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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샤츠슈나이더의 RPG 2차창작 서울, 1962년 겨울 - Epilogue (2)
E.E.샤츠슈나이더 추천 0 조회 342 22.09.01 14:03 댓글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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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9.02 21:38

    @dear0904 아뇨. 전직 아가리 파이터로 맨날 잘 모르는거 가지고 싸우다 지지부진한 병림픽도 많이 하고 제 잘못을 제 손으로 대놓고 합리화 하려는 걸 제 눈으로 보기도 한 경험의 산물입니다(..)
    이거 알아내는데 나이 먹었다라고 쓸까 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쓰는걸 보면 아직도 헛먹은거 같기도 하고 혼란스럽네요(?)

  • 22.09.02 21:38

    @931117 그러니까요... 물론 국정 교과서 논란보단 낫지만.

    + 그것도 다 돈이니까요. 용두사미같아도 뭐...

    + 아. 저거 올라 오고 나서, 결과를 보기 전까진 고민 했었습니다... 지금은 아니고.

    + 해석의 경우 사람마다 다 다른지라 ㅋㅋ... 이견이 갈릴만한 분야를 꽈서 말해야겠는데... "군인의 의무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만일 국체 보전의 위기가 있다면, 군대는 제일 먼저 나서서 국체를 지켜야만 한다." 자... 이것의 속 뜻을 해석 하면 ㅋㅋㅋ...

    + 많이 쓰면 나아지긴 하는데... 근데, 저도 요즘 계산이 잘 안되긴 합니다... 음... 수학 문제집이라도 구해서 풀어야 하나.

    + 그렇긴 하죠. 저정도 삽질은...

  • 22.09.02 21:38

    @통장 앗(...) 저도 그렇게 바뀔 날이 오려나요? ㅋㅋㅋ...

  • 22.09.02 21:40

    @dear0904 기성세대로 바뀌는 과정이기 때문에 안바뀌는게 좋습니다(..) 이렇게 쓰니 나이 많이 먹은것 같지만 사실 아직 젊으니 지금 제 방식이 잘못된 걸수도 있죠. 더 나이 먹으면 다시 파이터로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대신 회사에서 차장님과 파이팅 중입니다(...)

  • 22.09.02 21:43

    @dear0904 아마 곧있으면 그에 준하는 교과서 문제가 나올걸요?

    + 그렇기야 한데...좀 아쉽달까요...서울역사박물관에 좀더 있다고 하니 가볼까 생각중인.

    + 뭐 근데 우리 얘기였음 운영진이 쪽지 보냈겠죠.

    + ...제가 변경한것보단 온건하네요?독재는 마냥 부패무능하지 않다는 말의 영향을 받아 그런 사람들이 사례로든 나치나 일제를 본받아서...힌트는 여기까지

    + 전 수학과 과학 지지리 못해서,저기 체험전시실에 시험문제 체험하는게 있는데 수학과 과학 다틀림.ㅋㅋㅋ참고로 무즙파동 문제도 있더라고요

    + 개판 벌일거면 안하는게 낫다...

  • 22.09.02 21:51

    @931117 전 수학은 못했지만 과학은 잘했는데. ㅋㅋㅋ

  • 22.09.02 21:52

    @돈이 곧 진리 전 역사쪽에선 반내 원탑(뭐 모의고사에서 한번 세계사 만점 받으며 1등 찍었다는 말은 들었는데).

    문학은 소설,시나리오쪽으로 그나마 나쁘지 않았던 수준으로 기억.

    영어는 듣기는 좀 되는데 문법과 단어에 너무 취약하고 수학,과학은 개판이었던.

  • 22.09.02 21:53

    @통장 (...) 바뀐건 아닌거 같은데요 ㅋㅋㅋ... 사실 근데 직장에서 안 싸우는건 어려우니까...

  • 22.09.02 21:56

    @931117 영어는 저랑 같으셨네요.

  • 22.09.02 21:57

    @돈이 곧 진리 일일이 세부적으로 암기하는건 취약한가 싶기도

    실제로 역사분야도 정확한 년도 암기는 힘드니까

  • 22.09.02 21:57

    @931117 전 걍 빡세게 암기하니 어느정도 되덥니다.

  • 22.09.02 21:57

    @931117 ... 설마요... 아니 하긴 100일동안 5년치 악재를 터트린 곳이라...

    + 하긴 전문 분야 박물관이 제일 좋긴 하죠. "관리만 잘되면" 안되면 진짜... ㅋㅋㅋ...

    + ... 잠깐. 저게 온건하다... 고 읽으신걸 보면... 속내가 안 읽힌것 같습니다. 저 말을 꽈서 했다고 했었죠...

    + 아. 디아스타제... 그 문제는 있을만 하죠 ㅋㅋㅋ...

    + 그건 맞습니다... 솔직히 개판 벌일거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아. 근데...

  • 22.09.02 21:58

    @돈이 곧 진리 부럽네요.전 1시간동안 2,30개 해도 몇개 될까말까하던데

  • 22.09.02 22:03

    @dear0904 얼마나 다이나믹하면 저조차 충분히 가능하다 하겠어요...

    + 봐야죠.그나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엔 87년 대선 홍보물 같은게 있다는걸로 만족을...?

    + 군대만 쓰는게 아니라 쓸수 있는 친위세력(군,경호대,중정)을 총동원 해서 나치와 일제를 본받아 국내외와 집권세력내외 반대 인사들과 의심스러운 사람들과 가족들(윤보선,김수환,김대중,함석헌등 포함.걍 예외없이 몽땅으로 보면 됩니다.김종필은 일단 보류)을 전부...(말 안할까 했지만 어차피 한국 수정되면 안나올 상황이니까)

    https://youtu.be/_sKJxyf8iDI

    + 문제 몇개 넣어놓은 정도인데 무즙 파동 문제가 나와서.ㅋㅋㅋㅋ공동 정답이 된 과정도 대충 나오더군요

    + 윗대가리들은 그걸 몰라요...

  • 22.09.02 22:03

    @931117 아... 저 말은, 한국의 수정 상황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근데 참... 가관이군요. 속뜻... 을 말하자면, 쿠데타의 의사를 심각하게 내포하는 발언입니다. 일단 국체 보전의 위기... 를 군인이 해석하면 ㅋㅋㅋ...

    + 아하... 설명 잘해놨네요.

    + 근데 그건 그럴수밖에 없는것 같기도...

  • 22.09.02 22:06

    @dear0904 군인이 정치에 개입하면 늘 개판이라니까요.독재는 무능부패하지 않다는 말 도저히 동의 못하는 이유.게다가 독재정권은 결국 폭주할수밖에 없는.

    한국 설정 및 수정사유의 99%가 제 정치적 신념과 가치관 적극 반영이니 말 다한.오죽하면 수정 논의 필수사항이라 보며 설정 다 공개중이겠습니까.

    지금 로비 합법화,박정희 여당 종신총재 추대등도...

    + 조각칼 쓰는 방법도 똑같이 나왔습니다.공동 정답 처리 되서.

    + 그렇긴 한데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 22.09.03 14:24

    @931117 김상덕은 정치에 개입하고도 개판이 아니었는데.(퍽)

  • 22.09.03 14:25

    @돈이 곧 진리 그런류의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고작 몇명의 예외 사례로 독재정치는 발전을 거듭해 마냥 부패무능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면서 나치랑 일제도 나름의 강점이 있고 유능한점이 있었다고 해대면 누가 납득을 합니까?

  • 22.09.03 15:47

    @돈이 곧 진리 창작 인물 + 저런거 안 하려고 만들었을 인물... 하고 비교하면 안되죠 ㅋㅋㅋ...

  • 작성자 22.09.03 20:31

    [킹메이커]

    1972년 3월 16일, 청구동 이홍립 서울 자택.

    이홍립:
    “…그래서, 엄 선생… 본론이 뭐요?”

    엄창록:
    “장군님께서리 큰 맘을 먹었시문, 그 수단도 강구해야 한다, 이말이우다. 안그렇습데까?”

    이홍립:
    “선생이 말하는 그 수단이라는 게, 결국에는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불러오는 ‘협잡질’이라는 거요. 그래서 선생께서 하는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하는 거고.”

    엄창록:
    “어채피 세상이란 건 너와 나, 적과 동무의 싸움입네다. 조선과 일본,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그런 거 말입네다.”

    이홍립:
    “이보시오. 난 20년동안 군에 몸담았던 사람이에요. 그런 걸로 잔소리를 하려거든-“

    엄창록:
    “개헌. 개헌으로 기세를 잡소.”

    이홍립:
    “개헌?”

    엄창록:
    “옳습네다.”

    이홍립:
    “엄 선생, 개헌이 어디 쉬운 일이오? 조공, 사민당… 심지어 자유당의 동의를 얻어내기도 쉽지 않을 거요.”

    엄창록:
    “기러니까네, 더 좋은 생각이라는 겁네다. 선거 분위기가 호헌 대 개헌으로 몰아지면 찬성파 쪽 지분을 공민당이 다 먹는 거 아이겠슴둥? 날래 판을 짜셔야지, 이래 허슨하게 계시면 안됩네다.”

  • 작성자 22.09.03 20:37

    윤보선:
    “이봐, 엄 선생! 무슨 무례인가? 이 장군, 고민하실 것 없소. 우리는 우리 길을 가면 되는 거 아니겠소?”

    이홍립: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윤 의장님, 방응모 사장이 오늘내일 한다고 했죠?”

    윤보선:
    “그렇소.”

    이홍립:
    “소성에게 연락해주십시오. 조선일보 타격에 동의한다고. 여기서 나눈 이야기는 의장님, 저, 그리고 여기 있는 엄 선생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윤보선:
    “…알겠소.”

    엄창록:
    “기카믄… 그 전략대로 하시는 겁네까?”

    이홍립:
    “선거까지는 2달밖에 남지 않았소. 빨리들 움직입시다!”

  • 작성자 22.09.03 20:44

    방씨 일가가 부정축재 및 언론대상 불법후원금 착복, 그리고 식민부역행위로 줄줄이 구속되어 조선일보의 경영권이 국유로 넘어간 지 1주일만에, 모든 언론이 개헌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엄창록의 말대로 조공-사민-자유 3당은 호헌파에 가담했으며, 민간 기업가들의 막대한 후원과 배후지원을 몰아받은 공화민주당은 하원 총 300석 중 141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홍립은 마치 ‘통크게 양보한다는 듯’ 자유당에 “현행헌법 틀 내에서의 구조개혁”을 제안했고, 연립내각은 곧바로 수립되었다. 공화민주당 10년 정권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작성자 22.09.03 21:07

    [이행규, 이철수, 그리고 “4인방”]

    조선공산당의 당권이 김철수 초대 위원장을 거쳐 곧바로 이행규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 중후반 조공을 주도하던 것은 오히려 “대구 코뮌파” 내지 “4인방”이라고 불리는 당권파들이었기 때문이다. 4인방이라 함은 이규광, 박창암, 김성곤, 황태성을 일컫는다. 박상희 부위원장이 친동생 박정희의 반역수괴행위에 책임을 지고 위원장 출마를 고사하자, 주요 당직을 독점하다시피 한 이들 4인방의 전횡은 더욱 심해졌다. 당내 균형을 도모하던 이현상이 1967년 지병으로 사망한 뒤 군 내 좌익세력과의 커넥션은 이규광이 독점했고, 박창암은 조직국장으로서 당직자들을 직접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쌍용양회의 사장이자 당의 돈줄을 쥐던 김성곤, 그리고 박상희의 후임 부위원장으로서 당의 좌경화를 부추긴 황태성의 권력 역시 강고했다.

    문제는 이들로 인해 촉발된 당의 좌경화가 거국내각의 존립을 위협하고 조공의 지지기반을 크게 약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립의 위기에 놓인 이행규는 4인방 쪽과도 연줄을 유지하던 측근 김종필을 통해 이들의 방심을 유도하는 한편,

  • 작성자 22.09.03 21:29

    반대쪽 손으로는 이철수의 노농파와 손을 잡았다. 총비서의 권한으로 이철수를 기율국장 자리에 앉힌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민중민족혁명위 사건(소위 ‘NLPDR 사건’)의 처리 문제로 크게 다툰 적이 있었던 만큼 이 결합은 매우 의외였다. (당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둘은 7시간동안 소주 한 궤짝을 비웠다고 전해지며, 대화내용은 기록되지 않는다.)

    기율국장 이철수는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살롱 이스탄불’에 모인 이규광 원내총무, 박창암 조직국장, 김성곤 재정국장, 황태성 부위원장은 조공 당직자들에 의해 연금당했고, 부정행위 심사 이후 긴급처분으로 당직정지 처리가 이루어졌다. 1970년 8월의 이 사건에 대해, ‘살롱 이스탄불’의 전 대표이사였던 정예림 문화예술부 장관은 극구 연관성을 부정했으나, 호사가들은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소문을 뿌려대곤 했다.

    1달 뒤 개최된 제3차 당대회에서 김철수 위원장은 이행규 총비서에 대한 전폭 지지연설을 했고, 그는 압도적인 득표로 차기 위원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철수는 총비서직을 가져가 그의 암살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재건위파-노농파의 동맹이 유지되었다.

  • 작성자 22.09.03 21:29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이규광 계파가 사실상 숙청됨으로써 조공이 가지고 있던 군과의 연관성은 증발에 가깝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1970년 이후 조공의 ‘신중도마르크시즘’ 당론은 혁명주의와 개량주의라는 고전적인 이분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타 정당과의 정책협조를 통한 노동권리 신장을 지향했으므로, 군과의 연계를 끊는 것은 오히려 이후의 행보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만일 4인방과 코뮌파가 조공을 완전히 장악했다면 조선 의회민주주의의 근간을 심각히 훼손했을 것이며, 이는 1982년과 같은 사건을 더 일찍, 더욱 비극적인 형태로 불러왔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판단된다.

    - 김문수, “21세기,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말한다” 발췌.

  • 22.09.04 00:01

    @E.E.샤츠슈나이더 누... 누가 썻다고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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