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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불교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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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사찰성지순례 스크랩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서
자광 포교사 지장회장 추천 0 조회 137 13.08.21 12:4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서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때

보천과 효명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국보 제221호인 문수동자상은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고

하며 청량선원 입구 계단 옆에는 세조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고양이 석상과 성덕

왕 때 조성하였다는 상원사대종은 국보 제36호가

있고 오대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처음으로 산문을

열었다는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 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

절을 창건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이번 문화재청우수정책고객대상 문화

유산 답사를 하게 된 곳입니다   

=== 오대산 상원사 ===    

 

 

 

  

오대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처음으로 산문을 연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 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서

절을 창건한 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한 노스님으로부터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고 있으니 가서 뵙도록 하라 '는 말과 함께

 

 

 

가사와 발우 한 벌과 부처님 정골사리를 받고 신라 선덕여왕 12(643)

귀국하여 오대산 월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상원사는 한참 후인 성덕왕 4(705)에 두 왕자인 보천, 효명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오대산은 다섯 성인이 머무는 신성한 곳이라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오대산으로

들어가 수도를 하던 중 오만 보살을 친견한 뒤로 아침마다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하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보천태자에게 신문왕의 후계를

권하였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거부하여 결국 효명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성덕왕이라고 합니다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가 오대산에서 수도 중 여러 모습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에 세운 것이 진여원이라고 하는 지금의 상원사입니다  

 

 

 

이곳 상원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수월,운봉,동산 등 역대 선지식들이 주석하여

수행하였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들 선지식 중에서도 27년간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은 채

오대산 도인으로 통했던 한암(1876~1951)스님은 상원사와

관련해 배놓을 수 없는 선승이라고 합니다

 

 

금강산에 유람을 갔다가 발심해 장안사 행름 노사를 은사로

출가한 한암 스님이 상원사에 든 것은 50

때인 1925년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던 스님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을 찾았다고 합니다

 

 

한암스님은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상원사 산 중턱의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 나무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때인 1951년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흥남 철수가 있기 직전 국군이 전선에서

밀리게 되자 오대산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국군은 후퇴하면서 사찰에 있는

스님들도 떠나게 하고 모든 사찰을 불태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적에게 사찰이 보급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때 월정사는 불타게 되었지만 상원사는 온전하였다고 합니다

 

 

 

상원사에서 27년 동안 수행하고 있던 방한암스님이 국군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절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국군이 법당에 불을 지르려 하자 한암스님이 법당에 앉아

법당을 지키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이니 나도 같이 불사르라며

맞섰고 군인들이 상관의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고 하자

 

 

 

스님은 군인들에게 문짝을 떼어 태우면 너의 상관은 상원사가

소각된 줄 알 터이니 너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요 부처님도

보존되는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고 합니다

 

 

 

국군은 하는 수 없이 법당 문짝만 뜯어 연기를 냄으로써 불타고

있는 것처럼 속여 상원사 법당과 동종이 온존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영산전 앞마당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으로

영산전 석탑은 기단부터 상층부에 이르기까지 탑 전체가

여러 가지 무늬와 불상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심하게 파손되어 탑신의 형체를 알 수 없고 층수도 파악되지 않은 채

보전되어 있지만 기단에는 구름과 용, 연꽃무늬, 탑신에는

통일신라 양식의 불상이 한 면에 4존씩 조각되어 있습니다 

 

 

 

세조임금이 법당으로 들어가려던 임금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불상 밑에

숨어 있던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한 고양이에 얽힌 설화입니다.

 

 

  

고양이 덕에 목숨을 구한 세조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고양이를 위해

상원사 사방 80리의 땅을 묘전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상원사 문수전에는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문수동자상은 1466년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가 봉안한

것으로 수준 높은 목조보살상 입니다

 

 

 

 

문수동자상은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성지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예배의 대상으로서

조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라고 합니다

 

 

  

이 불상은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직후 몸에 난 종기를 불력으로 고치고자 상원사로

가던 길에 동자처럼 생긴 문수보살을 만나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그때의

영험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기는 98cm이고 최근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보물 제793)에 의하면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 부부가 1466년 이 문수동자상을

문수사에 봉안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왕실 발원의

동자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맡은 보살로서 석가모니불의 왼쪽에

있은 것이 통례이고 그 모양도 여러 가지이나

 

 

 

사자를 타고 오른손에 지검을 왼손에 연꽃을 들고 있으며

머리털은 다섯 뭉치로 맺고 있다고 하는데

 

 

 

이곳 상원사 목각문수보살상의 수인. 법의. 가슴의 달개 등은

앉아 있는 모습과 머리털을 두 뭉치로 맺고 있는

점 등이 다르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자상 임을 알려주는 양쪽으로 묶은 동자 머리를 제외한다면

자세라든가 착의법 등에서는 보살상 형식을 따르고 있는

독특한 형식의 동자상이라고 합니다

 

 

 

왼쪽 다리는 안으로 접고 오른쪽다리는 밖으로 둔 우서상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내려서 엄지와 약지를 거의 맞댈 듯이 표현하고

있는데 매우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우견편단의 영락을 늘어뜨린 보살형 양식인데 보살상과

다른 것은 보관대신 머리를 양족으로 묶어 동자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는 점입니다  

 

  

  

관대걸이는 세조가 자신의 어의를 벗어 걸어 놓았던 것으로

갓거리 라고도 하며 상원사 입구에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167cm, 입지름 91cm,

어떤 목적으로 주조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에 의하면 안동루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에 국명에

 의하여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세조는 상원사를 임금의 원당사찰로 만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소리가

좋은 종을 찾아 안치할 것으로 명령하였는데 전국을 수소문하던 중

당대 최고의 동종을 안동도호부 남문루에서 발견한 종으로

 

이 동종은 성덕대왕 신종보다 100여 년 앞서 주조된 것이라 하며

,,,주석을 녹여 만든 종으로 종소리는 은은하고 끊어질 듯

하면서도 100리까지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합니다

 

 

 

 

세조와 문수보살 이야기

 

상원사는 세조와 문수동자의 인연으로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어느 날 밤 악몽을 꾸었다.

꿈에 현덕왕후(단종의 모친, 세조의 형수)의 혼백이 나타나

자신의 몸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다음 날, 꿈에 현덕왕후가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돋았다.

곧 온몸으로 퍼지고 고름이 나오며 병이 악화되었다.

 

명의와 신약 모두 효험이 없자,

마지막으로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기로 하고 찾아 간곳이 오대산 상원사이다.

 

월정사에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장엄한 산세와 맑은계곡 물 등 절경에 취한세조는 목욕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자신의 추한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늘 어의를 풀지 않았던 세조는 그날도

주위를 물린 채 혼자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였다.

 

그때 숲 속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동자승이 눈에 띄어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동자승이 등을 다 밀고나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단단히 부탁의 말도 전하였다.

 

 꼬마야, 어디 가서든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러자 동자승도 대꾸를 하였다

 

 대왕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말하지 마시요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현이었던것이다.

 

왕은 곧 몸의 종기가 씻은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한 세조는

환궁하자마자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였다.

 

그러자 동자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는 화공이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 곳을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한 것이었다.

 

이후 '의숙공주'와 효령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을 빌기 위하여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66년 상원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고 하는 설화입니다

 

 

 

 

고양이석상에 담겨져 있는 세조와 고양이 이야기

 

조선 7대왕 세조는 고양이와 인연이 깊은 임금이었다.

 

온몸에 생긴 종기로 고생하던 세조가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몸을 치료하고 이듬해 다시 상원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서 예불을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世祖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조는

즉시 군사를 풀어 법당 안을 뒤지게 하였고,

 

그 결과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 있던 자객 세 명을 발견하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객의 칼에 세조의 목숨이 위태로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찾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조는 그 고양이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차선책으로

 

5백섬지기를 절에 내리면서 해마다 고양이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이로 인해 이때부터 절에는 묘전(고양이 땅) 묘답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절에 바치는 쌀을 고양이를 위한 쌀 이라는 의미에서

고양미로 불렀다고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 후 고양미공양미로 발음이 변하였고

문수동자상이 봉안된 상원사 청량선원 입구

계단 좌우에 있는 고양이 석상은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조각이라고 합니다

 

세조는 궁궐로 돌아와서 서울 근교 사찰에 같은 지시를 내렸고

왕명으로 고양이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고양이를 죽이는 일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묘전 (猫田) 이야기

월정사(상원사 포함)는 아름다운 전나무 숲 못지 않게 이 땅에서

가장 넓은 절집 숲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면적이 여의도의 7배나 되는 넓은 땅이다.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임야 조사와 광복 이후 단행된 농지개혁 등으로 인하여 줄어든 면적

까지 감안한다면이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산림을 보유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왜일까 ?

 

그 실마리는 상원사와 세조임금의 인연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불교에 귀의하여

그 잘못을 참회하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많은 불서를 간행하는 한편,

상원사 중건불사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상원사를 방문한 세조는 두 번의 이적을 경험하였는데

 하나는 피부병을 앓던 그가 상원사 계곡에서 몸을 씻을 때

문수보살을 친견한 덕에 지병을 고친 사연이고,

 

다른 하나는 법당으로 들어가려던 구의 옷소매를 끌어당겨 불상 밑에

숨어 있던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한 고양이에 얽힌 설화입니다.

 

고양이 덕에 목숨을 구한 세조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고양이를 위해

상원사 사방 80리의 땅을 묘전(猫田)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세조가 자신의 어의를 걸어둔 관대걸이는

상원사 입구에 놓여 있으며 세조의 목숨을 구한 고양이는 석상

되어 상원사 문수전 앞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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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21 15:57

    첫댓글 잘 알고 잘 보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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