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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기조(小倉紀蔵),《조선사상전사(朝鮮思想全史)》, 치쿠마서방(筑摩書房), 2017년11월. 17-26쪽.
[17쪽→]
제1장 한국사상사 총론
2. 한국사상사의 특징
혁명인가 브리콜라주인가
일본문화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문화에 대해 브리콜라주(修繕)적인 포섭법을 취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은 마츠오카 세이고(松岡正剛)의 학설인데, 동일한 말을 일본사상사에 대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18쪽→] 반면에 한국의 경우에는 이와는 달리, 외부로부터 들어온 사상이 기존의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혁[改変]을 추진한다는 두드러진 경향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로 사회를 철저하게 변혁시켰고,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으로 사회는 혁명적으로 변화하였다. 현재의 북한에서도 공산주의라는 사상으로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이 행해졌다.
물론 사상의 다양성은 각각의 시대에 보존되어 있었다. 즉 고려시대에는 불교일변도는 아니었고, 조선시대의 사상은 유교만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의 그리스도교적 사상통제와는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의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의 크기는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순수성·하이브리드성·정보·생명·영성
이 책을 서술함에 있어 가능한 한 저자의 독자적인 관점은 자제하려고 했지만, 역시 나(오구라)의 저작인 이상 나의 관점이 개재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지역의 사상사를 쓰는데 있어 독자적인 관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내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염두에 둔 것은 순수성, 하이브리드성, 정보, 생명, 영성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이다(어디까지나 염두에 둔 것이지, 이것들이 주선율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19쪽→]
한국사상사를 개관하면 잘 알 수 있지만, 사상의 순수성을 둘러싼 격렬한 투쟁이 이 지역에서는 종종, 그것도 상당히 오랫동안 전개되었다. 이 점은 일본사상사와의 명확한 차이로, 중국사상사와도 뚜렷이 다른 점이다.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진영은 다른 진영을 불순한 사상소유자라고 비판하고 규탄하고 탄압까지 하기 때문에, 한국의 사상사는 한 마디로 말해 "순수성을 둘러싼 투쟁사"라고 해도 좋다.
여기에서 ‘투쟁’이라는 말은 현실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사상의 내용과 정치적 입장이 일치하고, 사상투쟁은 정치투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유교나 해방 후의 한국과 북한의 이데올로기에서 그런 양상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사상의 순수성은 권력뿐만 아니라 권위와도 결부되어 있다. 가령 조선시대의 유교는 중국의 주자학을 최고권위로 하여 논쟁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독창적인 사상을 개발하는 방향이 아니라 주자학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둘러싼 싸움이 주류가 되었다.
이러한 점을 들어서 병합식민지시대의 다카하시 토오루(高橋亨) 등은 “한국사상의 독창성의 결여, 중국에의 종속성”을 주창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사상의 성격을 단순히 “독창성의 결여”로 환원하는 것으로는 이 지역에서의 사상적 활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을 강하게 염두에 두면, 한국의 사상이 순수성을 추구한 것은[20쪽→] 안전보장상의 의미를 강하게 지녔음을 이해할 수 있다. 중국(그 외의 외국세력)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순수성으로 중국(그 외의 외국세력)보다 우위에 서고자 하는 전력이다.
또한 일본에서 선호되는 ‘일본특수론’의 맹점은 한국의 순수성이라는 완충지대가 없으면, 즉 일본이 만약에 중국과 인접해 있었다고 한다면 과연 일본의 ‘특수성’은 성립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자각적으로 논하고 있다(《일본정신분석》). 나도《창조하는 동아시아 - 문화․문명․니힐리즘》이라는 책에서 중점적으로 이 문제를 논하였다. 한국의 사상적 순수성은 중국 및 일본과의 관계성을 고려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에서의 사상의 순수성 추구의 대항축에는 ‘불순성’이 확고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불순성’은 주자학(지배측)에 대해서 서학이나 양명학이라는 ‘다른 사상체계’이거나, 삼교(유․불․도)합일 내지는 사교(삼교․샤머니즘)합일과 같은 혼연일체형의 ‘하이브리드사상’이기도 하다.
‘하이브리드사상’은 신라의 풍류사상을 마지막으로 표면상으로는 국가의 주류사상은 되지 못하였지만, 실은 음으로 양으로 한국주류사상의 순수지향성을 위협해 왔다.
지배층이 사상의 순수성을 추구할 때 다양한 형태로 사상의 통제가 행해진다.[21쪽→] 외부에서 유입되는 사상을 차단하는 것도 조선에서는 빈번하게 행해졌다. 즉 정보의 통제이다.
조선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정보의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역으로 정보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가령 16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사상․문물이 동아시아에 대량으로 유입되었을 때, 일본에서는 키리스탄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가 나오거나 남만문화(南蠻文化)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한국의 지배층은 정보를 통제하고 사상의 순수성을 지켰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신자는 18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출현하였다. 19세기 후반에 서양근대의 사상․문물이 중국이나 일본에 대량으로 유입되었을 때에도, 한국에서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올바른 유교를 지키고 잘못된 서양사상․문물을 배척하는)운동에 의해 ‘양왜’(洋倭. 야만스런 서양과 일본)의 침입을 차단하려 하였다.
이것들은 사상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실천이다. 현재의 북한이 자신들의 체제와 주체사상을 지키기 위해서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차단이 아니다) 것도 같은 이유이다.
하지만 정보의 차단이나 통제만이 행해져 왔던 것은 물론 아니다. 18세기에 지배층이 서양사상․종교의 유입을 통제․차단했을 때에도 그것에 대항하여 서학을 연구한 학파가 있었다. 주자학이 지배하는 가운데 양명학을 믿은 학파도 있었다. 학자들은 순종적이지 않고 저항과 자주의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비주류이거나 비밀스런 학통이었다.
하지만 마침내 지배층의 “사상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행위가 자국이나 자민족의 안전이나 생존을 보장한다는[22쪽→] 플러스 회로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찾아왔다. 이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정보의 통제․차단에 의해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마이너스 회로로 변한다.
이 때 나오는 것이 생명의 사상이다. 더 이상 공동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순수사상을 버리고, 정보의 유입을 만개[全開]상태에 가깝게 해서 새로운 생명의 유지․진전을 모색한다. 이 국면에 돌입했을 때의 조선은 실로 역동적으로 변모한다.
역사상 고려의 불교에서 조선의 유교로 대전환했을 때나, 조선말기에 새로운 종교적 영성이 만개[全開]상태가 되었을 때나, 대한제국시대~병합식민지시대에 근대사상이 대유입되었을 때나, 현대 한국에서의 민주화 대파동 등에서 그러한 영성적 약동성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가속이 아니라 가속도의 시대이다. ‘영성적 가속도의 시대’라고 해도 좋다. 다만 병합식민지시대의 대변혁은 일본이라는 사악한 지배자를 매개로 하여 행해졌기 때문에, 현재의 한국에서도 북조선에서도 그 사상적․영성적 의미를 전혀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해 보면 한국사상사의 특징적인 변화법칙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국의 안전보장상의 이유나 통치 권력의 안정성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사상의 순수성이 추구되는 경향이 현저하게 강하다. 다만 여기에는 ‘다른 사상체계’나 ‘하이브리드지향’이라는 대항축이 있다.
사상이 순수성 획득을 지향하여 운동하고 있는 시기에는 지극히 약동적인 사회가 실현된다. 이 순수한 사상에 의해 통치가 행해지고 국가나 공동체의 구성원의 생명이 유지되며,[23쪽→] [사회가] 충실한 시기에는 계속해서 순수성이 추구된다. 이 시기에는 정보가 통제된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경계로 순수한 사상의 현실적 효력이 상실되면, 통치 권력의 의지에 의해 정보의 차단 등의 마이너스 회전이 시작되고, 사상의 순수성을 사수하려고 하는 운동이 국가나 공동체의 구성원의 생명을 약화시킨다.
생명의 약화가 극도로 진행되면 어느 시기에 전격적․혁명적으로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거나 발명되거나 하고, 정보의 유입․혼합은 분출되듯이 진행되며, 그와 동시에 사회의 영성적 약동성(가속도)이 단숨에 고조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상에 의한 새로운 생명이 사회를 과감하게 변혁시켜 나간다.
한국사상사에는 약동성과 정태성이 모두 있다. 이 중 어느 하나만을 본질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한국적 영성의 네트워크
한국사상의 순수지향성과 그것에 대한 대항은 운동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영성이라고 부를만한 정신성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순수성을 획득하려고 운동하고 있을 때에도,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도, 순수성이 쇠락해가는 과정에서도, 한국의 사상은 현저한 영성을 띤다. 가령 순수성이 쇠락한다는 것은 그 사상에 의해 영위되는 생명이 약화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국면에서도[24쪽→] 사상은 소멸되지 않고 영적인 힘을 발휘한다. 국가나 공동체의 구성원의 육체적 생명을 초월하는 영성이 사상의 불길처럼 불타오른다.
“모든 사상은 인간의 육체적 생명의 보전을 위하여 기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보면 생명을 영위하지 못하고 지킬 수 없는 사상 따위에 한 치의 가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개개의 육체적 생명을 초월하는 사상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가 ‘일본적 영성’을 말한 것을 참고하여, 이것을 ‘한국적 영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지성으로도 이성으로도 감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현상이 있다. 영성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정신현상이다. 가령 제7장에서도 언급하지만, 19세기에 경주에서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신라의 원효(7세기)의 화쟁(和諍)의 논리인 “불연(不然)․대연(大然)”과 유사한 철학을 피로하였고, 신라의 화랑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측되는 검무(劍舞)를 중시하였다.
또한 하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같다고 보면서 “시천주(侍天主)”를 중시하는 최제우의 사상은 경천(敬天)․외천(畏天)․사천(事天)을 중시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도를 추구한 안동(경주와 마찬가지로 영남=경상도)의 이퇴계(16세기)와 대단히 유사하다. 실제로 최제우의 아버지(최옥, 호는 근암)는 이퇴계의 학문을 닦은 인물이었다.
이것들을 종합하여 생각하면, 경주나 영남지방에는 “하늘과 사람은 같다”고 하는 영적인 세계관이나, 대립하는 것끼리의 회통의 영성이 있고, 그것이 원효나 화랑이나 이퇴계나 최제우라는 형태를 취해서 역사의 표면으로[25쪽→] 때때로 분출되듯이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경주나 영남지방이라는 토지의 령(地靈)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고, 학파나 인척관계 등의 네트워크와도 강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특히 모계의 네트워크는 표면상의 족보=가계도 등의 기록에는 상세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영성적 영향관계라는 의미에서는 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영성네트워크’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고, [이것이] 한국사상사 전체를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지금까지의 사상사 서술에서는 이러한 요소는 전혀 감안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확한 당파적 학통(선생과 제자의 관계) 및 인척관계(부계의 혈통만이 중시된다)를 확인할 수 있는 것만이 기술되기 때문에, “해동의 주자학이라고 불린 조선의 대유학자”인 이퇴계와 “동학(反유교의 민중사상)의 수괴로 조선정부에 처형된” 최제우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리를 중시한 지배층계열”의 이퇴계와 “기를 중시한 민중계열”의 최제우는 완전히 정반대의 입장의 사상가로만 기술되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이성적 분석’은 정말로 올바른가? 그렇지 않다. 리(理)나 기(氣) 등의 개념이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 관계만으로 사상사를 기술해 버리면, 누락되어 버리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게 된다. 그 구멍을 메꾸는 것이 영성적 시점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이러한 “영성적 시점에서 한국사상사를 생각하는” 방법은 과거에도 [26쪽→] 현재에도 거의 행해지고 있지 않다. 내(오구라)가 아는 한 김태창으로 중심으로 한 연구자의 자유로운 모임에서만 이러한 발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재목(양명학 연구), 박맹수(동학연구), 조성환(유교․동학연구) 등이 김태창과 함께 한국사상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재해석하려 하고 있다. 나(오구라)도 이 그룹에 참가하여 커다란 자극을 받으면서 한국사상사를 생각하고 있다.
「시작하며」에서 서술했듯이,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객관적인 서술을 하려 했기 때문에 ‘한국적 영성’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사상사를 서술해 나가고자 한다.
(번역 : 조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