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부지역 모로코 여행기
언 제 : 2017.04.14. 날씨 : 4월부터 건기라서 계속하여 맑음.
어디로 : 모로코 카사블랑카~모하마드 5세광장~핫산모스므 회교광장.
누구랑 : 유성관광 페키지여행자 20명
아직도 유럽의 중간에 낑긴나라 모나코와 모로코가 헷갈립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최 북부지역의 지중해대서양과 접해있는 곳이고,
비실이 기억엔 카사블랑카만 떠 오르는 곳,
비실이야 하느님, 천주님, 부처님 가리지 않고보니 회교면 어떻고, 이슬람이면 어떨라구요.
1468년 파괴된 토착민 베르베르족의 마을에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새 도시를 건설하고 ‘하얀 집’이라는 뜻의 카사블랑카로 명명했다.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18세기말 재건되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상인들이 정착했으며,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보다 많아지면서 메종블랑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1907년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했으며, 1912~56년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연합군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 제일의 휴양지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12세기에 지금의 카사블랑카 자리에 안파로 불린 베르베르족의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이 그리스도교국의 배들을 습격하여 약탈하는 해적의 기지가 되자
1468년 포르투갈인들이 이 마을을 파괴했다.
1515년 포르투갈인들이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카사블랑카('하얀 집'이라는 뜻)로 명명했다.
이 도시는 1755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버려졌지만,
알라위의 술탄 시디 무하마드 이븐 아브드 알라가 18세기말에 도시를 재건했다.
이 도시를 카사블랑카로 부른 스페인의 상인들과 그밖의 유럽 상인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프랑스인이 다른 유럽인 정착자들보다 수적으로 능가하면서
메종블랑슈(프랑스어로 '하얀 집'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카사블랑카 못지 않게 널리 알려졌다.
카사블랑카는 1907년 프랑스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1912~56년 프랑스의 보호령이었을 때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도시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이던
1943년에는 이곳에서 영국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으며,
1961년 모로코의 국왕 무하마드 5세가 주재한 카사블랑카 회의에서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카사블랑카 그룹이 창설되었다.
인공항구인 카사블랑카는 방파제에 의해 파도로부터 보호되며, 모로코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취급한다.
유럽선박들의 기항지이기도 한 이 항구로 통하는 한살리 대로(大路)에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내륙에는 본래의 아랍인 도시인 구시가지가 있다.
지금도 여러 곳에 누벽이 둘려 있는 아랍인 구역에는 좁은 골목길에 흰 도료를 칠한 벽돌집과
석조 가옥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그 성벽 밖으로 반원형을 그리고 있는 시가지가 프랑스인들이 세운 도시구역이다.
무하마드 5세 광장에서부터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 가로들과 항만 양쪽의 해안에 이르는 순환도로들이
서로 교차되어 있다.
아랍인 구역 입구 근처에 있는 무하마드 5세 광장과 국제연합(UN) 광장은 이 도시의 상업 중심지와
행정중심지들로서 은행과 호텔 및 현대적인 대형 상점들이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랍 연맹(Arab League) 공원이 내려다보이는 흰색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다.
공원 서쪽의 해안에는 정원과 별장들이 늘어서 있는 안파와 같은 주택지역이 있다.
가난한 이슬람교도들은 시 외곽의 판자촌에서
살고 있다. 버스가 주된 대중 교통수단이며, 다른 주요도시들과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알제리와 튀니지로 이어지는 철도도 있다.
남서쪽에 있는 카사블랑카-안파 공항과 시의 동쪽에 있는 카사블랑카-누아쇠르 공항에서는
국제항공편이 제공된다.
카사블랑카는 특히 항구로 성장하면서 급속한 상업 발전을 이루어 모로코의 경제수도라는 위치를 굳혔다.
모로코의 은행거래와 공업생산의 절반 이상이 카사블랑카에서 이루어진다.
카사블랑카의 공산품으로는 섬유제품·전자제품·가죽세공품·통조림 등이 있고,
맥주와 증류주, 청량음료도 생산된다. 대륙붕이 상당히 넓어 좋은 어장을 이루는 해안
수역에서는 어업이 중요한 산업이다.
혀가자미·노랑촉수·가자미류·바다장어·게·새우 등이 주요어획물이다.
카사블랑카에는 각급의 교육을 담당하는 아랍인 학교와 프랑스인 학교가 있다.
또한 괴테 인스티튜트·시립미술대학·시립도서관·선사시대연구협회·어업 연구소·원예협회 등
다양한 문화기관과 공공시설들이 있다.
모로코 제일의 휴양 중심지로서 수많은 해수욕장과 공원, 아름다운 해안 산책로가 있다.
카사블랑카 – 다음백과, Daum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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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중 도로옆의 올리밭에 100년에 핀다는 용설란의 꽃대가 이 동네엔 천지삐까리?
도로가의 휴게실인데, 이런 곳마다 왜 쉬어가는지?
유료화장실을 피해서 무료이용이 가능하고,
운전기사가 2시간이상 운전하면 엄벌에 처한답니다. 블렉박스로 확인한다네요.
가끔씩 지나가는 자전거와 차들이 한적하답니다.
시가지 분수와 공기가 맑아서 그만이죠
밀밭과 보리밭이 이어지는데 부럽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국토의 70%가 산이고보니 넓은 평야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핫산 모르크 사원이 나타납니다
핫산 모스크사원
장모님 폼한번 잡았는데
입구옆 통문에서
사원의 숙소인지?
사원주변이 온통 이렇구요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이 한가롭죠.
기냥 둘러만 보고 갑니다. 원래 페키자여행이란 것이 어렇겠죠
사원앞 주변입니다
사원광장에서 잠시 쉬어가고
인증샷도 한장
비실이도 인증샷
사원주변인데 한가롭죠
마을에 들어섰는데
광장에는 비둘기천국
ㅎ
시가지 식당으로 이동중
모로코시내의 가로수가 행운목이라네요
핫산탑, 모하마드 5세의 무덤이라네요.
현 모로코국왕의 부친 핫산2세가 함께 안치된 무덤이랍니다.
입장대기중
사원앞의 도로에서 장모님.
이 핫산사원을 신축하던 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현재까지 이 꼬라지로 보존하고 있답디다.
정 사각형으로 44m의 넓이에 300여개의 기둥으로 완공되면 아프리카 최대의 사원이 되지 않았을까
모두들 그림그리기에 바쁘고
왕의 무덤내부입니다,
무덤 천장의 조각품
왕의 무덤
무덤입구의 초병
비실이도 초병이 되어 봤는디
일행 모두가 한컷
여행중엔 뭐니뭐니해도 그림이 최 우선
무덤주변의 도로
주변벽회의 조각품이 섬세하여 감탄
비실이부부도 한컷
역시 여행은 그림이여
함께하는 여성파워들
메가폰 김재웅부부
배종효부부
비실이의 장모님
공사중 사망한 왕의 흔적
벽도 허물어져 가는데 보존중
주변의 도로건너 주택가
보초근무자들의 행진으로 경계근무중
왕의 무덤옆 공사 중단된 사원의 보초근무자들
메가폰이 감이 보초를
감동적이랄까, 뭐랄까?
비실이도 이런기념은 있어야제
도시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