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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
탁명주
신발주머니를 돌리며 아이들이 뛰어간다. 그 아이들 틈에 끼어 학교 후문을 통과하면서 나는 장애물 경기를 하듯 두 개의 계단을 한 번에 뛰어 내린다. 건널목을 건너면서부터 줄곧 뛰었더니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손으로 가슴을 꾹 누르고 숨을 고르면서 놀이터와 운동장을 훑어본다. 이렇게 급할 때 아이의 담임이라도 만나면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다. 다행히 교사들은 보이지 않는다. 모래판 미끄럼틀에 모여 노는 저학년 아이들과 초록색으로 단장한 운동장의 우레탄 트랙을 달리는 축구부의 모습이 여느 때와 다름없다.
급식소 입구에 부려져 있는 부식박스들을 대강 훑어보며 나는 위생장화를 신는다. 야채와 생선박스 사이에 노끈으로 묶여 있는 사과를 보는 순간 오른 쪽 손목이 시큰거린다. 흰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사과 둥치가 거대한 알집 같다. 저걸 가지고 씨름을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파트너인 엘지 언니가 없는 오늘 같은 날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조리실 안에선 이미 복장을 갖춘 직원들이 조례를 마치고 흩어지는 중이다. 대충 눈인사를 날리고 탈의실로 달려간다. 한 번 등을 보인 조리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가지만, 진짜 무서운 건 직원들의 눈이다. 우리 같은 비정규직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하는 건 정직원이기 때문이다. 눈길이 마주친 직원 정희에게 변명 대신 찌그러진 웃음을 던지고는 위생복을 갈아입는다. 아무리 급해도 조리 전 규칙을 생략할 수는 없다. 세면실을 거쳐 소독기에 손을 넣는다. 쐐한 알코올 냄새와 함께 소독 액이 분사된다. 손끝이 씀벅씀벅 쑤셔온다. 출근을 서두르다 싱크대 호밍이 벗겨진 틈새에 왼쪽 손가락을 베었다. 젠장, 서둘러 속 장갑을 끼고 노란색 장갑을 덧낀다. 영양사한테 상처를 들키는 날엔 그야말로 끝장이다. 더구나 다섯 명의 직원과 여덟 명의 비정규직 중 쉬기로 한 한 명을 빼면 나는 오늘도 꼴지를 한 셈이다.
뭐야, 무슨 일을 이렇게 해? 손질이 된 임연수어 궤짝을 수돗가로 밀어 붙이던 솔이가 꽥 소리를 지른다. 어느 결에 포장을 뜯었는지 이미 사과 바구니에 물을 뿌리기 시작한 진우가 멈칫한다. 과일과 생선을 한 군데서 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거리 감자를 손질하던 승배가 목을 빼고는 혀를 찬다. 되려 솔이를 쏘아보며 출구 쪽 수도를 가리키고 있지만, 진우가 애초에 자리를 잘못 잡은 거다. 저 여편네는 두서없이 일하는 게 장끼다. 손발이 맞지 않는 일꾼은 애물단지다. 결국 직원 정희가 달려와 질서를 잡는다. 사과 바구니를 미느라 하늘로 곧추세운 진우의 엉덩이를 향해 솔이가 눈을 흘긴다. 바구니를 들어 올리며 진우도 볼을 실룩거린다. 오늘도 조용히 지내기는 글렀다.
낯 선 여자가 문을 열고 조리실 안을 기웃댄다. 오늘 일하러 온 파출부인 모양이다. 영양사가 직원 정희를 불러 턱짓을 하고는 사무실로 돌아간다. 조리실을 둘러보면서 정희를 따라가는 여자의 행동이 몹시 굼뜨다. 틀림없이 복장 갖추는데 십분은 걸릴 것이다. 엘지 언니에게 사정이 생겨 용역회사에서 파출부를 부르게 된 것이다. 손가락에 물방울만 묻어도 톡톡 퉁겨내는 팔자 좋은 여편네들이나 한나절 어물쩍 시간 때우고 일당이나 채가는 여자들은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거다. 일손이 서로 맞는 사람들끼리 해도 하루 일은 벅차다. 비정규직 중 누군가 갑자기 쉬게 될 때마다 거래처에서 단골로 보내주는 용역직원이 서너 명 있는데, 그네들이 오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생판 해보지 않은 파출부를 보내면 헤매다가 하루가 가버린다.
가서 허리 좀 펴면서 세탁물이나 널고 와. 사과 씻는 일을 마친 진우를 세탁실로 보낸다. 누군가에게 지시받는 걸 질색하는 그녀지만 허리나 펴고 오라는 내 말에 호기롭게 웃으며 돌아선다. 처음 일하러 왔을 때부터 그녀는 좀 엉뚱했다. 비정규직 전원이 이 학교의 자모들이기 때문에 편의상 아이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데, 그녀는 진우라고 부를 때마다 질색을 했다. 식당 일용직 호칭 따위로 귀한 아들 이름을 들먹거리는 게 싫다는 거였다. 많이 불러줘야 명줄이 길어지는 거라고 승배가 너스레를 떤 후 다행히 그녀는 마음을 바꿨다. 첫날부터 맵짠 손끝을 인정받아 멤버가 되었지만, 그녀는 뻣뻣한 고집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한다. 안쓰럽긴 하지만 할 수 없다. 일단 일이 시작되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는 고사하고 눈 맞출 겨를도 없다.
어제 마무리하고 소독제에 담가두었던 행주며 속장갑을 널고 온 진우가 정희의 지시로 국거리를 준비하러 간다. 결국 사과를 손질하는 일은 내 몫이 된다. 오늘 처음 온 자모와 일할 생각을 하니 다시 손목이 욱신댄다. 나는 손잡이가 달린 플라스틱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작업대 열소독을 시작한다. 스테인리스스틸 작업대위로 더운 물이 지나가면서 뽀얀 김이 안개처럼 피어올라온다. 그 위에 알코올을 스프레이하고 위생행주로 물기를 걷어낸다. 따끈한 작업대 위로 사과바구니를 올린다. 마음이 급해진다. 늦어도 열한시 까지는 손질을 마쳐야 한다.
복장을 갖춘 용역직원이 탈의실에서 나온다. 비닐 앞치마를 바짝 붙들어 매고 장갑 세 켤레를 든 채 두리번대는 모습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쯧, 미련스런 여편네, 아무래도 한심이라고 불러줘야겠다. 조리실에선 다섯 개의 장갑을 쓴다. 소독된 면장갑과 채소나 과일을 다듬을 때 사용하는 비닐장갑을 빼면 세 개의 고무장갑을 쓰는 셈이다. 음식을 만질 땐 노란색, 생선을 조리할 땐 분홍색, 설거지를 할 땐 빨간색을 쓴다. 이것들은 엄격하게 쓰임이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헷갈려선 안 된다. 그런데도 매번 노란 장갑을 낄 때 열소독 하는 걸 잊어버린다. 나는 여자와 눈이 맞자 손짓으로 내 양 옆구리에 끼워 놓은 장갑을 가리키고 비닐장갑 위에 면 장갑을 끼라고 제스처를 보여준다. 엘지 언니라면 손발이 척척 맞아서 재미나게 해치울 일이지만 꾸물대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슬며시 짜증이 치민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가 느릿느릿 다가와서 말을 붙인다. 어디서 소독하는 거예요? 맙소사, 눈구멍은 장식용인가. 진짜 한심이다. 눈에 잘 띄도록 세면실 입구에 설치되어있는 소독기를 가리킨다. 여자는 고까운 표정으로 돌아서서 소독기 앞으로 간다. 그녀의 굳은 표정이 어디선가 본 듯 낯설지 않다. 키가 큰 편인 그녀의 뒷모습은 그러나 위생복으로 위장하고 있어서 구별이 안 된다. 나는 찜찜한 마음을 돌려 조리 기구를 챙긴다. 멸균해서 덮어놓은 이동식 수납장 속에서 감자 칼과 과도를 꺼낸다. 열처리를 해서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금속성 도구를 손에 쥐자 물컹한 것들이 짓이겨지는 영상이 따라붙는다.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다. 인터넷TV 채널에서 밤이나 낮이나 내보내는 영화의 잔영이다. 부엌에서 벌어지는 난투극들은 한 결 같이 잔인해서 조리 기구를 쓸 때마다 연상된다.
자동기계처럼 손으론 사과 담글 설탕물을 만들면서 엘지언니 생각을 한다.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하다. 어제 오후에 일당을 받고 사인을 할 때 영양사가 체크해 놓은 일정표를 보았다. 낼 용역직원 오네? 또 하루 고롭게 생겼구만! 이렇게 말한 사람은 장군이었다. 여덟 명의 비정규직은 서로를 훑어보았다. 그 따위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정직원들은 신발을 갈아 신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엘지언니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내일 일이 있어서 쉬게 되었다고 변명했다. 내게 따로 말을 하지 않아서 의외였지만, 언니의 사정을 모르지 않아서 장군이의 어깨를 토닥여 입을 막았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 하자구우!” 그리고는 서둘러 해산하도록 먼저 나왔다. 교문 앞에서 잠시 서성이며 엘지 언니를 기다렸지만, 아이들을 만나러 갔는지 나오지 않아서 발길을 돌렸다. 무슨 일일까, 하루 일당이라도 더 하려고 하루를 쪼개고 쪼개 투잡 쓰리잡 하는 언니가 내게 말 못할 사정이란 무얼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언니의 말 못할 사정과 빤한 내 사정을 생각하느라 문구점 여자가 인사하는 것도 지나칠 뻔했다.
매달 살아가기가 바듯하지만 이 번 달엔 추석 명절이 들어있어 턱없이 마이너스를 냈다. 간신히 오지랖만 가렸어도 명절은 돈지랄이다. 뜯어가지 않으면 다행인 동서들한테야 바랄 것도 없지만 입이 딱 벌어지게 비싼 제수 비용 때문에 숫제 뭘 하는 척할 수도 없었다. 그저 말막음으로 차례 상을 올린 것이 걸려서 눈 딱 감고 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 시어머니께 드렸다. 무릎이 아파서 절절 매는 친정엄마한테도 노상 말로만 다그칠 수 없어 병원비로 십만 원을 쥐어드렸다. 상여금을 받던 좋은 시절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하지만 내 딴에는 무리한 지출이었다. 준호를 구슬러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 학원을 당분간 쉬기로 해놓고 맞은 추석이었다. 그런데도 좋은 소리는커녕 인사치레 한마디 건너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친구한테 빌붙어 용돈이나 겨우 가리는 남편의 사정을 말 할 수도 없었다. 노인들이 알아봐야 살이 내리도록 성화나 해댈게 뻔했다. 차라리 내 속이 문드러지는 게 나았다.
비정규직 중에는 재미삼아 부업을 하는 여자도 둘이나 끼어 있었다. 일명 자가용커플이었다. 나나 엘지 언니처럼 먹고 사는 일이 다급하지 않은 그네들은 여유가 있었다. 머플러나 액세서리를 교환하면서 쇼핑몰 따위의 분위기를 속닥거리곤 했다. 그네들에 의하면 맡은 일만 하면 눈치 볼 일도 없고, 오후 서너시면 끝나니 이만큼 깨끗한 일도 없다며 급식소가 매력만점이라고 했다. 세 아이와 시부모까지 모시고 있는 엘지언니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통화라도 해볼걸,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손아귀 안에서 사과껍질이 벗겨진다. 속에 낀 비닐장갑에 흠집이라도 났는지 상처 난 손가락이 씀벅씀벅 쑤셔온다.
직원 경주가 자모를 부른다. 불린 미역과 썰어놓은 감자 바구니를 옮기기 위해서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선다. 힘든 일은 비정규직을 부려먹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아무 때나 불러대는 직원들을 향해 화가 난다. 엄연히 맡은 일이 있는데, 일의 리듬을 깨뜨려가면서 불러 댈 때는 모멸감마저 느낀다. 그러나 목을 넘어온 내 말은 입 속에서 침이 되어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삼켜진다. 대신 사과 알이 손아귀를 빠져나가 통째로 설탕물에 빠진다. 요란한 소리에 생선을 튀기던 장군이가 깜짝 놀란다. 기름 솥에 물이라도 튀는 날엔 화상을 면치 못할 일이다. 등줄기에 진땀이 흐르고 나도 모르게 휴, 한숨이 나온다. 나는 젖은 면장갑을 벗어버리고 새것으로 갈아 낀다. 상머슴모양 거칠게 생겨먹은 손을 볼 때마다 유난히 곱다란 엘지 언니의 손이 생각난다.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는 언니도 꽤나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매달려 일을 끝내는 성격이라 손발 맞추기가 쉬웠다. 언니를 알게 된지 이년이 되어간다.
재작년 가을, 학교에서 돌아온 준호가 졸졸 따라다니며 부탁을 했다. 엘지 아파트에 사는 친구 엄마가 급식소 나가게 됐으니까 그 아줌마랑 친하게 지내라는 거였다. 알고 보니 준호네 조모임 때마다 집으로 불러서 간식도 챙겨 먹이고 활동도 도와주던 자모였다. 내 위로 연장자가 생긴 것도 좋았지만 이상하게 언니가 남 같지 않았다. 푸근함은 천성인 모양인지, 언니에겐 불가사의한 넉넉함이 있었다. 뾰족하게 구는 사람까지도 이쁘게 봐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니가 온 후로 일꾼들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늘 먼저 살펴주는 사람은 옆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기회를 주지 않는다. 사출물 제조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은 언니의 남편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도 언니에게 위로할 기회를 얻었다.
부도를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공장이 얼마나 될까? 도미노처럼 휩쓸려 넘어질 수밖에 없는 연쇄부도는 그러나 멀쩡한 사람을 범법자로 만들고 심지어 도주하게 만들었다. 남편이 잠적한 이후 이년 동안 언니는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늙어버렸다. 느닷없이 생활을 떠맡아서 파트타임으로 우체국에서 편지를 분리하고 제과점에서 빵을 포장하거나 보습학원의 건물청소를 했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의 입시학원비도 낼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생활비가 목을 조르고 좀 빚이 늘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언니는 따로 지내온 시부모님과 살림을 합쳐 학교에서는 꽤 먼 엘지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전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빚도 갚아야 했고, 당장 낮 시간동안 나가서 일하려면, 아이들을 보살펴 줄 손길도 필요했던 차였다. 급식소 일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일하는 시간에 비해 일당이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도 언니는 지난달부터 한 가지 일을 더 하고 있다. ‘24시 찜질방’에 청소 일을 맡은 것이다. 사람이 뜸한 밤 열두시부터 새벽까지 하는 일이다. 말로는 괜찮은 일이라고 하지만 언니는 요즘 들어 움찔 놀라면서 허리를 짚고 주저앉는 일이 빈번하다. 젖은 찜질 복을 수거하다가 허리를 삐끗한 모양인데, 치료받을 시간이 없다보니 파스만 갈아붙이면서 견디고 있다. 하루 이틀 하고 말 일도 아닌데 저렇게 미련을 떨다가 허리를 못 쓰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언니가 없는 조리실은 소란스럽기는 하지만 뭔가 뭉텅 빠진 느낌이다. 병원에라도 가려고 휴무를 냈다면 더욱 걱정이다. 미련할 만큼 자기 몸을 챙길 줄 모르는 언니가 일부러 휴무를 낼 만큼 어디가 안 좋은가 싶은 것이다. 생리 이틀째인 내 컨디션도 최악이다. 언니가 일하는 찜질방에 가서 밤새 허리라도 지지면 좀 풀리려나. 무지근한 허리를 뜨끈한 옥돌에 지지면서 언니와 뒹굴 수 있다면, 오늘 밤에라도 가봐야겠다. 생각만 해도 뭉쳤던 기분이 누그러지면서 언니와 함께 있는 것 같다.
하얀 사과 알이 설탕물 속에 쌓여 간다. 사과를 집어 들고 수없이 돌려댄 손아귀가 서서히 저려오더니 이제는 감각도 없다. 영양사가 사무실 안에서 전화통을 붙들고 건성으로 작업실을 넘겨다본다. 직원들은 배식 나갈 식기들을 소독하느라 열처리코너에 몰려있다. 두 번이나 불려가서 무거운 함지박을 들어 옮긴 용역 직원은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 자세로 칼질을 하고 있다. 껍질을 벗기기 좋게 사과의 꼭지부분을 따서 옮겨주는 일인데 정신없이 해도 손이 모자랄 상황에 오만정성 다 들여 모양을 내고는 한 번씩 작업실을 둘러보기까지 한다. 빌어먹을 여편네 저 여편네도 아마 요리학원 쫓아다니면서 온갖 요리 다 배웠을 것이다.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교양을 떨 것이 뻔하다.
처음 급식소 직원을 모집했을 때다. 지원서를 낸 자모들이 많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조리사 자격증이 있는 젊은 여자들을 채용했다. 일용직이라도 해보겠냐는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두말도 않고 허락했다.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 때부터 사년이 넘게 그네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직원으로 채용된 그들과 나의 대우는 급료에서부터 비교가 안 되지만 일에서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관리직이랍시고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이미 하고 있는 일을 번복해서 지시하고 참견할 땐 울화가 치민다. 온갖 트집과 영양사의 잔소리도 고스란히 일용직의 몫이지만 심지어 점심시간의 짧은 티타임까지 감시할 때는 당장 위생복을 벗어서 패대기치고 싶다.
개수대에서 꼭지를 뗀 사과 바구니를 작업대로 옮긴다. 손목이 시큰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바구니를 놓칠 뻔했다.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한 채 쩔쩔매고 있는데도 여자는 그냥 서서 쳐다 볼 뿐이다. 두부 찜을 끝낸 장군이가 달려와 냉큼 바구니를 받쳐낸다. 장단이 맞는다는 건 바로 이런 거다. 온 몸이 둥글고 단단한 장군이의 얼굴이 홍옥처럼 붉다. 매일 오후 입술을 야무지게 다물고 급식소를 기웃대는 장군이 남매가 그녀를 쏙 빼 닮았다. 하얀 사과 알을 사등분해서 씨를 파내는 장군이의 손끝에서 과도가 재게 돌아간다. 설탕물 속에 손질이 끝난 사과조각들이 늘어간다. 드디어 일이 진척되기 시작한다. 도마소리와 조리기구 휘두르는 소리, 찜솥이 증기를 뿜어내는 소리들이 뒤엉킨다. 장군이가 손을 보태어 긴장이 좀 풀린다.
국, 밥, 튀김, 찜 순으로 먼저 조리를 끝낸 조에서 일차 설거지를 시작한다. 요리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모든 기구들을 중앙수도 앞으로 모은다. 조리실은 다시 한바탕 소란스러워진다. 불어야 닦이는 것들은 뜨거운 물을 부어 겹쳐놓고, 기름설거지들은 밀가루 반죽 다라 속으로 담가 놓는다. 그 사이 두 사람이나 더 붙어서 사과 작업을 겨우 마무리한다. 후유,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직원 정희의 지시로 영재가 일꾼들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 몇 개의 작업대를 끌어다 붙인다. 장단이 맞아 돌아가면 일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다. 막 조리된 음식들이 배식 판에 척척 담기며 허기를 자극한다. 조리기구들이 한바탕 열소독을 거쳐 제자리로 들어가고 설거지를 마친 조원들이 식사를 시작한다.
일찌감치 장갑을 벗고 서 있는 자모에게 먼저 식사하라고 말해놓고 나는 사방에 튄 사과 껍질과 따낸 꼭지를 긁어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다. 비닐장갑 위에 낀 면장갑이 사과의 산성 즙에 누렇게 젖어버렸다. 장갑을 벗어 세탁바구니에 던져 넣고는 앞치마를 벗는다. 온 몸을 두르도록 디자인 된 비닐 앞치마 속까지 사과 껍질이 들어와 있다. 몸에서는 이미 쉰내가 나기 시작한다. 식사도 급하지만 화장실이 먼저다. 생리 이틀째라서 허리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불안한 걸 참고 있었다. 용량이 초과될 위기였던 패드를 새로 갈아내고 작업복 바지의 안팎을 살핀다. 젠장. 정색을 하며 직장 여성들에게 생리휴가를 보장해줘야 한다던 뉴스앵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날이 오긴 올까. 더구나 우리 같은 일용직에게. 화장실을 나오면서 습관적으로 소독기에 손을 집어넣는다. 이런! 또 알코올 냄새를 맡으며 밥을 먹게 생겼다.
식탁에선 끓인 누룽지를 가지고 진우와 솔이가 싸우고 있다. 저 여편네들은 언제고 붙을 준비가 돼 있는 싸움닭 같다. 두부 찜이 맛있게 됐어 언니, 츤츤히 먹어. 장군이가 두부 찜을 한 국자 떠서 내 식판에 얹어준다. 두부찜 양념이 넘쳐서 임연수어 튀김으로 흘러든다. 야야, 그렇다구 섞어찌개를 만드냐? 농담 반 진담 반 퉁박을 준다. 장군이 덕분에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생선튀김을 먹게 돼버렸지만 밉지 않다. 참 성격도 여러 질이다. 주책없이 철철 넘쳐나는 정 때문에 장군이는 오히려 사고 덩어리다.
두 주일 전쯤의 일이다. 불시에 위생검사를 하는 바람에 미처 자르지 못한 손톱을 들킨 몇몇 일용직이 영양사로부터 질책을 들었다. 게다가 승배가 목걸이 빼놓는 걸 잊어버려서 밥 먹듯이 듣는 위생규칙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들었다. 직원들까지 눈치를 주는 바람에 기분을 잡쳐버렸는데, 그보다 기막힌 건 영양사의 다음 말이었다. 학년별로 교실에 급식 올릴 때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달라는 지시였다. 입 속에서 저절로 욕설이 치밀었다. 밝혀두자면 이 학교는 급식 환경이 자동화 시스템으로 되어있지 않다. 급식소 지어놓고 조리실만 만들면 저절로 급식이 될까. 어림없는 말이다. 배식을 할 땐 천상 오십 개가 넘는 학급의 급식바구니를 손으로 날라야 한다. 인력거에 차곡차곡 쌓은 급식 바구니를 교실 건물까지 끌어다 주는 일은 소사 아저씨들이 도와준다. 문제는 다음이다. 교실로 가는 급식시설이라곤 건물 중앙에 설치한 세탁기만한 화물 엘리베이터가 전부다. 급식 바구니를 층별 학급 수만큼 엘리베이터에 나눠 올리면 당번이 한 층씩 미리 올라가 있다가 바구니를 내린다. 말이 바구니지 보통 사십 명분의 식사가 담긴 바구니는 웬만한 힘으론 움직이지도 않는다. 여름이면 소독된 배식판 위로 땀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게 예사다. 한 사람은 밑에서 올려주고 한 사람은 위에서 내려야하기 때문에 각 층에서 바구니를 내릴 때는 당번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 급식 바구니를 끌어내릴 때마다 미주알이 빠질 듯 힘을 빼고 나면 진짜로 눈앞이 노랗다. 사태가 그런데 더 이상 어떻게 조용히 하라는 말인가? 우리가 진짜 화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직원들은 조리실을 떠나는 법이 없기 때문에 그런 막노동은 순전히 일용직의 몫이었다. 그렇다고 영양사나 선생들이 그 일이 어떤지 상상이나 할까? 덕분에 그 날 오전 작업은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원리원칙대로 일용직은 뜨거운 물이나 소독제 소모품 따위를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모든 경계는 허물어질수록 편해 보이지만 그만큼 부담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데이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치료보상은 고사하고 일자리조차 뺏겨 버리는 게 일용직 파출부의 처지이고 보면, 원칙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일용직의 유일한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의 분위기는 직원과 일용직 사이의 모호해지고 오염된 경계를 한바탕 소독하여 질서를 회복시키는 중대한 결과를 초래했다.
배식 바구니가 나가고 여우비처럼 잠깐 긋고 지나가는 티타임 시간이 되었다. 다들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탈의실에 모여 앉았는데 배식을 마치고 온 장군이가 툭 내뱉었다. 헷, 하도 시끄럽다 그래서 오늘은 울 애기네 교실에 밥도 못 끌어다 줬네! 다른 날은? 눕다시피 벽을 베고 있던 승배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일 학년은 맨날 끌어다줬지. 애기덜이 어티케 옮겨 그 무건 눔을! 단호하고도 자랑스러운 얼굴로 장군이가 받았다. 모두 기가 막혔다. 결국 수업 방해의 원인 제공자는 우리 중에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베개며 토시며 면장갑이 장군이에게 날아들었다. 야, 걱정두 팔자다. 육학년 도우미두 있구 선생덜 있는데 애기들이 왜 그걸 날러어! 그래, 너 아니면 누가 그러겠냐? 야야, 장군이 동생 일 학년 몇 반이야. 교실두 맨 끝이지? 모두 한 마디씩 퍼부었다. 아녀, 애기들 반은 다 끌어다 줬지. 장군이가 오동통한 손을 휘저으며 변명했다. 잘났다 잘났어, 그렇게 해주면 누가 알아준 대냐? 그러니까 쟤가 원인 제공 한 걸 가지구 우리가 단체로 혼났단 말이지? 조용히 수업하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급식 바구니 끌어다 놓느라고 끼익 소리 나면 을마나 시끄럽겠냐? 야, 진짜, 누가 장군이 아니랄까봐 힘자랑 하냐? 솔이가 가세해서 질책을 퍼부었다. 그 흥분의 도가니에서 정작 장군이는 똥그란 얼굴에 혀를 빼물고 클클 웃어대기만 했다. 결국엔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지만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잘한다고 한 일을 가지고 꾸중이나 듣고 다니는 장군이. 장군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했다. 나는 그보다 더한 일을 했대도 대책 없이 따끈따끈한 장군이를 이해할 수 있다. 들척지근한 우부양념 때문인지 생선 튀김이 맛있다. 나는 남김없이 식판을 비우고 일어난다. 밥상에서도 꼴찌다.
교직원 젓가락 누가 챙겼어요? 직원 경주가 묻는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웃음에 인색한 그녀는 말투마저 건조해서 무슨 말을 해도 꼭 따지는 것 같다. 누구라도 체크를 해야지이, 참 엉망이네에. 둘러보는 그녀에게 진우가 쏘아붙인다. 우린 다 땜빵들인데 누구한테 책임을 물어? 맞는 말이다. 돌아서는 경주를 향해 솔이와 진우가 동시에 삐죽거린다. 저럴 땐 명콤비가 따로 없다.
식사 후 조리실에 잠깐이나마 조용한 시간이 찾아온다. 배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몇몇은 식사 전에 불려놓은 기름 설거지를 하고 몇몇은 계수해 놓은 음식 통을 반별로 바구니에 담는다. 한 쪽에선 국이 또 한쪽에선 밥이 각각 반 별 보온용기에 퍼 옮겨진다. 저것이 끝나면 음식 바구니들은 조리실 복도를 떠날 것이다. 직원 경주와 정희가 핸들 카에 소독된 식판을 반별 인원수대로 분배한다. 오전 일의 마지막 순서다.
한 두 번두 아니구, 빨간 손으로 왜 이래! 직원 경주가 소리를 지른다. 동시에 조리실 바닥으로 식판이 요란하게 나동그라진다. 식판을 세워놓고 세고 있었나보다. 삽시간에 일꾼들의 긴장한 시선이 중앙에서 엉킨다. 씻어낸 조리바구니를 옮기느라 진우가 빨간 장갑을 낀 손으로 핸들카를 밀었던 모양이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것두 아니구, 다시 하면 될 거 아니야! 진우가 홱 돌아서서 직원 경주를 노려본다. 정희가 승배를 불러 바닥에 흩어진 식판을 개수대에 담가놓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곤 냉큼 끓는 물을 떠다가 핸들카 손잡이에 붓고는 자신의 앞치마와 장갑 낀 손, 그리고 경주의 손과 앞치마에 거푸 끼얹는다. 이 손에 드러운 균이라도 득실거릴까봐 유난들 떠는 거야?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진우가 시비를 붙는다. 저렇게 나오면 일용직에게 전혀 득 될 게 없다. 나도 모르게 진우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붙인다. 왜들 이래? 규칙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따져서 뭐하게. 암말 말구 가서 할 일들이나 해요. 휙 돌아선 진우가 내게 눈을 흘기고는 세면실로 들어가 버린다. 집중됐던 시선들이 일시에 흩어진다. 직원 경주와 정희도 하던 일을 계속한다. 휴, 여편네 성질머리하곤! 진우를 향해서 한숨이 흘러나온다.
장군이가 용역직원을 재촉해서 데리고 나간다. 슬며시 장군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원래 오늘은 나와 장군이가 배식당번이다. 용역직원이나 혹은 새 일꾼이 오면 꼭 배식을 내보내기 때문에 자연스레 당번이 하루 밀리기도 하지만 시원찮은 내 손목을 생각해서 장군이가 나서는 것이다. 느려터진 여자와 배식하려면 속이 뒤집힐게 뻔하다. 배식당번끼리는 서로 다른 층에서 바구니를 받아야 하므로 사인이 맞아야 한다. 지난번에 용역직원이 왔을 땐 내가 함께 배식을 나갔다. 여자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엘리베이터를 제 시간에 내려 보내지 않았다. 결국 열나게 계단을 오르내리며 엘리베이터를 작동하고 급식 바구니를 올리는 동안 구경만 했다. 나이가 들어 보이긴 했지만 일을 하겠다고 온 건지 감독을 하겠다고 온 건지분별이 없는 여자였다. 나는 속으로 배식 조를 조바심하며 세면실에서 나온 진우를 살핀다. 잔뜩 입을 내민 채 그녀는 중앙수도 근처에 밀려와 있는 작업대를 제자리로 끌어다 맞춘다. 벌써 오후 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실 그녀만큼 손 빠른 일꾼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성질이 지랄 맞아 그렇지 일 하나는 씨억씨억 잘 해대는 상일꾼인 것이다.
티타임이다. 장갑과 행주치마를 벗자 다친 손가락이 불에 덴 것처럼 씀벅거린다. 시큰거리던 손목은 숫제 아무 느낌이 없다. 일꾼들이 탈의실로 들어간 후 몰래 주머니에 넣어온 소염진통제를 먹는다. 직원 정희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나가는 것이 보인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배식하고 남은 사과조각들을 반찬 통에 담아 방으로 가져간다. 즉시 먹어치우지 못한 모든 음식물은 분리수거 통으로 직행하는 게 규칙이다. 처음엔 멀쩡한 음식을 버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많이 남아도 음식물 반출은 금지다. 음식이라는 게 딱 맞춰 준비하는 것이 힘든 일이긴 하지만, 대중없이 재료를 주문해서 고기며 볶음 등을 조리했다가 그대로 버릴 때는 여간 아까운 게 아니다. 결식아동이니, 무의탁 노인이니 방송에서 떠들 때마다 생선가시처럼 버린 음식이 마음에 걸린다. 모든 것이 영양사 소관이니까 할 말은 없지만 그놈의 원칙들이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철저하게 소독을 시키는 건 좋지만, 복잡한 소독 절차가 일을 방해할 때도 많다. 안전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듯이 똑 떨어지게 계산적인 것도 그렇고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 여자다. 그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용직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이어린 영양사에게 꼬박꼬박 지시를 받는 것은 직원들의 몫이다. 그녀가 온 뒤부터 정규직의 책임이 강조되어 일용직의 불만이 다소 누그러졌다. 엘지 언니는 일꾼을 부릴 줄 아는 그녀의 일솜씨와 젊음이 부럽다고 했다.
커피쟁반을 물리자 일꾼들이 허리를 펴느라 손바닥만 한 카펫 위에 가로 세로 눕는다. 나도 생리통 때문에 허리께가 무지근하지만 카펫이 좁아 겨우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 있다. 땀이 식으면서 온 몸이 척척하다. 바닥이 차가운데도 불구하고 열이 많은 진우는 숫제 겉옷을 벗어버리고 누웠다. 캐비닛에 기댄 채 떠드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며 깜박 졸았나 보다. 벌써 다들 마신 거야? 배식을 마친 장군이가 용역직원이랑 들어오며 묻는다. 나는 장군이의 얼굴을 살피며 그네들에게 커피를 따라준다. 야, 식은 죽 먹기라더니 술술 잘 넘어간다. 노상 웃는 얼굴로 장난을 걸어대는 장군이가 한 입에 식은 커피를 부어넣고 감탄한다. 여자는 찬 바닥에 앉아 마뜩찮은 얼굴로 웅크리고 있다. 언니, 화장실 좀 중앙으로 돌려 봐, 나 좀 올라앉게. 장군이가 누워있는 솔이의 엉덩이를 밀어낸다. 화장실이라구 생각말구 그냥 기대면 되잖어. 누어있던 솔이가 눈은 감은 채 엉덩이를 끌어당긴다. 장군이가 솔이 쪽으로 다가앉으며 여자더러 카펫으로 올라앉으라고 눈짓을 한다.
지금 일하는 사람은 당번이에요? 여자가 올라앉으며 묻는다. 밖에서 오후 일을 준비하는 직원들 이야기다. 지금 일하는 사람은 벼슬아치구, 쉬는 사람은 노가다지. 승배가 답변한다. 받는 대우가 다른데 똑같이 쉬면 안 되지. 진우가 덧붙인다. 맞어, 첨엔 위험한 일 절대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구 갈수록 감시만 하려구 해. 다치면 우리만 손핸데 .솔이도 거든다. 승배가 벌떡 일어나며 마무리 짓는다. 쉬는 시간 잘 찾아먹어야 돼. 솔직히 재덜이 하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일이나 다른 게 뭐있냐. 승배의 말을 진우가 자른다. 다른 거 있잖아, 분명히 다르지. 재들이 언제 힘쓰는 거 봤어? 누가 배식을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재들이 신경이나 쓰냐구.
탈의실 문이 열리면서 직원 정희가 들어온다. 머쓱해진 승배가 말끝을 흐린다. 언니, 어디 갔다 와요? 장군이가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린다. 요 앞에 연세 정형외과요. 정희가 위생복을 꺼내며 대꾸한다. 우리끼리 하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왜, 어디 불편해요? 솔이가 시침을 떼고 묻는다. 손목 아픈지가 벌써 꽤 됐는데 점점 더 심해져서 엑스레이 찍어봤어요. 정희가 오른손을 뒤집어 손목을 내보이며 대꾸한다. 어머, 병원에선 뭐래요? 어티게 아픈데 그래요? 대단한 뉴스라도 만난 양 누운 사람이 다 일어난다. 무리해서 그렇다구, 당분간 쉬면서 물리치료 받으라는데, 일단 진통제만 받아왔어요. 대답을 하며 정희는 순식간에 위생복으로 변장한다. 아유 어쩐대, 직원이라 쉬지두 못하구. 얼결에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다. 말을 하구 보니 수습할 길이 없다. 끝나구 치료하러 다녀요. 애초에 고쳐서 서야지, 안 그럼 건듯만 해두 덧나서 보통 성가신 게 아니야. 나는 여러 말을 끌어다 붙인다. 그냥 좀 버티고 있다가 방학 하면 침이라도 맞아 봐야죠. 정희가 신경 끄라는 듯 잘라 말하고 나간다. 그녀가 나가자마자 다들 한마디씩 한다. 직원이라 나쁜 것도 있네요. 그럼. 직원이라구 다 좋겠어. 우리 같은 팔자가 차라리 맘 편하지. 틈새에 자가용 커플도 한마디 거든다. 근데, 저것두 산재 처리 되나? 진우의 궁금증을 끝으로 말이 끊긴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장군이가 풀썩 나선다. 근데 정희 언닌 아플 만두 해. 일 욕심이 여간 많아? 장군이 말 대로다. 그녀만큼 빠르게 식판을 부셔내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서 진우, 승배, 장군이가 손 빠르다는 말을 듣고 있지만 식판 부셔내는 일로는 정희를 당할 사람이 없다. 일 뿐 아니라 정직원 중에서는 그 중 마음씀씀이도 괜찮은 편이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조용하다. 정직원이 쉬게 되면 직원을 새로 뽑아야하는 거 아냐? 혼잣말처럼 진우가 속삭인다. 찬물을 끼얹은 듯 표정들이 굳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중 한 사람이 행운을 잡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나나 엘지언니에겐 해당이 없다는 거다. 이왕이면 한 살이라도 젊은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다. 승산이 없는 기회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티타임이 끝나간다. 내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일어나자 장군이와 여자도 일어난다. 왜덜 벌써 인나, 아직 시간이 남었잖어. 길게 누워있던 승배가 속장갑과 토시를 챙기며 투정이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몸은 제일 먼저 탈의실을 빠져나간다. 일을 보면 게걸스러워지는 품성 때문에 모두 이 일을 견디는지도 모른다. 일용직 중 제일 오래 된 내 입장에선 지금의 구성원들이 쓸 만하다. 그 동안 여러 명의 자모가 일을 해보겠다고 덤볐지만 고정멤버가 되지는 못했다. 일도 일이거니와 텃세를 견디고 팀원이 되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사 아저씨들이 바구니를 수거해서 밀차로 들여온다. 중앙에 고무함지를 늘어놓고 뜨거운 물에 세제를 푼다. 진우와 솔이가 분리를 맡아 수저와 물 컵, 국자, 주걱, 집게 등을 고무함지 안으로 던져 넣는다. 일사불란하게 자기 일에 빠진 일꾼들이 온 사방에서 챙강챙강 식기를 부딪치며 박자를 맞춘다. 이 소란 속에 있는 동안은 아무 걱정도 끼어들지 못한다. 연신 쌓이는 국통과 밥통에도 일꾼이 한 조씩 붙었다. 가장 일이 많은 식판 조에는 직원 정희와 세 사람이 매달렸다. 한 사람은 건더기를 헹구어 작업대 위로 올려주고 두 사람은 식판을 닦는다. 직원 정희는 닦은 식판을 헹궈 살균소독기 위로 올려주고 두 사람은 식판을 닦는다. 정희는 닦은 식판을 헹궈 살균소독기 안에 집어넣고 기계를 돌린다. 소독기를 통과한 식판을 직원 경주가 이중으로 어슷하게 겹쳐 수납장에 정리한다. 가장 바쁜 사람은 직원 정희다. 승배와 내가 마주 서서 닦는데, 세척기가 돌아가는 틈틈이 그녀도 식판을 닦는다. 아무리 바빠도 다섯 개의 홈 안에 일일이 수세미를 돌린 후 식판을 어슷하게 쌓는다. 그 모든 과정이 리듬을 타는 일이다. 온 몸의 완급을 유연하게 조절하면서 빠른 손놀림으로 한 켜 줄이고 다시 한 켜 쌓는 일. 비트가 강한 댄스음악에 장단을 맞추듯 그렇게 리듬 속으로 스며들어야 진척이 된다. 한참 몰입할 때면 무심한 춤동작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일을 하는 동안에는 손목에 무리가 가는지 허리가 곪는지 모른다. 정희의 손이 물보라가 일도록 식판 위를 지나다닌다. 습관대로 가늘어빠진 손목을 한껏 무리하고 있다. 정희를 보고 있자니 내 손목이 시큰거린다. 저렇게 몰입하다보면 몸을 아낄 틈이 없다. 아프다고 당장 쉴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까지 해 온 일자리가 아까워서라도 그녀는 쉬이 일을 놓지 못하리라.
용역직원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닥에 앉아 컵을 닦고 있다. 보통은 수저와 집게까지 한 사람이 처리할 일을 붙들고 죽을 쑤고 있다. 아주 오랫동안 관찰했던 것처럼 그녀의 옆얼굴이 낯익다. 어디서 봤더라. 나는 슬쩍 여자를 살피면서 헹굼 통에 뜨거운 물을 쏟아 붙는다. 물살이 국자를 돌아 여자의 팔로 튀어 오른다. 괜찮아요? 다급하게 묻는다. 당황한 중에도 짜증이 치민다. 토시는 어쩌고 팔을 늘어뜨리고 앉았을까. 여자가 불쾌한 표정으로 팔을 문지르더니 거품 묻은 장갑 손으로 쥐어짠다. 찬물과 섞이면서 튄 바람에 화상은 면한 모양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고 팔을 주무르고 있을 폼이다. 나는 여자를 대신해 물속에서 집기들을 건져내어 분리한다. 반짝이는 금속성에서 눈을 돌리는 순간 여자의 얼굴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일일교사! 스승의 날 준호 담임과 함께 만났던 회장엄마다. 얼굴로 피가 몰려드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입술을 꽉 다문다.
지난 오월이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사적인 어떤 선물도 받지 않는다는 학교장의 의례적인 공문이 왔지만, 노련한 자모들은 한주일 전부터 선물을 챙기느라 기민하게 움직였다. 녹색어머니회나 아람단, 운영위원회 혹은 반대표 등으로 평소 학교에 자주 드나들고 교사들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 자모들이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에 재능기부를 하는 자모들도 있었다. 나도 올해는 어떻게든 아들놈 준호 담임에게 성의를 표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했다. 이왕이면 몸에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름을 알만한 건강보조식품들은 값만 비싸지 마음에 차질 않았다. 고심한 끝에 농사짓는 친정 오빠한테 토종꿀을 부탁했다. 식구들이나 먹인다고 오갑산 마름에 허드레로 치는 건데,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잡화 꿀이 채워진 뒤에 따는 거라서 내 딴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거였다. 문제는 급식소 일꾼으로 일하면서 담임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교직원들보다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학생들 종례 후에나 일이 끝나므로 시간이 맞지 않는 까닭이었다. 방과 후에 잠깐의 시간이 있지만 땀내가 풀풀 나는 작업복 차림으론 담임을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걸 준비한 것도 아닌데 식사비까지 들여가며 밖에서 만나기는 더욱 부담스러웠다. 이래저래 날짜를 놓쳐서 당일 날 짬을 내었다. 스승의 날은 보통 오전 수업만 하므로 급식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끝날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오학년 삼반 교실을 기웃거렸다. 담임과 같은 또래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마주 앉아 있었다. 둘은 연신 깔깔거리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다에 빠져 있었다.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려도 잡담이 끝나지 않아 앞문을 두드렸다. 담임이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나를 알아보진 못했다. 준호 엄마에요. 교실로 들어서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오늘 일일교사 하신 회장 엄마예요. 담임이 자모를 소개했다. 순간 회장엄마가 그렇게 대단해 보일수가 없었다. 담임보다도 그녀에게 더 기가 죽었다. 수고 많으시지요? 가까스로 건네는 내 인사에 그녀는 의례적으로 고개를 까닥여주었다. 예의상 웃는 얼굴 속에 경계하는 눈빛이 뚜렷했다. 내가 급식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낸 담임이 친절하게도 그녀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녀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냉소가 피어올랐다. 진즉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바쁘게 살다보니 사람 노릇두 못하구 사네요. 변변찮은 건데 토종꿀이에요. 목에 좋은 거라서 가져왔어요. 나는 불쑥 보자기를 내밀었다. 담임은 손사래를 쳤지만 받아서 교탁 밑으로 밀어 넣었다. 교탁주변에 꽃다발과 포장을 뜯지 않은 자잘한 선물들이 놓여 있었다. 담임은 준호가 내성적이라며 차분해서 공부는 잘 따라온다고 말했다. 다른 자모를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담임의 말은 공허했다. 나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몹시 지루한 얼굴로 손톱을 들여다보고 있는 회장엄마에게 신경이 쓰여 말 한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일어섰다. 인사를 던지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담임에게 식사나 하러 가자고 했다. 함께 가자는 빈말조차 건너오지 않는 그 자리를 나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복도에 나오자 요의가 느껴지면서 짜증이 치밀었다. 회장엄마의 냉랭한 태도도 그렇고 모처럼 기회를 잡았는데 준호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여간 불쾌한 게 아니었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려는데 발소리가 들렸다. 스승의 날 교실을 얼씬거리는 내 꼴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지나가길 기다렸다. 텅 빈 복도에 하이힐이 찍히는 소리가 엇박자로 울렸다.
과일이니 꿀이니 이렇게 짐 되는 걸 왜 하나 몰라. 그러게 말예요. 간단하고 좋은 것도 얼마든지 있는데. 회장엄마와 담임의 목소리였다. 확성기에서 울려나온 것처럼 두 사람의 말소리가 귓바퀴에 와서 얹혔다. 차츰 괜한 일을 벌여서 망신을 자초한 것이 비루하게 느껴졌다. 노상 치마 바람을 곁눈질하면서도 변변치 못하게 굴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집까지 걸어오는 내내 무릎이 후들거렸다. 집게발이 달린 듯 담임과 회장 엄마의 목소리가 귓바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열소독이라도 해서 씻어버리고 싶었다. 그 뒤론 어쩌다 담임과 마주쳐도 겨우 목례만 보낼 뿐 내 쪽에서 등을 돌렸다. 내 형편이 그녀를 만족시켜주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도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손목이 욱신거린다. 여자의 옆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뜩찮은 얼굴 속에 설핏 녹아있는 냉랭함에 뜨거운 물을 끼얹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누른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당을 몸으로 때우는 일 따위에 끼어들 여자는 아닌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조리실 환경과 위생 상태를 감시하러 왔는지도 모른다. 건수만 있으면 아무 일에나 참견하며 함부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오늘의 모든 조리과정은 그녀의 입을 통해 담임과 교직원들에게 보고될지도 모른다. 위산이 역류할 때처럼 기분이 더럽다. 무지근한 허리를 일으키는데 사타구니 사이에서 뜨거운 것이 쿨렁 쿨렁 샌다. 밑이 빠지는 것처럼 아리다. 나는 뜨거운 물과 땀 사이에서 질컥대는 장갑을 벗어놓고 휘적휘적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무리 바뻐도 볼일을 생략할 순 없는 거지이! 장군이 목소리다. 장군이 넌 화장실두 셈으로 댕기지? 변기에 앉은 채 대꾸하자 그녀가 클클 웃는다. 근데 오늘은 왜 이렇게 허리가 아린지 몰러. 특별난 것두 없는데 힘에 부치네. 내가 패드를 갈아내는 동안 먼저 나간 장군이가 툴툴댄다. 다들 밥줄 떨어질까 봐 난린데, 느려터진 손으로 해보겠다구 나서는 걸 말릴 수두 없구. 솔이의 목소리다. 화장실서 쑤군대다 눈총 맞겠다, 뭔 얘긴지 이따 말해 줘 언니. 한마디 던져놓고 장군이가 튀어 나간다. 무슨 말예요? 나도 팅팅 불은 손가락에 장갑을 끼면서 솔이에게 묻는다. 오늘 온 파출부요. 우리학교 자모래요. 5학년 몇 반 회장 엄마라던데, 일 손 필요할 때 다시 불러 달라구 영양사랑 직원들한테 부탁하데요. 순간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 나오려는 걸 우겨 넣는다. 어이가 없다. 작정하고 끼어들어 보시겠다! 꼭두각시처럼 앞치마를 조여매고 뒤뚱거리던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꼴을 매일 봐주려면 인내심이 꽤나 필요할 것이다. 락스 물을 부어놓은 발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미끈하면서 발판이 밀린다. 허리가 삐끗 한다. 등줄기에 진땀이 배나오고 저절로 이빨이 맞물린다. 지독하게 재수 없는 날이다.
나는 불편한 허리를 장갑 낀 손으로 받치고 조리실을 둘러본다. 뒤에서 칼부림이 나도 모를 만큼 각자의 소음에 빠져있다. 나는 허드레로 쓰는 들통을 찾아내어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붓는다. 거기에 주방용 세제와 락스를 충분히 풀어 소독수를 만든다. 힐끗 자모를 보니 배식 바구니를 붙들고 앉아 알뜰히 수세미 질을 하는 중이다. 저 속도라면 오십 개의 바구니를 닦는 데 일박 이일은 걸릴 것이다. 나는 손짓으로 자모를 부른다.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미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녀가 미적거린다. 재차 눈을 마주치고 그녀 쪽으로 들통을 내밀자 마지못해 일어선다. 이거요, 마무리 작업인데 하수구 뚜껑 걷어내구 배수로 끝까지 싹싹 닦아요. 나는 철 수세미를 찾아주며 홈 안창까지 깨끗하게 닦으라고 덧붙인다. 시큰둥한 얼굴로 통을 받아든 그녀가 무작정 중앙 조리대 쪽으로 걸어간다. 나는 달려가 자모의 손에 들린 들통을 낚아챈다. 자모가 손잡이를 거칠게 놓는 바람에 락스 물이 내 몸으로 출렁 튀긴다. 왼쪽 팔이 뜨겁다. 나는 들통을 놓고 얼른 찬물을 어깨에 끼얹는다. 숫제 앞 뒤 없는 전차네, 여기서 배수구가 시작되는데 젤 먼 쪽부터 닦아야지 같은 일 두 번 할 일 있어요? 자모가 위생모를 쓱 벗으며 험한 눈길로 나를 건너다본다. 무서울 것 없다. 쏘듯이 마주보는 내 눈을 피해 그녀가 천장으로 눈길을 돌린다. 위생복 안에 입은 남방셔츠의 어깨로 락스 물이 배어들면서 냄새가 진동한다. 나는 들통을 들어다 배수 홈이 시작되는 사무실 칸막이 앞에 털썩 내려놓는다. 돌아서서 자모와 눈이 마주치자 이번에도 자모가 눈길을 돌린다. 들통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얼굴이 잔뜩 굳어있다. 그녀가 하수구 뚜껑을 걷어내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거반 끝나 가는 바닥 설거지에 합세한다. 고무함지를 부셔서 포개놓고 돌아보니 바닥보다 한 뼘은 낮은 하수구 홈을 철수세미로 긁어내느라 자모의 어깨가 출렁거린다. 몹시 엉거주춤해 보이지만 일에 열중해서 내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다. 위생모에 비누 거품이 튄 줄도 모르고 락스통을 미는 자모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온 몸의 힘이 팔로 쏠리는 저 일은 온 몸에 후유증을 남긴다. 적어도 삼일간은 다리가 당기고 온몸이 욱신거려 옴짝달싹 못 할 것이다. 일당 값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슬며시 짜증이 누그러든다. 토시를 끼지 않은 그녀의 팔이 보인다. 위생복을 덧입기는 했지만 어깨에 락스물이 튄 내 남방셔츠나 오늘 그녀가 입고 온 티셔츠는 표백제가 함유된 독한 세제에 탈색되어 허드레 작업복이 될 것이다. 뭐든 지나치게 소독하면 색깔과 무늬까지 지워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하얗게 바랜 옷감처럼 묵은 감정까지 소독할 수 있다면 참 편리할 것 같다.
마무리를 끝낸 직원들은 탈의실로 들어가 버리고, 나는 자모를 도와 남은 소독수를 배수구로 흘려보낸다. 알퀴한 약품냄새에 자모와 내가 동시에 재채기를 한다. 불쾌했던 것들이 쑥 빠져 나간 듯 시원하다.
양력
1968년 서울 출생. 1999년 계간 [뿌리] 신인상 시 당선.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업] 당선.
시집 [통째로 가슴이 멍들다].
[전염],[도마뱀이 숨쉬는 방]등 단편소설 다수 발표.
현재 인하대학교 대학원 한국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