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에서 와디럼으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차례 아침 6시에만 있다고 해서 아침 일찍 서둘렀다. 떠 다른 매니저가 있어 혹시나하고 투어에 대해 물으니 1박 2식을 제공해주는 3시간 짜리 투어를 2인 65디나르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기뻐서 오케이하자 전화번호와 이름을 써주고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전화를 해 주었다.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버스를 탔는데 버스 운전수에게 당부를 하니 운전수는 70디나르이란다. 커미션으로 5디나르을 챙기는구나 생각했지만 그것도 오케이다. 버스는 로컬버스가 아니라 각 호텔을 돌면서 예약된 승객을 태우는 세루트같은 것이었다. 짐 때문에 1인 7디나르도 바가지지만 오케이다. 버스는 1시간 반 정도 걸려서 와디럼 입구에 도착했고 한 팀씩 예약된 사람에게 인수인계까지 확실하게 하는 시스템이어서 우린 한 남자를 만났다. 와디럼은 아카바에서 80킬로 떨어진 사막평원으로 와디는 마른 개울이나 하천을 말하는데 여기는 광활한 사막지대 같다. 요르단 정부는 베드윈들을 관광요원으로 고용하고 이곳을 공원화했다. 너무 넓고 코스가 길며 야생 동물들이 출몰하기도 해서 차를 타야 한다. 베드윈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 사람들인데 까무잡잡하다. 정부에서는 정착을 권유하고 여러 혜택을 주는데도 10% 정도는 여전히 유목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손님에게 매우 친절하고 커피나 우유를 주고 저녁에는 모닥불을 피워준다. 터키식 커피이고 잔을 비우면 계속 따라주므로 잔을 비우지 않아야 한다. 수천년 세월을 보내면서 조물주가 바위에 조각을 해 놓은 것 같은 솟은 바위들이 있다. 아랫부분은 수성암이고 위엔 붉은 사암이다. 일대는 모두 장미색 붉은 모래다. 계곡의 바위 절벽에는 쐐기 문자 같기도 하고 상형문자 같기도 한 글자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나바테아 문자도 있고 선조격인 다무딕이란 글자도 있단다. 모세가 기원전 13세기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이 평원을 지났었다. 우리가 예약을 한 남자도 베드윈이었는데 잘생긴 얼굴에 마른 체격이고 키도 꽤 크다. 아내가 차를 주러 왔는데 예쁘고 참해 보였다. 3시간짜리를 예약한 우리는 그의 집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주변을 걸으며 마을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의외로 학교가 두군데나 있고 규모도 꽤 커 보였다. 수업중이어서 바깥만 둘러보았다. 새벽 일찍 서둘렀는데 기다리기 지루할 즈음 여주인이 빵을 가져다 주었다. 손님 접대용 조그만 모닥불에서 솥뚜껑 같은 것을 놓고 빵을 구워내고 있었다. 주인 남자가 들어와서 어디어디를 보느냐고 구체적으로 물으니 3시간 짜리는 빅 브릿지나 캐년은 가지 않는단다. 아쉬워하니 4시간 짜리를 하고 50디나르을 내라고 해서 돈이 없다며 40디나르로 깎아 출발하게 되었다.(사실 요르단에서 막바지라 돈이 진짜 없었다.) 붉은 사막이라며 워낙 평이 좋아 기대를 했으나 사막으로서는 조금 실망이었다. 칠레의 아타카마나 몽골의 고비, 이집트의 사하라, 인도의 자이살메르 사막등을 모두 다녀봤으니 그럴 수 밖에. 바로 출발했는데 다른 운전수에게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이 젊은이는 우릴 로렌스의 샘으로 데려갔다.
<학교 내부>
<마을 앞산>
<비수기라 문을 닫았다>
<손님접대용 공간>
<대기하던 방>
<빵을 굽는 모습-여주인은 사진 사절)
첫째 방문 장소는 로렌스의 샘 Lawrence Spring 으로 산에서 시멘트 통로를 따라 끌어온 물이 보이는데, 샘은 길이 없는 산을 20여분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고생해서 올라가서 막상 이끼낀 샘을 보니 허탈하지만 암벽화를 볼 수 있었고 산 기슭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만이었다. 중국 젊은이들 4명과 같이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 중 한명이 한국인이라고 해서 반가웠는데 실제로는 한국어를 잘하는 여학생이었다. 이 학생은 고소공포증이 있어 보기가 조금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따라다니며 관광하는 모습이었다.
<로렌스의 샘>
<나바테아인들의 문자>
<위에서 본 풍경>
<로렌스의 샘 근원지-이끼가 있고 더러웠다.>
<위 나무가 있는 곳이 샘의 근원지>
다음 간 곳은 Dune(砂丘) 이라 하는 붉은 모래 언덕인데, 낮에 맨발로 오르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우면 또 미끄러워 오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나 정상의 경치는 좋다. 정말 조금 있는 샌듄이었다. 우리는 간단히 사진만 찍고 다른 곳을 돌아보다가 운전수에게 다음 장소로 가자고 했다. 걔는 아마 이해를 잘 못했으리라. 어린 아이들은 노느라 바빴지만 비수기에도 이 정도인데 성수기에 사람이 많으면 모래 언덕에 발을 들여 놓기도 어렵지 않을까 할 정도로 작은 모래 언덕이었다.
<다른차의 운전수와 잡담. 모두 친척으로 보임>
<모래언덕, 샌듄>
<샌듄 앞 전망>
<로렌스에 지혜의 일곱기둥이라 칭한 곳>
다음으로 간 곳은 알 가잘리 계곡으로 거대한 암벽을 100미터 쯤 들어가는데, 선사시대 암벽화가 가득하다. 아랫쪽에는 나바테아인들의 암벽화가 윗쪽은 이슬람의 문자가 새겨져 있고 특히 앞쪽에는 가족의 모습이 그 다음에는 부부의 모습이 가장 안 쪽에는 혼자인 남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 남자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옛날에도 혼자가 속 편했나보다.
<아프리카의 동물들도 보이고>
<가족의 모습?>
<부부의 모습>
<활짝 웃고 있는 혼자인 남자>
다음 지역으로 이동 했다. Wadak Rock Bridge 라 부르는 스몰 브리지와 Bhrdah Rock Bridge 또는 와디럼 움프로우스 Umm Fruth Rock Bridge 라 부르는 빅 브리지인 데....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마치 다리 처럼 걸려 있는 것인데 스몰브리지는 괜찮지만 빅브리지는 80m 절벽을 올라야 하므로 매우 위험해 보였지만 우린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카메라는 운전수한테 맡기고 올라가서 한 컷 찍고 언니를 찍어주려고 바삐 내려 왔는데 언니는 내가 내려가서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내려와 버렸단다.
<스몰 브릿지>
<스몰 브릿지 위>
<빅 브릿지>
브릿지에서 내려와서 우리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이미 약간씩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풍경들을 담았다. 운전수가 차로 우릴 데리러 왔다. 일몰을 보러 가야한다는 것이다.
일몰을 보러 큰 바위산에 올랐다. 서양인 가족도 한께 일몰을 기다리고 있다. 날씨는 좋았으나 구름이 전혀 없어 일몰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고 별다른 잔영도 없어서 정말 아쉬웠다. 아타카마의 달의 계곡에서 본 일몰은 정말 압권이었다.
일몰을 보고 차로 카질리 캐년의 절경을 보면서 한바퀴 돌아 숙소로 갔는데 해가 지자 운전수가 서두르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이래서 외다럼을 요르단에서 페트라 다음으로 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바위산이 마치 위에서 흙반죽을 해서 끼얹어 제멋대로 흘러 내린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기묘한 형상이었다. 색갈도 여러가지이고.
숙소는 베드윈텐트였는데 수십개의 텐트에 2개씩 침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충전도 불가능했다. 샤워장은 있었는데 따뜻한 물은 나오질 않았다. 겨울이 아니었으면 그럭저럭 지낼만했을것 같다. 저녁은 닭고기와 야채를 땅속에 파묻어 익힌 것이었는데 맛있었다.
<나무가 없어 안타까웠던 모닥불>
첫댓글 진귀한 사진과 설명,
감사합니다.
보기 어려운 경치를 사진으로 감상하니 마치 다녀온 듯하네요~
잘 감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