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
내가 주를 찬양하는 것은 내가 산생명이요, 주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안에서 안식을 찾으며 그분의 위로하심과 사랑하심으로 용기를 가집니다.
하나님안에서 끼뻐하는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고 기뻐하며 경배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찬양은 나와 여러분을 살리고 삶을 더욱 살지게하고 강화시키며 번영하게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가 주의일을 행하고
끊임없이 사유하며 나를 돌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는 발자취와 흔적을 찾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
순종하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중에 어려운 중에 있으신분이나 질병이나 고통중에 계신분은
나를 포함하여 우리모두
마음껏 기도하고 한껏 찬양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합시다.
그리고 형제나 자매가 그러할 수 있도록 제한하지 말고 격려하고 아름다운 멍석을 깔아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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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개인찬양과 회중찬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찬양을 조금 더 세분화한다면 발표형 찬양과 개인묵상형 찬양으로 나눌 수 있으며
회중찬양은 그룹별 회중 찬양과 불특정다수를 위한 찬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개인찬양은 사실 별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찬양하기를 희망하는 개인이 만일 반주능력이 없을 경우
반주자를 섭외하여 개인찬양을 할 수도 있고
MR등을 이용할 수도 있으며 무반주로도 찬양은 가능합니다.
물론 풍성하지는 않지만...
그리고 장소가 조금 문제가 됩니다.
일반가정집에서 크게 소리치며 찬양할 수도 없으며
교회에서도 개인이 혼자 찬양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습니다.
문제는 회중 찬양입니다.
제가 처음 진해서부교회에 등록했을 때 그러니깐 1995년의 경우
저녁찬양인도를 청년회가 맡아서 하고 있었습니다.
반주자가 고정적이지 못해서 매번 바뀌었지만
나름 명맥은 잘 유지했었는데
반주자가 결석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무반주로 찬양인도할 때도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반주자가 잘 협조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하튼
새로 등록하신 성도나 청년이 함께 앞에서서 찬양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세울 수만은 없습니다.
청년회원들의 경우는 예외이지만
장년의 경우 찬양인도를 위해 회중 앞에 설 때에는 당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연습도 잘 나오지 않는 청년들이 찬양인도하고 싶다고 할 때 쉽사리 세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직 청년들이 제대로 된 찬양교육을 받지 못해서,
여전히 잘 몰라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인도에 동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은 차라리 밑에서 회중으로서 찬양을 열심히 불러주시면 됩니다.
찬양인도팀에서 싱어나 보컬로서 아니면 반주자로서 또는 스텝으로서 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서든 안서든 연습에 참여해야 하며 준비를 같이하고 마무리 역시 같이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찬양인도자라고 반주자라고 싱어라고 보컬이라고 연습에도 참석하지 않고 준비하는데 협조하지 않으며 마친 후 정리를 돕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찬양자가 아닙니다. 유명연예인에 불과하죠.
저는 호흡을 맞추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교회 부흥을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성도들이 연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양적으로만 부흥되는 것을 바란다면
저는 차라리 소수이지만 연합되는 공동체를 희망합니다.
떳떳하게 교회를 자랑하며
목회자를 자랑하며
우리 공동체를 자랑하고 싶습니다.
또한 우리모두는 전문찬양사역자들이 아니기에
실수도 있을 수 있고 부족한 부분도 많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찬양팀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면
회중들 앞에 서서 찬양인도하는 것보다
회중들 속에서 뜨겁게 찬양하는 것을 더 좋아 한다는 점입니다.
부족하지만, 보잘 것 없는 우리이더라도 청년의 시기에 찬양팀으로 불러모아주셨고
회중들 앞에 세워주셨기에 여전히 찬양인도를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가 아니기에
교회안에 여전히 시기와 질투, 교만과 분냄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 감출 길이 없습니다.
항상 존재하는 동전의 양면처럼
저는 찬양인도를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가급적 표정이 밝은 사람이,
가급적 자세가 올바른 사람이,
가급적 평소에 근면성실한 사람이,
가급적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사람이,
가급적 모범이 되는 사람이,
가급적 찬양을 많이 아는 사람이,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동참했으면 합니다.
단순히 '오늘은 시간이 좀 남으니 같이 서주겠다.' '몇월 며칠은 찬양인도가 가능하다.'는 등
이런 분은 절대 사절입니다.
찬양의 멍석은 항상 교회안에 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찬양인도의 멍석은 좀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대로 함부로 할 수도 없으며 함부로 해서도 않됩니다.
한 순간에 우리의 마음을 잡을 수도 놓칠 수도 있는 것이 찬양인도입니다.
책임감이 있어야 하며
성도들의 인정도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기도도 있어야 합니다.
당회장의 허락도 필요하며
당회원들의 재가도 필요하며
찬양팀멤버들의 만장일치도 필요합니다.
그만큼 민감하면서도 책임감이 필요한 일을
우리들은 하고 있습니다.
2008년 찬양인도를 현재 저와 김아라 자매, 강영선 자매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아라 자매는 학생회 찬양인도 및 4년 경력 정도의 찬양인도를 함께 했으며
강영선 자매는 학생회 찬양인도 및 현재 중고등부 찬양인도와 2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인도자는 이렇듯 찬양인도경험과 공동체생활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하는 찬양인도가 아니기에 더욱 더 어려운 시기를 많이 겪었습니다.
싱어들이나 보컬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도자보다는 덜 책임감이 있습니다.
해도 그만이고 안해도 그만일 수도 있습니다.
성가대나 특송 역시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예배전 찬양은 예배를 준비하기위해 우리가 해오던 오랜 습관입니다.
하루라도 빠지면 확실하게 표가 나는 그러한 행위입니다.
하루아침에 식성을 바꿀 수 없듯이
찬양인도자의 교체나 찬양팀의 교체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물론 교회로부터 받는 지원도 생각해야 하며
할당받은 공간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찬양팀의 존속여부는 당회장의 결정에서 비롯됩니다.
당회장이 원하지 않는 찬양팀은 더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찬양팀은 예배의 목적이 아니라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목회자의 목회방침에서 크게 어긋난 찬양팀이 아니라면
찬양팀의 결성이후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돌아가는 찬양팀이라면
예배를 담당한 목회자 또는 인도자의 간섭을 당연히 받아 들여야 합니다.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고집부린다면
더 이상 찬양인도를 맡겨서도 안되며 세워서도 안됩니다.
이렇듯 찬양인도는 내가 좋아서, 내가 은혜 받아서 하는 특송의 개념이 아닙니다.
찬양의 멍석은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왜 찬양의 멍석 위에 올라가려고 하십니까?
어떤 찬양의 멍석을 원하십니까?
교회에 당당하게 원하시는 멍석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