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처음 왔을 때 민주노총 국제부에서 호주 노총으로 파견되어온 오종쇠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 조합원이 2만 명이 넘는 거대노조인 현대중공업의 노조 위원장이 되었다.
한국에 가서 이종호 목사가 일하는 울산 등대교회에 갔다가 오 위원장이 생각이 나서 노조 사무실로 "위원장에게 지성수 목사라는 이가 울산에 왔다고 전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나중에 오 위원장에게서 연락이 와서 몹시 반가워 하면서 다음날 아침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등대 교회 이종호 목사와 현대중공업의 하청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해고가 된 변창기도 동행을 했었다. 그 자리에서 오 위원장은 요란하게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변창기에게 왜 그렇게 나타나게 하고 다니냐면서 “ 너 같으면 너 같은 사람 쓰겠냐?”고 했다. 재미 있게도 그러면서 “자본주의야!”라고 더붙였다.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몸은 자본주의에 속해 있는데 감정만 그렇지 않으면 사회부적응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몸은 자본주의에 속해 있는데 감정만 안 그러면 삐딱한 사람이 되는 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빈민운동을 할 때 현장을 드나드는 대학생들에게 “당장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운동을 하지 말고 평생 할 수 있는 자세로 하자.”고 늘 강조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는 것은 패배자의 악다구니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많든 적든 자기 손으로 돈을 버는 재주가 없어서 자기 자신의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영원한 사회적 약자로서 투덜거리기만 해대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약자를 끌어 앉고 가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것을 신앙과 연결시킬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사회변혁 운동을 할 때 연대가 제일 중요하듯 신앙으로 할 때는 다른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는 운동(Movement)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의 힘은 감동이다. 누구든 감동을 받아 따라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 재미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 위원장이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 호텔 현관으로 나섰을 때 주차장에서 자기를 향하여 다가오는 승용차에게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은 운전기사가 딸린 승용차까지 제공 받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운전사 있는 승용차를 타는 입장이라는 것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장면은 30년 전의 똑 같은 사건의 데자뷔였다. 1984년 5월 어느 날 2 사단의 군종참모인 불교의 법사가 교회로 나를 찾아왔다. 육군본부에서 6월 한 달 동안 외부 강사를 초청해서 정신 교육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예산이 없어서 고민인데 보좌관 군목이 나에게 부탁을 해보라고 해서 왔다는 것이다. 사단 직할대부터 시작해서 보병은 연대 급까지 포병은 대대 급까지 전방을 구석 구석 돌아다녀야 하는데 돈은 주지 않는 순회 강연을 수락하자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애국하는 마음으로 거의 한 달간 사단 내 전 지역을 순회하면서 강연을 했다.
부대순회 교육이 끝냈을 때, 사단장이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하자고 해서 사단 장교식당에서 참모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날 사단장은 나에게 "목사님은 사단장인 나도 못한 일을 하셨습니다. 사단장인 나도 우리 부대를 그렇게 모두 돌아다니면서 장병들을 만나 본 일이 없어요. 우리 부대를 모두 돌아다녀 보셨으니 느낀 점이 있으면 한 마디 해 주시지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포병 대대에 갔을 때의 일을 이야기 해주었다. 포병 대대장이 나에게 "목사님, 요즘 사병들은 도대체 국가관이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가관을 좀 심어주십시오."라고 요청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국가관이란 대대장처럼 군인으로서 출세하겠다고 마음먹은 직업군인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국가의 종살이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사병들에게는 형식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내 생각을 들은 사단장은 껄껄 웃으면서 "군에서는 처음 지휘관이 된 대대장이 제일 무서운 겁니다"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사단장과 장교 식당 현관을 나서는데 운전병이 2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를 끌고 현관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아마도 평소에 사단장이 현관으로 나오면 차가 정확하게 대기하고 있도록 되어 있던 모양이다. 현관에서 나를 배웅하는 입장인 사단장은 차를 끌고 오려는 운전병에게 순간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면서 왼손으로 오지 말라고 신경질적인 제스처를 보냈다.
아마도 사단장은 짧은 대화 중에서도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파악하고는, 평소처럼 차가 자기 발 앞에 대령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뒤 돌아 보지는 못했지만 틀림없이 그 순간 평소와 다른 사단장을 모습을 보고 뒤따라 나온 참모들은 매우 의아해 했을 것이다.
그들이 그 때 왜 그랬을까? 비록 순간적이나마 사단장에게나 위원장에게 나는 어색한 존재였던 것이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나는 그들이 평소 만나는 사람들과 전혀 다른 존재였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