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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이트 『사진의 주요 개념』
제5장 「풍경의 구성」 핵심 정리노트
※ 이 글은 데이비드 베이트(David Bate)의 『사진의 주요 개념(Photography: The Key Concepts)』 제2판 제5장 「풍경의 구성(The Composition of Landscapes)」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어판은 열화당에서 2024년 출간되었다. 제5장은 풍경의 역사, 아름다움과 숭고, 사진적 시각, 식민주의, 미학의 정치성, 파노라마, 탈미학적 풍경 등을 다룬다. (David Bate, Photography: The Key Concepts, 2nd ed., Routledge, 2020, pp.109–134; 한국어판 정보; 저자 공개 원문 정보)
[1] 풍경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구성된 이미지’이다
1. 베이트가 말하는 풍경은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이나 장소 그 자체가 아니다.
(1) 자연과 장소가 특정한 시점·프레임·구도·빛에 따라 조직되어 이미지가 될 때 비로소 ‘풍경’이 된다.
(2) 같은 장소도 누가,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으로 나타난다.
(3) 사진가는 넓은 세계에서 일부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화면 밖으로 제외한다.
따라서 풍경사진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옮긴 투명한 기록이 아니다. 풍경사진은 세계를 바라보는 사회적·문화적 시각을 구성하는 재현 방식이다.
2. 풍경사진에서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찍는가”만이 아니다.
(1) 왜 이 장소를 선택했는가.
(2) 어디에서 바라보았는가.
(3) 무엇을 포함하고 무엇을 제외했는가.
(4) 아름답거나 황량하게 보이도록 어떻게 구성했는가.
(5) 이 땅을 바라보고 소유하며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풍경사진의 숨은 의미와 권력관계가 드러난다.
[2] 풍경은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장르이다
1. 풍경은 처음부터 독립된 미술 장르가 아니었다.
르네상스 회화에서 풍경은 종교화나 초상화의 배경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인물과 사건이 줄어들고 자연과 토지가 화면의 중심이 되면서 독립적인 풍경화 장르가 형성되었다.
2.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단순히 땅을 뜻하지 않는다.
‘랜드(land)’는 실제 땅이고,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그 땅을 바라보고 이미지로 조직한 방식이다. 즉 풍경은 자연환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각이 결합한 결과이다.
3. 풍경 장르에는 토지 소유의 역사가 들어 있다.
유럽 풍경화에서는 넓은 농지·목초지·정원·저택이 조화롭고 평화로운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그 풍경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특정 계급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토지였다.
아름다운 풍경은 때로 토지를 둘러싼 노동, 빈곤, 계급갈등과 강제적 토지 점유를 화면 밖으로 밀어냈다. 풍경의 아름다움은 사회적 현실을 감추는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3] 아름다움과 숭고
1. 전통적 풍경미학의 핵심에는 ‘아름다움’과 ‘숭고’가 있다.
1. 아름다움(The Beautiful)
아름다운 풍경은 조화·균형·질서·평온함을 제공한다.
① 부드러운 빛
② 안정된 수평선
③ 조화로운 원근법
④ 평온한 자연
⑤ 정돈된 구도
⑥ 인간에게 친숙하고 안전한 공간
아름다운 풍경은 세계가 안정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2. 숭고(The Sublime)
숭고는 단순히 매우 아름답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힘과 크기 앞에서 느끼는 공포·경외·쾌감이 결합한 경험이다.
① 거대한 산과 절벽
② 폭풍과 거친 바다
③ 화산·빙하·사막
④ 끝없는 공간
⑤ 어둠과 심연
⑥ 파괴적인 자연의 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숭고를 위험과 공포에 가까운 감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관객이 실제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을 때 공포는 미학적 쾌감으로 바뀐다. (Edmund Burke,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1757)
2. 숭고한 풍경도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자연의 웅장함만 강조하면 그 장소에서 벌어진 식민지배·노동·폭력·환경파괴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베이트는 숭고를 단순한 감탄의 형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누가 그 풍경을 숭고하게 구성했으며 무엇이 가려졌는지를 질문한다.
[4] 동시대의 다양한 ‘풍경들’
1. 동시대의 풍경은 더 이상 산·바다·숲에 한정되지 않는다.
① 도시풍경(cityscape)
② 해양풍경(seascape)
③ 산업풍경(industrial landscape)
④ 교외풍경(suburban landscape)
⑤ 도로와 교통체계
⑥ 폐허와 오염지역
⑦ 가상공간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연
⑧ 동물원·박물관·디오라마 속 자연
베이트가 ‘랜드스케이프’가 아니라 복수형의 ‘스케이프들(scapes)’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의 공간이 자연과 도시, 현실과 인공물, 지역과 세계가 복잡하게 결합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 풍경과 도시의 경계도 불분명해졌다.
도시는 자연의 반대가 아니다. 도시 안에도 식물·동물·강·기후가 존재하고, 자연환경에도 도로·관광시설·송전탑·산업시설이 들어와 있다. 동시대 풍경사진은 자연과 문화가 분리되어 있다는 전통적 생각을 흔든다.
[5] 동물과 인공 자연
히로시 스기모토(Hiroshi Sugimoto)의 《북극곰(Polar Bear)》(1976)은 자연사박물관의 동물 디오라마를 촬영한 작품이다.
정교한 조명과 구도를 통해 박제된 동물과 인공 배경이 실제 자연처럼 보인다. 이 사진은 다음을 질문한다.
① 사진 속 자연은 실제 자연인가.
② 박제된 동물은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이는가.
③ 사진의 사실성은 실재를 보증하는가.
④ 인간은 자연을 어떻게 분류하고 전시하는가.
⑤ 자연은 이미 문화적으로 제작된 이미지가 아닌가.
스기모토의 사진은 풍경사진이 실제 자연을 촬영해야 한다는 통념을 무너뜨린다. 동시에 사진의 사실성이 실밀하게 구성된 환영을 실제처럼 믿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6] 사진적 시각과 앤설 애덤스
1. 풍경사진은 회화의 관습을 계승했지만 사진 고유의 시각도 발전시켰다.
초기 풍경사진은 전경·중경·원경, 원근법, 화면을 이끄는 길과 강, 안정된 수평선 등 풍경화의 구성을 많이 사용했다. 사진이 기계적 기록이라고 하더라도 사진가의 위치·렌즈·프레임·노출·인화에 따라 풍경의 의미는 달라진다.
2. 앤설 애덤스(Ansel Adams)는 사진의 기술적 명료함을 통해 미국 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했다.
선명한 초점, 넓은 계조, 정교한 노출과 인화는 자연을 장엄하고 순수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의 사진은 환경보전 의식을 강화했지만, 동시에 미국의 광야를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갈등이 없는 순수 자연처럼 보이게 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즉, 완벽한 기술과 아름다운 표현도 특정한 자연관과 국가적 신화를 생산한다. (Ansel Adams, “The New Photography,” 1934–1935; Bate, pp.120–122)
[7] 뉴 토포그래픽스와 변형된 풍경
1975년 전시 《뉴 토포그래픽스: 인간이 변경한 풍경의 사진들(New Topographics: Photographs of a Man-Altered Landscape)》은 전통적인 숭고한 자연사진에서 벗어난 중요한 전환점이다.
1.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산업단지·교외주택·주차장·도로·창고 등을 촬영했다.
② 극적인 빛과 감정적인 구도를 억제했다.
③ 사람이 자연을 변형한 결과를 냉정하게 보여주었다.
④ 아름다운 자연과 추한 개발지역의 구분을 흔들었다.
⑤ 단독 이미지보다 반복·연작·유형학적 배열을 중시했다.
2. 루이스 발츠(Lewis Baltz)의 《파크시티(Park City)》 연작은 개발 중인 토지와 건축 구조물을 무표정하고 건조하게 기록한다.
그의 사진은 환경파괴를 극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개발의 흔적을 차분하게 축적하여 자본·건설·소유가 땅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게 한다.
이 점에서 뉴 토포그래픽스는 데드팬(Deadpan) 풍경사진과 직접 연결된다. 그러나 겉으로 무표정하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반복하는가에 이미 비판적 관점이 들어 있다. (Greg Foster-Rice and John Rohrbach, eds., Reframing the New Topographics, 2010)
[8] 새로운 프런티어와 식민지 공간
1. 19세기 풍경사진은 탐험·측량·관광·철도건설·식민지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미국 서부의 측량사진은 단순히 미지의 자연을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사진은 땅을 조사하고 분류하며 개발 가능한 영토로 바꾸는 데 사용되었다.
2. 칼턴 왓킨스(Carleton Watkins)의 철도와 서부 풍경은 자연과 산업의 결합을 보여준다.
거대한 자연 속 철도는 문명과 진보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원주민의 삶의 터전 상실, 자원개발, 영토 확장과 자본의 이동이 존재한다.
3. 프랜시스 프리스(Francis Frith)의 이집트 사진도 식민주의적 시각과 관련된다.
피라미드와 사막은 서구 관객에게 오래되고 신비로운 ‘동양’으로 제시되었다. 현지인의 동시대적 삶보다 유적과 이국성이 강조되면서 이집트는 서구인이 관찰하고 소유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풍경사진은 땅을 군사적·경제적으로 점유하기 전에 먼저 시각적으로 점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말한 오리엔탈리즘 및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의 식민주의적 재현 비판과 연결된다. (Linda Nochlin, “The Imaginary Orient,” The Politics of Vision, 1991)
[9] 컴포지션과 컴포저
베이트는 풍경의 ‘구성(composition)’과 ‘평정·침착함(composure)’을 연결한다.
1. 풍경사진의 구성은 복잡하고 불안정한 세계를 하나의 질서 있는 화면으로 정리한다.
① 혼란스러운 현실을 프레임 안에 정돈한다.
② 시작과 끝이 없는 공간에 경계를 만든다.
③ 관객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④ 불안·공포·혼돈을 조화로운 이미지로 바꾼다.
2. 따라서 풍경사진은 관객에게 심리적 평정을 제공한다.
잘 구성된 풍경을 보면서 관객은 현실의 혼란이 잠시 정리되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평정은 현실에 실제로 질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진이 혼란을 화면 밖으로 제외했기 때문에 생긴 것일 수 있다.
풍경사진의 평온함은 현실의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Adam Phillips, “On Composure,” 1993; Bate, pp.126–128)
[10] 미학은 정치적이다
1. 풍경의 아름다움은 정치와 분리되지 않는다.
어떤 장소를 아름답고 조화롭게 표현하면 그 장소의 사용 방식과 권력관계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① 사유지를 평화로운 자연처럼 보여준다.
② 산업개발을 진보의 상징으로 만든다.
③ 식민지를 비어 있는 땅처럼 나타낸다.
④ 빈곤과 노동을 화면 밖으로 제외한다.
⑤ 국가의 영토를 하나의 아름다운 공동체로 상상하게 한다.
2. 풍경사진은 국가 정체성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산·강·평야·국경·기념장소는 국민이 함께 공유하는 국토의 이미지가 된다. 실제로 모든 국민이 그 장소를 방문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통해 같은 국토를 공유한다고 상상한다. 이는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상상된 공동체’ 개념과 연결된다.
따라서 미학의 정치성이란 정치적 구호가 사진에 직접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무엇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가가 이미 정치적이라는 뜻이다.
[11] 파노라마와 전체를 보는 욕망
1. 파노라마는 넓은 공간을 하나의 시야 안에 넣으려는 형식이다.
파노라마는 관객에게 넓은 세계를 한눈에 파악한다는 경험을 준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모든 공간을 동시에 볼 수 없다. 파노라마의 전체성은 여러 시점이나 연속된 장면을 결합해 만든 시각적 구성이다.
2. 파노라마의 시선에는 통제와 소유의 욕망이 들어 있다.
①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② 넓은 영토를 한눈에 파악한다.
③ 관객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다.
④ 공간을 측량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든다.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의 베이징 파노라마와 같은 식민지 시대의 사진은 도시를 기록하는 동시에 서구 관객에게 그 공간을 시각적으로 소유하는 경험을 제공했다.
따라서 파노라마는 단순히 넓은 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권력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형식이다.
[12] 포스트모던 풍경과 ‘탈미학적’ 풍경
1. 동시대 풍경사진은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숭고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① 평범하고 지루한 장소를 찍는다.
② 오염·개발·폐허·교외·비장소를 다룬다.
③ 아름다운 구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다.
④ 역사적 풍경사진의 형식을 차용하거나 비판한다.
⑤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의심한다.
⑥ 장소를 정체성·기억·권력의 문제와 연결한다.
2. 그러나 미학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추한 풍경’, ‘무표정한 풍경’, ‘탈미학적 풍경’도 반복되면 하나의 새로운 미학이 된다. 데드팬이나 뉴 토포그래픽스의 무표정한 형식 역시 선택된 구도·빛·거리·배열을 가진다.
따라서 ‘포스트-미학(post-aesthetic)’은 미학이 사라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전통적인 아름다움만으로 풍경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13] 장 전체의 핵심 결론
1.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장소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2. 풍경사진은 장소를 단순히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프레임 안에서 구성한다.
3. 아름다움과 숭고는 자연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미학적 관습이다.
4. 풍경사진의 구도는 관객에게 질서와 심리적 평정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갈등을 감출 수 있다.
5. 풍경사진은 토지 소유, 계급, 국가, 식민주의, 관광, 개발과 결합해 왔다.
6. 사진의 기록성과 사실성도 풍경을 객관적으로 보증하지 않는다.
7. 뉴 토포그래픽스와 동시대 풍경사진은 인간이 변형한 일상적 환경을 새로운 풍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8. 데드팬의 무표정함이나 탈미학적 표현도 미학과 정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9. 풍경사진을 읽을 때는 “이 장소는 무엇인가”와 함께 “누가 이 장소를 이렇게 보이도록 만들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10. 베이트에게 풍경사진은 단순한 자연사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땅과 자연을 보고, 구분하고, 소유하고, 기억하며 통제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사회적 이미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