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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고열 때문에 필자의 한의원에 찾아온 어린이가 있었다. 물론 부모와 함께 진료실에 왔었는데, 열 때문에 축 늘어진 아이를 아빠가 진료실까지 업고 들어왔다. 사실 부모 마음에 갑자기 아이가 고열로 힘들어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듯하다. 더욱이 휴일이거나 응급 해열제가 듣지 않으면, 부모의 불안감은 몇 배로 증폭된다.
조선시대 정조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정조 10년 5월 3일의 기록을 보면, ‘왕세자가 홍진의 증세가 있자, 의약청(議藥廳)을 설치하라고 명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홍진은 홍역(紅疫)을 말하는데, 어린아이에게 잘 나타나는 전염병이다. 일반적으로 고열과 반점을 동반하는데, 5월 5일의 <왕조실록>기록을 보면, 이러한 증상이 기록되어 있다. 의약청에서 <왕조실록>에 보고하기를, ‘세자의 피부에 열이 시원하게 식고 반점도 상쾌하게 사라졌다’고 하였다. 이는 그 당시 왕세자가 고열과 피부반점에 시달리다 결국 호전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후 기록을 보면, 5월 6일에는 정조가 세자의 병세호전에 대해 선조들에게 사례하는 행사를 여는 것에 관해 논의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겨우 이틀 후인 10일에, 갑자기 왕세자의 병세는 심각하게 악화된다.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의약청에서 숙직을 철수한 뒤로 세자에게 갑자기 다른 증세가 생겼는데, 이 증세를 보고 정조가 차마 아들의 아픈 증세를 볼 수가 없다고 말하여,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토로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피 끓는 부정(父情)에도 아랑곳없이, 다음날인 11일에 왕세자(문효세자)는 사망한다. 이 문효세자의 어머니가 바로 의빈 성씨인데, 드라마 ‘이산’에서는 한지민 씨가 그 배역을 맡았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정조는 이 문효세자를 매우 아껴, 겨우 2세 때 세자로 삼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이렇게 병을 앓은 지 8일 만에, 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고, 어머니 의빈성씨도 두 달 후에 사망한다.
그런데 처음 병의 조짐이 보였던 5월 3일 이후의 처방을 살펴보면, 5월 5일에 ‘인동다(忍冬茶)에 대안신환(大安神丸) 반 환(丸)’을 처방했으며, 7일에는 ‘대안신환(大安神丸) 반 알과 금은화(金銀花) 오매(烏梅)’를 처방하였다. 이 처방들은 모두 차가운 성질을 지닌 약인데, 8일에 이르러 병이 나았다고 판단하였기에 투약을 중단한다. 하지만 그 이틀 후에 갑작스레 병은 악화되고, 악화된 다음 날에 문효세자는 사망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대답은 6월 1일의 기록에 나오는데, 왕세자의 홍진에 인삼(人蔘)과 부자(附子)의 약을 처방한 의관을 탄핵했던 상소문이 실려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백성들의 경우에도 홍역을 앓을 때는 차가운 성질을 지닌 약을 처방하는데, 오히려 문효세자의 경우에는 10일과 11일에 걸쳐 인삼과 부자를 투약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내용이 조정의 기록에 누락되었었다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다. 고열 증상의 환자에게, 인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최강의 뜨거운 성질을 지닌 부자까지 투약했다니, 문효세자의 열 증상이 악화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어린이 고열의 경우에는 이렇게 잘못 치료하거나 방치했을 때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한의사가 없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응급 해열제를 투약할 수도 있겠지만, 이후 반드시 의료인의 진찰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하늘땅한의원장 www.okskylan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