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진도에서 태어나 주로 목포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보여주었던 남농은 이른바 남종화풍의 산실이었던 호남화단의 중심에 위치 했던작가였다. 그는 조선왕조 말엽 유명한 남종 화가였던 소치 허유를 할아버지로 하고 그의 아들인 미산 허형을 아버지로 삼대 째 화맥을 이어온 전통 문인화 분야의 대표적 작가 중의 한사람이다.
은은한 미감의 아취가 남농 그림의 특징
아버지 미산으로부터의 기초적인 수학과 정통 중국의 남종화 작품들을 통해 동양화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던 작가는 고대 중국의 화론서등의 필법론을 바탕으로 스스로 익히고 공부하였으며 계속 쭈그리고 그림을 그리다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될 정도의 피나는 수련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독특한 화풍을 정립 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필법과 색채, 구도(포치)의 세 부문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남농의 필법은 소치의 자유분방한 필세에 비하여 차분히 가라앉고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화면의 좌우로 움직이는 필세나 대각으로 가로 지르는 나무의 묘사 기법 가운데서는 소치의 호방한 필치를 느낄 수 있는 전통적 필의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화면 속에서 볼 수 있는 채묵의 특징은 담묵과 담채가 주조를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정취를 자아내고 있는데, 이런 은은한 미감의 아취가 바로 남농 회화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알려져 있듯이 그의 대표적 표현 세계인 소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구도는 사물의 형태를 수평적으로 바라보면서 수직으로 중심을 잡아가는 독특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전통회화의 관념적인 소나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특히 세 그루의 소나무를 화면 가득히 부각시킨 대표적 작품인 [삼송도]에서는 작가의 이러한 수직 수평 구도의 특징이 정확히 나타난다. 작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물의 이미지를 감성적인 면과 아울러 극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과학적인 시각으로 분석해보려는 또 다른 실험적이고 이지적인 시각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가 화면에서 표현하고 있는 소나무는 전통 회화의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소나무의 이미지인 동시에 현실에서의 실물감과 사생적 이미지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대적 감각의 소나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대각선 구도사이에서 느껴지는 여백의 미감을 바탕으로 더욱 살아 숨쉬는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표현대상에 대한 감성적인 시각과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나타냄으로써 전통적인 필의의 새로운 해석과 현대적 감각의 자세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80년대 중반 타계하기까지 후덕한 인품과 격조있는 작품 활동으로 후학들의 진심어린 존경을 받은 남농은 국전 초대작가 및 예술원 회원에 추대 되었으며, 한국 전통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우리 화단의 거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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