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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7>
가네, 가네, 나는 가.
여 정 건
그의 몸속 깊숙이 자리 잡고 번져가는 암 덩어리는 그의 몸을 점령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했다. 공격은 고통의 신호였다. 살아간다는 것이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며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더 살아가겠다고 버틴다면, 좋아할 놈은 몸속에 자생하고 있는 암 덩어리뿐이었다.
그의 신은 칠 빛 같은 검은 갓에 검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저만치 뒤떨어져 쫓아왔었다.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얼마 전부터 저승사자는 두세 걸음 앞서가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끔찍한 미소를 그에게 보내곤 했다.
그는 애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행복은 그의 욕심이었다.
그의 신은 갓끈과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두세 발 앞서갔다. 힐끔거리며 쳐다보고 또 쳐다보며 잔인한 웃음소리를 보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빨리 따라와~.”
심지어는 잠자리에 들어도 용호의 머리맡에 서서 번쩍이는 눈으로 내려다보고 지키고 있다.
그는 함박눈을 맞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혔다. 두 손으로 아랫배를 받치며 어금니가 으스러지도록 옥 물었다. 꽉 물린 어금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고통을 참는 소리는 귀신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그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은 뒤돌아서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나갔다. 그는 중얼거렸다. 산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두렵다. 이제는 살아갈 용기도 없으며 자아의식마저 상실했다고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는 의사의 말이 빙빙 돌고 있었다. 방광암 말기에다 다른 장기로 전이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방광 적출술 후 아랫배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꼽아 소변 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생명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암을 제거하고 삼십 년을 산다고 해도 수술비는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의사의 사형선고 같은 말에 그의 몸은 자 벌레처럼 등이 굽어졌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는 암의 노래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명을 단축하려는 듯이 촌각을 다투며 가까이서 들려왔다. 고통과 공포 없이 눈을 감을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어졌다. 아니 그 길을 꼭 가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왜 죽음에는 공포가 뒤 따라다닐까? 공포는 생략할 수는 없을까.? 뭇사람들이 말하길 죽음은 삶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살고 죽는 것이 신의 뜻이라면 병들고 건강한 것도 신의 뜻이다. 그는 이 순간부터 그의 신을 저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주사위를 던져 죽기로 했다. 삶의 고통이나 절망을 깨끗하게 청산하기 위한 도피라고 생각했다.
그의 미래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너무 명확하고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비로서 삶을 더 연장한다면 애들의 불행한 삶은 오늘과 내일이 아니라 그들의 인생이 끝나는 순간까지라도 연결될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애들마저 희망이 없는 깊고 긴 터널 속에서 헤매며 살아가게 할 용기는 없었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보이는 것들은 모두가 눈 속에 묻혀 눈 나라가 되었다. 그의 꾸부정한 등에도 눈이 쌓였다.
눈에 묻힌 그의 뺨도 빨갛게 얼었고 입술도 얼었다. 변변치 않은 옷도 눈이 녹으며 젖었다가 뻣뻣하게 얼었다. 거북이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괴물다웠다.
아랫배의 진통은 시각을 다투듯 빨라졌다. 추위도 잊었다. 꽁꽁 언 차도 위 자동차도 멈춘 듯 보였다. 아니, 모든 생명체가 정지한 듯 고요한 가운데 눈은 계속 쏟아졌다. 불빛에 차도는 번들거렸다. 다리 난간을 잡을 힘도 없다.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넘어지며 올라간 골고다 언덕을 오르듯 힘겹게 한 걸음 한걸음 발을 옮겨놓았다.
그는 J 대교 초입에서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엎드린 채로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었다. J 대교 다리난간을 통해 보이는 강 건너 화려한 불빛을 좌표로 찾듯이 하나하나 입으로 중얼거렸다. H 호텔, J 호텔, R 카바레 그리고 모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음식점 간판도 보였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보는 불빛을 보며 중얼중얼했다. 엎드린 등위에는 함박눈이 소복하게 쌓여왔다. 맨손바닥은 감각이 없다. 한동안 엎드려있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서 무릎을 세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다리난간을 잡고 힘을 다해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폈다.
이제 막 허물을 벗은 농 게처럼 양다리는 흐느적거렸다. 겨우 상체를 다리 난간에 걸치고 다리 중간을 향해 옆으로 밀며 발을 옮겼다. 조금이라도 딸들이 있는 쪽으로 가고 싶은 사람의 본능인가보다.
한강은 꽁꽁 얼었지만, 그 밑으로 물은 흘러 서해로 가겠지, 얼음 위에는 하얀 눈이 덮여 폭신하게 보였다.
다리 중간까지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강 건너 가로등 불빛과 휘날리는 눈은 스크린이 되어 그 위에 옥주와 옥희 두 딸이 울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약간 뒤쪽에는 아내 정미자가 냉소가 가득 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끌어 오르는 오열을 토해내며 소리쳤다.
“아빠를 용서해라.”
버티고 서있을 힘이 없어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는 몸속의 액체마저 모두 증발해버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주위에 깔린 음산한 기운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주는 암 덩어리는 그의 몸 안에서 마지막 망나니 칼춤을 추고 있었다. 다리난간 가까운 허공에서는 검은 도포를 너풀거리며 저승사자가 오라고 손짓하며 서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와들와들 떨렸다. 마지막 남은 몸속의 기를 모아 꼬부라진 오금을 펴려고 안간힘을 쓰다 다리위에 쓰러졌다. 일어섰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주저앉았다. 다시금 후들후들 떨리는 무릎을 폈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에 마지막 땀이 흘러내렸다. 이제는 맥없이 무릎을 떨며 겨우 다리난간을 잡았으나 몸을 솟굴 수가 없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그리고 속삭이듯 내신한테 중얼거렸다.
“오! 나의 신이여 마지막 힘을 주셔서.”
그의 신은 그에게 마지막 힘을 주었다. 바들바들 떨며 무릎을 세웠다. 그리고 다리난간에 상체를 걸치고 그의 신에게 고맙다고 예의도 바르게 인사까지 했다.
다리난간에 겨우 가슴을 걸치고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리 초입 둔치 위에는 목화솜처럼 푹신한 눈이 덮여있었다. 다리 중간까지 가면 좋겠지만, 갈 힘은 그에게 없었다. 이곳도 좋다고 응얼거렸다. 다행히 다리 밑에는 바위 조형물이 보였다. 저놈 위로 떨어지면······. 머리통은 산산 조각이 나겠지!
나를 끝까지 이해하고 도와준 친구 용호 그의 마지막 음성이 듣고 싶었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꽁꽁 언 손가락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휴대전화기 뚜껑을 밀어 올릴 수가 없었다. 겨우 오른쪽 손바닥을 이용해 올리고 단축다이얼 1번을 눌러 마지막으로 친구 영철에게 전화했다. 곤한 잠을 깬 용호에게 구시렁거리며 휴대전화에 대고 말했다.
“야 인마 집에 안 가고 어디서 전화질이야. 어서 집에 가.”
“그래 잘 있게, 가네, 나는가, 나는 가네. 마지막으로 자네 목소리나 듣고 싶어서.”
“그래 잘 가.”
그는 마지막으로 신에게 또 한 번 빌었다. 난간을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신은 마지막까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난간에 가슴을 올려놓고 창자를 끌어올리며 큰소리쳤다.
“옥주야! 옥희야! 너희 두고 아빠는 간다. 미안하다.”
그는 휴대전화기를 든 채로 다리난간에 몸을 실었다. 그 순간에도 암이라는 악마는 그에게 고통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눈 깜박할 시간이면 그의 몸에서 암 덩어리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 광적으로 발악했다.
전신의 힘을 모았다. 이승의 냉기가 서린 맑은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시며 난간을 힘겹게 넘어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암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그곳을 지나가던 차에서 이 광경을 본 여성 운전자가 119로 신고했다. 소방구급대원과 경찰은 급하게 출동하여 난간에 도착했다. 용호는 둔치표지 석 위에 부딪혀 두개골이 갈라진 채 피를 흘리며 허리가 굽어 있었다. 용호의 주머니에는 신원을 증명할 만한 어떤 종이쪽도 없었다. 다만, 오른손에 움켜쥔 휴대전화기에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은 영철뿐이었다. 경찰은 영철에게 자살한 사람이 있으니 신원을 확인해달라는 연락을 했다. 영철은 취기도 잠도 확 달아났다. “이놈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네.”
새벽 두 시에 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려왔다. 취중에 집어 든 수화기에서 영철의 떨리는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며 혼자 가기는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주섬주섬 두꺼운 잠바를 걸치고 거실로 나왔다. 방안에서 앙칼진 마누라 목소리가 거실 밖으로 흘러나왔다.
“꼭두새벽에 어디가!”
“영철이 만나러. 무슨 급한 일이 있나 봐.”
방안에서 무어라고 하는 소리가 있었지만 나는 아파트를 나와 S 병원 영안실을 향해 걸어갔다. 아파트에서 이십 분 거리에 있는 병원인데도 빙판길이라 꽤 멀게만 느껴졌다.
영안실 밖에서 몸을 웅크리고 담배를 물고 서 있는 영철이는 나를 보자 구세주라도 만나듯 내게로 달려왔다. 영안실 안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형사 두 사람이었다.
그중에 경상도 말씨에 얼굴이 가무잡잡하며 콧날이 날카롭게 생긴 형사가 말을 걸어왔다.
“어느 분이 영철 되시죠?”
“접니다.”
안치실 담당자는 하얀 유니폼에 하얀 마스크와 흰 장갑을 낀 손에 조그만 기역모양의 열쇠꾸러미를 손에 들고 앞장을 섰다. 형사는 따라오라며 시체 안치실로 앞장을 서서 들어섰다. 영철은 나를 흘끔 쳐다보며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음산한 기운이 온 몸을 감돌았다.
몸에는 소름이 솟았다. 영철 뒤에 바짝 따라붙고 형사 한 사람은 내 뒤를 따라왔다. 시체실 깊숙이 들어갈수록 냉기가 서려 있어 몸이 오싹거렸다. 벽면을 돌아가며 스테인리스 서랍이 이단으로 설치되어있었다.
시체실 중간지점에 스테인리스판 위에 하얀 시트가 덮여있는 앞에서 안내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도 그 사람 옆에 섰다. 코가 날카로운 형사가 손짓으로 시트를 걷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시트를 벗기자 두개골이 쪽박처럼 깨어지고 검붉은 피범벅으로 얼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입은 옷으로 용호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영철은 고개를 돌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 친구가 맞습니다.”
우리는 시체실을 나와 경찰서로 갔다. 간단한 인적사과 망자 박용호에 대해 신원을 알려줬다. 검찰 지휘가 떨어질 때까지는 시신을 움직이면 안 된다는 주위를 듣고 영안실로 돌아왔다. 영철은 딸들에게 알려야 하겠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했다. 애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끔찍했다. 그렇다고 숨기고 넘어가기에는 엄청난 부담이 온다는 사실에 우리 둘은 못 하고, 형사를 시켜서 연락하기로 했다.
우리는 담당 형사에게 전화했다. 우리가 딸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우니 형사가 대신 말해달라고 했다. 형사는 그렇지 않아도 집으로 사람을 보냈다고 했다.
우리는 딸들이 올 때까지 영안실 앞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해장국을 시켜놓고 소주를 마셨다. 나는 영철이의 쪽박처럼 깨져있는 시신이 눈앞에서 얼른거려 맨정신으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술 마시는 대회에 참가한 선수처럼 순식간에 소주 세 병을 마셨다.
영철은 자꾸만 어깨를 들썩거렸다.
“왜 추워, 어깨를 들썩거리게.”
“영철이 머리 없는 몸뚱이가 눈앞에서 얼른거려서.”
“나도 그래, 너무 흉측해.”
나는 이일에서 발을 빼고 싶었다. 영철은 불알친구지만, 용호는 내 친구도 아니다. 영철을 통해서 여러 해 전부터 술자리를 함께했을 뿐이다. 그래서 영철에게 말했다.
“영철아. 나는 용호 일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싶어. 회사도 출근해야 하고.”
“네가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장례가 끝 날 때까지. 어때?”
나는 막 변명을 해서 자리를 떠나려고 할 때 영철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당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막 경찰차에서 내리는 작은 여자아이 둘을 데리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저씨한테 인사해 아빠 친구다.”
예쁘고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였다. 옥주와 옥희라고 했다. 애들은 아버지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한참을 내 얼굴만 쳐다보던 영철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돌아가셨어. 돌아가신 아빠 얼굴을 보면 더 슬퍼진단다. 그러니 볼 생각하지 마라.”
“너희 배고프지. 먼저 밥을 먹자.”
나는 국밥 두 그릇과 소주를 시켰다. 애들은 얌전하게 앉아 눈을 껌벅거리며 우리 얼굴을 쳐다보며 큰애가 말했다.
“아빠가 돌아가셨으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해요.”
큰 애의 물음에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더 큰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용기를 내고 애들에게 물었다.
“너희 친척이 없니?”
“네. 아무도 없어요.”
나는 영철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을 앉아있더니 손을 뻗어 술잔을 들고 홀짝 마시고 상상치도 못할 말을 애들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서 나랑 살자.”
나는 영철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그는 또 눈을 감고 있었다. 저놈 저러다 마누라한테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 밖은 훤하게 먼동이 터오고 길에는 왕래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나는 영철에게 말했다.
“회사출근 때문에 일어나야겠다. 그런데.”
그런데, 영철은 뜻밖의 말을 했다. 그것도 직선적으로,
“그래 미안하지만, 오늘과 내일 결근 좀 해라, 나를 생각해서.”
애들 앞에서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어 알겠다고 말했다. 반쯤 일어났던 몸을 다시 자리에 주저앉혔다. 애들은 국밥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용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한 참 후에 들어왔다.
“옥주야, 옥희야 슬퍼하지 마라, 조금 있으면 아줌마가 오면 아줌마 따라 아저씨 집에 가 있어. 이곳은 저 아저씨하고 있을 테니.”
잠시 후에 용호 처가 식당 문을 들어섰다. 애들은 일어나 인사했다.
용호 처는 애들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려줬다. 그리고 애들을 데리고 나가면서 술은 조금씩만 하라고 했다.
“너도 집에 전화해, 아줌마 심술부리겠다.”
용호 말에 집으로 전화해서 사건을 말하고 오늘 회사 출근은 못 한다고 했다. 마누라는 남의 일에 왜 발 벗고 나서느냐고 투덜거렸다. 식당에서 이러고 있을 수 없으니 장례식장 구석진 자리를 이용하자고 했다. 장례식장 비용 때문에 우리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용호하고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그 친구하고는 알고 지낸 지 오래됐지. 군대에서 알았으니까.”
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여기 있으라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소주와 마른안주를 사 들고 왔다. 종이컵에 소주를 따라서 하나는 나에게 건네주고 마시자고 했다.
영철은 용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용호는 영철이 도움으로 군 생활을 편하게 했다고 했다.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고 다닐 때. 어머니 심부름으로 동대문시장에 갔다가 용호를 만났다. 그는 동대문시장에서 양복지 회사에서 외판하고 있었다.
여름날 서산에 사시는 어머니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말만 듣던 바다 구경도 할 겸해서 동행했다. 그는 서산가는 버스 안에서 차장을 통해 보이는 넓은 들녘을 바라보며 옛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용호는 어린 시절 방파제 입구에 물통을 놓고 우럭과 도다리 회를 쳐서 파는 어머니 곁에 붙어서, 온종일 어선이 들락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돗자리에서 놀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방파제에서 잘못해서 바다에 빠져 죽을 뻔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손님이 없으면 한글을 가르쳐 주시는 어머니 덕에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우치고 셈도 할 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는 어머니 장사에 대해 신경을 안 썼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며 어머니 장사가 창피해 보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고등학교 친구도 없다고 했다.
커가며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어머니께 물으면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아버지도 없고, 친척도 없다. 그러니 더는 묻지 마라.”
그는 더는 알려고 묻지 않았다고 했다. 외롭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꼼꼼하게 써 내려간 어머니 일기를 보고 어머니가 살아온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는 18세에 남자를 만나 사랑했다. 부모님은 결혼을 반대했다. 남자가 연고지도 정확하지 않고, 직업도 없이 낮술이나 마시고 시간을 보내는 놈이라 믿을 만한 구석이 없다고 반대했다. 반대에 부딪히자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다. 동거하면 결혼을 시켜 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동거했지만, 남자는 빈둥거리며 낮술이나 마시며 놀고 지냈다. 생활을 위해 어머니는 공장엘 다녔다. 동거 몇 개월이 지나자 어머니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겁을 먹은 남자는 어머니를 버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남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남 보기 창피하다고 고향에서 멀리 가서 살라며 집에서 쫓아냈다. 영월에서 반대편인 끝자락 서산으로 와서 어시장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다가 내가 태어나자 식당에서 갓난애를 데리고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 성을 따라 박용호라고 했다. 어시장 입구에 함지박을 놓고 생선 몇 마리를 팔아 가하며 아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냈다.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그때 그 자리에서 장사하고 계시다고 했다.
자기가 생겨났기 때문에 어머니의 일생이 망가져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오셨다. 어머니를 위해 자기도 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함께 살려고 어머니를 모시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의 어머니는 방파제 입구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바람에 날아가지 말라고 수건으로 턱에 질끈 매고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 피부는 바닷바람에 새까맣게 끄시러 깊게 파인 주름살은 나이에 비교해 더 들어보였다.
어머니는 얼굴에 밝은 미소 띠며 억센 손으로 아들을 부둥켜안아 맞이했다. 세 개의 붉은 플라스틱 물통 속에는 커다란 우럭, 가오리, 도다리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들 친구가 왔다고 큰놈의 우럭을 잡아 회를 떠서 물통 위에 놓고 소주를 따라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장사를 정리하는 데로 아들과 함께 살겠다고 했다.
몇 달 후에 그의 어머니는 서울로 모셔왔지만, 평생을 일하며 살아온 몸뚱이라 집에서 놀다 보니 몸이 근질거려 놀기도 힘들다며 소일거리로 동네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다. 아들과 함께 살아 온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새벽에 식당에 나가시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보상금과 그가 모아두었던 돈을 합쳐서 양복지 납품 자영을 했다. 외판으로 거래처를 가지고 있는 그의 영업은 몰라보게 커갔다. 동대문 기지시장에서 누구 하면 알 정도의 재력가로 발돋움했다.
어느 날, 그로부터 저녁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약속 시각에 약속한 을지로 유명한 한정식 식당으로 갔다. 그 자리에 그 친구는 여자와 함께 왔다. 결혼할 사람이라고 인사를 시켰다. 그녀는 사무실에서 경리 보던 여자였다.
여자는 고아로서 외삼촌 밑에서 여상을 나왔다. 얼굴도 반반하고,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때 나는 끼가 있어 보이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용호는 내 말을 잘 들었다. 내가 그놈에게 넌지시 말했다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에 와서 생각하니 후해댄다고 했다.
그리고 이 개월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결혼식장에는 하객이라고는 거래처 사람과 친구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결혼 후에도 경리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는 외부 거래처 일을 보고 아내는 자연히 사무실 업무를 도맡아서 했다. 사업은 점점 번창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용호는 딸 둘을 낳고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한옥에서 가정부도 두고 자가용도 굴리며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잉꼬처럼 살았다.
그는 사업에 열을 올리고 가정에는 등한시했다. 앞으로는 맞춤보다 기성복 시대가 온다며, 기성 양복을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공장용지도 물색하러 다녔다. 어쩌다 술이라도 하는 자리에서도 나와 상관없는 그의 사업에 관한 이야기뿐이었다.
큰애가 여섯 살이고 작은애가 세 살 때 아내는 밖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카바레에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영철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히 부부싸움이 자
주 일어났다. 아내의 카바레 출입에 대한 것도 그는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이였다.
나는 그때마다. 사업도 좋지만, 가정에도 신경을 쓰라고 충고를 했다. 내가 충고를 하면 자기 아내는 절대로 바람이 날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의 소문은 얼마 못 가서 사실로 드러났다. 그녀는 남편 몰래 재산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은행어음을 난발했다. 그리고 집과 가게를 저당하고 돈을 챙겨 가출했다. 그 친구는 집과 회사가 압류되었다. 딸 둘을 데리고 겨우 방 한 칸 얻을 돈만 들고 쫓겨났다. 애들 돌보느라 아내를 욕할 틈도 없었다고 했다. 다시 사업할 만한 재력이 없었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벅차 왔다.
그는 용기를 내서 남의 가게에서 외판했다. 그러나 시대는 점점 변해서 양복감 장사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그때부터 그 친구는 밑바닥 생활을 했다. 두 딸을 예쁘게 키우기 위해 막노동판에도 다녔다. 또한, 택시 운전도 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는 힘들게 살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병이 들었다. 잘 참고 견디는 영철이가 지난번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은 나를 버리기로 했나 봐.”
“왜?”
“이제는 버틸 힘이 없어.”
“너답지 않은 말을 하고 있어? 여기까지 잘 참아왔잖아.”
그때야 방광암에 걸렸다는 말을 했다. 몇 개월 전부터 소변에 붉은 피가 섞여 나와서 병원을 찾아갔다, 방광암이라고 했다. 초기에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면 괜찮다고 했지만, 수술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 미루다 보니 이제는 다른 장기까지 전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극심한 통증 때문에 택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통증을 참고 일을 하려고 해도 운전에 장시간 앉아있으면 방광이 눌려 통증이 일어나 앉아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는 통증이 점점 자주 오고 약에 내성이 생겨 진통제를 복용해도 진통이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애들과 한방에서 잠을 잘 때는 앓는 소리를 죽이려고 입에다 물수건을 물고 잔다고 했다. 일을 못하다 보니 애들, 세끼도 못 먹일 때 가슴이 미어져 온다고 했다. 요즈음은 큰애 옥주가 학교가 끝나면 편의점에서 자정까지 아르바이트하고, 작은놈 옥주는 학교에서 주는 급식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고 밤이면 배가 고파 잠이 안 온다면서 물이라도 배불리 먹어야겠다고 할 때는 집 나간 아내가 죽이도록 밉다고 했다.
내 마누라는 어린애들이 불쌍하다고 가끔 쌀과 밑반찬도 만들어다 주고 빨래도 해다 주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가 없었다.
지난달 초에는 생각 끝에 결혼 초에 영철과 가보았던 기억을 더듬어서 아내와 함께 그의 처삼촌 집을 찾아갔었다. 처삼촌은 찾아온 용건이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박용호 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요.”
나는 그 늙으니 얼굴을 주먹으로 줴박고 싶었지만, 내 표정을 본 아내는 내 넓적다리를 꾹 찌르면서 말했어. 애들 엄마가 박영철 재산을 가지고 도망갔기 때문에 십 년 동안 고생을 하며 살다가 방광암에 걸려있어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하고 있다. 그러니 애들을 봐서 생활비를 조금 도와주십사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 노인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찾아오지 마시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부부는 멀쑥하게 서 있다가, “쌍놈의 집안이군.” 한마디를 던지고 나왔다.
어제 낮에 그는 술이 마시고 싶은데 수중에 십 원짜리 하나 없다고 했었다. 아프다는 놈이 무슨 술이냐고 한마디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아 오라고 했다. 오후 다섯 시가 넘어서 아파트 앞에서 전화했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자기 몸에서 송장 썩는 냄새가 난다며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주섬주섬 옷을 입는 것을 본 마누라는 많은 눈이 내리는데, 나가지 말고 집에서 술 마시면 안주를 맛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대꾸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아파트 모퉁이에 웅크리고 서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의 얼굴빛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버린 노란 풍선이 햇빛에 탈색된 누리끼리한 색이며 푸석푸석 해 보였다. 용호의 수염은 언제 깎았는지 덥수룩해 있다. 눈동자는 황달 걸린 사람처럼 누런빛을 띠고 실핏줄이 솟아올라 있었다. 숨을 가쁘게 쉴 때마다 콧김은 뿌옇게 뿜어 나왔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말대로 몸에서는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악수하자고 내민 손은 알뜰하게 발라먹은 닭발처럼 앙상하고 굵은 핏줄은 탄력이 없이 손 뼛골 사이에 가라앉아 있었다.
“나오라고 해서 미안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무엇이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그저 얼굴이나 보려고 했다며 고개를 숙이고 눈이 묻은 발을 올려다 내렸다하며 힘없이 눈을 털고 있었다. 아파트 건너 따끈한 동태찌개 집으로 가자며 발을 옮겼다. 그의 발걸음은 사형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발바닥으로 밀어 몸을 옮기며 몸 전체를 나에게 맡기고 있었다.
“찌개에 밥을 먹지 그래?”
“아니, 소주나 마실래.”
그는 소주 한 잔을 여러 번 나누어 마시고, 화장실을 가겠다고 식탁을 잡고 일어섰다. 내가 부축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는 앙상한 손을 흔들며 사양했다.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식탁과 벽에 손을 짚고 의지해 뒷문으로 사라졌다. 한참 후에 주춤거리며 돌아와 의자에 앉아 머리를 극적 거리며 말했다.
“자네에게 신세를 진 것, 이승에서는 못 갚고 저승에서나 갚을 게.”
“뭔 신세를 졌다고 그래, 그리고 이승이니 저승이니 그런 말은 하지 마.”
“엊그제도 아주머니가 쌀하고 김치에 밑반찬을 잔뜩 갔다가 주셨어.”
그런 공치사는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라고 했다. 십 분이 멀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기저귀라도 차고 다녀야겠다고 농담을 했지만, 가슴이 아파져 왔다. 저러니 아무 일도 못 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잔만 더 줘.”
“괜찮아!”
“응, 오늘은 좀 취하고 싶어.”
소주로 입안을 추기며 홀짝거리고 있었다. 뜨거운 찌개 국물을 후후 불면서 내 얼굴을 보고 가까스로 미소를 지며 말했다.
“자네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외로움에 정신이 돌았을는지도 몰라.”
“그런 말 그만하고 술 마시며 좋은 생각이나 해.”
그는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살기 싫다며,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할 수 있다고 했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두려워 미칠 것 같다고 했다. 그에게는 살아갈 희망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애들을 생각하면 아비로서 못 할 짓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는 더 나은 방법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줬다.
일곱 시가 다되어서 술집에서 나왔다. 눈이 많이 오며 땅도 미끄러우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택시비를 주니까 슬슬 걸어가겠다며 거절했다. 그러면서 한 번만 친구를 안아보자며 나를 끌어안고서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손을 흔들며 지척거리고 걸어갔다.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어. 몇 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장시간 남의 장례식장 입구 바닥에 앉아있기가 거북스럽기도 했지만, 더는 영철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소리를 쾍 질렀다.
“갈보 잡년 복하사 나서 죽어라.”
영철은 내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야! 그만해 더는 못 듣겠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아.”
“뭐가 공평하지 않아.”
“그놈의 여편네 말이야, 벼락 맞아 죽어야 해.”
세상은 공평한 것 같지만 공평한 것은 하나도 없다. 잘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난 사람도 있고, 부자가 있는가 하면 그 친구처럼 끼니도 때우기 힘든 사람도 있다.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사람도 있다. 이것은 공평한 것이 아니라 지구 안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소주잔을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눈이 쏟아지고 인도에는 눈이 수복하게 쌓였다. 날씨는 매우 추웠다. 몸은 덜덜 떨려왔다. 누가 먼저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해장국집에 들어와 앉아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TV에서 박용호가 J 대교에서 투신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뉴스 내용은 영철이가 경찰에 진술한 내용 그대로였다.
박용호가 어린 딸 둘을 남겨놓고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에 대해 소상하게 소개했다. 뉴스를 보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 우리에게 식당 주인은 주문하라고 했다.
술국에 소주를 시켜놓고 있을 때 영철이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장례식장 사무실로 와달라는 전화였다. 식당 주인에게 다시 오마고 말하고 식당을 나와 장례식장 사무실로 찾아갔다.
장례절차에 대해 의논을 하자는 말이었다. 우리는 문상객도 없으니 식장은 사용을 안 하겠다고 했다. 식장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망자의 시신 보관비를 내야 한다고 했다. 장례는 어떻게 치르겠느냐고 물었다.
사무실 직원은 계산기를 뚜드리며 삼일 시신 보관료와 장의차, 화장 비용까지 적게 잡아도 사백은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우리는 알겠다고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으나 당장 장례비용을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 망막했다. 용호는 나보고 너도 보태라고 하지만, 나는 직접 망자와는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영철과 술자리에서 몇 번 대면한 사이인데, 회사도 결근해가며 밤새우고 있는 나에게 장례비용이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영철이 말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시켜놓은 음식은 차디차게 식었다. 주인장에게 덥혀달라고 말하며 소주를 따랐다. 뒤따라 들어온 영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따라놓은 술잔을 들며 나와 마주 앉았다. 나는 궁리 끝에 장례비용을 경찰에 미루자고 제의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용호는 밑 쪄야 본전이라며 내 말에 찬성을 했다.
용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담당 형사에게 전화했다. 장례비용이 적게 잡아 사백만 원이나 든다는데 어린애들에게 그만한 돈은 없다. 그러니 경찰서에서 화장까지 도와 달라고 했다.
형사 이야기는 자기네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친구들이 알아서 하라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하지, 형사는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는데. 아무 데나 갔다 묻을 수도 없고.”
나는 술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용호에게 귓불을 잡아끌었다. 용호는 귀가 아프다며 얼굴을 찡그리고 내 입 가까이 끌려왔다. 귓속말로 속삭였다.
“짐차를 빌려서 시신을 싣고 가까운 산에다 갔다 묻자, 어때 내 생각이.”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땅이 얼어서 땅을 파기도 쉽지는 않을 거야.”
영철은 경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식당에 온 조간신문에도 박영철의 투신자살이 크게 사진까지 실렸다. 술도 취하고 잠을 못 자서 졸음도 쏟아졌다. 낮에 시신을 지킬 이유도 없으니 검사지휘가 떨어질 때까지 각자 집으로 가자고 영철이 보고 말했다. 그 친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며 식당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오후 여섯 시에 영철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장례식장에 와있다며 나오라고 했다.
마누라는 구시렁구시렁 거며 볼때기가 부풀어 있었다. 화가 날 때면 특유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장례식장 입구에 서서 담배를 세차게 빨고 서 있는 용호는 나를 보더니 긴 담배를 시멘트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껐다.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하루 밤사이에 팍삭 늙어 보였다.
검찰 지휘가 떨어졌다면서 내일 화장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영철이 마누라는 친구를 아무 데나 묻어버리면 벌 받는다며, 화장해서 낙 골당에 모셔야 애들이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튿날 새벽 여섯 시에 화물차에 시신을 실었다. 운전은 영철이가 하고 앞좌석에는 그의 딸이 나란히 앉았다. 영철이 처와 나는 관도 없이 하얀 시트를 덮은 시신 사이에 두고 앉았다. 차는 미끄러운 길을 서서히 움직였다. 고르지 못한 길을 갈 때면 시체는 차 바닥에 부딪혀 위로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며 덜컹거렸다. 영철부인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차는 강변을 돌아 박용호가 몸을 던진 J 대교 위에서 차를 세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다리난간에 섰다. 옥주와 옥희는 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면서 아빠를 불렀다. 우리도 박용호의 넋을 위로하는 묵념을 올렸다. 다시 차는 움직여 화장터를 향해 가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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