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까지 만지작거리다가 끝끝내 적지 못한 문장이 하나 있었어요. "어쩌면 존재하기 힘든 상황을 통해서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을 추적하고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지요. 영화의 스포일러에 해당할 법한 문장을 놓고 씨름을 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말러의 음악은 나치 집권과 2차 세계 대전 시절, 이를테면 독일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음악에 속했습니다. 설령 말러의 실내악 음반이 존재한다고 해도, 나치의 장교가 수용소 시설에서 공공연하게 틀어놓을 수 있는 성질의 음악은 아니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도 원작 소설과 영화는 자살 직전의 장교가 말러의 실내악을 틀어놓았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줄거리와는 크게 관계없는 복병과 마주친 듯했습니다.

원작자인 데니스 루헤인이 말러의 음악을 정치적 고려 없이 썼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였습니다. 실제 10대 시절 말러의 이 작품에는 빈 특유의 고전적이고 낭만적 풍모가 후기 낭만주의적 교향곡의 분위기에 앞서고 있지요.
하지만 알고도 썼을 가능성 역시 희박하지만 존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역설적 상황 자체가 '셔터 아일랜드'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될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생각은 멈추고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말러의 실내악이 아니더라도 '셔터 아일랜드'는 마틴 스콜세지와 로비 로버트슨의 협력이 빚어낸 또 하나의 걸작입니다. 영화 '성난 황소'에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아름다운 간주곡을 썼던 그 감식안입니다. 기사를 읽고 '자문'이라는 말이 어법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따끔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음악 고문'이라는 말로 여기선 고쳐씁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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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좋네요. 브람스(Brahms)인가요?"
"말러(Mahler)야."
절해고도(絶海孤島) 셔터 아일랜드의 정신병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급파된 연방 보안관 처크(마크 러팔로 분·사진 왼쪽)가 묻자 동료인 테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오른쪽)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을 원작으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셔터 아일랜드'의 도입부입니다.
탈옥한 수감자의 상태를 묻기 위해 찾아간 정신병원의 콜리 박사 사무실에서는 부드러운 현악기와 피아노 소리가 어우러집니다. 이 선율에 테디는 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의 참혹한 추억을 떠올립니다. 미군이 독일 뮌헨 인근의 다카우 수용소까지 진주하자 나치 부사령관은 이 음악을 틀어놓고 입속에 권총을 쏘았습니다. 하지만 테디가 그의 방에 들어갔을 때까지도 숨이 멈추질 않고 살아있었지요. 그는 한 번 더 총을 쏘려고 했지만, 바닥에 떨어진 총은 좀처럼 손에 닿질 않습니다. 이때 흘렀던 음악 역시 말러의 피아노 4중주였지요. 말러의 실내악을 통해 포로수용소와 정신병원이 겹쳐오면서, 테디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난 것입니다.
대편성 교향곡의 작곡가로 알려진 구스타프 말러(1860~1911)는 빈 음악원에 다니던 16세 무렵에 이 피아노 4중주의 1악장을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머지 악장은 전해지지 않기에 지금껏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있습니다. 1876년 작곡가 자신의 연주로 빈 음악원에서 초연됐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다카우는 1933년 나치가 처음 세운 집단수용소로 악명 높습니다. 1938년 유대인의 주불(駐佛)독일대사관 직원 살해로 촉발된 '수정의 밤' 사건 이후 나치는 대대적인 유대인 탄압에 들어갔고, 말러를 비롯한 유대인 작곡가의 작품은 연주 금지 목록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치 장교가 자살하기 직전 말러의 실내악을 택했다는 설정은 역설적이고 의미심장합니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음악의 종합 선물세트'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20세기 음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습니다. 보안관 테디와 처크가 배를 타고 셔터 아일랜드로 향하는 첫 장면부터 폴란드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교향곡 3번 4악장 파사칼리아(passacaglia)가 줄곧 흐르면서, 섬을 상징하는 일종의 주제음악이 됩니다. 테디의 악몽 장면에서는 존 케이지의 음악이 흘러나오지요. 리게티와 슈니트케, 백남준과 케이지의 현대음악은 마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장면 뒤편에 또 하나의 복선이 깔려있는 듯한 효과를 빚어내면서, 영화의 결론을 후반부로 지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음악은 록 그룹 '더 밴드(The Band)'의 기타리스트 시절부터 음악 고문을 맡았던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과 스콜세지 감독의 빛나는 협력의 산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