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Of human bondage)"
모옴 자신의 정서가 그대로 깃들어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팩트와 픽션이 혼합된 것이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천착을 통해 나온 것이어서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주인공 필립은 어릴 적 부모를 잃고 보좌사제인 백부모에 의해 길러진다. 자기를 따라 사제의 길을 강요했던 백부에 의해 터캔버리 킹즈 스쿨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다리를 저는 필립은 놀림감이 되고, 그는 더욱 소심하고 생각 깊은 아이가 된다. 그가 백부의 희망에 따라 사제나 의사, 법률가가 되도록 요구받으나 거부하고 결국 화가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프랑스로 간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이상을 좇으나 대부분 실패하고 평범하고 실용적인 삶으로도 진입하지 못한다. 필립도 짧은 인생에서 대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을 가지고 도전하나 뛰어난 자질이 없음을 깨닫고 백부의 집으로 돌아간다.
백부의 집에서 나와 회계사무소에 견습생으로 들어가지만 숫자에 둔한 필립은 역시 좌절하고 다시 의사의 길로 가기 위해 의학학원 학생과 수련 보조원의 길을 걷지만 거기서 만난 천박한 밀드레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밀드레드는 매력도 지성도 삶에의 성실함도 도덕적 의식마저 부족한 여인이다. 전혀 필립에 대해서 사랑을 갖지 않은 그녀를 필립은 온갖 수모와 금전, 정념을 다 바쳐 열병처럼 사랑한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독일 유부남의 속임에 빠져 도망가고 그 아이를 갖게 된다. 형편 없는 처지에 빠진 밀드레드는 필립의 사랑을 빙자하여 그에게 의지하여 출산한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아이에 관심도 없고 사치와 쾌락을 좋아하여 필립이 가진 돈은 급속히 줄어든다. 물론 필립의 진정어린 사랑의 베풂이었고 밀드레드가 떼 써서 소비한 것은 아니다. 필립은, 번번이 그를 배신하고 심지어 생활고 때문이지만 몸을 팔기까지 방탕한 밀드레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정념의 굴레에 빠진 존재로 인식한다. 냉철한 판단으로 현실을 추구하는 필립이지만 처절한 환경들이 만들어 내는 정념이 그를 속박하는 한 이성은 무력할 뿐이다.
엄격한 백부에게서 받은 학비로 쓸 자산도 밀드레드로 인해 낭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필립은, 전쟁 상황을 이용해서 역전의 계기를 얻고자 친구를 통해 주식 투자를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모든 자산을 상실한다. 그는 이제 끼니마저 굶고 목숨마저 부지하기 힘든 비참한 꼴이 된다. 상할대로 상한 그가 친절한 애설니 부부와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의탁하고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는 수모를 견딘다. 당시 영국에서 젠트리 계층은 가질 수 있는 직업이 한정되어 있으며 그에게 점원직은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직장도 천신만고 끝에 얻은 자리였다. 너무 가난하면 고통을 겪고 품위를 지키기 어렵다는 것과 종교적으로 돈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위선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물론 고통을 통해서 성찰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다행히(?) 그의 백부가 사망함으로써 오백 파운드를 물려받아 의사의 수련과정을 마치고 그가 굶주릴 때 도움을 받은 친구의 장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고 청혼을 하게 된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 이상을 가지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려고 하지만 그 실천 과정에서 만나는 상황이나 환경은 논리적이지 않다. 심지어 여러 환경과 사람들이 조합해 내는 정념에 빠져드는 순간 가장 어리석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밀드레드에 빠진 필립의 처지는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한 현실이다. 인간 본성에 관한 진실은 실제로 우리의 이상과 목적에 부합하기보다 불편하기만 하다. 인간은 인간에 의해 인간다워지는 것은 틀림없으나 또한 인간은 인간에 의해 속박당하는 것도 틀림없다. 가난도 굴레다. 사람이 너무 싸구려로 굴면 존중받지 못한다는 밀드레드의 주장도 일면 타당한 말이다. 특히 여러 속박 중에서도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정념은 고상한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강력한 굴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불행한 환경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환경을 불행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불행하게 한다. 결국 마음의 환경이 인간을 예속하는 굴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