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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남한산성 성곽일주
아들넘 특전사부사관 입대관계로 광주 오포에 있는 특전교육단에 데려다주고 입대행사를 마친후 돌아서는 발걸음이 왠지 무겁기만 했다. 남들 다 가는 군대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함은 무었으로도 채울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오늘 어차피 서울에서 자고 내일 실습 끝나는 딸래미 데리고 내려가야 되기 때문에 광주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을 찾아 성곽을 한바퀴 둘러 보았다.
남한산성(南漢山城)은 1963년 1월21일 사적51호로 지정된 성지(성곽)로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 도립공원으로 지정(제 158호) 하였으며 1976년 7월 1일 관리사무소가 개소 되었고 최근 수년간 복원보수 공사를 마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키 위해 출원중에 있다. 서울을 지키는 외곽에 4대 요새가 있었다.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였다.
동쪽의 광주에는 남한산성이 있었다.
서울에서 동남쪽으로 24 km, 성남시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남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길이는 9.05km, 높이는 7.3m, 둘레는 약 8km다.
남한산성은 신라 문무왕 13년(673)에 한산주에 주장성(일명 일장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의 남한산성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의 기록은 없으나 조선『세종실록지리지』에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갖춘 것은 조선시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1624)이다.
이 때의 공사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아 팔도의 승군을 동원하여 진행되었다.
승군의 사역과 보호를 위하여 장경사(長慶寺)를 비롯한 7개의 사찰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현존하는
사찰은 장경사뿐이다. 그 뒤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시설이 정비되었다.
이후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인조가 이곳으로 피란하였는데, 이 때 수어사인 이시백(李時白)은 서성을, 총융대장 이서는 북성, 호위대장(扈衛大將) 구굉(具宏)은 남성, 도감대장(都監大將) 신경진
(申景所)은 동성 망월대, 원두표(元斗杓)는 북문을 지켰다. 그러나 강화가 함락되었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왕이 이곳으로 피신하였는데, 강화가 함락되고 양식이 부족하여 인조는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였다.
그 뒤 계속적인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
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 있다.
이곳에는 백제 전기의 유적이 많이 있어 일찍부터 백제 온조왕 때의 성으로도 알려져 왔다.
남한산성은 각종 시설이 잘 정비되어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잘 된 곳으로 손꼽힌다.
▶ 간사람 : 우리부부 ▶ 탐방로 : 중앙주차장(15:50) - 개원사(15:55~16:00) - 남장대지(16:15) - 남문(16:25) - 영춘정 (16:45) - 수어장대(16:55~17:05) - 서문(17:15) - 북문(17:30) - 동장대지(18:00) - 장경사 (18:10~18:15) - 동문(18:30) - 중앙주차장(18:40) ※ 약 8km 2시간 50분 소요 ▶ 기 상 : 쾌 청 ▶ 경 비 : 입장료 무료, 주차료 1,000원
[일주코스]
[성곽따라 . . .]
△ 들어간쪽은 광주시이고 나온쪽은 성남시다 △ 중앙주차장에 설치된 남한산성 안내도
△ 신익희 선생 동상도 있다
△ 개원사방면 남단대지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 개원사 일주문
△ 개원사 범종
△ 개원사 대웅전
△ 연못속의 부처님
△ 활짝핀 금낭화
△ 매 발 톱
△ 게을은 매발톱
△ 처녀치마
△ 암 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의 일종이다. 암문은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성문보다 작게 하고 문루나 육축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 암문의 기능은 성내에 필요한 병기, 식량 등 항쟁물자를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구원요청은 물론 원병을 받고 역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남한산성은 현재 남아 있는 암문이 모두 16개로서 우리나라의 성 중에서 암문이 가장 많은 성에 속한다.
△ 남한산성 남쪽방면의 무명산
△ 성남시 방면
△ 성 외곽
△ 남 문 남문의 본래의 이름은 지화문이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온조왕때에 처음 쌍았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에 임금이 남한산성으로 피란을 갔는데, 그 때 남문을 통해서 들어갔다고 한다. 다듬은 돌이 아니라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오랜 역사를 가진 남한산성의 네 문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였다. △ 남문에서 찰칵~~~^*^
끄~읏 입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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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딜갔나 생각 했드만 남한산성 다녀 오셨구만요. 그것두 평일에 ~
아들래미 입대 한다길래 휴가냈 ...
남한산성 출입문만 드나들었는데~~잘 다녀 왔구료 아들덕에 나팔 넘~진하게 분게 아닐까??..ㅎㅎ
아들은 군대가고.....제대하고....딸은 시집가고 .....우리네 인생이 어느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