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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5일
핵심절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모든 인간은 출생과 함께 이 땅 위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죽음으로 이 삶의 끝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죽음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메시야로 일하기 시작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말했습니다.
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다 이루셨습니까?
그래서 오는 우리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완성하신 일을 무엇인지 알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일의 열매를 우리가 누려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 죽음으로 완성하신 일의 열매를 잘 누리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예수님에 대한 사형 구형 (19:1-16)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여전히 왕이냐?"(18:37)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왕입니다. 나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태어났고 세상에 왔습니다.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습니다”(38절).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빌라도는 나가서 유대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유대인의 왕을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18:39)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요!”라고 소리쳤다.
바라바는 강도였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고 군인들에게 조롱하게 했습니다. 군인들은 가시면류관을 예수님 머리에 씌우고 자주색 옷을 입히고 예수님께 침을 뱉고 치고 학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빌라도는 피 흘리는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이제 예수님을 불쌍히 여겨 “이제 충분하니. 그를 풀어줘요!”라고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종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 십자가에 못 박아!"하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빌라도는 당황하여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내가 그에게서 아무 잘못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반드시 죽어야 하니 이는 그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 됨이라라 주장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구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으리라. 그러므로 나를 너희에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를 풀어주면 당신은 황제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기를 왕으로 삼는 자는 황제를 대적하는 자입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면 가이사에게 그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악마는 빌라도의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진실보다 자신의 세상적인 지위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세상 지위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이 위협적인 말을 듣고 즉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로 결정했습니다(13, 16절).
빌라도는 진리보다 세상을 사랑한 자신의 죄를 그릇된 것으로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왕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에게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첫째,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그의 희생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헌신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왕으로서 우리를 항상 통치하시기 원합니다.
둘째, 이 이야기는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빌라도는 하나님과 진리가 아닌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세상적 유익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의 포로가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과 그의 진리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절대적인 태도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히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16b-2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17절).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조롱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속하기 위해 큰 수치를 당하고 자신의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시다!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많은 학대로 인해 너무 약해져서 십가가를 끌고 가는 도중에 십자가의 무게로 쓰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아프리카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 십자가를 대신 져야 했습니다(눅 23:26).
갈보리 언덕에 도착하자 군인들은 먼저 예수님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은 못질할 때마다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다음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이제 그의 온 몸의 무게가 못 박힌 발과 손을 눌러 예수님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점점 더 많은 피를 잃어가고 있어서 몹시 목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6시간 동안 이런 고통과 싸워야 했다.
올림픽 경기의 메달 수상식에서 금메달리스트는 시상대 세 사람의 한가운데에 서게 됩니다.
18절에 보면 군인들이 예수 외에 다른 두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들 십자가 중 하나는 예수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세웠는데, 이것은 예수를 이 모든 행악자 중 가장 나쁜 사람으로 광고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십자가 위에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19-20)라고 쓴 푯말을 예수심 십자가에 붙였습니다. 히브리어는 유대인의 모국어였으며, 라틴어는 그 당시 로마제국의 관용어였으며, 그리스어는 당시 세계의 공용어였습니다. 골고다의 위치는 도시와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유대인과 전 세계에서 온 많은 순례자들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이 푯말을 읽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의미했습니다. 이 푯말을 통해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강요한 유대인들에게 복수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쓰십시오"(21절)고 항의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로 선포하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대제사장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굴욕을 삼켜야 했던 빌라도는 이번에는 그들에게 복수하고자 그들에게 "내가 쓸 것을 썼다"(21)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빌라도의 고집과 복수심을 이용해서도 예수님을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메시아요 구세주이심을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예수님을 모든 사람의 구원자십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네 병사는 마치 파리를 잡는 것 같이 예수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고 예수님이 죄가 없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약자는 항상 가장 바보이고 강자 만이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돈은 사람 목숨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네 조각으로 나누어 각각 한 조각씩 가졌습니다. 그들은 통채로 된 예수님의 겉옷을 갖을 자를 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 군인들의 행위로 그리스도에 관한 시편 22:18의 성경 말씀 „(그들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군인들의 행동을 통해서도 예수를 약속된 그리스도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의 계획대로 인도하시고 예수님을 만민의 구주로 선포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의 무서운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이 고통가운데서 예수님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을 생각하고 어머니를 돌보았습니다.
예수님 아버지 요셉은 예수님이 이전에 이미 돌아가셨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지켜봐야 했기 때문에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잘 알았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마음은 칼이 그녀의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전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갔을 때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그녀에게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누가복음 2:35)라고 한 예언이 성취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몹시 고통가운데 괴로워하셨지만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을 생각하시고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요한 사도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부인이여, 보세요, 이 사람이 부인의 아들입니다!"(26).
그런 다음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시다!"(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 예수를 속죄제로 하나님께 바치고 사도 요한을 대신 아들로 여기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시각부터 사도 요한은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고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사도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우선 예루살렘에 모시고 살았고, 그흐 마리아는 예루살렘이 서기 70년 파괴되자 에베소로 가서 그곳에서 약 3년 살다 소천했다고 한다[1].
이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의 행동은 예수님이 자신의 양을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13:1). 예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3. 예수님의 죽음(28-37)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된 줄 아시고 성경에 '내가 목마르다!'고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28).
예수님께서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가 십자가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정말 목이 마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이시지만 우리 죄에 대한 모든 하나님 형벌을 받으시고 사람들의 죄를 대신하기 위한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죽기 위해 완전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29절에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라고 써 있고
그 다음 30절에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로, 우리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벌을 받는 하나님의 양이 되어 하나님 뜻을 100%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영생과 행복한 낙원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서는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영생과 낙원을 잃고 저주받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 벌은 우리 인간들이 낙원과 영생을 잃고 저주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의 최악의 결과는 아닙니다.
그 최악의 결과는 계시록 21:8에 기록되어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죽은 후에 지옥에 갈 운명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악인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그들의 분깃이 되리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다.”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지옥을 믿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지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가볍게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과 천국이 모두 실제 존재한다고 가르칩니다.
지옥과 천국은 실체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 가는 데서 구원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육신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에 대한 모든 하나님 벌을 받으시고 자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 제물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희생양으로서 그는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로 육체적 고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아삽타니?"라고 외치셨습니다. 이 히브리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잠시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에 대한 모든 하나님 벌을 이미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아무 공로없이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사함과 영생과 천국을 받기 위해 어떤 선행이나 행위를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누구나 용서와 영생과 천국을 우리 자신의 공로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한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셨음을 믿는 것뿐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자신의 죄를 위한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을 믿는 순간 죄용서와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7b-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둘째,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구속이 완성되엇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우리를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받아 주시고 영생과 성령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직후 하나님은 인류를 저주에서 구원하기 위해 여자의 후손을 메시아로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야를 통하여 죄의 권세에서 사람들을 구속하시고 영생과 낙원을 다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님을 통해 인류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에 자기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심판을 받지 않고 지옥에 가지 않고, 즉시 영생을 얻게되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구원받은 사람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누가복음은 23장 40-43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려 있는 회개한 사형수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형수는 아주 못된 짓을 저질렀고, 경찰에 붙잡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선행을 함으로 자신의 끔찍한 범죄를 속죄할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사형수는 반드시 지옥에 갈 자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형수는 예수님의 용서하는 은혜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큰 죄를 지은 자라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용서와 영생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이 그에게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내가 너를 용서하고 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하라!"라고 말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범죄자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은 그가 그의 회개와 믿음을 보시고 즉시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는 즉시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그에게 영생과 낙원을 선물하셨습니다!
스펄젼의 구원은 또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좋은 본보기입니다.
스펄전은 영국출신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아직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때 그는 어느날 작은 교회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한 평신도 설교자로부터 "매우 단순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아마추어 설교자는 벽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가리키며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를 보라! 십자가를 보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스펄전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받았고 영생을 얻었다는 확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큰 기쁨이 흘러넘쳤습니다.
이후 스펄젼은 복음을 권세있게 전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희생적 죽음을 믿기만 하면 용서와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즉시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하루 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유대 율법에 따르면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안식일에 십자가에 달려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시체들을 십자가에 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군인들은 먼저 두 사형수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그들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대신 군인 중 한 사람이 창으로 예수님 옆구리를 찌르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피와 물이 분리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미 죽으셨다는 증거이었습니다.
4. 예수님의 장사 (38-42장)
아리마대 요셉은 유대인의 의회에 해당하는 산헤드린의 일원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으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것을 감추고 지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산헤드린 앞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요셉은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제 요셉는 예수의 시신을 가져다가 장사 지내는 일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고백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재판받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말씀과 자세를 보고 큰 은혜와 용기를 받았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고백하고 그를 위해 일할 용기가 생겼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과 증거를 보고 듣고 요셉과 같은 용기있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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