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葆光의 수요 시 산책 57)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이성복(1952- ),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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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 전 나의 마음속엔 불덩어리 같은 의문 하나가 꺼질 줄을 몰랐다. ‘대체 사람들이 어떻게 시 없이 한순간이라도 살 수 있는가.’ 이를테면 시는 입이었고, 밥이었고, 밥 위로 흐르는 침이었다.”(「『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시절」 중 일부, 이성복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열화당, 2014, 106쪽) 이성복 시인의 시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낸 지가 꽤 되었습니다. 어느 해든가 포항공대 교수 친구의 초청으로 온 강연회에서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듯도 하기는 합니다만, 그때는 아마 설마 하고 흘려들었지 싶은데 이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가요,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뉘 자국』(열림원, 2003) 이후 10년 만에 출간한 일곱 번째 시집인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를 마지막으로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래여애반다라』 이후에 발간한 책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되어 묶음으로 나온 책 3권(산문집 『고백의 형식들: 사람은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대담집 『끝나지 않는 대화: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시집 『어둠 속의 시: 1976-1985』, 열화당, 2014)을 구입해서 읽으면서 시인이 던진 말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새삼 느낍니다만, 아쉬운 마음에 또 그래도 설마 시간이 좀 길어지는 거지 합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위 묶음으로 나온 책 중 한 권인 시집 『어둠 속의 시: 1976-1985』는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문학과지성사, 1980)와 두 번째 시집 『남해금산』(문학과지성사, 1986)과 겹치는 시절에 쓴 시들의 일부(?)라서 신작 시집이 아닙니다. 그 시절 이십 대 초반이었던 저의 “마음속”도 “불덩어리”였습니다. 저의 그 “불덩어리”를 잠재우기 위해 저는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 얼마 후 그 “불덩어리”를 저는 시인의 시를 읽으며 확인했습니다. 저는 “불덩어리”에 휘둘렸습니다. 그 “불덩어리”가 다만 시였을까요. 그 “불덩어리”를 시인은 “시”라고 이야기하지만 뒤이어서 하는 “입” “밥” “침”과 실상 구분할 수 없기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시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삶에 대한 사랑과 다른 것이 아니었다. 한 편의 시는 사랑의 눈으로 들여다본 막막하고 안쓰러운 세상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때 나는 예술지상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예술지상주의자가 아니었다.”(위 산문 중 일부) 미학이 뜨거운 감자이긴 합니다만, 예술이 미학을 배제한 채 존재할 수는 또 없습니다. 이에 반발하는 예술가가 있겠지만 어쩌면 모든 예술가는 모두 예술지상주의자입니다. 김혜순 시인이, 결국 철회되기는 했지만, 광주의 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반발했던 이들이 내세웠던 논리도 저 “예술지상주의”라는 말과 거의 같은 결이었습니다. 저는 이성복 시인의 시에서도 김혜순 시인의 시에서도 굳게 발 딛고 있는 땅을 뜨겁게 느꼈습니다. 그곳에 미학이 있든 없든, 그것이 예술지상주의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읽고 느끼는 이는 다만 읽고 느낄 뿐입니다. “훗날 사강은 자신의 첫 소설을 두고 (…) 많은 비평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서’처럼 비평할 뿐 정작 느낌을 얘기하는 글은 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박연준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 산문집 『듣는 사람』, 난다, 2024) 읽는 사람에게는 느낌이 우선입니다. 어쩌면 느낌이 다일 수도 있습니다.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느낌은 그렇게 오는가/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느낌은 그렇게 지는가//종이 위의 물방울이/한참을 마르지 않다가/물방울 사라진 자리에/얼룩이 지고 비틀려/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느낌」 전부, 『그 여름의 끝』) 시인은 위 산문집 『고백의 형식들』에서 이런 고백도 하네요. “어쩌다 연애시에 눈독을 들이면서 내가 다시 꺼내 읽기 시작한 것은 소월素月과 만해萬海의 시들이었는데, 다시 꺼내 읽었다는 말보다 처음으로 깊이 새겨 읽었다 하는 편이 옳을 듯하다. 문학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들의 시가 다소 유치하고 감상적인 넋두리이거나, 자못 심각하지만 투박하기 짝이 없는 요설饒舌 정도로 치부해왔으니, 그들의 뛰어난 안목을 전혀 감지할 수 없었다.”(「『그 여름의 끝』이 끝날 무렵」 중 일부, 위 산문집, 107쪽) 묶음으로 나온 책들을 읽다 보니 이 책들이 시인이 시업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한 작업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듭니다만 역시나 아쉬운 마음이 꼬리를 뭅니다. 그리고 벌써 10년입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연애시 어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들을 묶은 위 시집은 1990년에 출간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지만 작년에 ‘리커버 한정판’으로도 출간되었습니다. 저는 목백일홍 꽃이 피고 지는 것 모두 “장난처럼”이라는 시인의 말에 새삼 끌렸습니다. 이렇게 밝히고 보니 이 “장난”이 또 낯설지 않습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김수영 시 「공자의 생활난」 일부, 『김수영 전집 1 시』 , 이영준 엮음, 민음사, 1981) 설마 삶이 장난일 수는 없겠지만 지나고 보면 세상사 모두 그렇게 보이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겪고 느낀 감정 중 하나는 절망과 붕괴입니다만, 세상은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인과 달리 제 “절망”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다 버리지는 않아서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인에게 꼬리를 내놓으라고 했다가 짝사랑하는 이와의 영영 이별을 초래하는 고백이 될까 봐 감히 어쩌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소식이 무척 궁금합니다. 폭염의 날들이 여러 달을 넘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무탈하시기를. 이 폭염이 언제 끝날까 막막하기도 하겠습니다만 결국 이 여름도 폭염도 다 끝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망 아닌 희망이 역시나 우리의 생존의, 실존의 이유이겠습니다. (20240731)
첫댓글 이성복 시인의 시를 지금에야 읽습니다. 오늘은 바깥 일 보느라 <보광의 수요 시 산책>에 늦게 합류한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김수영의 시도 같이 읽게 해 주시네요. 감사합니다. (())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너는 줄넘기 작란作亂을 한다”(김수영 시 「공자의 생활난」 일부, 『김수영 전집 1 시』 , 이영준 엮음, 민음사,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