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에 대한 새로운 구분
<혹시나 제가 올린 이글을 보고 충고를 주시는 분들께는 미리 감사드리며, 겸손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평생 안티였지만, 반기련에 글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이제 간신히 두달이 되어갑니다.
사회 전반적인 기독교의 폐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고 싶었지만,
손가락 열개에 몸은 하나라서 너무 쓸 말이 많더군요.
기독교의 교리를 비평하지 않은 것은 제가 성경의 전문가가 아닌 것도 이유이지만,
논의할 가치도 없는 성경나부랭이를 놓고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기독교인에서 비기독교인으로 전향하는 사람이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기독교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말이라도 하면,
주는 것 없이 꼴보기싫은 기독교를 한대 패주는 것만큼 기분이 상쾌해지더군요.
무엇보다도, 공격적 테러 안티의 면모를 갖춘 저로서는,
말로나마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은 교회를 욕함으로써
저의 폭력적 반기독교주의를 다스릴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께 안티에 대한 새로운 구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안티 구분의 기준
1. 급진적 안티와 점진적 안티
급진적 안티는 혁명적인 기독교 타파운동을 일으켜,
빠른 시일내에 기독교가 없는 사회를 만들고자하는 안티입니다.
인위적인 제도나 순간적인 여론몰이, 혹은 드물게 폭력적인 테러로
빨리 기독교의 득세를 제어하고 싶어하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급진적인 방법은 현재 수가 월등히 많은 기독교인들의 강한 반발을 얻을 수 있으며,
권력층에 포진된 기독교인들이 합법적으로 안티를 탄압할 수 있는 계기를 줄수도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기독교 안티에 대한 반감을 줄수도 있습니다..
점진적인 안티는 기독교의 교리상 모순이나 기독교인들의 비리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점진적으로 천천히, 사람들이 기독교를 싫어하고 부정하도록 유도하는 안티입니다.
혁명보다는 교육이 주요 수단이 되며,
빠른 변화보다는 더디더라도 완전한 기독교 멸절을 추구하는 안티입니다.
비교적 기독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분들이 많으며, 기독교인들었던 안티들이 상당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두터인 안티층이 형성되도록 만드는 안티들입니다.
하지만, 점진적인 방법은 급진적인 안티들에게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방법입니다.
이미 그 세력이 정치까지 흔들 정도로 성장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그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지요.
또한, 기독교 안티가 사회에 언제나 존재했던 불평분자라는 인식을 줄수도 있습니다.
급진적 안티와 점진적 안티의 가장 큰 차이는
급격한 변화(혁명, revolution)과 점진적 변화(자연변화:진화, evolution)중
어느 것을 추구하느냐 입니다.
2. 외향적 안티와 내향적 안티
외향적 안티는 안티의 세를 과시하여 외부적으로 안티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며,
말보다는 행동으로 반기독교주의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안티들입니다.
전시회와 집회등을 통해서 기독교의 부정비리를 알리고,
사회에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리는 안티들입니다.
뿐만아니라, 아직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아나키스트적인 방법으로
기독교 안티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하는 분들도 존재합니다.
외향적 안티 활동은 광고선전효과와 함께,
기독교의 폐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반기독교활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내향적 안티는 반기독교 정서를 가지고 있되,
외부적인 활동보다는 반기독교 사상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반기독교 사람이라는 것을 공개하지도 않고,
남에게 반기독교 정서를 가지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기독교가 지나쳐서 사회나 문화의 다른 영역에
안좋은 영향을 줄수 있음을 알리고 싶어하며,
교회를 다니면서 안티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뿐만아니라, 소설이나 평론, 예술작품 등의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은근히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내향적 안티라고 볼수 있습니다.
개인의 성격보다는 그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 혹은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자신이 안티일지언정, 안티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활이 반기독교 활동과 일치된다는 것은 알지 못한체,
그 생활을 유지하는 분들도 내향적 안티라고 볼수 있습니다.
외향적 안티와 내향적 안티의 가장 큰 차이는
안티활동을 하면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안티라고 말하는 것과
자신이 안티라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안티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3. 목적을 가진 안티와 목적이 없는 안티
목적성을 가진 안티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목적에 관계없이 비순수 안티라고 말할수 있지만,
그 목적이 합리적이라면, 반기독교 활동에 도움을 주는 사람임엔 분명합니다.
정치, 경제, 종교, 역사 등 반기독교활동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될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너무 강성해서 피해를 입거나 기독교의 입김에 의해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지키고 보존하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반기독교활동 목적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다른 안티들의 반감을 살 수 있으니,
목적의 추구에 적정한 선을 두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비목적성 안티, 혹은 순수 안티로 분류되기도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기독교가 싫어서 안티 활동을 하는 분들입니다.
다른 종교나 이념에는 관심이 없으며, 기독교 제거 자체가 목적이며,
모든 종교가 사회에 필요하지 않다라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티가 된 특별한 계기가 없으며, 반기독교 사상을 독학하여,
반기독교 활동이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안티가 된 분들도 있습니다.
간혹, 비기독교 환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관계로
스스로를 “타고난 안티”라고 칭하는 분들도 비목적성 안티에 해당됩니다.
하지만, 목적성이 결여되어있어서, 일차적인 흥미나 호기심이 충족되면,
활발할 활동을 중지하는 경우가 발생하므로, 나름대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4. 적극적인 안티와 소극적인 안티
적극적인 안티는 말그래도 반기독교 활동에 있어서
적극적인 방법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입니다.
적극적이라 해서 그것이 반드시 불법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반기독교 활동에 있어서, 강한 언어나 동작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바를 강하고 직선적으로 표현하거나,
기독교인들에게 직접 다가가서 그들이 종교를 버릴때까지
강하게 설득하는 것등을 의미합니다.
조직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반기독교 활동에 주체적으로 나서서
계획하고 감독하며 실행하며 앞장서는 안티입니다.
물론, 개중에는 기독교인들이 귀찮게 하거나 그들이 먼저 공격해올때,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라는 자위적 수단(?)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안티분들도 있고,
심지어 그러한 기회를 기다리는 안티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안티활동은 반기독교 정서의 확산에 악영향을 줄수 있으므로,
안티 활동에 상당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소극적인 안티는 자신이 나서서 안티활동에 도움이 되는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다른 적극적인 안티의 행동을 따라하거나, 보조하는 안티들입니다.
소극적이란 의미가 반드시 용기없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안티활동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잘 알지 못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안티들입니다.
소극적 안티분들 중에는 가족이나 친지, 친한 친구들중에 기독교 신자가 있어서
앞으로 나서지는 않으면서 반기독교 활동에 동조하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적극적인 안티가 되기도 하지만,
특정 안티활동에 지쳐서 안티생활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적극적인 안티와 소극적인 안티의 가장 큰 차이는
알아서 안티 활동을 하는 것과 주위에서 권유해야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분류기준이 있겠지만, 머리속에서 정리된 몇가지만 적어보았습니다.
그 어떤 종류의 안티이건 모두 소중한 분들임에는 분명합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안티는, 그 존재만으로도 기독교인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며,
그 수가 아무리 적다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의 견제 대상이 됩니다.
아직 반기련이 기독교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지 않다라고 여기시는 분들은
자신이 어떤 안티에 속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고,
어떤 안티활동이 어울리는지 계획해 보십시오.
한국의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반기련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목사들과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반기련 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을 읽어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목사들이 신도들에게 전달하는 내용들은 모두, 과거 로마시대,
소수였던 예수신봉자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정리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소수의 힘이 얼마나 성장할지 늘 걱정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그 어떤 기독교 단체나 교회도 반기련의 활동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우리 반기련에 행운인지도 모릅니다.
기독교인들이 마이너라고 여겼던 반기독교 세력이 메이저가 되는 그때,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던 수많은 안티들이
기독교의 숨통을 조여놓을 것입니다.
그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반기련이 늘 함께했으면 합니다.
멀리 있어서 반기련의 멋진활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말이 아닌 행동으로 안티활동에 동참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