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에 실재인 중도의 자리에 앉으니 예로부터 움직임이 없어 부처라 한다. 窮坐實際中道床하니 舊來不動名位佛이라 『華嚴一乘法界圖』
의상대사가 『법성게(法性偈)』에서 제일 마지막에 하신 말씀입니다. 원래 움직임이 없어서 부처라 한다고 하면서 근본은 중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도를 바로 깨친 분이 부처입니다. 원교는 중도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화엄종에서 보는 부처는 중도를 바로 깨친 사람이니, 교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화엄종에서 원교는 불교에 근본 최고 원리인데, 원교는 중도이고 화엄종에서 말하는 부처는 중도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화엄종이든 천태종이든 불교에 근본을 중도에 두었다는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음은 청량(淸涼)스님이 현수스님의 『탐현기(探玄記)』에 있는 여러 가지 내용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어떤 것이 화엄종취인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나서 최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추면서 막고 막으면서 비추어 양변을 다 비추고 양변을 다 막아서 둥글고 밝게 일관하면 화엄종취에 계합할 것이다. 卽照而遮하고 卽遮而照하야 雙照雙遮하야 圓明一貫하면 契斯宗趣矣리라
비추는 것이 버리는 것이고 버리는 것이 비추는 것입니다. 차별을 버리면 쌍조이며 원융무애 합니다. 그렇게 양변을 버리고 융합하면 원명일관圓明一貫입니다. 즉 양변을 다 막아 양변을 다 비추니 양변이 서로 완전히 융합 합니다. 이렇게 양변이 완전히 융합하면서 양변을 서로 버리면 쌍차가 쌍조이고, 쌍조가 쌍차입니다. 막고 비춤이 둘이 아닙니다. 이것이 화엄종취에 계합契合하는 것입니다. 결국 쌍차쌍조가 화엄의 종취입니다.
그래서 천태종과 화엄종에서 주장하는 근본 최고 원리가 쌍차쌍조를 내용으로 하는 중도가 됩니다. 화엄종과 천태종이 각각 의지하는 경전이 다르고 주장이 다른 것 같지만 표현만 다를 뿐입니다. 그 근본이 쌍차쌍조를 내용으로 하는 중도에 있다는 것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