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사도행전 제 14 강 메시지(아산 UBF)
예루살렘 공회
말씀 / 사도행전 15:1-35
요절 / 사도행전 15:28,29a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세계 선교 역사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해주시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대주의자로 인하여 교회 내 갈등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갈등이 해결되고 구원의 진리가 바로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선교를 이루기 위하여 초대교회의 유대주의를 극복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복음 진리를 굳게 붙들고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내 안의 요소들을 제거하여 생명 역사에 쓰임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 1. 주 예수의 은혜로
1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안디옥 교회에 왔습니다. 그들은 안디옥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하고 모세의 법에 규정된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이방인이 율법 전체를 준수하는 의무를 지닌 개종자의 신분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부정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긴 하였으나 오랜 관습과 전통에 기초하여 이방인이 유대인처럼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을 유대주의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들로 인하여 세계 선교의 중심이 되는 안디옥 교회는 큰 혼란에 빠졌고 분열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 얻는다는 바울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대주의자들 사이에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적극적으로 변호했지만 좀처럼 문제는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켜왔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롭게 된 자가 참 할례자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자신들의 생각이나 판단이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만의 기준으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할례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다루어야 한다고 여기고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직행하지 않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 할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축되지 않고 복음 역사를 위해 힘썼습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 성도들은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소식을 듣고 모두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확신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마다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진심 어린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 교회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 지역에서 일어난 그들의 선교 여정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일어났던 기적적인 사건 및 이방인들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초대 교회 당시 바리새인 중에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 선교 보고는 그곳에 참여한 바리새파 출신 크리스천들에게 이방인 할례 문제를 제기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한 후에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려면 할례도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절에서 7절을 보십시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긴 시간 동안 많은 변론과 많은 토론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굉장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멸시하던 이방인이 구원받으려면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고 개종한 것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유대주의가 세상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변론을 통하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을 택하여 주신 사실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와 그 가정에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 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며 기뻐하였음을 상기시킵니다.
8절을 보십시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베드로는 이방인의 구원이 사람 개인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이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고넬료 사건 전에는 베드로 역시 이방인이 복음을 듣고 주께 돌아오는 것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으로 이방인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도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아시며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성령을 내려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와 율법 없이 복음을 영접한 이방인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당신을 향하고 있는지 그 마음에 믿음이 있는지를 아시고 주권적인 은혜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어 구원하셨는데 할례가 구원에 필요하다는 주장은 잘못되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복음을 영접한 자들에게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똑같이 죄인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해주셨는데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거룩한 것처럼 그들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베드로는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방법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십자가의 복음 외에 양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시험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진리를 알지 못한다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경에 대해 많이 알아도 헌금을 많이 해도 선행을 많이 하고 착하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 앞에서 죄인 된 나를 발견하고 애통해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기초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와 기쁨의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Part 2. 멀리할지니라
1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의 말에 율법과 할례를 주장하던 자들이 잠잠해졌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방 선교 과정에서 행하신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증거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언급하여 이방 선교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오직 은혜로 이방인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온 무리가 바나바와 바울의 말을 경청하였습니다.
13절에서 15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야고보가 최종 결론을 맺습니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연설 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며 이방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합니다. 야고보는 구약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16절에서 18절을 보십시오. 야고보는 아모스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을 것이고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후손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완성하셔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 주님의 이름이 선포되고 이방인들이 주님의 이름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해야 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는 그들을 괴롭게 하는 일입니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아는 야고보는 구원 얻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 다른 것을 덧붙이는 것은 괴롭게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고 자유와 기쁨과 만족을 주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20절에서 21절을 보십시오.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라 하더라”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조건은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제시합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이해하고 가증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안식일마다 모세의 법을 들었고 지키고자 노력하며 성장했습니다. 복음이 우리를 율법에서 자유롭게 하였지만 아직 그것을 놓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우상에 바쳐진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지만 유대인들은 부정한 음식으로 여기고 먹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생활이 문란했고 근친결혼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지만 유대인들은 음행을 금하고 근친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내용 중에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피를 먹는 문제에 대해서 민감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스스럼없이 목매어 죽인 것과 그 피를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는 것을 ‘성숙’이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이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멀리해야 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22절에서 27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교회는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 교회에 편지와 함께 보내기로 했습니다. 유다와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리더이자 선지자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형제들 중 뛰어난 자들을 보내서 안디옥 교회에 친교의 뜻을 전하고 같이 보내는 편지를 통하여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을 알려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회에서 말로 마음에 혼란을 주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식적으로 보낸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자라며 높여주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노력과 공적을 치하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대한 공적인 보증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28절에서 2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 사항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은 성령님께서 내린 결정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과 우리가 결정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하고 결정하기까지 모두 성령님의 주도와 간섭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모든 족속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들어오는데 장애가 되는 유다이즘을 제거하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외에 다른 것을 통하여 구원 받고자 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임을 알려주고자 하셨습니다.
둘째로 성령과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 진리를 확증했습니다. 아무 짐도 지우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 진리가 확고히 서게 되었습니다. 할례와 율법주의라는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기독교 공동체 간에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의 본질이 분명하게 되어서 어떠한 방해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성령과 예루살렘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가 연합되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이 유대인 성도들과 교제하고 연합하기 위하여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전합니다.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덕을 함양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삼가고 감당해야 할 것들입니다.
31절에서 35절을 보십시오. 안디옥 성도들은 그 편지와 위로를 들으며 기뻐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혼란과 위기를 극복하고 기쁨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와 실라는 편지를 전했을 뿐 아니라 여러 말로 형제들을 권면하여 굳게 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힘있게 가르치며 전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구원은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받는 것임을 배웁니다. 우리가 가진 어떤 것도 구원받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건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주십니다.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기쁘고 감사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편지를 받고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구원의 은혜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며 은혜가 주는 생명력으로 주님을 섬기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할례와 율법주의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게 막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념에도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방해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편견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새롭고 진취적이고 비전 넘치는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구원에 대한 갈등 문제를 예루살렘 총회에서 어떻게 해결하였는지를 배웠습니다. 1차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인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구원의 교리는 세계 선교 역사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진리를 믿고 구원의 진리를 캠퍼스에 전파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산 UBF
아산 UB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