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영구 무한동력
“-나의 선택된 후손아, 그동안 잘 있었느냐?”
악양루 뒷산 피라미드-스톤의 두꺼비 바위에 다시 나타난 백발 도인 선조가 미소를 머금고 정훈을 지그시 바라본다.
“예~ 선조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다른 선조분들도 안녕하시고요?”
정훈이 바위에 엎드려 넙죽 큰절을 올리고 일어섰다.
백발 도인을 처음 만나고 헤어진 지 19일이나 지나서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워서 연신 싱글거린다.
지구에서 불과 14광년 떨어진 별, 울프-1061의 세 번째 행성인 울프-1061c에 살고 있다는 도인이다.
그들은 5천 년 전에 식민지화할 행성을 찾아 지구에 와서 우리 한반도에 살던 지구인에게 그들의 유전자를 남겼고, 그 외계 혼혈종이 번식해서 바로 지금의 우리 한민족이 되었다고 얘기해준 그 백발 도인이다.
“-그래, 내가 준 리스틀릿은 사용해 보았느냐?”
지난번 만났을 때 도인은 꼭 고급 스마트워치인 ‘몽블랑-타임워커’처럼 생긴 리스틀릿 wristlet 팔찌를 이 피라미드-스톤 신랑 모자바위 중간 부분 바위틈에서 자란 작은 낙락장송 소나무 뿌리 밑에서 캐내어 정훈이에게 선물로 주고 갔었다.
지금도 팔목에 차고 있는 이 리스틀릿을 끼면, 팔다리의 힘이 다섯 배나 증가되어 3m 높이도 가뿐히 뛰어오를 수 있고, 벽돌도 네댓 장 정도는 쉽게 박살을 낼 수 있다.
“예, 선조님. 리스틀릿 부착하고 공중 부양과 격파 연습도 많이 해봤습니다. 여기 달린 버튼과 노브를 조작해서 울프-1061c의 자연경관과 주거생활에 관한 기록자료도 살펴봤습니다.”
이 두꺼비 바위와 주변을 둘러싼 3개의 신랑 모자바위로 구성된 피라미드-스톤 pyramid-stone은 그들이 예전에 만들어 두고 간 홀로그램 송수신 장치이다.
지금 정훈의 눈앞에 있는 백발 도인은 그 장치에 의해 나타난 홀로그램인데, 너무나 정교해서 실물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번에 백발 도인과 헤어진 다음 날, 이 두꺼비 바위에 앉아서 리스틀릿에 달린 3개의 버튼 중 별 한 개가 표시된 1번 버튼 button을 눌렀더니 24인치 컴퓨터 모니터만 한 크기의 홀로그램 입체화면이 눈앞에 떠서 나타났었다.
거기에는 행성 울프-1061c의 주거지와 도시로 보이는 사진이 있었는데, 노브 knob를 돌리자 파노라마처럼 계속 장면이 바뀌며 다른 장소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들의 주거지에 있는 집들은 상상했던 것처럼 모던해 보이지는 않았다.
야트막한 구릉진 언덕 위에 벽돌 같은 건축자재로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집들처럼 2~3층 높이로 둥그스름하게 쌓아 올려 지었는데, 지붕도 없고 창문도 그렇게 많지 않아서 얼핏 보면 무슨 요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 외곽은 넓은 정원과 잔디 같은 풀밭에 크지도 않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작은 연못 같은 호수가 군데군데 흩어져있었다. 수백 미터도 더 떨어져 있는 이웃집과는 돌로 포장한 듯한 좁은 길로 연결되어 있고 가로수가 없는 도로에는 사람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시골 마을인 줄 알았는데 계속 교체되는 사진들을 이어보니까, 어느 지점에 제법 많은 집들이 모여있는 다운타운도 보였다.
다운타운 downtown의 중심에는 10여 층은 되어 보이는 높고 넓은 공회당 같은 커다란 건물도 있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크기만 컸지, 작은 창문들만 박혀있고, 건물 외부에 특별한 장식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공회당 앞에 공회당 건평의 50배도 더 되는 넓은 광장이 형성되어 있고 자동차로 보이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유선형 물체들이 광장 가장자리에 즐비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자동차들이 모두 바퀴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화면에서 그 바퀴 없는 유선형 자동차가 지상 10여 미터의 높이로 비행하며 움직이는 장면들이 나왔다. 대부분 도로처럼 보이는 넓지 않은 길 위를 서행하는 모습이었고, 어떤 장면은 도로도 없는 들판을 제법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은 백발 도인처럼 우리의 개량한복이나 중국 무술영화에 나오는 이소룡이가 입었던 도복 같은 차림새였다. 의복의 색상도 진하거나 연한 갈색이 주를 이루었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에 따라 디자인만 조금씩 차이가 나 보였다.
행성 울프-1061c를 본 첫 소감은, 마치 말 탄 기사들이 등장하는 중세 영국의 구릉지고 넓은 벌판 시골 마을이거나, 마법사가 설치는 판타지 영화 속의 북유럽 이끼 낀 숲속 초라한 마을을 보는 것 같은 황량한 느낌 그것이었다.
“-그랬느냐? 별로 볼만한 게 없었지? 자네 모국의 모습이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하지는 않았느냐?”
“예, 좀 크게 실망한 게 사실입니다. 5천 년 전에 지구에 날아 올 정도의 문명국이면, 둥글고 뾰족한 수백 층 고층빌딩이 빼곡히 들어차고 그 사이로 비행접시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닐 거로 생각했는데, 우리 지구의 중세 유럽 지방 시골 마을을 보는 것 같아서 좀 놀랐습니다. 하하.”
“-그래, 그랬을 것이다. 아마 시간이 없어서 나머지 자료를 다 살펴보지 못했을 듯싶은데, 시간이 나면 별 표시 버튼 2와 3도 차례로 열어 보도록 하거라. 다른 궁금한 것은 없느냐?”
이 리스틀릿은 여기 피라미드-스톤의 두꺼비 바위 위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홀로그램이 나타나지 않는다.
“예, 조상님. 이번에 악양루에 온 김에 여기에 와서 부지런히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참. 그림들을 보니까 자동차가 공중으로 날아다니던데, 주유소 같은 건 안 보이더라고요? 자동차 동력은 무엇을 사용합니까? 배터리인가요?”
국내 굴지의 드론 제조업체 ㈜뉴젠 대표인 정훈이가 보유한 게 기껏해야 용량 60AH(암페어 아우어)의 드론용 리튬 lithium 배터리 battery 뿐인데, 그 큰 차체를 공중에 띄워 올리려면 용량이 엄청나게 큰 배터리를 사용하겠구나 싶어 물어본다.
“-음... 우리 행성에는 석유 같은 지하자원은 없다. 지금 지구의 땅속에 매장되어있는 원유는 지질시대에 양적으로 많았던 바다생물이 근원 물질인데, 그 생물유기체가 산소의 공급이 적은 곳에 많이 집적되면서 산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 행성에는 그림에서 봤겠지만 작은 연못만 많고 기껏해야 호수 정도 크기의 습지는 있어도, 지구의 바다 같은 커다란 물웅덩이는 없었다. 따라서 상어나 고래 같은 커다란 동물은커녕 작은 물고기 떼도 없었으니까 자연히 석유라는 기름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두꺼비 바위 위에 마주 보고 앉은 백발 도인이 빙긋이 웃으며 설명해준다.
“그림에 보니까 조명도 보이고 분명히 전기를 사용하는 것 같던데, 그러면 동력원은 무엇을 사용해서 전기를 만들고 문명이 그렇게 발전하게 된 건가요?”
정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음… 우리 행성에는 지구보다 철(Fe)이 훨씬 많이 매장되어있다. 주거지가 있는 들판도 조금만 깊이 파고들어 가면 암석층이 나오고 산들도 거의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암석에 철 성분이 다량으로 포함되어있다.”
“암석에 철 성분이 많이 포함된 것하고 전기발전 동력원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나요?”
정훈은 전기 용광로 속의 철이 녹아서 용암처럼 된 시뻘건 마그마가 부글거리며 끓는 모습을 생각하면서도 그 행성의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증은 계속 풀리지 않는다.
“-우리 행성의 초기 고생대 시대에는 지금 같지 않고 숲이 매우 무성했었다. 지반이 편편해서 큰 강물도 없고 바다도 없으니까,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금세 흘러서 사라지지 않고 산과 들판에 계속 머물고 있은 셈이지. 그래서 기후도 따뜻하고 식물이 성장하기에 좋았던 그 시대에 무성했던 나무들이 지질시대에 땅속에 매몰되고 퇴적한 후에, 열과 압력을 받아서 변질 생성된 석탄은 지금도 아주 많이 매장되어 있다. 그래서 석탄을 연료로 한 불을 사용하여 철을 녹이고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썼던 철기시대 문명이 일찍이 발달했던 것이다.”
“아, 예. 울프-1061c 문명사회에서는 지금도 석탄을 사용한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나 보군요. 그러면 날아다니는 자동차에는 역시 재충전용 배터리가 동력으로 사용되겠네요? 그런데, 1톤도 더 나가는 자동차 무게를 공중에 띄우려면 용량이 엄청나게 커야 될 텐데, 배터리 소재는 무슨 물질을 사용합니까? 지구에서는 리튬을 쓰지만, 전력의 충전용량이 한계가 있는데요.”
정훈이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백발 도인을 쳐다본다.
울프-1061c에서 배터리에 사용하는 소재 물질만 입수된다면, 사람이 타고 다니는 드론 drone 생산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니다, 비행 자동차에는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백발 도인이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놀리기라도 하는 듯이 정훈을 지그시 바라본다.
“예? 배터리를 안 쓴다고요? 그럼 어떻게 자동차가 날아다닙니까? 석유도 없고,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도 없으면, 무슨 동력으로 그 무거운 물건이 하늘에 떠서 날아갑니까? 설마 자동차에 소형 원자력 발전기라도 하나씩 달고 다니는 겁니까?”
이해할 수 없어 고개만 갸웃거리던 정훈이, 아주 문명한 행성이니까 아마도 원자력 잠수함에 사용하는 원자력 발전기를 소형화해서 자동차 전원으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이 반짝 떠오른다.
“-아니다,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한 발전방식은 너무 위험해서 애당초에 원자력발전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무슨 스무고개 수수께끼 풀기 놀이를 하자는 건가?
계속 아니라는 소리만 하고, 원자력발전도 아니면 도대체 무슨 동력으로 자동차가 날아다니냐고요?
“-우리 행성에 철이 많다고 했지? 철, 하면 떠오르는 것 없느냐?”
“왜 없어요? 철 가방, 철 가면, 철 사장, 철 조망, 철딱서니... 응? 이건 아니네! 하하.”
뿔다귀가 난 정훈이 씩씩거리며 마구 읊어대다가 제풀에 웃고 만다.
“-잘 생각해 보거라. 철과 관련된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려면 무엇이 있겠는지. 오늘은 내가 숙제로 내는 거니까, 더 이상 묻지 말고 네 스스로 답을 구해서 다음에 만날 때 내게 알려다오.”
백발도인이 섬광이 번뜩이는 시선으로 정훈을 제압하고 거역할 수 없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고, 너를 도와줄 수호자 두 놈을 보냈다. 한 달 후에는 여기에 도착할 것이다. 3주 뒤 소수 날짜에 여기서 너를 만날 때 그 녀석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마. 그동안 리스틀릿 자료는 열심히 들여다보도록 하거라. 그럼 나는 이만 떠나련다.”
백발 도인이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인류 구제와 지구수호를 위해 선택한 정훈을 바라보며 두꺼비 바위에서 일어섰다.
“저, 잠깐만요! 그 철과 관련된 에너지원 숙제 문제에, 무슨 힌트라도 좀 주셔야 되지 않습니까? 힌트 없는 수수께끼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요? 히히.”
33살이나 된 정훈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백발도사 할아버지 선조 앞에서 어리광을 부린다.
“-허허, 그 녀석 참! 그래, 좋다, 힌트를 하나 주마. 잘 듣고 꼭 해답을 알아내도록 하거라!”
정훈의 몇 대 할아버지가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만 백발이지 수염도 없는 얼굴에 팽팽한 피부는 40대로 보이는 백발 도인이 후손 손자의 어릿광대 짓에 넘어가서 너털웃음을 짓는다.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선조님!”
“-힌트는… 영구 무한동력!”
하고는,
-슈웅~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예? 영구 무한동력이요? 그게 뭡니까? 할아버지~!”
소리쳐 불러봤지만, 백발 도인 조상님 할아버지의 홀로그램은 이미 사라져 없어지고, 솔바람 소리만 휘잉~ 들려온다.
첫댓글 왓! 선조 할배 나타나셨당
네, 난정 작가님. 선조 할배 만나니까 반갑지요? ㅎ
@삼일 이재영 영구 무한 동력, 그거 있으면 정말 재미있겠네요
@蘭亭주영숙 네, 영구 무한 동력이 실현되면 지구의 역사가 바뀔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