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즈니스맨이자 복음 커뮤니케이터인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해 푯대를 향하여 열심히 달려갔던 이방인 선교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천막을 만들어서 파는 사업가이자 복음을 널리 알리는 커뮤니케이터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다양한 경력을 가지게 된 데에는 그의 고향인 다소가 주는 영향 역시 무시하지 못합니다. 로마 길리기아 지역 수도였던 다소는 소아시아 문화, 무역 그리고 군사의 중심지였습니다. 뿐 아니라 당시 아테네 및 알렉산드리아와 비등한 학문의 중심지였습니다. 아마와 염소 털로 짠 직물이 유명한 다소에는 다양한 직물을 짜는 직조업이 발달했고 천막 제조업이 성행했습니다. 다소의 천막은 오늘날 말하면 하나의 브랜드였습니다.
이러한 다소에서 태어나서 자랐던 사도 바울이었기에, 커뮤니케이터로서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글쓰기를 훈련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에게 천막 제조는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목민을 위한 천막뿐 아니라 도시에서 사용하는 여러 용도의 천막들을 고향에서 보고 자란 그였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고린도와 같은 로마제국 대도시에서 천막 제작을 하여 생계를 이어갔고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열정적으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커뮤니케이터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쓰인 편지는 신약성경 27 중 무려 13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차례 전도여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알릴뿐더러 영감 어리고 치열한 글쓰기를 통해 복음과 신앙을 나누었습니다.
바울 서신 중 로마서가 가장 깁니다. 로마제국 5대 도시 중 하나인 고린도에서 바울은 갈대로 만든 펜을 들고 당시에 귀한 잉크를 찍어 파피루스지에 복음과 신앙을 치열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로마서에 쓰인 단어는 무려 7,114개입니다. 오늘날 얇은 문고판 서적이나 소책자 정도의 분량이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엄청난 분량의 편지였습니다. 로마 시대 명문장가인 세네카가 쓴 편지에 사용된 단어 수는 평균해서 995개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로마시대 편지는 오늘날 SNS에 올리는 글과 비슷합니다. 평균적으로 90개 정도 단어 분량으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에 비해 로마에 붙인 사도 바울의 편지에는 담긴 단어는 칠천 개가 넘었습니다.
2. 파피루스로 보는 플리니우스 『박물지』
로마 장군이자 자연사학자였던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세쿤투스(Gaius Plinius Secundus)는 “철의 강력한 힘을 견제하기 위해 자연이 내린 형벌이 녹”이라는 재미있는 설명을 그의 명저 『박물지(Naturalis Historiae)』에 적었습니다. 이 책은 77년에 출간된 이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유럽 식자층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박물지는 동물, 식물, 광물, 지질 등 여러 사물이나 현상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기원전 4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동물지(Historia Animalium)』가 박물지의 유래로 여겨집니다. 플리니우스 저작 외에도 중국 서진의 문장가인 장화가 10권으로 엮은 『박물지(博物志)』, 프랑스의 자연사 학자인 뷔퐁이 44권에 결처 쓴 『왕실 박물관의 해설을 통한 박물지, 총론 및 각론』도 유명합니다.
플리니우스는 100여 가지 출전을 바탕으로 당시 고대 지식을 모았습니다. 천문학, 수학, 지리학, 민족학, 인류학, 생리학, 동물학, 식물학, 농업, 원예학, 약학, 광물학, 조각, 예술 및 보석 등과 관련되어 2만 개가 넘는 항목을 37권의 두루마리에 걸쳐 상세하게 적었습니다. 가히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방대한 책은 상당 기간 동안 인기를 유지했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여러 필사본이 만들어져 여러 귀족들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르네상스 때에 베니스에서 첫 활판 인쇄본이 나와 보다 값싸게 대량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유명한 유럽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말로 번역된 플리니우스 『박물지』를 애독하였습니다.
플리니우스가 이 방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는 이유로 자연과 사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들 수 있겠습니다. 급기야 그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가 곤경에 빠졌을 때 그의 친구도 구할 겸 화산 폭발을 관찰할 요량으로 폼페이로 향했습니다. 또한 로마 대장군으로 가진 힘과 정보력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그리스, 이집트를 여행하며 여러 자료를 수집하였고 군대와 행정의 요직을 거쳤으며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직접 섬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물려받은 유산과 요직을 거치면서 얻은 재력 또한 플리니우스가 『박물지』를 쓸 수 있는 배경입니다. 로마제국 당시 서적 출간은 개인 재력에 의존했다. 『박물지』 저술 및 출간을 위해 플리니우스는 외부로부터 어떤 후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비를 털어 저술하였고 출간하였습니다.
플리니우스의 『박물지』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입니다. 플리니우스는 속이 빈 마른 갈대 끝을 만년필 펜촉처럼 만든 갈대 펜을 들었습니다. 나무 그을음이나 기름의 그을음을 고무 액과 섞어 만든 잉크에 펜을 찍어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25센티미터 파피루스지에 글을 적었고 여러 파피루스지를 이어 붙여 두루마리를 만들었습니다. 플리니우스가 『박물지』를 적은 파피루스지는 고급 중에 고급인 히에라티카급으로, 고대 하이집트 전역에서 재배된 파피루스로 만들었습니다. 로마 제국 당시 파피루스지는 전량 이집트에서부터 들어왔으며 문서작성을 위한 고급 용지인 히에라티카급에서부터 상품 포장을 위한 거친 엠포레티카급까지 9종류 파피루스지가 있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파피루스 가격은 양피지보다 쌌지만 결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갈대나 대나무로 만든 갈대 펜, 오징어 먹물이나 그을음을 고무 액과 섞어 만든 잉크 역시 값비싼 문방구였습니다. 이러니 로마 시대 책값은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 1권의 책 가격은 당시 노동자 하루 임금의 5만 배였다고 하니,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말 그대로 고가의 재산이었습니다. 금고 같은 안정장치가 달린 곳에 보관하였다가 특별한 때에 꺼내어 보여주거나 읽었을 것입니다.
3. 천막으로 파피루스를 산 사도 바울
이를 통해 보면, 로마 시대 편지들이 왜 그리 짧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편지를 쓰는 데에 고가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파피루스보다 값이 쌌던 나무껍질을 얇게 저민 나무지 역시 결코 저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편지에 할 말만 적었습니다. 오늘날 SNS 글과 비슷합니다. 신약성경에 실린 편지가 사도 바울이 쓴 편지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여러 교회와 지도자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어 복음을 알리며 교회를 격려하며 교회 문제에 대해 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여러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습니다. 파피루스, 갈대 펜, 잉크 구입은 상당한 재력을 요구합니다. 중고 파피루스지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오래된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물에 씻어 깨끗하게 빨아서 다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막대한 비용을 어떻게 충당했을까요? 빌립보 교회 외에는 정기적 혹은 연속적인 후원이 거의 없었기에, 그는 가죽을 만지는 그러나 아주 익숙한 천막 제작을 했습니다. 많은 대적자들은 사도 바울이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라는 율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죽은 동물 가죽을 만지는 천한 노동을 한다고 조롱했습니다.
사도 바울 당시 천막은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구입할 수 있는 값비싼 제품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지속적인 수익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유목민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도시에서 사용하는 천막을 만드는 게 유리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행적을 보면 유목민이 거쳐하는 들판과 동굴이 아니라 여러 도시를 사도 바울이 거쳐 가면서 도시의 유력층과 사귀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9장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 비유가 나옵니다. 그리고 바울 서신 여러 곳에서 군인과 관련된 표현들이 나옵니다. 이를 통해 본다면, 사도 바울은 여러 축제나 운동 경기에서 사용되는 천막이나 군인들이 생활하는 막사를 위한 군용 천막을 주로 만들어서 팔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시 염소털 천막 하나를 만드는 데 80마리 정도 염소로부터 얻은 털가죽이 필요했습니다. 가죽 양이 상당하니 천막 제작 시간도 오래 걸렸습니다. 수 백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기에 천막 제작은 결코 혼자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천막을 만들었으며 고가 천막을 필요로 하는 사회 유력층이나 군인들과 교류했습니다.
4. 일상에서 마중물 붓기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익숙했던 천막을 만들어 번 수익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여행을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며 일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을 천막 제작과 판매로 충당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쓰기 위한 비용 역시 천막 사업 수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 바울은 이 수익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일정 품질 이상의 파피루스, 잉크와 갈대 펜을 구입하여 노동이 멈춘 시간에 편지를 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라는 유대 사회 권력에 접근하는 욕망의 경력을 버린 채, 유년 시절부터 보아왔던 익숙한 천막 제작을 업으로 삼아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업은 율법이 금하고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는 천대받는 노동이었습니다. 유대의 율법주의 경계 밖으로 나섰으며 그리스 로마의 권력층이 만들어 놓은 사회문화 아비투스를 넘어선 사도 바울은 위선의 가면을 벗고 천막 제작이라는 익숙한 일상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한 마중물을 부었습니다.
김재상(과학과신학의대화 정회원 및 연구위원)/
첫댓글 카페를 더이상 운영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급한사정-공과금을 내야하는데 도와주세요,,먹을 것도 사야합니다
후원도 없습니다 후원으로 도와주셔서 용기를 주십시요...
카페지기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늘 어렵게 살아가는데
통신료 공과금 30만원과 치료비를 마련해야합니다
카페지기는 생활고를 겪고 있습니다 작은 나눔의 손길이 되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도와주신 분을 위해서 집사람 박경옥 전도사가 매일
기도해 드리고 있습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자동이체 정기후원 회원님이 계셔야 카페를 운영 할 수 있습니다 공과금으로
30만원 병원약과 주사비가 30만원 40만원으로 먹을거라도 사야 삽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카페후원계좌-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 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