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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十八回 說秦伯魏相迎醫 報魏錡養叔獻藝
제58회: 진나라 군주를 설득하여 위상이 명의를 빌리고, 위기를 보복하여 양요기가 재주를 뽐내다
話說,晉景公被蓬頭大鬼所擊,口吐鮮血,悶倒在地。內侍扶入內寢,良久方醒。群臣皆不樂而散。景公遂病不能起。左右或言:「桑門大巫,能白日見鬼,盍往召之?」桑門大巫奉晉侯之召,甫入寢門,便言:「有鬼!」景公問:「鬼狀何如?」大巫對曰:「蓬頭披髮,身長丈餘,以手拍胸,其色甚怒。」景公曰:「巫言與寡人所見正合,言寡人枉殺其子孫,不知此何鬼也?」大巫曰:「先世有功之臣,其子孫被禍最慘者是也。」景公愕然曰:「得非趙氏之祖乎?」
한편, 진경공(晉景公)은 머리를 풀어 헤친 큰 귀신에게 맞아 피를 토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내시들이 부축하여 내실로 옮겨 한참 뒤에 깨어났다. 여러 신하는 모두 걱정하며 흩어졌다. 진경공이 마침내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했다. 좌우의 내시들이 말하기를, “상문(桑門) 근처의 큰 무당은 대낮에도 귀신을 볼 수 있다는데 어찌하여 부르지 않으십니까?” 하니, 진경공의 부름을 받고 상문의 대무가 불려와서 경공의 침실에 들어오자마자 문득 말하기를, “귀신이 있습니다.” 했다. 진경공이 묻기를, “귀신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는가?” 하니, 대무가 대답하기를, “봉두난발에 키는 한 길이 넘고 손으로 자기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데 대단히 화가 난 모습입니다.” 했다. 진경공이 말하기를, “무당의 말과 내가 본 것이 딱 들어맞는다. 귀신이 말하기를 내가 그의 자손을 잘못 죽였다는데 나는 그 귀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하니, 대무가 말하기를, “선대에 공이 있던 신하로 그 자손이 가장 참혹하게 화를 입은 사람의 귀신입니다.” 했다. 진경공이 깜짝 놀라 말하기를, “설마 조씨의 조상은 아니지?” 했다.
屠岸賈在旁,即奏曰:「巫者乃趙盾門客,故借端為趙氏訟冤,吾君不可聽信。」景公嘿然良久,又問曰:「鬼可禳否?」大巫曰:「怒甚,禳之無益。」景公曰:「然則寡人大限何如?」大巫曰:「小人冒死直言,恐君之病,不能嘗新麥也。」屠岸賈曰:「麥熟只在月內,君雖病,精神猶旺,何至如此?若主公得嘗新麥,汝當死罪!」不繇景公發落,叱之使出。大巫去後,景公病愈深,晉國醫生入視,不識其症,不敢下藥。
도안고가 옆에 있다가 아뢰기를, “무당은 조돈의 문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빌미로 조씨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들어서는 안 됩니다.” 했다. 진경공이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대무에게 묻기를, “그 귀신을 쫓아버릴 수 없느냐?” 하니, 대무가 말하기를, “매우 화가 나 있어 굿을 해 봐야 소용이 없을 듯합니다.” 했다. 진경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살 수 있겠는가?” 하니, 대무가 말하기를, “제가 죽음을 무릅쓰고 직언을 드리면 군주의 병은 햇보리를 맛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했다. 도안고가 말하기를, “보리는 한 달 안에 익을 것인데 군주께서 비록 병이 들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왕성한데 어찌 그렇게 된다는 것이냐? 만약 주공께서 햇보리를 맛보면 너는 마땅히 죽을 것이다!” 했다. 도안고가 경공이 꾸짖기도 전에 대무를 쫓아냈다. 대무가 물러간 후에 경공의 병은 더욱 심해졌다. 진나라의 의원들이 와서 보았지만, 그 병을 알지 못하여 감히 약도 쓰지도 못했다.
大夫魏錡之子魏相言於眾曰:「吾聞秦有名醫二人,高和高緩,得傳授於扁鵲,能達陰陽之理,善攻內外之症,見為秦國太醫。欲治主公之病,非此人不可。盍往請之?」眾曰:「秦乃吾之仇國,豈肯遣良醫以救吾君哉?」魏相又曰:「恤患分災,鄰國之美事。某雖不才,願掉三寸之舌,必得名醫來晉。」眾曰:「如此,則舉朝皆拜子之賜矣!」魏相即日束裝,馳軺車星夜往秦。秦桓公問其來意。魏相奏曰:「寡君不幸而沾狂病,聞上國有良醫和緩,有起死回生之術,臣特來敦請,以救寡君。」桓公曰:「晉國無理,屢敗我兵,吾國雖有良醫,豈救汝君哉?」
대부 위기의 아들 위상(魏相)이 여러 사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진(秦)나라에 명의가 두 사람 있는데, 고화(高和)와 고완(高緩)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편작(扁鵲)에게서 의술을 전수 받아 음양의 도에 능통하여 내외의 증상을 잘 다루어 진(秦)나라의 태의가 되었다고 합니다. 주공의 병을 고치려 한다면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어찌하여 가서 청하지 않을까요?”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진(秦)나라와 우리는 원수의 나라인데 어찌 기꺼이 좋은 의원을 보내어 우리 군주를 구해 주겠는가?” 했다. 위상이 또 말하기를, “환난을 구제하고 재난을 나누는 것은 이웃 나라의 아름다운 일입니다. 제가 비록 재주는 없지만, 세 치의 혀를 놀려 반드시 명의를 진(晉)나라로 데려오겠습니다.” 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그렇게 한다면 온 조정이 모두 그대에게 절을 할 것이오.” 했다. 위상이 그날로 행장을 꾸려 밤낮으로 수레를 몰아 진(秦)나라로 갔다. 진환공(秦桓公)이 무슨 일로 왔냐고 물으니, 위상이 아뢰기를, “저희 군주께서 불행히 광질(狂疾)에 걸렸습니다. 신이 들으니, 상국에는 고화와 고완이라는 명의가 있어 기사회생의 의술을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이 특별히 와서 청하오니 저희 군주를 구해 주십시오.” 했다, 진환공이 말하기를, “진(晉)나라는 이유도 없이 우리 군사를 여러 번 패퇴시켰다. 우리나라에 비록 명의가 있다 하나, 무엇 때문에 너희 군주를 구해 주겠는가?” 했다.
魏相正色曰:「明公之言差矣!夫秦晉比鄰之國,故我獻公與爾穆公,結婚定好,世世相親。爾穆公始納惠公,復有韓原之來戰﹔繼納文公,又有汜南之背盟。不終其好,皆爾為之。文公即世,穆公又過聽孟明,欺我襄公之幼弱,師出崤山,襲我屬國,自取敗衂。我獲三帥,赦而不誅,旋違誓言,奪我王官。靈康之世,我一侵崇,爾即伐晉。及我景公問罪於齊,明公又遣杜回興救齊之師。敗不知懲,勝不知止,棄好尋仇,莫不由秦。明公試思:晉犯秦乎?秦犯晉乎?今寡君有負茲之憂,欲借針砭於高鄰,諸臣皆曰:『秦絕我甚,必不許。』
위상이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군주님의 말씀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대저 진(秦)나라와 진(晉)나라는 이웃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진헌공(晉獻公)과 상국의 목공(穆公)께서는 혼인을 맺어 대대로 친했습니다. 또한 진목공(秦穆公)께서는 우리의 혜공(惠公)을 진(晉)나라 군주로 세워 주셨지만, 다시 한원(韓原)에서 싸웠습니다. 이어서 진문공을 진(晉)나라 군주로 세워 주셨지만, 또 사남(汜南)에서 맹약을 어겼습니다. 그 끝이 좋지 않게 된 것은 모두 귀국 때문이었습니다. 진문공께서 돌아가시자 목공은 다시 맹명시의 말을 지나치게 믿고 진양공이 어리고 약하다고 얕보아 군사를 효산(崤山)으로 내어 보내서 우리나라의 속국을 습격하게 하여 스스로 피를 흘리고 싸움에서 패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귀국의 삼수(三帥)를 사로잡아 죽이지 않고 방면했으나 곧바로 서약을 어기고 우리의 관리들을 잡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진영공(晉靈公)과 귀국의 강공(康公) 때 우리가 귀국의 속국 숭(崇)을 한번 쳐들어가자 귀국은 즉시 우리나라에 정벌군을 일으켰습니다. 이어서 우리 진경공(晉景公)께서 제나라의 죄를 물어 토벌할 때 군주께서는 두회(杜回)를 보내 제나라 군사를 도왔습니다. 실패했을 때 교훈을 얻지 못하고, 성공했을 때 만족할 줄 모르며, 좋은 관계를 버리고 원수 사이가 된 것은 모두 진(秦)나라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군주께서 생각해 보십시오. ‘진(晉)나라가 진(秦)나라를 범했는가? 아니면 진(秦)나라가 진(晉)나라를 범했는가?’를. 지금 저희 주군께서 병환을 앓고 계셔서 제가 이웃에 있는 상국에서 명의를 데려오자고 말하자 우리나라의 많은 신하가 말했습니다. ‘진(秦)나라는 우리나라와 절교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명의를 보내 주겠는가?’ 했습니다.
臣曰:『不然。秦君屢舉不當,安知不悔於厥心?此行也,將假國手以修先君之舊好。』明公若不許,則諸臣之料秦者中矣!夫鄰有恤患之誼,而明公廢之﹔醫有活人之心,而明公背之。竊為明公不取也。」秦桓公見魏相言辭慷慨,分剖詳明,不覺起敬曰:「大夫以正見責寡人,敢不聽教!」即詔太醫高緩往晉。魏相謝恩,遂與高緩同出雍州,星夜望新絳而來。有詩為證:「婚媾於今作寇仇,幸災樂禍是良謀。若非魏相瀾翻舌,安得名醫到絳州?」時晉景公病甚危篤,日夜望秦醫不至。忽夢有二豎子,從己鼻中跳出,一豎曰:「秦高緩乃當世之名醫,彼若至,用藥,我等必然被傷,何以避之? 」
신이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진(秦)나라 군주께서는 여러 번 실수를 하셨지만, 어찌 후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겠소? 이번에 가서 진(秦)나라의 태의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선군 때 맺은 우호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했습니다. 그런데 군주께서 만약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나라 신하들이 한 말이 맞게 됩니다. 무릇 이웃의 환난을 구해 주는 우의가 있어야 하는데 군주께서는 그것을 폐하려 하시고, 의원이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을 군주께서는 막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군주께서 취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했다. 진환공(秦桓公)이 위상의 말이 분명하고 정의로운 것을 알고,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공손한 태도로 말하기를, “대부께서 올바른 말로 과인을 깨우쳐 주니 감히 그 가르침을 듣지 않을 수 없소.” 하고, 즉시 태의 고완에게 명하여 진(晉)나라로 가게 했다. 위상이 감사의 말을 드리고 고완과 함께 옹주(雍州)을 나와서 밤낮으로 신강(新絳)으로 달려왔다. 시가 있어 증명하기를, “혼인을 맺었으나 지금은 원수가 되었고, 원수 나라의 재난을 자기 나라의 행운이라 생각했네. 만약 위상이 능란한 말로 호소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명의가 신강(新絳)에 왔겠는가?” 했다. 그때 진경공의 병이 위독하여 밤낮으로 진(秦)나라 명의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진경공이 문득 꿈을 꾸었는데 두 동자가 자기 콧구멍에서 뛰어나오더니 한 동자가 말하기를, “진(秦)나라 고완(高緩)이 당세의 명의라는데 만약 그가 와서 약을 쓰면 우리는 상하게 되는데 어디로 피하면 되겠는가?” 했다.
又一豎子曰:「若躲在肓之上,膏之下,彼能奈我何哉?」須臾,景公大叫心膈間疼痛,坐臥不安。少頃,魏相引高緩至,入宮診脈畢,緩曰:「此病不可為矣!」景公曰:「何故?」緩對曰:「此病居肓之上,膏之下,既不可以灸攻,又不可以針達﹔即使用藥之力,亦不能及。此殆天命也。」景公嘆曰:「所言正合吾夢,真良醫矣!」厚其餞送之禮,遣歸秦國。時有小內侍江忠,伏侍景公辛苦,早間不覺失睡。夢見背負景公,飛騰於天上,醒來與左右言之。值屠岸賈入宮問疾,聞其夢,賀景公曰:「天者陽明,病者陰暗﹔飛騰天上,離暗就明,君之疾必漸平矣。」
다른 한 동자가 말하기를, “만약 명치끝에 들어가 숨어 있으면 제가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는가?” 했다. 곧 경공이 명치 끝의 통증으로 큰 소리를 지르며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조금 지나서 위상이 고완을 안내해 입궁하여, 진맥을 하고 나서 고완이 말하기를, “이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했다. 진경공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 하니, 고완이 대답하기를, “이 병이 고황(膏肓 ; 명치끝)에 있어 뜸을 뜰 수도 없고, 침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즉 약을 사용하여도 약이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은 거의 천명입니다.” 했다. 진경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그 말이 내 꿈과 일치한다. 참으로 명의로다!” 했다. 진경공이 고완에게 예물을 후하게 주고 진(秦)나라로 돌려보냈다. 그때 강충(江忠)이라는 어린 내시가 있었는데 진경공을 모셔 고생이 심했다. 어느 날 아침 깜빡 잠이 들었는데 진경공을 업고 날아서 하늘에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꿈 이야기를 좌우에 있던 사람에게 이야기했다. 그때 마침 도안고가 진경공의 병문안을 드리기 위해 입궁했다가 그 꿈 이야기를 듣고 경공에게 축하하여 말하기를, “하늘은 밝은 것이고 병은 어두운 것입니다. 하늘로 날아서 올라갔다는 것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갔음을 뜻하니 주군의 병은 틀림없이 점차 나아질 것입니다.” 했다.
晉侯是日,亦自覺胸膈稍寬,聞言甚喜。忽報:「甸人來獻新麥。」景公欲嘗之,命饔人取其半,舂而屑之為粥。屠岸賈恨桑門大巫言趙氏之冤,乃奏曰:「前巫者言主公不能嘗新麥,今其言不驗矣,可召而示之。」景公從其言,召桑門大巫入宮,使岸賈責之曰:「新麥在此,猶患不能嘗乎?」巫者曰:「尚未可知。」景公色變。岸賈曰:「小臣咒詛,當斬!」即命左右牽去。大巫嘆曰:「吾因明於小術,以自禍其身,豈不悲哉!」左右獻大巫之首,恰好饔人將麥粥來獻,時日已中矣。
진경공도 역시 이날은 명치끝의 통증이 조금 나아져서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갑자기 보고하기를, “전인(甸人 ; 공물 담당)이 햇보리를 바칩니다.” 했다. 진경공이 햇보리를 맛보려고 요리사에게 그 반을 절구에 찧어서 죽을 쑤어 오라고 했다. 도안고는 상문(桑門)의 대무가 병의 원인이 조씨의 원귀 때문이라고 한 말에 앙심을 품고 진경공에게 아뢰기를, “전날에 상문의 무당이 주공께서 햇보리를 맛볼 수 없다고 말했는데, 금일 그 말이 맞지 않으니, 불러서 그에게 보여주십시오.” 하니, 진경공이 그 말을 따라 상문의 대무를 입궁토록 불러서 도안고를 시켜 꾸짖기를, “햇보리가 여기 있는데 오히려 맛보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느냐?” 하니, 무당이 말하기를,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했다. 진경공의 얼굴빛이 바뀌었다. 도안고가 말하기를, “하잘것없는 무당이 주군을 저주하니, 당장 참하라!” 했다. 도안고가 즉시 좌우의 무사들에게 끌고 나가도록 명했다. 대무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작은 재주에 밝아서 스스로 화를 불러 몸을 망치니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좌우의 무사들이 대무의 목을 가져와 진경공에게 바쳤다. 그때 마침 궁중 요리사가 햇보리 죽을 바쳤는데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있었다.
景公方欲取嘗,忽然腹脹欲泄,喚江忠:「負我登廁。」纔放下廁,一陣心疼,立腳不住,墜入廁中。江忠顧不得污穢,抱他起來,氣已絕矣。(到底不曾嘗新麥,屈殺了桑門大巫,皆屠岸賈之過也!)上卿欒書,率百官奉世子州蒲舉哀即位,是為厲公。眾議江忠曾夢負公登天,後負公以出於廁,正應其夢,遂用江忠為殉葬焉。(當時若不言其夢,無此禍矣。口舌害身,不可不慎也!)因晉景公為厲鬼擊死,晉人多有言趙門冤枉之事者,只為欒郤二家,都與屠岸賈交通相善,只有一個韓厥,孤掌難鳴,是以不敢為趙氏伸冤。
진경공이 바로 햇보리 죽을 맛보려는 순간에 갑자기 배가 더부룩해지면서 설사가 나오려고 했다. 강충을 불러서, “나를 업고 변소에 가자.” 했다. 겨우 변소에 내려놓으니 가슴 통증으로 버틸 수가 없어서 변소 안으로 떨어져 버렸다. 강충이 더러운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진경공을 안아 일으켰으나 이미 숨이 넘어간 뒤였다. (진경공은 끝내 햇보리를 먹지 못하고, 상문의 대무를 죽였으니, 모두가 도안고의 잘못이었다.) 상경 난서가 백관을 거느리고 세자 주포(州浦)를 모시고 장례를 주관하고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다. 이가 진여공(晉厲公)이다. 대신들이 의논하기를 강충이 꿈속에서 진경공을 업고 하늘로 올라갔고, 뒤에 진경공을 업고 변소에 모시고 갔으니 그 꿈이 잘 부합된다고 하여, 마침내 강충을 순장하기로 했다. (당시에 만약 강충이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혀를 잘못 놀려 몸을 망치게 되었으니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경공이 무서운 귀신의 구리 몽둥이에 맞아 죽었으므로 많은 진나라 사람들이 조씨 가문의 원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씨와 극씨 두 집안은 도안고와 서로 가깝게 지냈고, 다만 한궐은 한 손으로 손뼉을 칠 수 없어 감히 조씨 가문의 원한을 풀어 줄 수가 없었다.
時宋共公遣上卿華元,行弔於晉,兼賀新君。因與欒書商議,欲合晉楚之成,免得南北交爭,生民塗炭。欒書曰:「楚未可信也。」華元曰:「元善於子重,可以任之。」欒書乃使其幼子欒鍼,同華元至楚,先與公子嬰齊相見。嬰齊見欒鍼年青貌偉,問於華元,知是中軍元帥之子,欲試其才,問曰:「上國用兵之法何如?」鍼對曰:「整。」又問:「更有何長?」鍼答曰:「暇。」嬰齊曰:「人亂我整,人忙我暇,何戰不勝?二字可謂簡而盡矣!」由此倍加敬重。遂引見楚王,定議兩國通和,守境安民,動干戈者,鬼神殛之!遂訂期為盟。晉士燮,楚公子罷,共歃血於宋國西門之外。
이때 송나라의 공공(共公)이 상경 화원(華元)을 보내 진(晉)나라에 조문하고 겸하여 새 군주의 즉위를 축하했다. 화원은 난서와 상의하여 진나라와 초나라가 화의를 맺어 남북 간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백성들을 도탄에서 구해야 한다고 하니, 난서가 말하기를, “초나라는 믿지 못합니다.” 했다. 화원이 말하기를, “저는 초나라의 자중(공자 영제)과 친분이 있습니다. 한번 저에게 맡겨 보십시오.” 하니, 난서가 곧 그의 어린 아들 난침(欒鍼)을 사신으로 해서 화원과 함께 초나라로 보내어, 먼저 공자 영제를 만나보게 했다. 공자 영제는 난침이 어린 나이에도 풍채가 뛰어난 것을 보고, 화원에게 물어서, 그가 진(晉)나라 중군 원수의 아들임을 알고, 그의 재능을 시험하려고 묻기를, “귀국의 군사를 부리는 방법은 어떠한가?” 하니, 난침이 대답하기를, “가지런히 하는 것입니다.” 했다. 공자 영제가 또 묻기를, “또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가?” 하니, 난침이 대답하기를, “느긋하게 합니다.” 했다. 공자 영제가 말하기를, “상대방이 어지러울 때 아군은 질서정연하고 상대방이 분주할 때 아군은 느긋하니 어찌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겠는가? 정(整)과 가(暇) 두 글자는 가히 간단하면서도 뜻이 무궁하다고 하겠소.” 했다. 이로 말미암아 공자 영제는 난침을 더욱 존중했다. 마침내 화원 일행을 초공왕에게 인도하여 초나라와 진나라 양국이 화의를 맺어서 경계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천지신명으로부터 천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날짜를 정해 맹약을 맺자고 했다. 진(晉)나라 사섭(士燮)과 초나라 공자 파(公子罷)가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만나 입술에 피를 바르고 맹약의 의식을 치렀다.
楚司馬公子側,自以不曾與議,大怒曰:「南北之不相通久矣!子重欲擅合成之功,吾必敗之。」探知巫臣糾合吳子壽夢,與晉、魯、齊、宋、衛、鄭各國大夫會於鐘離,公子側遂說楚王曰:「晉吳通好,必有謀楚之情。宋鄭俱從,楚之宇下一空矣。」共王曰:「孤欲伐鄭,奈西門之盟何?」公子側曰:「宋鄭受盟於楚,非一日矣,惟不顧盟,是以附晉。今日之事,惟利則進,何以盟為?」共王乃命公子側帥師伐鄭,鄭復背晉從楚。此周簡王十年事也。晉厲公大怒,集諸大夫計議伐鄭。
그러나 초나라 사마 공자 측은 자기와 상의하지 않았다고 대로하여 말하기를, “남북이 서로 통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는데, 자중(子重 ; 공자 영제)이 자기 멋대로 진(晉)나라와 초나라 간에 맹약을 맺은 행위는 자기 혼자 공을 차지하려고 하는 짓이다. 내가 반드시 깨뜨려 버리겠다.” 하고, 무신(巫臣)이 오나라 군주 수몽(壽夢)과 진(晉), 노(魯), 제(齊), 송(宋), 위(衛), 정(鄭) 등의 제후국 대부들을 종리(鍾离)에 모아서 규합하려 한다는 것을 탐지하여 알았다. 공자측이 마침내 초공왕을 설득해 말하기를, “진(晉)나라와 오나라가 서로 수호하려는 것은 반드시 초나라를 도모하려는 뜻입니다. 송나라와 정나라까지 모두 따르고 있으니 초나라 편은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했다. 초공왕이 말하기를, “내가 정나라를 치려는데, 송나라 수양성 서문에서 남북이 화평하기로 한 맹약을 어찌해야 하오?” 하니, 공자 측이 말하기를, “송나라와 정나라가 초나라와 맺은 맹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맹약을 저버리고 진(晉)나라에 붙었습니다. 오늘날은 이익이 있으면 나아가는 것이지 맹약을 지켜 어디에 쓰겠습니까?” 했다. 초공왕이 즉시 공자 측을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니, 정나라는 다시 진(晉)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를 따랐다. 이것은 주간왕(周簡王) 10년의 일이었다. 진여공(晉厲公)이 대로하여 여러 대부들을 소집하여 정나라 토벌을 논의했다.
時欒書雖則為政,而三郤擅權。那三郤:乃郤錡、郤犨、郤至。錡為上軍元帥,犨為上軍副將,至為新軍副將,犨子郤毅,至弟郤乞,並為大夫用事。伯宗為人,正直敢言,屢向厲公言:「郤氏族大勢盛,宜分別賢愚,稍抑其權,以保全功臣之後。」厲公不聽。三郤恨伯宗入骨,遂譖伯宗謗毀朝政。厲公信之,反殺伯宗。其子伯州犁奔楚,楚用為太宰,與之謀晉。厲公素性驕侈,兼好內外嬖幸甚多。外嬖胥童、夷羊五、長魚矯、匠麗氏等一班少年,皆拜為大夫。內嬖美姬愛婢,不計其數。日事淫樂,好諛惡直,政事不修,群臣解體。
그때에는 난서가 비록 정사를 맡아 하였지만 삼극(三郤)이 권력을 마음대로 했다. 삼극이란 극기(郤錡), 극주(郤犨), 극지(郤至) 등으로, 극기는 상군 원수가 되고, 극주는 상군 부장이 되었으며, 극지는 신군 부장이 되고, 극주의 아들 극의(郤毅), 극지의 동생 극걸(郤乞)은 모두 대부가 되어 일을 보았다. 백종은 위인이 정직하고 바른말을 하여 여러 번 진여공에게 말하기를, “극씨 종족이 커지고 세력이 성하니 마땅히 현자와 어리석은 사람을 구분하여 그 권세를 조금 눌러 놓아야 다른 공신들의 후예들도 보전할 수 있습니다.” 했지만, 진여공이 듣지 않았다. 삼극은 백종을 뼛속 깊이 원망하여 마침내 백종이 조정을 비방하고 헐뜯는다고 모함했다. 진여공이 그 말을 믿고 도리어 백종을 죽였다. 백종의 아들 백주리(伯犨犁)는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가 백주리를 태재로 삼아 그와 더불어 진(晉)나라를 치려고 상의했다. 진여공은 원래 성질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팍으로 총애하는 남녀가 대단히 많았다. 남자로는 서동(胥童), 이양오(夷羊五), 장어교(長魚矯), 장려(匠麗) 등 일반 소년들인데 모두 대부로 임명했다. 진여공이 총애하는 미녀와 여종들은 수를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매일 음탕한 짓을 일삼고, 아첨하는 사람을 좋아했으며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진여공이 정사를 돌보지 않자 여러 신하의 기강도 해이해졌다.
士燮見朝政日非,不欲伐鄭。郤至曰:「不伐鄭,何以求諸侯?」欒書曰:「今日失鄭,魯宋亦將離心,溫季之言是也。」楚降將苗賁皇亦勸伐鄭,厲公從其言,獨留荀罃居守,遂親率大將欒書、士燮、郤錡、荀偃、韓厥、郤至、魏錡、欒鍼等,出車六百乘,浩浩蕩蕩,殺奔鄭國。一面使郤犨往魯衛各國,請兵助戰。鄭成公聞晉兵勢大,欲謀出降。大夫姚鉤耳曰:「鄭地褊小,間於兩大,只宜擇一強者而事之,豈可朝楚暮晉,而歲歲受兵乎?」鄭成公曰:「然則何如?」鉤耳曰:「依臣之見,莫如求救於楚。楚至,吾與之夾攻,大破晉兵,可保數年之安也。」
사섭은 진(晉)나라 조정이 날로 아닌 것을 보고 정나라를 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극지가 말하기를, “정나라를 치지 않으면 어떻게 제후들을 규합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난서가 말하기를, “오늘 정나라를 잃으면 노나라와 송나라도 또한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온계(溫季 ; 극지)의 말이 옳습니다.” 했다. 초나라에서 항복한, 투월초의 아들 묘분황(苗賁皇)도 역시 정나라를 토벌하라고 권했다. 진여공이 그 말을 쫓아, 순앵(荀罃)을 본국에 남겨 도성을 지키도록 명하고, 대장 난서(欒書), 사섭(士燮), 극기(郤錡), 순언(荀偃), 한궐(韓厥), 극지(郤至), 위기(魏錡), 난침(欒鍼) 등의 장수와 전차 6백 대를 친히 인솔하여 호호탕탕 정나라로 쇄도해 쳐들어갔다. 한편으로는 극주를 노나라와 위나라에 사자로 보내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돕도록 청했다. 정성공이 진(晉)나라 군사의 세력이 큰 것을 알고, 성문을 나가 항복하려고 했다. 대부 요구이(姚鉤耳)가 말하기를, “정나라의 땅은 좁고 두 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그중 강한 나라를 택하여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아침에는 초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겨 해마다 침략을 당하고만 있습니까?” 했다. 정성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니, 요구이가 말하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군이 도착하면 우리가 그와 함께 협공하여 진(晉)나라 군사를 크게 이길 수 있어 몇 년간은 편안히 지낼 수 있습니다.” 했다.
成公遂遣鉤耳往楚求救。楚共王終以西門之盟為嫌,不欲起兵,問於令尹嬰齊。嬰齊對曰:「我實無信,以致晉師,又庇鄭而與之爭,勤民以逞,勝不可必,不如待之。」公子側進曰:「鄭人不忍背楚,是以告急。前不救齊,今又不救鄭,是絕歸附者之望也。臣雖不才,願提一旅,保駕前往,務要再奏『掬指』之功。」共王大悅,乃拜司馬公子側為中軍元帥,令尹公子嬰齊為左軍,右尹公子壬夫將右軍。自統親軍兩廣之眾,望北進發,來救鄭國。日行百里,其疾如風,早有哨馬報入晉軍。
정성공은 요구이를 초나라에 보내 구원병을 청했다. 초공왕은 송나라 도성의 서문에서 맺었던 서문지약(西門之約)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여 군사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다. 초공왕이 영윤 공자 영제에게 물으니, 공자 영제가 대답하기를, “우리가 실은 신의를 지키지 않아 진(晉)나라가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또 정나라를 비호하여 진(晉)나라과 전쟁을 하면, 백성들을 고생시키게 될 뿐만 아니라 싸움에서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군사를 출동시키지 말고 기다려 봄이 좋을 듯합니다.” 했다. 공자 측이 나와 말하기를, “정나라 사람들이 초나라를 배반할 수 없어서 이렇게 급하게 구원을 청한 것입니다. 전날 제나라를 구하지 않았고, 지금 또 정나라를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를 섬기는 나라는 하나도 없게 됩니다. 신이 비록 재주가 없으나 한 떼의 군사를 거느리고 어가를 모시고 출전하여 공을 이루겠습니다.” 하니, 초공왕이 크게 기뻐했다. 이에 사마 공자 측을 중군 원수, 영윤 공자 영제를 좌군 원수, 우윤 공자 임부(公子壬夫)를 우군 원수로 삼고, 초공왕이 친히 양광(兩廣)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쪽을 향하여 정나라를 구하려고 출발했다. 초나라 군사는 하루에 백 리를 행군하여 질풍같이 나아갔다. 어느새 정찰 기병이 진(晉)나라 군대에 보고했다.
士燮私謂欒書曰:「君幼不知國事,吾偽為畏楚而避之,以儆君心,使知戒懼,猶可少安。」欒書曰:「畏避之名,書不敢居也。」士燮退而嘆曰:「此行得敗為幸,萬一戰勝,外寧必有內憂,吾甚懼之!」時楚兵已過鄢陵,晉兵不能前進,留屯彭祖岡,兩下各安營下寨。來日,是六月甲午大盡之日,名為晦日。晦不行兵,晉軍不做准備。五鼓漏盡,天色猶未大明,忽然寨外喊聲大振。守營軍士忙忙來報:「楚軍直逼本營,排下陣勢。」
사섭이 가만히 난서에게 말하기를, “군주께서 어려서 나랏일을 모르니 우리가 초나라를 두려워하는 체하면서 이 싸움을 피하여 경계를 주면 주군께서 조심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 오히려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했다. 난서가 말하기를, “두려워서 피했다는 오명을 저는 쓸 수가 없습니다.” 하니, 사섭이 물러 나와 탄식하며 말하기를, “이번 싸움에 우리가 져야만 나라에는 다행이겠지만 만일 싸움에서 이긴다면 나라 밖은 안정이 되겠지만 나라 안에서는 반듯이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니, 내가 몹시 두렵다.” 했다. 그때 이미 초나라 군사가 언릉(鄢陵)을 통과했기 때문에 진(晉)나라 군사는 전진할 수가 없어 팽조강(彭祖崗)에 머물러 주둔했다. 양군이 각각 진영을 세워 대치했다. 그 이튿날은 유월 갑오(甲午)일 그믐날이었다. 그믐날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으므로 진(晉)나라 군사는 초군의 기습에 대해 준비하지 않았다. 오경(새벽 4시쯤)이 지나고 동녘이 아직 밝지 않았을 때 갑자기 진영 밖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진영을 지키던 군사가 황급히 보고하기를, “초나라 군사가 본영 앞으로 바짝 다가와 진을 쳤습니다.” 했다.
欒書大驚曰:「彼既壓我軍而陣,我軍不能成列,交兵恐致不利。且堅守營壘,待從容設計以破之。」諸將紛紛議論,有言選銳突陣者,有言移兵退後者。時士燮之子名匃,年纔一十六歲,聞眾議不決,乃突入中軍,稟於欒書曰:「元帥患無戰地乎?此易事也。」欒書曰:「子有何計?」士匄曰:「傳令牢把營門,軍士於寨內暗暗將灶土盡皆削平,井用木板掩蓋,不過半個時辰,結陣有餘地矣。既成列於軍中,決開營壘,以為戰道,楚其奈我何哉?」欒書曰:「井灶乃軍中急務,平灶塞井,何以為食?」士匄曰:「先命各軍預備乾糧淨水,足支一二日,俟布陣已定,分撥老弱於營後另作井灶就之。」
난서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적군이 이미 아군을 압박하여 진을 쳤으니, 우리 군사들이 대오를 갖추기가 어렵게 되었소. 이런 상태로 교전에 들어가면 불리할 것 같소. 영채를 굳게 지키고 조용히 기다려 계책을 세워 깨뜨려야 하오.” 했다. 장수들이 분분히 의논하여, 정예군사를 뽑아 진영으로 돌격하자는 사람도 있고, 군사를 이동하여 물러나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사섭의 아들 사개(士匄)가 종군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겨우 16살이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것을 알고, 사개가 중군 막사에 들어와 난서에게 아뢰기를, “원수께서는 싸울 장소가 없는 것을 걱정하십니까? 그것은 쉬운 일입니다.” 했다. 난서가 말하기를, “너에게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는가?” 하니, 사개가 말하기를, “원수께서 영을 내려 영문을 굳게 지키게 한 후 영채 안의 군사들에게는 몰래 아궁이를 무너뜨려 평평하게 하고, 우물은 널빤지로 덮으면, 불과 반 시각이면 전투대형을 갖추고도 땅이 남습니다. 이미 대오를 갖춘 군사를 이끌고 영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 싸우면, 초나라 군사가 우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다. 난서가 말하기를, “우물과 아궁이는 군무의 요긴한 것인데 아궁이를 평평하게 하고 우물을 막으면 어떻게 군사들을 먹일 수 있겠느냐?” 하니, 사개가 말하기를, “먼저 각 군에 하루 이틀을 버틸 마른 식량과 맑은 물을 준비하라고 하고 대형이 갖추어지기를 기다려 노약자를 가려내어 진영 뒤에서 우물과 아궁이를 짓게 하면 됩니다.” 했다.
士燮本不欲戰,見其子進計,大怒,罵曰:「兵之勝負,關係天命。汝童子有何知識,敢在此搖脣鼓舌?」遂拔戈逐之。眾將把士燮抱住,士匄方能走脫。欒書笑曰:「此童子之智,勝於范孟也。」乃從士匄之計,令各寨多造乾糧,然後平灶掩井,擺列陣勢,准備來日交兵。胡曾詠史詩云:「軍中列陣本奇謀,士燮抽戈若寇仇﹔豈是心機遜童子,老成憂國有深籌。」卻說,楚共王直逼晉營而陣,自謂出其不意,軍中必然擾亂。卻寂然不見動靜,乃問於太宰伯州犁曰:「晉兵堅壘不動,子晉人也,必知其情。」
사섭은 원래 초군과 싸우려 하지 않았다가, 아들이 계책을 내놓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해 꾸짖기를, “군사의 승패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데, 어린 녀석이 무엇을 안다고 감히 여기에서 입과 혀를 놀리느냐!” 하고, 과를 꺼내어 찌르려고 하였다. 여러 장수가 사섭을 싸안아 막아서 사개는 거기서 도망칠 수 있었다. 난서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린애의 지혜가 그 아버지 범맹(范孟 ; 사섭) 보다 낫소.” 했다. 이에 난서는 사개의 계책에 따라 각 영채에 마른 식량을 준비하게 한 후에 아궁이를 메우고 우물을 널빤지로 덮어 전투대형을 갖추어 다음날의 교전에 대비했다. 호증(胡曾)선생의 영사시(역사를 노래한 시)에 이르기를, “영채 안에서 진을 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했는데, 사섭은 과를 뽑아 자식을 원수처럼 대했다. 어찌 사섭의 깊은 뜻이 동자보다 못해서였겠는가? 나라를 걱정하는 늙은이의 깊은 염려였다.”라고 했다. 한편, 초공왕은 진나라 진영 바짝 가까이 다가가서 진을 세우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뜻밖의 곳에 나가서 군사들이 반드시 혼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진나라 진영에서는 적막하고 별다른 동정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태재 백주리에게 묻기를, “진나라 군사들이 진영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으니 그대는 진나라 사람이라 틀림없이 그 사정을 알 것이오.” 했다.
州犁曰:「請王登轈車而望之。」楚王登轈車,使州犁立於其側。王問曰:「晉兵馳騁,或左或右者何也?」州犁對曰:「召軍吏也。」王曰:「今又群聚於中軍矣。」州犁曰:「合而為謀也。」又望曰:「忽然張幕何故?」州犁曰:「虔告於先君也。」又望曰:「今又撤幕矣。」對曰:「將發軍令也。」又望曰:「軍中為何暄嘩,飛塵不止?」對曰:「彼因不得成列,將塞井平灶,為戰地耳。」又望曰:「車皆駕馬矣,將士升車矣。」對曰:「將結陣也。」又望曰:「升車者何以復下?」對曰:「將戰而禱神也。」又望曰:「中軍勢似甚盛,其君在乎?」對曰:「欒范之族,挾公而陣,不可輕敵也。」
백주리가 말하기를, “제가 망루 차에 올라가서 적진을 살펴보게 해주십시오.” 하니, 초공왕이 백주리를 망루 차에 올라와서 자기 옆에 서게 하고, 묻기를, “진나라 군사들이 말을 타고 빨리 달리는데 어떤 군사는 좌로 어떤 군사는 우로 다니는데 왜 그런가?” 하니,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군리(軍吏; 군대 사무관)들을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했다. 초공왕이 말하기를, “지금은 중군 막사 앞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소.” 하니, 백주리가 말하기를, “모여서 계책을 의논하는 중입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갑자기 천막을 치고 있는데 무슨 까닭이오?” 하니, 백주리가 말하기를, “선군의 영령에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입니다.” 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지금 장막을 걷었소.” 하니,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곧 군령을 내릴 것입니다.” 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진영 안이 어찌하여 시끄럽고 흙먼지가 그치지 않소?” 하니, 대답하기를, “그들은 아직 대오를 갖추지 못해서 우물을 덮고 아궁이를 메워서 전쟁할 땅을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전차에 모두 말을 메우고 장수와 군졸이 전차에 올라탔소.” 하니,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전투대열을 갖추려는 것입니다.” 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전차에 탔던 사람이 왜 다시 내리는가?” 하니,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싸움에 임하여 신에게 기도하려는 것입니다.” 했다. 또 바라보고 말하기를, “중군의 형세가 매우 성한 것 같은데, 그 군주는 어디에 있소?” 하니, 백주리가 대답하기를, “난씨와 범씨 종족이 주공을 호위하고 진을 쳤습니다. 경적하시면 안 됩니다.” 했다.
楚王盡知晉國之情,乃戒諭軍中,打點來日交鋒之事。楚之降將苗賁皇亦侍於晉侯之側,獻策曰:「自令尹孫叔之死,軍政無常。兩廣精兵,久不選換,老不堪戰者多矣。且左右二帥,不相和睦。此一戰楚可敗也。」髯翁有詩云:「楚用州犁本晉良,晉人用楚是賁皇﹔人才難得須珍重,莫把謀臣借外邦。」是日,兩軍各堅壘相持,未戰。楚將潘黨於營後試射紅心,連中三矢,眾將鬨然讚美。適值養繇基至,眾將曰:「神箭手來矣!」潘黨怒曰:「我的箭何為不如養叔?」養繇基曰:「汝但能射中紅心,未足為奇﹔我之箭能百步穿楊!」
초공왕이 진나라 군사의 정세를 다 살펴보고 군사들에게 내일 교전에 대비하여 점검을 철저히 하도록 했다. 초나라에서 항복한 장수 묘분황(苗賁皇)도 역시 진여공 옆에서 모시면서 계책을 드려 말하기를, “초나라 영윤 손숙오가 죽고 나서 군정이 안정되지 않고, 양광의 정예 군사들은 오랫동안 바꾸지 않아 늙어서 싸움을 감당하지 못할 자가 많습니다. 또 좌우 두 장수가 서로 화목하지 않습니다. 이번의 한번 싸움에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염옹(髥翁)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초나라가 쓴 백주리는 본래 진나라의 훌륭한 신하였고, 진나라도 초나라의 장수 묘분황을 썼다. 인재는 구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소중히 여겨야지, 지모 있는 신하를 나라 밖으로 보내지 말아라.” 했다. 이날 두 나라 군사들은 각각 자기 진영을 굳게 지키고 교전하지 않았다. 초나라 장군 반당(潘黨)이 진영 뒤쪽에서 시험 삼아 활을 쏘아 과녁의 붉은 중심을 세 번 연달아 맞추니, 여러 장수가 칭찬해 마지않았다. 그때 마침 양요기(養繇基)가 이르자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신궁이 왔다!” 하니, 반당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나의 활 솜씨가 어찌하여 양요기보다 못하단 말인가?” 했다. 양요기가 말하기를, “그대는 과녁의 중심을 잘 맞출 수 있지만 뛰어난 경지에 이르지 못했소. 내 화살은 능히 백 보에서 버들잎을 꿸 수 있소.” 했다.
眾將問曰:「何為百步穿楊?」繇基曰:「曾有人將顏色認記楊樹一葉,我於百步外射之,正穿此葉中心,故曰百步穿楊。」眾將曰:「此間亦有楊樹,可試射否?」繇基曰:「何為不可。」眾將大喜曰:「今日乃得觀養叔神箭也!」乃取墨塗記楊枝一葉,使繇基於百步外射之,其箭不見落下。眾將往察之,箭為楊枝掛住,其鏃正貫於葉心。潘黨曰:「一箭偶中耳!若依我說,將三葉次第記認,你次第射中,方見高手。」繇基曰:「恐未必能,且試為之。」潘黨於楊樹上高低不等,塗記了三葉,寫個「一」「二」「三」字。
여러 장수가 묻기를, “백 보에서 버들잎을 꿴다는 게 무슨 말인가?” 하니, 양요기가 말하기를, “일찍이 어떤 사람이 버드나무 잎사귀에 색칠을 해놓았는데, 내가 백 보 밖에서 활을 쏴서 그 잎의 중심을 꿰뚫었소. 그래서 백 보에서 버들잎을 꿴다고 한 것이오.” 했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이곳에도 버드나무가 있으니 쏴보지 않겠소?” 하니, 양요기가 말하기를, “못 할 것도 없습니다.” 했다. 장수들이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 “오늘 우리가 양요기의 귀신같은 활 솜씨를 구경하게 되었구려!” 하고, 즉시 버드나무의 한 잎사귀에 먹으로 칠을 하고, 양요기에게 백 보 밖에서 활을 쏘라고 했다. 화살은 보이지 않았으나, 여러 장수가 가서 살펴보니 화살은 버드나무 가지에 꽂혀 있는데 그 화살촉은 버들잎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었다. 반당이 말하기를, “한번이야 우연히 맞출 수 있소! 내 생각에는 버들잎 3개에 표식을 하고 차례로 쏘아 맞추어야 비로소 고수라고 할 수 있소.” 하니, 양요기가 말하기를, “반드시 다 맞출지는 모르지만 한번 시험해 보지요.” 했다. 반당이 버드나무에 높낮이가 같지 않게 세 잎을 칠해 놓고 1, 2, 3 숫자를 썼다.
養繇基也認過了,退於百步之外,將三矢也記個「一」「二」「三」的號數,以次發之,依次而中,不差毫釐。眾將皆拱手曰:「養叔真神人也!」潘黨雖然暗暗稱奇,終不免自家要顯所長,乃謂繇基曰:「養叔之射,可謂巧矣!然殺人還以力勝,吾之射能貫數層堅甲,亦當為諸君試之。」眾將皆曰:「願觀。」潘黨教隨行組甲之士,脫下甲來,疊至五層。眾將曰:「足矣。」潘黨命更迭二層,共是七層。眾將想道:「七層甲,差不多有一尺厚,如何射得過?」潘黨教把那七層堅甲,繃於射鵠之上。
양요기가 확인한 후에 백 보 밖으로 물러가서 화살 세 개에도 1, 2, 3이라고 숫자를 써서 순서대로 쏘니, 순서대로 명중하여 추호도 어긋남이 없었다. 여러 장수가 두 손을 모으며 말하기를, “양요기는 참으로 신궁입니다!” 했다. 반당이 비록 마음속으로는 기이함에 놀랐으나, 끝내 자기의 장기를 자랑하고 싶어서 양요기에게 말하기를, “양숙(양요기)의 활 솜씨는 정말 훌륭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일 수 있으려면 힘이 뛰어나야 합니다. 나는 여러 겹의 갑옷을 활로 꿰뚫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여러분에게 시험해 보이겠습니다.” 하니, 여러 장수가 모두 말하기를, “보고 싶습니다.” 했다. 반당이 수행하던 무사들의 갑옷을 벗겨서 포개 놓으니 다섯 겹이 되었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됐습니다.” 했지만, 반당이 두 겹을 더 포개어 모두 일곱 겹이 되었다. 여러 장수가 생각하기를, “일곱 겹 갑옷은 거의 한 자에 가까운데 어떻게 그것을 꿰뚫겠는가?” 했으나, 반당은 일곱 겹 갑옷을 과녁에다 묶었다.
也立在百步之外,挽起黑彫弓,拈著狼牙箭,左手如托泰山,右手如抱嬰兒,覷得端端正正,盡力發去。撲的一聲,叫道:「著了!」只見箭上,不見箭落,眾人上前看時,齊聲喝采起來道:「好箭,好箭!」原來弓勁力深,這枝箭直透過七層堅甲,如釘釘物,穿的堅牢,搖也搖不動。潘黨面有德色,叫軍士將層甲連箭取下,欲以遍誇營中。養繇基且教「莫動!吾亦試射一箭,未知何如?」眾將曰:「也要看養叔神力。」繇基拈弓在手,欲射復止。眾將曰:「養叔如何不射?」繇基曰:「只依樣穿札,未為希罕,我有個送箭之法。」
그리고 백 보 밖으로 물러나서 흑조궁(黑彫弓 ; 조각한 검은 활)에 낭아전(狼牙箭 ; 이리 이빨처럼 날카로운 화살)을 메워, 왼손은 태산같이 버티고, 오른손은 어린아이를 안듯이 하여, 똑바로 보고 힘을 다해 쏘았다. 딱 소리가 나자 “맞았다!” 하고 외쳤다. 화살을 쏘는 것은 보았으나, 과녁을 꿰뚫는 순간은 보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과녁에 가서 본 다음에야 일제히 박수를 치며 말하기를, “훌륭한 솜씨다, 훌륭한 솜씨야!” 했다. 원래 활을 당기는 힘이 아주 강했으므로 일곱 겹의 갑옷을 뚫고 들어간 화살은 마치 못을 박은 것같이 단단히 박혀서 흔들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반당이 얼굴에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군사들에게 소리쳐 화살이 박힌 갑옷을 가져오라고 하여 진영에 두루 자랑하려고 했다. 양요기가 지시하기를, “군사들은 움직이지 말라. 나도 한번 쏴봐야겠다. 어떨지 알 수 없지만.” 했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양요기의 귀신같은 힘을 또 보아야겠군.” 했다. 양요기가 활을 당겨 화살을 쏘려다가 다시 멈추었다.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양숙은 어찌하여 활을 쏘지 않소?” 하니, 양요기가 말하기를, “갑옷에 구멍을 뚫는 것은 희한하지 않소. 나는 화살을 보내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겠소.” 했다.
說罷,搭上箭,颼的射去,叫聲:「正好!」這枝箭不上不下,不左不右,恰恰的將潘黨那一枝箭,兜底送出布鵠那邊去了。繇基這枝箭,依舊穿於層甲孔內。眾將看時,無不吐舌。潘黨方纔心服,嘆曰:「養叔妙手,吾不及也!」史傳上載楚王獵於荊山,山上有通臂猿,善能接矢。楚兵圍之數重,王命左右發矢,俱為猿所接。乃召養繇基。猿聞繇基之名,即便啼號。及繇基到,一發而中猿心。其為春秋第一射手,名不虛傳矣。潛淵有詩云:「落烏貫蝨名無偶,百步穿楊更罕有﹔穿札將軍未足奇,強中更有強中手。」
말을 마치자, 화살을 장전하여 쉿 소리를 내며 쏘았다. 여러 장수가 외치기를, “명중이다!” 했다. 그 화살은 상하좌우 조금도 어긋나지 않고 바로 반당이 쏜 화살의 한가운데를 맞추어 반당의 화살을 과녁 밖으로 밀어냈다. 양요기가 쏜 화살은 겹겹이 쌓은 갑옷의 구멍을 그대로 뚫었다. 여러 장수가 그것을 보고 혀를 내두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반당도 비로소 겨우 승복하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양숙의 솜씨는 내가 미치지 못하겠소!” 했다. 역사책에 전하기를, 초왕이 형산(荊山)에 사냥을 나갔는데 산꼭대기에 팔이 긴 원숭이가 살고 있었다. 그 원숭이는 날아오는 화살을 잘 잡아내었다. 초나라 군사가 원숭이를 몇 겹으로 에워싼 후, 초왕이 좌우에 명하여 활을 쏘았으나 원숭이가 모두 잡아냈다. 그래서 양요기를 부르니 원숭이는 양요기의 이름을 듣고 곧 울부짖었다. 이에 양요기가 도착하여 화살을 한 발 쏘아 원숭이의 심장을 맞혔다고 했다. 그는 춘추시대 제일의 사수여서 이름이 헛되이 전한 것이 아니었다. 잠연(潛淵)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나는 새를 떨어뜨리고 이[蝨]를 관통하는 궁사가 있었다지만, 백 보 밖에서 버들잎을 꿰뚫는 경지는 전에 없었다. 갑옷을 뚫는 장군의 솜씨는 신기할 게 없고, 강한 중에도 더 강한 솜씨를 가진 자가 있었다.” 했다.
眾將曰:「晉楚相持,吾王正在用人之際,兩位將軍,有此神箭,當奏聞吾王,美玉不可韞櫝而藏。」乃命軍士將箭穿層甲,抬到楚共王面前,養繇基和潘黨一同過去。眾將將兩人先後賭射之事,細細稟知楚王:「我國有神箭如此,何愁晉兵百萬?」楚王大怒曰:「將以謀勝,奈何以一箭僥倖耶?爾自恃如此,異日必以藝死!」盡收繇基之箭,不許復射。養繇基羞慙而退。次日五鼓,兩軍中各鳴鼓進兵。晉上軍元帥郤錡攻楚左軍,與公子嬰齊對敵。下軍元帥韓厥攻楚右軍,與公子壬夫對敵。
여러 장수가 말하기를, “진(晉)나라 군사와 초나라 군사가 대치하고 있어, 우리 대왕께서 유능한 인재를 쓸 때인데, 두 장군이 이렇게 귀신같은 활 솜씨를 가졌으니 마땅히 대왕께 아뢰어야지, 아름다운 구슬을 함 속에 감추어 놓으면 안 됩니다.” 하고, 이에 여러 장수가 군사들에게 명하여 화살이 뚫은 여러 겹 갑옷을 초공왕 앞에 가져가게 했다. 양요기와 반당이 함께 초공왕 앞으로 갔다. 여러 장수가 두 사람이 화살로 시합한 이야기를 공왕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아뢰기를,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신궁이 두 분이나 있으니 어찌 진나라 군사가 백만 명이라 한들 걱정하겠습니까?” 하니, 초공왕이 크게 화를 내며 말하기를, “장차 싸움에서 이길 생각을 해야지, 어찌 화살 한 개로 요행을 바라느냐? 그대들이 스스로 이렇게 믿으니 후일 반드시 이 재주로 죽을 것이오!” 하고, 양요기의 화살을 전부 몰수하고 다시는 화살을 쏘지 못하도록 했다. 양요기가 부끄러움을 머금고 물러갔다. 다음날 오경 때가 되자 두 나라 군중에서 각각 북을 울리며 군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진(晉)나라 상군 원수 극기는 초나라 좌군을 공격하여 공자 영제와 대적하고, 하군 원수 한궐은 초나라 우군을 공격하여 공자 임부와 대적했다.
欒書士燮各帥本部車馬,中軍護駕,與楚共王和公子側對敵。這邊晉厲公是郤毅為御,欒鍼為車右將軍,郤至等引新軍,為後隊接應。那邊楚共王出陣。上午本該乘右廣,那右廣卻是養繇基為將,共王怪繇基恃射誇嘴,不用右廣,反乘了左廣。卻是彭名為御,屈蕩為車右將車。鄭成公引本國車馬為後隊接應。卻說厲公頭帶沖天鳳翅盔,身披蟠龍紅錦戰袍,腰懸寶劍,手提方天大戟,乘著金葉包裹的戎輅。右有欒書,左有士燮,展開軍門,殺奔楚陣來。誰知陣前卻有一窩泥淖,黎明時候,未曾看得仔細,郤毅御車勇猛,剛剛把晉侯車輪陷於淖中,馬不能走。
난서와 사섭이 각각 휘하 군사를 거느리고 중군의 진여공을 호위하면서, 초공왕과 공자 측에 대적했다. 이편의 진여공은 극의(郤毅)가 전차의 말을 몰았고 난침이 차우장군을 맡았다. 극지는 신군을 이끌고 후대가 되어 접응했다. 저편은 초공왕이 출진했는데, 원래 오전에는 우광의 군사를 이끌고 나올 차례였으나, 그 우광은 양요기가 대장이라 초공왕이 양요기의 궁술 자랑을 괘씸하게 여겨 우광을 쓰지 않고 도리어 좌광을 끌고 나왔다. 그리고 팽명(彭名)이 말을 몰았고, 굴탕이 차우장군을 맡았다. 정성공이 정나라의 전차를 이끌고 뒤에서 접응했다. 한편 진여공이 머리에 봉황의 날개를 본뜬 충천봉시(沖天鳳翅) 투구를 쓰고, 몸에는 용을 수놓은 붉은 비단 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보검을 차고, 손에는 방천대극을 잡고서 금빛 철판을 두른 큰 전차에 올라탔다. 우측에는 난서가 있고, 좌측에는 사섭이 있어 영문을 열고 초나라 진영을 향하여 돌진해 갔다. 누가 알았으리요? 진영 앞에 한 진펄 구덩이가 있어 여명이라 자세히 보지 못해 극의가 용맹스럽게 전차를 몰다가 바로 진여공의 전차 바퀴가 진창에 빠져서 말이 달릴 수가 없게 되었다.
楚共王之子熊茷,他少年好勇,領著前隊,望見晉侯車陷,驅車飛趕過來。那邊欒鍼忙跳下車,立於泥淖之中,盡平生氣力,雙手將兩輪扶起,車浮馬動,一步步掙出泥淖來。那邊熊茷將次趕到。這里欒書的軍馬亦到,大喝:「小將不得無禮!」熊茷見旗上有「中軍元帥」字,知是大軍,吃了一驚,回車便走,被欒書追上,活捉過來。楚軍見熊茷有失,一齊來救。卻得士燮引兵殺出,後隊郤至等俱到,楚兵恐墮埋伏,收兵回營。晉兵亦不追趕,各自歸寨。哨馬探聽楚左軍持重,晉上軍不曾交戰,下軍戰二十餘合,互有殺傷。勝負未分,約定來日再戰。
초공왕의 아들 웅패(熊茷)는 나이는 어렸지만, 용기가 있었다. 초나라 군사의 선봉을 맡아서 진여공의 전차가 구덩이에 빠진 것을 보고 전차를 나는 듯이 몰아 달려왔다. 저편의 난침이 황급히 전차에서 뛰어내려 진창구덩이 속에 서서 온 힘을 다하여 두 손으로 전차의 바퀴를 떠밀어 올렸다. 바퀴를 들자 말이 움직이고 한 발 한 발 진흙 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왔다. 저쪽의 웅패가 장차 덮치려고 했으나, 이쪽 난서의 군마가 도착하여 큰소리로 외치기를, “어린 장수가 무례하지 않은가?” 했다. 웅패가 깃발에 중군 원수라고 쓴 글자를 보고, 대군이 몰려오는 것을 알고 놀라 전차를 돌려 도망치려고 했으나 난서에게 추격당해 사로잡히고 말았다. 초나라 군사가 웅패의 실수를 보고 일제히 구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사섭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고, 후방에 있던 극지 등이 모두 달려오자 초나라 군사는 매복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군사를 거두어 진영으로 돌아갔다. 진나라 군사도 추격하지 않고 각자 영채로 돌아갔다. 정찰 기병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초나라의 좌군은 움직이지 않았고 진나라의 상군도 출전하지 않았으며, 하군은 20여 합을 싸웠으나 서로 살상했다고 했다. 승부를 가리지 못하여, 다음날 다시 교전하기로 했다.
欒書將熊茷獻功,晉侯欲斬之。苗賁皇進曰:「楚王聞其子被擒,明日必來親自出戰,可囚熊茷於軍前,往來誘之。」晉侯曰:「善。」一夜安息無話。黎明,欒書命開營索戰,大將魏錡告書曰:「吾夜來夢見天上一輪明月,遂彎弓射之,正中月心,射出月中一股金光,直瀉下來。慌忙退步,不覺失腳,陷於營前泥淖之內,猛然驚覺。此何兆也?」欒書詳之曰:「周之同姓為日,異姓為月。射月而中,必楚君矣。然泥淖乃泉壤之中,退入於泥,亦非吉兆。將軍必慎之!」魏錡曰:「苟能破楚,雖死何恨!」欒書遂許魏錡打陣。
난서가 웅패를 잡아다가 진여공에게 바치자 진여공이 참하려고 하였다. 묘분황이 나와서 말하기를, “초공왕이 그의 아들이 사로잡혔다는 것을 알면 내일은 반드시 친히 출전할 것입니다. 웅패를 함거에 가두어 진영 앞에 세워 놓고 오가며 유인하십시오.” 하니, 진여공이 말하기를, “좋은 계책이오.” 하고, 그날 밤은 편히 쉬고 별말이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난서가 진영 문을 열고 싸움을 걸었다. 대장 위기(魏錡)가 난서에게 말하기를, “제가 간밤에 꿈을 꿨는데 하늘에 둥근달이 떠 있는데 제가 활을 쏘아 달 가운데를 맞췄습니다. 그러자 달 속에서 한 가닥 금빛이 아래로 쏟아져 나와 제가 황망 중에 뒤로 물러나던 중 저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 진영 앞의 진창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놀라 꿈을 깨었습니다. 이것은 무슨 징조이겠습니까?” 하니, 난서가 상세히 해몽하기를, “주왕실과 같은 성은 해(日)가 되고 다른 성은 달(月)이 됩니다. 달을 쏘아 맞힌 것은 틀림없이 초나라 왕을 쏘아 맞힐 것이오. 그러나 진흙 웅덩이 속에 빠진 것은 길조가 아니오. 장군은 부디 조심하시오.” 했다. 위기가 말하기를, “진실로 초나라 군사를 격파할 수 있다면 비록 죽는다 한들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했다. 난서는 위기의 출전을 허락했다.
楚將工尹襄出頭。戰不數合,晉兵推出囚車,在陣上往來。楚共王見其子熊茷被囚於陣,急得心生煙火,忙叫彭名鞭馬上前,來搶囚車。魏錡望見,撇了工尹襄,逕追楚王,架起一枝箭,颼的射去,正中楚王的左眼。潘黨力戰,保得楚王迴車。楚王負痛拔箭,其瞳子隨鏃而出,擲於地下。有小卒拾而獻曰:「此龍睛,不可輕棄。」楚王乃納於箭袋之中。晉兵見魏錡得利,一齊殺上。公子側引兵抵死拒敵,救脫了楚共王。郤至圍住了鄭成公,賴御者將大旌藏於弓衣之內,成公亦走脫。時楚王怒甚,急喚神箭將軍養繇基速來救駕。
초나라 장수 공윤(工尹 ; 공업담당) 양(襄)이 나와서 위기를 상대했다. 그러나 공윤양이 위기와 몇 합을 겨루지 않아서, 진(晉)나라 군사가 웅패를 함거에 싣고 나와 진영 앞을 왕래했다. 초공왕이 아들 웅패가 함거에 실려 진영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에서 분노의 불꽃이 일어났다. 그는 급히 팽명을 불러 말을 채찍질해서 함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게 했다. 위기가 이것을 보고 공윤양을 버리고 곧바로 초공왕의 뒤를 추격했다. 위기가 화살 한 대를 메겨 쉿 소리와 함께 날리니 화살은 초공왕의 왼쪽 눈을 정확히 맞췄다. 반당이 죽을힘을 다하여 초공왕의 전차를 호위하여 달아났다. 초공왕이 아픔을 참고 화살을 뽑으니 눈동자가 화살촉에 달려 빠져나와서 땅에다 던져 버렸다. 소졸이 주워서 바치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용안입니다. 함부로 버릴 수 없습니다.” 했다. 초공왕이 받아서 화살통에 담았다. 진나라 군사는 위기가 초공왕을 활로 쏘아 이긴 것을 보고 일제히 쇄도해 들어갔다. 공자 측이 군사들을 이끌고 죽기를 각오하고 진나라 군사의 공세를 막아내어 초공왕을 구출했다. 극지는 정성공을 포위했으나, 성공의 마부가 대장기를 거두어 활집에 감춘 덕분에 정성공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때 초공왕은 매우 화가 나서 급히 신전 장군 양요기를 불러 빨리 왕의 전차를 구하라고 명했다.
養繇基聞喚,慌忙馳到,身邊並無一箭。楚王乃抽二矢付之曰:「射寡人乃綠袍虯髯者,將軍為寡人報仇。將軍絕藝,想不費多矢也。」繇基領箭,飛車趕入晉陣,正撞見綠袍虯髯者,知是魏錡。大罵:「匹夫有何本事,輒敢射傷吾主?」魏錡方欲答話,繇基發箭已到,正射中魏錡項下,伏於弓衣而死。欒書引軍奪回其屍。繇基餘下一矢,繳還楚王,奏曰:「仗大王威靈,已射殺綠袍虯髯將矣!」共王大喜,自解錦袍賜之,并賜狼牙箭百枝。軍中稱為「養一箭」,言不消第二箭也。有詩為證:「鞭馬飛車虎下山,晉兵一見膽生寒﹔萬人叢里誅名將,一矢成功奏凱還。」
양요기는 초왕의 부름을 받고 서둘러 왔기 때문에 몸에 화살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초공왕이 자기의 전통에서 화살 두 대를 꺼내 주며 말하기를, “과인을 쏜 자는 푸른 전포를 입은 곱슬머리 수염을 기른 자요. 장군은 나를 위해 원수를 갚아 주시오. 장군의 절묘한 활 솜씨로는 많은 화살이 필요 없을 것이오.” 했다. 양요기가 초공왕으로부터 화살을 받아 들고 나는 듯이 전차를 몰아 진나라 진영 쪽으로 달려가서 푸른 전포에 곱슬머리 수염을 한 장군을 찾으니 바로 위기임을 알았다. 양요기가 큰소리로 꾸짖기를, “필부가 무슨 일로 우리의 임금에게 화살을 쏘아 상처를 입혔느냐?” 하니, 위기가 막 그 말에 대답하려고 하는 순간, 양요기가 쏜 화살이 날아와서 위기의 목을 정확히 맞추었다. 위기는 화살을 맞고 활집 위에 엎어져 죽었다. 난서가 군사를 끌고 와서 위기의 시신을 빼앗아 돌아갔다. 양요기는 남은 한 개의 화살을 초공왕에게 돌려주면서 아뢰기를, “대왕의 위엄에 의지하여 푸른 전포에 곱슬머리 수염의 적장을 쏘아 죽였습니다.” 하니, 초공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자기의 비단 전포를 벗어 양요기에게 주고, 또 낭아전(狼牙箭) 백 개를 하사했다. 초나라 군중에서는 양요기를 양일전(養一箭 ; 양요기의 화살 한 개)이라고 불렀다. 말인즉 두 번째 화살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에 이르기를, “전차를 달려 호랑이와 같이 산을 내려오니, 진나라 군사가 한번 보자 간담이 서늘해졌구나!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명장을 활로 쏘아 죽이니, 화살 한 개로 공을 이루어 개선하고 돌아가네.” 했다.
卻說,晉兵追逐楚兵至緊,養繇基抽矢控弦,立於陣前,追者輒射殺之,晉兵乃不敢逼。楚將嬰齊壬夫聞楚王中箭,各來接應,混戰一場,晉兵方退。欒鍼望見令尹旗號,知是公子嬰齊之軍,請於晉侯曰:「臣前奉使於楚,楚令尹子重問晉國用兵之法,臣以『整暇』二字對。今混戰未見其整,各退未見其暇。臣願使行人持飲獻之,以踐昔日之言。」晉侯曰:「善。」欒鍼乃使行人執酒榼,造於嬰齊之軍,曰:「寡君乏人,命鍼持矛車右,故不得親犒從者,使某代進一觴。」
한편, 진나라 군사는 초나라 군사를 바싹 추격했으나 양요기가 화살을 뽑아 들고 활을 메겨 초나라 진영 앞에 서서 추격하는 진나라 군사를 하나하나 쏘아 죽였기 때문에, 진나라 군사들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 초나라 장군 공자 영제와 임부가 초공왕이 화살에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싸움을 돕기 위해 각기 군사를 이끌고 달려오자 전장은 혼전 상태가 되었고, 진나라 군사가 물러갔다. 난침이 초나라 영윤의 깃발을 멀리서 보고, 공자 영제의 군사임을 알고 진여공에게 청하기를, “신이 예전에 사신의 임무를 띠고 초나라에 갔을 때 초나라 영윤 자중(子重 ; 영제)이 저에게 진나라의 용병하는 전술을 물었습니다. 신은 정제할 ‘정(整)’자 한가로울 ‘가(暇)’자 두 자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혼전을 하다 보니 그 정제됨(整)을 보여주지 못했고 비록 각각 후퇴하였으나 한가함(暇)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은 원컨대, 제가 행인(외교담당)을 시켜 초나라 장군에게 술 한 통을 보내어 전날의 말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하니, 진여공이 말하기를, “좋은 생각이오.” 했다. 난침이 즉시 행인에게 술통을 들려 영제의 진영으로 가서 바치고 말을 전하게 하기를, “저희 군주께서 인재가 부족하여 이 난침에게 오른쪽에서 창을 잡는 차우 장군에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종군하는 사람을 시켜 저를 대신하여 장군에게 술을 한잔 올리겠습니다.” 했다.
嬰齊悟昔日「整暇」之言,乃嘆曰:「小將軍可謂記事矣!」受其榼,對使飲之,謂使者曰:「來日陣前,當面謝也。」行人歸述其語。欒鍼曰:「楚君中矢,其師尚未肯退,奈何?」苗賁皇曰:「蒐閱車乘,補益士卒,秣馬厲兵,修陣固列,雞鳴飽食,決一死戰,何畏乎楚?」時郤犨欒黶從魯衛請兵回轉,言二國各起兵來助,已在二十里遠近。楚諜探知,報聞楚王。楚王大驚曰:「晉兵已眾,魯衛又來,如之奈何?」即使左右召中軍元帥公子側商議。
공자 영제는 옛날 난침이 말한 ‘정(整)과 가(暇)’라는 말을 생각해 내고는 탄식하기를, “나이 어린 장군이 그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했다. 공자 영제는 난침이 보내 준 술통을 받고 사신을 대하여 술을 마신 후 사신에게 말하기를, “내일 진영 앞에서 면대하여 인사를 올리리다.” 했다. 행인이 돌아와서 영제의 말을 전했다. 난침이 말하기를, “초공왕이 활에 맞았는데도 그 군사가 아직 후퇴할 생각이 없는 듯하니 어찌하지요?” 하니, 묘분황이 말하기를, “전차를 모아 살펴보고, 사졸을 보충하며 말에게 여물을 먹이고 병장기를 갈아놓고, 진채는 수리하여 대열을 견고하게 하여 날이 밝기 전에 병사들에게 식사를 배불리 먹여 한 번 결사적으로 싸우게 한다면 어찌 초나라 군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했다. 그때 극주(郤犨)와 난염(欒黶)이 노나라와 위나라에 지원군을 얻기 위해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두 나라가 진나라를 돕기 위해 각기 군사를 일으켜 20리 밖에 이미 왔다고 했다. 초나라 첩자가 이를 탐지하여 초공왕에게 보고했다. 초공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진나라 군사도 이미 많은데 노나라와 위나라 군사가 도우러 왔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가?” 했다. 즉시 좌우를 시켜 중군 원수 공자측을 불러 상의했다.
不知後事如何,且看下回分解。
뒷일이 어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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