어지럼증이 나는가 하면 온몸이 쑤셔대면서 기침과 콧물까지 감기 증상이란 증상은 서로 시샘이라도 부린 듯 사람을 괴롭혀댔다. 집에 있는 감기약을 먹다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일주일 만에 의사를 찾아갔더니 폐에 염증이 생겼다며 페니실린을 열흘간이나 복용하랬다. 약이 얼마나 센지 먹고 나면 발이 헛디뎌질 정도로 휘청거렸다. 밤낮 눈을 감고 누워있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사 때만 되면 싱크대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볼 때, 과연 나 혼자 산다 해도 먹기 위하여 이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가족에겐 어떠한 처지에서도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마력 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란 이렇듯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하나라도 더 맛깔스럽게 요리하고 싶은 정성이라고 생각된다.
얼마 전 위성 방송에서 음식‘맛 자랑’에 대한 프로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동태를 이용하여 생태처럼 살이 부드럽고 시원한 맛을 내는 동태찌개’요리였다. 얼음장 같은 동태를 삼삼한 소금물에 넣어 냉장고에서 하룻밤 해동시키는 것이 그 비결이었다. 넓적한 전골냄비 속에서 생선과 각가지의 야채가 양념과 어우러져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이 화면으로만 봐도 입맛을 돋우었다.
몸이 완쾌되면 나도 한번 만들어 가족을 먹여봐야지 했는데 마침 가깝게 지내는 댁에서 붉돔을 샀다며 큼직한 걸 두 마리나 가져왔다.
나는 지체할 틈도 없이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대로 해동을 시켰다. 찬 물에 다시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냄비 뚜껑을 연 상태에서 끊여 국물을 뺐다. 다음은 전골냄비에 토막 낸 생선을 깔고 그 위에 야채(무우, 당근, 양파, 느타리버섯, 조선호박, 콩나물)를 5cm 정도로 길게 썰어 얹었다. 야채는 냉장고에 있는 걸 이용했다. 맨 위에 갖은 양념을 올리고 뜨거운 다시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생선에 양념이 베일 때까지 끊였다. 마지막에 두부와 떡볶이 떡 그리고 파를 넣어 한소끔 더 끊여내었다.
양념장을 만들 때 나는 와사비를 좀 넣어서 매콤한 맛을 더 강하게 한다.
칼칼하면서도 전혀 비리지 않는 생선 매운탕이 되었다. 소태 같았던 입맛을 당기는데 충분했다. 하여튼 매운탕을 끊이는데 성공하였다. 이제 그 요리에 자신이 좀 생긴다. 다른 때에 비해 여러 가지 해물을 넣지 않았던 게 오히려 생선 자체의 맛을 내는 비결이 되지 않았나싶다.
이 음식, 저 음식 사다 먹어봐도 돌지 않았던 식구들의 입맛을 내 솜씨로 우연히 되찾게 해주었다. 주부라면 응당 책임져야할 일인데도 기뻤다. 여자로써 참 행복했다. 이토록 행복한 게 신기하다.
나는 늘 행복을 멀고 거대한 데에서 만나려고 발버둥 치며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른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고 장애인의 아내가 되고 보니 전에는 보이거나 느껴보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이 관심과 사랑으로 내 가슴을 훈훈하게 채우고 있다.
“맛있다. 이런 매운탕이면 매일이라도 먹겠다.” 남편의 힘 있는 목소리를 들어본 게 오랜만이다. 사람들은 식도락이 아니더라도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산다. 그런데 남편은 음식을 즐기기는커녕 언제나 내 위주로 식단을 짜서 먹으라고 강요했다. 영양에 대한 어쭙잖은 상식까지 동원하여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미안하고 죄스럽다.
삼 년 전 여름, 젊은 여성이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녀는 미혼이었는데도 어찌나 음식 솜씨가 좋은지 호감이 갔었다. 무슨 음식이던지 척척 해내던 실력이 놀라웠다.
“음식 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어요?”하고 물어보았다.
“제가 어릴 때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머니께서 음식 만드시는 걸 늘 봤어요.”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요즈음 보기 드문 여성이다 . 저런 처자라면 어느 댁 며느리가 되어도 귀염받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미혼 남성 중에 그런 보석 같은 신붓감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족이란 식생활을 통해서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지는 사이라는 것을 결혼을 하면 그들은 깨달을 것이다.
다음에 매운탕을 할 때는 떡 대신 수제비를 넣고 새파란 쑥갓을 곁들여 더 식욕이 나게 애 써봐야겠다. 아무런 의욕도, 기쁨도 없는 남편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긴다면 좀 생기가 날지 모르겠다. 그렇게라도 내 사랑을 전하고 싶다.
내일이면 다시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듯, 우리 가정에서도 예전처럼 웃음소리가 터져 나올 수 있도록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정성을 쏟으련다.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