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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4
핵심 구절 30-31: “그러나 바울은 자기 집에 두 해 동안이나 머물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담대하고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이 핵심 구절은 로마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바울의 사역을 잘 보여줍니다. 이 구절은 사도행전의 결론에 해당하는 구절입니다.
바울은 죄수였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누구나 바울이 세 들어 사는 집을 방문하여 그에게서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복음 전파의 비결을 배우고자 합니다.
1 성취된 소망 (17-22)
바울은 로마로 여행하기 전에 소아시아 및 그리스로 선교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후 그는 유대인들의 소란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유대 총독의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여 로마 황실에 항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서기 59/60년에 죄수 신분으로 로마에 호송되어 왔습니다.
로마에서 그는 황제의 재판을 받기까지 꽤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셋집에 감금된 상태로 로마 군인이 그를 감시했습니다. 전통에 따르면 그는 2년 후에 재판받고 처형되었거나 64년 로마에서 발생한 큰 화재로 인해 다른 기독교인들과 함께 처형되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그곳의 유대인들을 초대해 자신이 죄수로 로마에 온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메시아에 대한 소망 때문에 내가 이 사슬에 매여 있습니다”(20) 라고 말합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소식,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전하고자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다양한 희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성공적으로 교육을 받은 후 괜찮은 직장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희망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는 그러한 희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공이 장기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영생과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영원한 사랑과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병의 꽃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에 영원한 참된 의미와 영생이 없다면 우리는 금방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영원하고 의미 있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당시 강대국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기원전 600년경 이스라엘에 에스겔이라는 선지자가 살았습니다. 에스겔도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 절망적인 시기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수많은 죽은 뼈가 다시 살아나는 하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에스겔 37:9-10). 이것은 죽은자의 부활과 하늘나라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부활과 천국, 그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이었습니다. 그것이 또한 바울의 소망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월이 지나면 늙고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더 이상 죽음과 슬픔이 없고 생명과 기쁨만 있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과 영생, 천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땅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이 소망의 성취를 알리기 위해 로마에 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니”(고전 15:15)라고 썼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불멸을 입으리라"(고전 15:52b-54a)라고도 썼습니다.
2. 소그룹 성경공부 및 일대일 성경공부(23-31)
바울은 이 산 소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로마에서 무엇을 했나요? 그는 유대인들과 날짜를 정하여 그들에게 이 소망의 성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약속한 날,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듭니다(23). 바울은 하루 종일 그들에게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이며 모든 믿는 자에게 죄용서와 천국을 주실 것을 설명합니다. 그들 중 일부는 바울의 말에 동의하였지만, 다른 일부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예수를 개인적으로 구세주로 받아들이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많은 수의 방문자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역 열매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는 복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시면 그들이 들을 것임을 알라”(28) 고 설명합니다.
이날 이후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있는 사람들이 복음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 예수의 제자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돕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두 구절은 “그러나 바울은 자기 집에 두 해 동안 머물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담대히 아무 거리낌 없이 가르쳤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열린 마음으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때로는 두세 사람이 함께 오기도 합니다. 종종 한 사람이 오기도 합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소그룹 성경공부나 일대일 성경공부를 합니다. 그는 그 사람들에게 각자의 상황에 맞게 복음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집에 갇혀 있는 죄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지키는 군인과 함께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약 3시간이 지나면 다른 군인이 인계받으러 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는 또 다른 성경공부 학생이 생깁니다. 다음 날에도 어제와 같은 경비병이 오면 바울은 그와 함께 성경 공부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 선지서, 복음서, 로마서 등에 나오는 내용을 가르칩니다. 바울과 성경 공부가 없다면 병사는 지루해했을 것입니다. 그 성경 공부가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 매료됩니다. 그리하여 성경공부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바울은 약 2년 동안 거의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 방법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소그룹 성경공부나 일대일 성경공부는 대중 복음화에 비해 짧은 시간에 소수의 사람만 도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성경 공부나 일대일 성경공부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보훔 대학교 웹사이트에는 “법대생들은 소그룹으로 배운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3학기부터 최대 5명의 학생으로 이루어진 소그룹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질문합니다. 소그룹 학습은 많은 이점을 제공합니다: 한편으로는 학습 파트너십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소그룹의 친밀한 분위기는 개인적인 질문도 할 수 있도록 좋은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소그룹이나 일대일 성경 공부할 때 복음에 대해 우리 마음을 더 잘 열 수 있습니다. 특히 일대일 성경공부에서는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신뢰 관계 아래 이야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배웠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수함으로써 여러분 자신도 믿음이 강해집니다.
소그룹이나 일대일 성경공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25년 이상 일대일 성경공부를 인도하셔서 아브라함이 믿음이 성장하고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자 대중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두제자의 교육,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같은 세 사람의 교육에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인격적 교제와 개인적인 성경 대화를 통해 그들을 도왔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과 가치관, 사랑을 잘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특히 한 제자, 베드로를 도왔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고 고백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은 여전히 약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부활 후 예수님은 그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때마다 “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오랜 세월 그리스도의 인내심 있는 인격적 도움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잘 알고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기독교의 훌륭한 스승이 된 길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인격적 관계를 통해 또 다른 제자들을 교육했습니다.
3세기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우리 교회처럼 가정집에서 모였기 때문에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훌륭한 제자들이 이 가정교회에서 많이 탄생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이 신뢰받고 강력하게 전파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교인들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일대일이나 소그룹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요일에 교회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며 교제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전 교인들과 교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또한 소그룹이나 일대일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신자들이 항상 초보자 신앙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하고 더 많은 제자를 양육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속성 과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대량으로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키울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생활 공동체를 통해 12명을 좋은 제자로 양육하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많은 인내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37년 전 이 작은 교회를 통해 세계 복음화를 위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는 한 지체로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나테와 김 요셉, 김 파울라와 우리 가족을 보훔의 첫 번째 일꾼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파울라와 김 요셉은 루르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레나테는 1986년 10월 보훔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목사였고 부모님의 신앙 영향 아래서 자랐습니다. 흠잡을 데 없던 신앙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레나테에게 김 파울라 선교사와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교회 설립 초부터 레나테는 안야, 울리케 등 동료 학생들을 성경 공부와 교회 예배에 초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988년부터 우리 교회에 총 29명의 한국 선교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선교사들에게 한국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선교사로 오고자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선교사들은 한편으로는 공부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계를 위해 신문팔이, 청소부 등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또한 어린 자녀들을 양육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학생들의 구원을 향한 불타는 마음을 주셔서 거의 매일 독일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헌신을 축복하셨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성경을 공부하고 신자가 되었고 그들중 일부는 예수님의 좋은 제자로 성장했습니다.
몇 년 후, 하나님께서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좋은 직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뮌헨, 뒤스부르크, 에센, 프랑크푸르트, 다름슈타트, 베를린 등으로 이사갔고 그곳에서도 영혼 구원을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안드레아스, 루드거, 안야, 울리케 등은 선교사들과 함께 목자이자 성경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했습니다. 특히 안드레아스는 직장을 잡지 않고 헌신적으로 학생들을 복음으로 도왔고, 2019년 7월에는 저를 이어 교회 지도자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현재 에센의 루드거, 아헨의 안자, 쾰른의울리케 등 전의 동역자들은 각자의 도시에서 복음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2013년 4월부터 하나님은 요리 강좌, 열린 성경공부 저녁, 알파 강좌, 영화의 밤 등을 통해 보훔에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둔야 샤르바트 다르(2013년 4월부터)와 데니스 샤키로바(2014년 6월 17일부터 2015년 11월 10일까지)가 이 사역에 참여했습니다. 다윗은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태국 치앙마이에서 단기 선교사로 활동했습니다. 심유림 씨는 보훔에 오기 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2년간 자원봉사자로 일했습니다. 그녀는 2015년 8월 9일부터 마음과 영혼을 다해 일하고 보훔대 졸업 후 올해 푸랑푸르트에 직장을 얻어 그곳으로 옮겨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종 대중 복음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복음으로 도우신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그러한 일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제자를 키우는 우리의 임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소그룹과 일대일 성경 공부의 효과는 중국과 같이 정부가 교회를 탄압하는 나라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는 소그룹과 가정교회를 통해 기독교인의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살아 있습니다.
제자를 삼는 것은 원자의 연쇄 반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10년 안에 예수님의 제자 한 명을 양육하고, 이 제자가 10년 안에 또 다른 제자를 양육하는 식으로 제자 삼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20년 후에는 총 4명의 제자가, 30년 후에는 8명, 200년 후에는 1,048,576명의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200년이 지나면 한 명의 제자가 약 100만 명의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말 원자폭탄처럼 폭발적인 숫자입니다.
누군가를 믿음으로 인도했다고 해서 이미 우리의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그들도 신앙 생활의 축복을 경험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를 양육하여 제자 삼는 연쇄 반응이 계속 일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이 복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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