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0)
'보라'(behold)로 번역된 '힌네'(hinne)는 듣는 사람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주의를
환기시키고, 지금부터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염두에 두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 '천사'로 번역된 '말르아크'(mallak)는 '전령'(1사무16,19), '주님'(천사)
(민수16,7), '사자'(말라3,1), '하느님의 사자'(코헬5,5) 등의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결국 '천사'란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 전달하도록 부름받은 사명자요,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온전하게 지키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임무를
맡은 거룩한 일꾼이라 하겠다. 본문에서 말하는 '천사'(사자)란 주님의 사자,
곧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여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육화(강생)
하시기 전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기도 한다.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길에서' 라고 번역된 '빳다레크'(badarek)는 '~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뻬'(be)와
'그'라는 뜻의 정관사 '하'(ha)와 더불어 '길' 이라는 뜻의 '떼레크'(derek)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정확한 번역은 '길에서'가 아니고, '그 길에서'(in the way)이다.
즉 일반적인 길에서 항상 구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현재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려가는 험한 광야의 길에서 보호하시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또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바르게 잡아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하느님의 보호하심은 비단 출애굽이후 광야 여정에서만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님 신앙의 바른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도록
안전히 보호하시며, 나거나 들거나 축복이 되는 길로 이끄시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구원과 의로움의 길로 나아가게 하셨다. (시편23,2-6 ; 121,2-8)
'내가 마련한 곳으로'
'내가 마련한(예비한)' 으로 번역된 '하키노티'(hakinothi)는 '곧게 서다',
'존재하다' 는 뜻의 '쿤'(kun)의 사역 능동형으로서, '뽑다'(여호4,4), '세우다'
(2사무5,12), '(일으켜)세우다'(2사무7,12)는 뜻을 지니고 있다.
결국 '내가 마련한 곳' 이란 하느님께서 친히 선정하시고 지명하시어 견고히
세우셨으며,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맡겨 주신 그 장소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본문에서는 이 단어가 완료형으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이미 마련하시는
작업을 완전히 마치셨음을 보여준다. 그 마련한 곳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다.
한편 '이 마련한 곳' 이란 신약의 백성들에게는 궁극적으로 하늘의 가나안
곧 천국을 상징한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광야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실 뿐 아니라 마침내 당신 친히 마련하신 곳, 영원한 생명과 복락의 나라
곧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요한14,2-3)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너희는 조심하고'에 해당하는 '힛샤메르'(hishamer)는 '지키다', '감시하다',
'유의하다','주의를 기울이다'(이사42,20), '준수하다', '지키다'(1열왕11,10)의
뜻을 지닌 '샤마르'(shamar)의 단순 재귀형이다. 본문에서는 '지키다', '돌보다'
(창세2,15 ; 30,31 ; 2사무15,16)라는 뜻보다는 '주의하다', '지켜보다'(욥기13,27),
'기대하다', '지켜보다'(즈카11,11)는 의미이다.
즉 사람이 어떤 대상에 대해 특히 주님께 대하여 주의하거나 더 나아가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이다.(호세4,10)
따라서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로 번역된 '힛샤메르 밉파나이우'
(hishamer mipphanaiu)는 직역하면, '그의 면전에서 조심하다(주의하다)'
(Be aware of him)이다.
그러나 문맥을 고려하여 의역하면, '그분께 경의를 표하라'(Reverence him)이다.
이처럼 주님께 대하여 인간이 가장 먼저 취할 자세는 그분의 영광스러움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라' 로 번역된 '우셰마 빠콜로'(ushema beqollo)는 직역하면
'그의 소리를 듣다' 이다. 여기서 '듣다'에 해당하는 원어 '셰마'(shema)는
'듣다', '경청하다', '유의하다'(창세23,8)는 뜻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들은 바에
대하여 '들어주다', '응답하다'(시편10,17), '듣다', '순종하다'(판관2,20) 는
뜻이 있는 '샤마'(shama)의 2인칭 단순 명령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고, 그것을 전 존재와 온 인격으로 수용하여 순종하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말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전 존재와 온 인격으로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백성된 자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하겠다.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1사무15,22)
'그를 거역하지 마라'
본문 서두에 일반적인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알'(al)이 사용되어, 정중하고
간곡한 금지의 명령이 전달되고 있다. '거역하지' 라고 번역된 '탐메르'(thammer)는
'슬프다'(애가1,4), '가혹하다', '마음이 쓰라리다'(1사무20,6)는 뜻을 지닌 원어
'마라르'(marar)의 사역 능동형이다.
결국 '탐메르'는 '(삶)을 쓰라리게 하다', '슬프게 하다'(룻기1,20)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큰 고통을
안겨드리는 일이요, 근심과 슬픔을 드리는 일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자의 첫번째 되는 조건은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여 철저히 순종하는 것이다.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죄'라고 번역된 '피쉬아켐'(phischiakem)은 '떨어지다', '부수어 버리다',
'돌아서다'는 뜻을 지닌 동사 '페샤'(phesha)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주님 신앙에서의)변절', '(주님 뜻에 대한)반역,반란'(잠언28,2),
'(하느님에게서 돌아서는)죄(범죄)'(시편32,1)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것은 소극적인 실수나 사사로운 잘못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은 철두 철미한 죄악의 행위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편 주님께서는 자신이 보내신 천사(사자)가 이같은 죄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
이라고 했다. 여기서 '용서하다' 에 해당하는 '잇사'(issa)는 '(들어)올리다'(예레4,6),
'맹세하다'(에제20,6), '지고 가다', '옮기다'(이사46,4)는 뜻을 지닌 '나사'(nasa)의
단순 미완료형이다.
따라서 이것은 죄인의 자리에서 옮겨 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실추된 지위를
다시 회복시켜 높여 준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코 이같은 복된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본문은 그 이유가 <하느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는 것이 무슨 뜻인가?
사실 '이름'(셈 ;shem)이란 그의 전 존재와 인격을 대표하고 상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물이나 사람과 구별시켜 주는 외적인 표시가 된다.
즉 하느님의 이름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그가 하느님만이 하시는 일을
위탁받은 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본문에서 그가 맡은 일은 하느님께 불순종한 자들에게 하느님의 의노를
내리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이름이 있는 천사(사자)는 결코 예사로운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결국 그 천사(사자)는 바로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천주성을 가지신 제2위
천주 성자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