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이 전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 덕분이었다. 강진이 고려청자의 주산지였던 것도, 강진이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다는 것도, 강진에 아름다운 절과 문화유산이 많다는 것도 모두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1990년대의 일이었다. 필자도 학생이었던 시절 1994년 외국으로 유학 가는 친구와 함께 강진을 찾은 것은 이 책 덕분이었다.
하지만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감흥이 덜한 편이 많듯이, 직접 찾아가 본 영랑생가나 다산초당, 백련사 같은 강진의 랜드마크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절은 황량하고 무뚝뚝해보였고, 복원한 초가집은 고유성이 사라져있었다.
오히려 책에서 소개한 명소보다 더 인상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은 그날 백련사에서 내려오면서 보았던 봄날의 햇발과 푸른 밀, 붉은 황토였다. 붉은 황토 위에 자라는 푸른 밀의 시각적 대조 속에, 봄날 사방으로 뻗친 햇살과 푸른 하늘은 내 인생 처음으로 느낀 강렬한 봄의 아련함이었고, 강진의 인상이었다.
강진의 봄이 내게 다시 찾아온 것은 광주에서 강진으로 거처를 옮긴 윤정현 시인이 강진에서 보낸 2010년 ‘제1회 백련사 숲 속 음악회’ 초대장을 받아들고 나서였다. 시간은 16년이 지났고 이번에는 아내와 두 딸이 함께했다. 이번에는 젊었을 때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백련사의 동백나무숲이 있었다.
온통 붉디붉은 탐스런 동백꽃송이가 땅에 떨어져 알지 못할 슬픔을 주는 비탈진 숲에는 청중들이 앉아있었고, 그 숲 밑 평평한 곳에서 백련사 앞 강진만을 배경으로 작은 평화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송이처럼 사람들은 발을 모으고 맨땅 위에 앉아서 음악을, 그 시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동백꽃송이는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날 그 숲 속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올해 윤 시인이 또 강진의 봄을 가지고 왔다. 그가 기획한 강진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봄이 오는 소리’(4월27일까지)라는 전시회로 말이다. 이 전시는 시화전 형식을 빌어 ‘강진을 대상으로 한 시들을 가려 뽑아, 강진과 인근에서 살고 있거나 태어난 미술작가들에게 인연을 무기로, 시각적 형상화를 부탁’해서 구성한 지나가버린 시간들에 관한 전시로서 ‘그리움, 저 편’에 관한 강진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품들은 훌륭했다.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그리고 보여줄 수 없는 좋은 전시였다. 말 그대로 이 전시는 강진만의 자생적인 문화의 힘을 보여주었다. 강남의 귀족화랑에서는 모르는 인간과 역사와 땅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 강진과 인연이 있는 시인들과 화가들로 이런 전시를 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윤 시인의 힘일까? 강진의 힘일까?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로 꼽히지만, 현실은 지난해 기준으로 인구 4만명에 전국 재정자립도 244위를 기록한 농어촌지역이다. 윤 시인이 그의 고향 강진으로 돌아가 강진의 문화기획자로 활동한 지 5년. 나는 안다. 그가 얼마나 외로운 환경에서 문화기획을 하고 있음을. 이 전시는 작위적인 봄의 전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봄의 전시라는 것을.
바야흐로 강진은 봄이다. 강진의 붉은 황토와 푸른 밀밭, 사방으로 퍼지는 햇살, 동백나무숲과 더불어 이제 나는 강진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있어 강진을 봄이라 생각할 것이다. 강진이 윤 시인을 품어주는 넉넉한 고장이고, 외지에서 온 예술인들과 방문객들이 강진을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봄을 생각할 때면 강진을 생각하고, 강진을 생각할 때면 봄을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