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은 목포고등학교시절 늘 몸에 품고 다닌 여배우 사진이 있었다. 당시 배우의 사진을 소지하면 안 되는 것이기에 남진은 교사에게 여배우의 사진을 소장한 것이 걸려서 흠썩 맞았다. 그 사진은 여배우 방성자였다.
배우가 된 방성자는 원래 박정희대통령이 졸업한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였다. 서구적 외모에 1939년생인데 키가166cm의 우수한 몸매라 영화계에도 소문이 나서 영화제작자늘이 방성자를 삼고초려해서 교사를 그만두게하고 배우로 데뷔를 시켰다.
1972년1월14일, 새벽두시에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여배우 방성자집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을 보고 심한 공포를 느낀 그녀는 집안에 있던 45구경 권총으로 도둑을 쏘아 도둑이 중상을 당하게 되어 과실치상과 총포법 위반으로 아래 사진처럼 재판정에 서게 된다.
이 방성자 총기사건은 당시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고 사람들의 초유의 관심사가 되어 입방아에 오른다.
그녀는 잠옷을 입고 화장실에 가던 중에 도둑의 위협을 받자 얼른 방으로 들어가 보관한 권총으로 쏘았다고 증언을 하며 정상참작을 변호인을 통해 주장한다.
방성자는 총은 1965년 영화 ‘전쟁과 다리’ 에서 사용했던 소총을 대여업체에 다시 돌려주지 않고 계속 보관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재판이 종료되는 듯 했지만 사건은 검사로 인해 복잡하게 돌아갔다.
재판정에서 검사는 방성자에게 총을 쏘아보라고 하였지만 방성자는 총을 다루지 못하였고 당시 방성자의 매니저가 방성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리한 증언을 약속하고 증언대에 섰는데 예상과 달리 매니저는 미리 약속한 증언을 거부하고 진실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총의 주인은 방성자가 아니고 또 방성자는 총을 결코 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실제 총을 쏜 사람은 그녀와 교제하던 사람 ‘함기준’이라고 폭탄선언을 한다. 함기준은 이것은 모함이며 방성자를 좋아하던 매니저가 함기준과 사귀는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거짓증언을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이 진실을 뒤집을 수가 없었다.
방성자는 4살 연하남 함기준을 보호하기로 하고 방성자와 함기준이 말을 맞추었던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함기준은 재벌2세였다. 그는 군부대의 건빵을 독점으로 납품하던 동림산업(후에 제일제당)의 창업주 함창희회장의 자제로 27살 공군사병이었다.
함기준은 미국 유학생으로 이미 미국에 아들이 둘인 유부남이었고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와서 비행단장을 했던 이양명 공군 준장의 관리사병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 일반사병인 함기준은 군에 있지 않고 유명배우와 이렇게 동거를 하고 있었으니 군과 동림그룹을 비롯한 큰 문제가 생길 것을 예측하고 정당방위로 형이 가볍게 나올 배우 방성자가 독박을 쓰기로 했다.
물을 마시러 거실로 나온 방성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함기준은 그녀의 잠옷을 걸치고 총을 들고 나와 쏜 것이 진실이었다. 결국 이 일로 이양명 준장은 잠시 구속되었다가 예편하게 되었고 함기준은 징역3년 집행유예 2년을 방성자는 징역8개월 집행유예1년을 선고받는 것으로 사건은 종결되었다.
에피소드는 방성자가 살던 전셋집 주인의 아들이 한국일보 기자라 그 기자의 도움으로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은 방성자의 집문을 열었고 잠을 자고 있던 방성자의 침실에 들어가서 이불을 덥고 있는 그녀의 이불을 치우며 질문을 한다.
그녀는 함기준을 죽도록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행동을 기자들의 양심에 따라 추하게 보지 말고 아름답게 보고 써 달라고 말한다. 이 말이 유행하여 당시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나를 아름답게 봐 주세요’ 라고 말하는 유행어로 회자되었다.
최근 SBS TV에 중국시장을 생각하고 제작된 ‘조선구마사’란 드라마가 ‘역사왜곡’과 중국의 조선 동북공정이란 이유로 시청자의 항의로 결국 종영이 되었다. 중국은 고대 조선의 역사와 고구려 고려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지만 그 모든 것이 거대한 중국 문화란 것이 동북공정이다.
그런데 이런 동북공정의 위험만큼 우리 사회의 보수적 역사관을 지닌 사람들 가운데 친일 업적을 내세우며 일제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본다. 오늘 내가 오랜 시간 걸쳐서 조사를 하고 이런 긴 글을 쓰는 것은 모든 사건에는 어떤 의도들이 있고 그 가운데 우리가 알고 지향해야 할 역사의 진실을 의미있게 나누고 싶어서이다.
지금 일부 우파들이 주장하는 것은 조선말기 조선은 무능했고 조선의 왕들과 지도자는 부패했고 또 조선 민중들의 경제적인 부(富)에 기여를 하지 못하고 민중은 가축처럼 더럽고 처참하게 살았기에 필히 조선왕조는 무너져야 하고 그래서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것은 조선역사의 발전이란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식민지시대의 조선인의 삶이 조선역사에서 가장 잘 살았던 시간이고 오늘날 번영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국이 오늘날 이렇게 잘 사는 것은 기업들의 노력이고 이런 기업들이 탄생한 것은 식민지 시대 2700개에 달하는 일본이 만들어준 회사들을 해방이후 美군정의 선정과 이승만정부의 리더십으로 조선인들이 인수를 해서 이렇게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글 처음 언급된 건빵 그룹 동림산업을 비롯해 수많은 적산기업들이 당시 일본 회사의 조선 관리인 들에게 인수되었다.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이 미국에 패방할 때 조선에 있던 일본인이 주인인 회사는 2700개가 맞다. 또 수많은 일본인이 소유한 적산토지와 주택들이 美군정에서 15%는 개인에게 불하가 되었고 85%는 이승만정부로 넘어갔다.
해방이후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과 당시 남한인 80%가 적산기업과 재산이 친일파행위를 한 일본 앞잡이인 조선인 개인들로 넘어가는 것은 훗날 일본에 종속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것을 막기 위해 이런 재산들을 국유화 민중화하자고 주장하는 사회주의를 선호한 것이 美군정 통계에 나온다.
구체적으로 언급을 하면 ‘쇼와 기린맥주’가 조선 관리인이었던 박두병에게 넘겨져 지금의 두산그룹이 되었고 ‘조선유지’가 조선 관리인 김종희에게 넘어가 한화그룹이 되었고 ‘선경직물’이 조선 관리인 최종건에게 인수돼 SK그룹이 되었고 '나가오카제과’ 는 조선 관리인 박병규에게 넘어가 해태가 되었다
일본경영주의 노선과 자본에 의지했던 조선인 관리인이란 말이 글에 반복되어서 이 글에서는 조선 관리인이란 말을 이후에는 생략하겠다. ‘오노다 시멘트’는 이양구로 넘어가 동양시멘트가 되었고 ’미쓰코시백화점‘는 이병철에게 넘겨져서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고 ‘코레카와제철소’는 장경호에게 넘어가 동국제강이 되었다.
‘조선생명’은 삼성화재가 되었고 ‘토요쿠니제과’는 동양제과가 되었고 ‘경기직물’은 김성곤으로 넘어가 쌍용그룹이 되었고 ‘조선무선’은 김용주에게 넘어가 대한해운이 되었다.
‘아사노시멘트’가 김인득에 넘어가 벽산 그룹이 되었고 ‘경성전기’는 한국전력이 되었고 ‘조선주택’은 한국주택공사가 되었고 ‘조선중공업’은 한진중공업 으로 ‘조선미곡창고’는 대한 통운이 되고 ‘조선화재’는 메리치화재보험이 되었다.
또 ‘쥬가이제약’은 중외제약이 되었고 기타 LG 대상 효성 신동아 현대 등이 직 간접적으로 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기업을 한국관리인들이 인수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돈과 기술이 일본을 의지할 밖에 없었고 또 이런 일본인 회사를 조선인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정경유착으로 온 부패와 더티한 관행이 경제에 있었다.
요정, 정경야합의 꿀단지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한 기업들은 다 사라지고 친일 세력들이 기업을 다 차지하게 되었다. 동림산업의 함창희는 백낙동 설경동과 함께 이승만독재를 지탱하는 경제 지원자였다. 함창희는 S요정을 즐겨 다녔는데 거기서 이경순이란 기생을 만나 후처로 삼고 아들도 낳는다. 이후 돈을 받고 나온 그녀는 5.16쿠데타 이후 YS를 소개받고 그와 오랜 기간 동거를 하는데 그 때 1962년생 가네꼬 가오리란 이름의 YS의 딸을 낳았다고 이경순은 주장한다.
YS와 한 때는 무척 가까웠던 이경순이 YS가 정치한량에 불과하고 거기다가 야당정치인이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고 YS와 헤어지고 그를 멀리한다. 그리고 그녀는 일본에서 윤달용 민단 단장과 결혼을 하며 살다고 윤단장이 죽고 나서 미국으로 가서 살다고 생활이 어려워진다.
그런데 그녀는 YS가 예상외로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되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YS에게 집요하게 접근하여 따라 다니며 돈을 요구하고 만약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회고록을 쓰겠다고 협박을 한다.
YS는 대통령시절 13억을, 대통령 이후는 10억을 그녀에게 주지만 그녀는 사치와 낭비, 사업실패로 돈을 다 날리고 다시 돈을 달라고 요구하자 이것을 거부하는 YS에게 강금실 변호사를 통해서 자신의 딸 가오리와 YS의 친자 확인소송을 제기한다.
함창희의 후처였던 이경순과 함창희의 아들 함기준 동거녀였던 배우 방성자, 한 여인은 돈에 대한 집착으로 한 여인은 사랑이란 집착으로 세상을 어지럽힌 사건 속에서 역사의 복잡한 흑 서사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