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포승줄을 끊고 수갑을 개발하자.
처음엔 휑했던 심리상담 밴드도 가입자가 200명을 넘어서며 바빠지기 시작해 시간 관리를 하며 상담을 해야 할 정도로 바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내 나이 또래의 중년 남성이 상담을 의뢰했다.
“저는 중소기업에서 35년 동안 금속가공 일을 하는 53세의 남성입니다. 저의 고민은 결혼을 늦게 해서 아들이 이번에 대학을 갔는데 돈이 많이 드는 실용음악과를 들어가서 촉탁으로 60세까지는 다녀야 되는데 요즘 MCT(Machine Center)를 들여와 젊은 친구를 반장으로 시켜서 새로운 팀을 구성하고 사장은 나 같은 늙다리들은 알아서 나가줬으면 하는 눈치라 정신적으로 많이 힙듭니다. 젊은 친구들한테 배워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굳어서 이해도 안 되고 ......
한 때는 이 바닥에서 스카웃 제의를 여러번 받은 기술자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갈 데도 없고 임금피크제로 월급이 깎여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겨우 연명해야 되는 처지가 되니 씁쓸합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60세까지 다녀도 100세 시대에 나머지 20~3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하고요.
이런 고민은 선생님이 조언해 주기도 힘든 문제인 것 잘 알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이 없어 밴드를 뒤지다가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고 가입해서 마음의 짐을 털고 갑니다.”
이 중년 남성의 글을 읽고 일터의 성질은 틀리지만 나도 똑같이 경험한 것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진중하게 답글을 올렸다.
“저도 비슷한 연배로서 컴퓨터와 외국어에 뛰어난 후배들한테 치여서 무늬만 희망퇴직을 한 사람으로서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그 당시 어떻게 하면 더 연명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나왔지만 저와 같이 매일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던 동기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실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저도 주변에서도 나갈 사람이 헛지랄한다고 비웃었지만 그 친구는 이사로 진급하고 신입사원 연수원장으로 발령받아 아직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런 고민을 잠시 운명에 맡기고 신입 직원들이 보다 빨리 실무에 적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드시는 게 어떨까요? 컴퓨터를 모르시면 아들이나 여직원에게 선물이라도 줘서 부탁하면 되고요.
제가 제조업 현장은 잘 모르지만 아무리 기계화 되어도 사람의 손이 필요한 부분이 있고 또 예를들면 다른 재질이 혼합되었을 때 신입사원들은 구별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테니 그런 부분에서 구별하는 방법 등을 세세하게 명시한 매뉴얼 같은 것을 만들면 후배들이 ”역시 경력은 무시 못한다!“고 감탄할 것입니다.
즉 포승줄을 묶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수갑을 개발해 후배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그에 따른 보답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제 말씀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신입 때 엉터리 일본말로 선배들한테 쿠사리 먹으며 배웠을 때를 생각하시며 후배들은 보다 합리적이고 평안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나의 답변에 그는 짧게 “고견 감사합니다.”하고 사라졌다.
6개월 후 그가 일창을 올렸다.
“선생님 조언대로 과거를 회고하며 저는 신입들이 일을 빨리 배울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어 완성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사장님은 저보고 70까지는 일해달라고 하고 교육과 품질검사를 맡아 해달라고 하시네요. 그리고 그동안 제조업 현장에서 쓰이던 후로꾸 일본말도 우리말로 바꾸고 우리 때는 익숙해지는데 1년이 걸렸던 작업을 3개월 만에 숙달될 수 있는 작업 지침을 완성하니 내가 박사가 된 것 같은 희열이 느껴집니다.
매뉴얼을 만들면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사람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갈아 넣어서 일을 배우고 시키고 성장하였는지를 실감했고 또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나 같은 노땅들도 역할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선생님이 인용하신 대로 여태까지 고집했던 복잡한 포승줄을 끊어버리니 수갑이 보이더군요!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상담료 플러스 한우를 보내 드릴 것이니 주소 보내주세요.
그럼 이만 시마이 하겠습니다.”
그의 답글을 보고 내가 심리상담사에 생각보다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며 한우를 빨리 받기 위해 주소를 찍었다.
5. 귀여운 알콜중독 아가씨.
마켓에서 모듬회와 소주 1병을 사서 저녁으로 때우고 밴드를 보니 처음으로 젊은 아가씨가 상담 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올해 26살의 직장인입니다. 저의 고민은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때 반드시 소주 한 병을 반주로 마시고 어쩌다 강한 의지로 반주를 안 마셔도 밤이 깊어지면 술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와 마시고 잠이 듭니다.
물론 금주 단체에 의뢰하는 것이 맞지만 젊은 여성으로서 쑥스럽기도 하고 .....우연히 선생님의 심리상담 밴드를 발견하고 고민을 올립니다. 담배는 끊었는데 술을 끊기가 너무 어렵네요....
도와주세용”
나는 너무 웃겨서 한참을 웃으며 많은 것이 변했음을 실감했다. 라떼에는 젊은 여성이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도 보기 힘들었고 담배도 어두운 카페에서 줄담배를 피었지만 언베부터인지 요즘은 젊은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대담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서 증산도에서 말하는 여성이 중심이 되는 후전개벽 시대가 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답글을 썼다.
“먼저 상담자인 나도 직장을 잃고 이혼까지 하고 혼자가 되었을 때 거의 매일 반주로 소주를 마시고 아니면 자기 전에 유튜브를 보며 맥주를 마시는 버릇이 들어서 이런 버릇을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지만 일단 해가 서쪽으로 저물 때 1차 적으로 유혹이 오고 그 고비를 넘기면 밤이 깊어갈 때 2차로 유혹이 밀려오고 그것도 넘기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안 오면 결국 편의점에 가서 맥주를 사와 마시던 소주 1병과 참치캔을 사와 마시며 무너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헬스장에 저녁에 가고 심리상담사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며 밤에 할 일들을 만들어서 성공하는 듯했으나 3일이 지나자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문득 ”이렇게 운동을 하고 수제맥주 2캔은 마셔줘야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닌가?“ 아니면 마켓에서 시장을 보다 싱싱한 회나 한우를 세일 하면 ”마켓에서 이렇게 좋은 안주를 싸게 세일을 하는데, 한 잔 안 하면 마켓에 실례지?“ 하는 엉뚱한 자기 합리화를 하며 무너졌습니다.
결국은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기로 결심을 하고 지금까지 2번을 제외하고 지키고 있습니다. 님은 젊은 여성이기에 어떤 동기 부여를 하며 술을 줄여 나가기를 권합니다
예를 들면 술에 지출되는 돈을 1년간 저축을 하고 명품 핸드백을 산다는 목표를 정하고 내가 썼던 방법인 저녁에 운동을 하고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여 한가한 시간을 줄이며 바삐 움직이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술에 대한 생각이 나면 강박적으로 그 생각을 뿌리칠수록 더욱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니, 산봉우리에 걸쳐친 구름이라 생각하고 구름이 있나 보다 하고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해가 비추고 바람이 불며 그런 생각이 사라질 겁니다.”
1시간 후 답글이 올라왔다.
“선생님은 솔루션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msg가 없는 ”찐“ 심리상담사 같아요^^ 저는 된장녀가 아니라 명품백을 사려고 술값을 아끼진 않을 것이고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공인회계사 시험에 도전하고 집 근처 헬스장이 1년에 30만원으로 세일하는 중인데 내일 등록을 해서 1년 후에는 바디 프로필을 찍을 예정입니다.
술은 선생님같이 일주일에 한 번만 먹기로 했고 상담료는 편의점 맥주 4캔 가격 만원에 보너스 만원 추가해서 이만원 보낼게요~
남은 소주 마시니 알딸딸 하네요. 오늘 상담 정말 감사하고 마지막 표현 너무 멋있어요^^
그럼 저는 이만....”
확실히 젊은 여성의 발랄함은 주변을 밝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