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증언>
여호수아경 6.1-27
여리고성 차지
1. 여호수아가 여리고로 접근했을 때 손에 칼을 빼 든 사람이 서 있었다(수 5.13-15). 여호수아가 그의 신분을 확인하자 그는 ‘주의 군대 장관’ 곧 사령관이라고 자신을 밝혔다. 그리고, 시나이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는 여호수아에게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였다. 이 이야기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2. 이것은 여호수아가 영안(靈眼)으로 본 것이 분명하다. 여호수아는 여리고를 차지하기 위하여 가던 길이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의 배경은 전쟁이다. ‘주의 군대장관’이 나타났다는 것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와 같은 내용과 관해서 우리는 순정진리에서 다음과 기록들을 읽을 수 있다. “고대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전쟁으로 표현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주의 전쟁’(또는 ‘여호와의 전쟁’)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교회의 싸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싸움 외에 다름 아니었는데, 곧 그들의 시험이었고, 그들 자신 속에 있는 악들과 벌이는 싸움과 전쟁 외에 다름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악들을 자극하고, 그래서 교회와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파괴하려는 악마적인 떼거리들과 벌이는 싸움과 전쟁이었다”(AC 1659). “사람이 시험의 투쟁 가운데 있을 적에 주님 홀로 악마의 세력과 싸워 승리하신다. 이것은 사람한테는 나타나지 않는다. 악령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허용 없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고, 천사들도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사소한 것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싸움을 지탱하고 또 승리하는 이는 주님뿐이시다”(AC 1668). 이런 이유로 주님은 용사(勇士)로 일컬어진 것이라고 한다(출 15.3, 사 42.13).
3. 주님의 군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한 것에 관해서는 또 이렇게 설명된다. “신은 지극히 자연적인 것을, 그러므로 육적인 것을 뜻한다. 신의 의미는 주제에 따른다. 선한 것을 서술할 적에 그것은 선한 의미를 취하고, 악한 것을 서술할 적에 그것은 악한 의미를 취한다”(AC 1748). 주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적에 모세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으라고 명령되었다. 군사령관도 여호수아에게 똑같이 명령한다. 신을 벗는 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신을 벗도록 명령된 이유는 신은 벗어버려야 하는 지극히 자연적이고 육적인 것을 표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를 내보내시면서 하셨던 ‘영접하지도 말을 듣지도 않으면 말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마 10.14)는 당부도 비슷한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발의 먼지를 떨라는 분부는 신발이 땅에 가장 밀접한 부분인 까닭에 악과 거짓으로 인한 더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또 사소하고 아주 가치없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까닭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육적인 것은 사람한테 있는 것 가운데서 제일 가치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신발끈을 풀 자격조차 없다고 겸손을 나타낸 것이다.
4.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가장 첫 단계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렸다. 그 교훈은 무엇인가? 더 나가기에 앞서서 말씀에 나타나는 ‘여리고’의 위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수경에는 모세가 가나안을 향해서 영도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요르단강에 이르러 ‘여리고 맞은편’에 진을 치도록 했다고 진술한다(민 22.1).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 많은 일들이 전개된다. 이스라엘 자손을 두려워한 발락은 발람을 불러 저주를 하도록 사주했지만 그는 오히려 정반대로 축복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또 인구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모세는 역사를 회고하며 법을 다시 선포하였다. 그 뒤에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게 된 것이다. 많은 일들이 요르단강 도강 전에 이루어졌는데, 그곳의 공간적 장소가 바로 ‘여리고성 맞은편’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여리고성’과 ‘그 맞은편’에 대한 강한 대비가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깊은 숙고와 함께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자면 여리고성으로 전진하기에 앞서서 거쳐야 할 많은 단계들 또는 상태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말씀에서는 민수경 22장부터 이스라엘 자손이 요르단강을 건너는 여호수아경 3장 이전까지 진술된 것이다. 그만큼 지난한 과정을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 했다는 말이다.
5. 이제 여리고성의 내적 교훈을 보자. 여리고성은 영적으로 선과 진리를 알도록 가르치는 일(선과 진리의 지식에 대한 교훈/교의)을 뜻하는데, 그것이 사람을 교회로 안내하는 것이다. 여리고가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 성이 요르단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읍이고, 요르단강은 교회로 인도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여리고가 선과 진리의 지식에 대한 교훈을 뜻하기 때문에 또 생활의 선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 까닭은 사람이 생활의 선함 속에 있지 아니하고는 교리의 진리들을 지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AE 700).
4. 그런데 지금 여리고성은 무너져야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공격하던 당시에 그 성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민족의 수중에 있었다. 이런 경우에 그것이 지니는 뜻은 반대가 된다. 곧, 여리고는 진리와 선의 모독을 뜻하는 것이다. 이때 성 자체는 거짓과 악의 교리를 뜻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진리들과 선들을 왜곡하고 모독한 것이다. 또 성벽은 그 교리를 방어하는 악에 속한 거짓들을 의미하고, 그 주민들은 모독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모독이란 모두 진리와 선을 시인(是認)한 다음에 갖게 되는 지옥적인 사랑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성은 불타고 주민들은 저주를 받고 그 성벽은 무너져내려야 하는 것이다. 불은 지옥적인 사랑을, 저주는 완전히 더럽혀짐을, 성벽이 무너져내림은 다양한 악과 거짓에 노출됨을 뜻하는 것이다(AE 700).
5. 여호수아는 법궤 앞에서 뿔나팔을 부는 일곱 제사장을 앞세우고 그 뒤에 백성들이 따르며 엿새 동안 성을 일곱 번씩 돌았고, 일곱째 날은 함께 소리를 지렀다. 여리고 성은 소리에 무너진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은 검스런(divinus) 선에서 기인한 검스런적 진리의 선포(宣布)를 의미한다. 백성들이 지른 고함과 함성은 그에 대한 ‘아멘’과 확인을 의미한다. 성을 에워싼 것은 거짓과 악에 대한 검사를 의미는데, 그것들은 주님한테서 기인하는 검스런 진리의 입류로 흩어지게 된다. 이 입류는 법궤를 멘 것으로 의미되는 것이다. 앞 선 제사장이 일곱이고, 칠일 동안 성을 에워쌌으며, 일곱째 날에는 일곱 차례 에워쌌는데, 일곱은 거룩함을 뜻하기 때문에 검스런 진리의 거룩한 선포를 의미하는 것이다(AE 700).
6. 금은동철로 만든 그릇은 모두 주의 집 금고에 넣도록 명령되었다. 이 기물들은 영적이거나 자연적인 선과 진리에 대한 지식들을 의미하데, 모독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지식들은 두려운 거짓들과 악들로 변하게 된다. 그것들이 비록 악한 것에 적용되었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지식으로 존속하는 까닭에, 선한 것에 적용될 적에는 선한 이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다. 주의 집 금고에 넣는 일은 이런 쓰임을 가리킨다(AE 700).
7. 여리고성의 붕괴는 재건에 대한 저주가 수반된다. ‘성의 기초를 놓는 자는 맏아들을 잃고 성문을 다는 자는 막내아들을 잃을 것이다.’ 이것은 검스런 진리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독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 저주는 아합 시대에 히엘이라는 사람에게 적용된다(왕상 16.34). 이 성의 재건에 대한 말씀은 역사적으로 헤아리면 문자 그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여리고에는 오아시스가 있어서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고학에서는 주전 9600년 이래 사람이 왕래한 것으로 밝힌다. 신명경(34.3)은 여리고를 ‘종려나무의 도시’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오아시스로서 물이 있어서 사람이 모여들었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리고성에 대한 고고학적 진술들은 그것이 재건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구약 시대의 여리고는 지금의 요르단강 사해 입구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이고, 현대의 여리고인 에르-리하 계곡의 북서쪽 2km, 그리고 예루살렘 동북동쪽으로 27km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의 텔-에스-술탄 둔덕이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여리고는 현대의 에르-리하 서쪽 2km, 구약 시대의 여리고 남쪽에 위치한 툴룰 아부 엘-알라이크 둔덕이다. 말하자면 여리고는 여러 곳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리고성은 여호수아 시대 이후에 재건된 적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