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하고 슬프게 음악은 흘러나오고
흐느끼듯 재학생 대표의 송사는 이어지고
교장선생님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여기저기 훌쩍거렸다.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자한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카메라 준망원 80mmf1.8렌즈도
슬픔을 아는지 커다란 눈망울에 자꾸
엷은 김이 서리고 나는 연신 닦아냈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에 신경이 쓰였다.
강당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3악장 장송행진곡이었다.
정년 퇴임식에 장송행진곡이라니..
강당 무대 뒤에 있는 방송실로 갔다.
두꺼운 까만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얼굴의 남자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멈칫하다가 발길을 돌렸다.
모두들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는데
음악이 무슨 대순가 싶어 그냥 나왔다.
담당 선생님의 실수를 탓하기 전에
쇼팽의 뜨거운 가슴 속에 끓고 있는
축축한 태양을 원망해야 했다.
그리고 대 반전이 일어났다.
강당에서 폭소가 터져나오고 한 노신사의
열변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빈으로 초청받은 어느 퇴직 교장선생님
축사였다.
먼저 개 집에 사는 늙은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존경하는 교장선생님, 퇴직금을 절대로
자식에게 모두 주지 말고 절반만 주시오.
늙은이는 돈 없으면 개보다 못한 거요."
또 한 번 사람들을 웃기곤 말을 이어갔다.
공무원 연금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그 때 그 분은 퇴직금 전액을 사업하는
아들에게 주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첨엔 비자금 조금 있는 것으로 손자들에게
과자도 사주고 용돈도 주면서
아침 출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주머니는 비어가고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
손자들도 점점 대면대면하고 저희들끼리
놀고 며느리는 말없이 출근했다.
점심때가 돌아오면 괴로웠다.
늙은 소가 여물을 잘 먹는다는 옛말처럼
배는 왜 그리 빨리 고파오는지..
밥통엔 밥이 없고
냉장고를 열어봐도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먼저 간 아내 생각에 눈물이 났다.
하루 하루 눈물을 먹고 외로움은
쑥쑥 자라 그의 키를 덮었다.
문득 개의 점심이 궁금했다.
개 집을 들여다보니 진수 성찬이었다.
불고기에 소세지에 하얀 밥을 백구 녀석이
퍽퍽 먹고 있었다.
사람은 별개의 감정을 갖고 있어서 그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포기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동물의 감각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뭔지,
그 때부터 일어날 행동의 평가를
외부에 의탁하기로 했다.
하룻밤이 지나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아들며느린 여기 저기 전화를 하며 찾았다.
그런데 개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자꾸 머리를 떨어뜨리고 슬픈 눈을 하며
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배회했다.
다음날 아침 며느리가 출근을 하기 전에
백구의 점심을 준비해 개 집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대로 뒤로 꽈날랑했다.
아버지가 개 집에 쪼그리고 누워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개보다 못한
인생을 걸고 줄기찬 협상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준 퇴직금 절반을
돌려받고 개 집을 나왔다.
다시 손자들이 할아버지에게 돌아왔다.
사람은 나이 들고 늙어 갈수록
주위의 달콤한 말에 안정을 찾기 전 좀더
민감한 자신만의 수신기가 필요한 것 같다.
-글 배홍배
*쇼팽 피아노 소나타 2번 B플랫단조 3악장
장송 행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