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30세, 가이우스 그라쿠스는 33세를 살았다.
모두 살해되었다.
아버지가 집정관을 지내고, 어머니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이니까 양쪽 모두 대단한 귀족집안의 자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편에서 호민관의 직책을 맡아 민중혁명을 주도했다.
귀족 자제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중의 편에 설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플루타르코스는 형인 티베리우스의 경우 철학자들의 친구들의 영향, 어머니 코르넬리아가 아들이 명성을 획득하길 바랬다는 것, 그리고 누만티아 원정을 갈 때 목격한 민초들의 불행한 삶의 목격 등 세 가지 설을 놓고 마지막 부분에 느낌표를 찍었다.
이렇게 보면 그라쿠스 형제의 내면에는 정의와 따뜻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민중을 위해 애쓰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삶은 고달픔 자체였다. 위협과 불안, 긴장의 연속이었다. 민중의 속성은 입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이익되면 좋다고 하고 불이익되면 금방 배신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쿠스 형제는 국가제도가 '가진 자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으며,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 비명에 갔다.
가진 자들은 빼앗긴다는 느낌이 오면 즉각 반격을 한다. 그들은 스스로가 개혁대상이 되었을 때 개혁세력을 능가하는 술수를 쓴다. 그리고 훨씬 더 끈기가 있고 집요하다. 또한 가진 것을 풀어서 세력을 형성한다. 따라서 개혁세력은 언제나 개혁대상에게 불리한 입장에 있다. 그라쿠스 형제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크게 토지개혁과 원로원의 권한을 축소시킨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토지개혁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자는 것인데, 무상 공급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시민병으로 모병하는 로마의 특성상 속주 정복 후에는 포상이 주어져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의 토지를 싼 값에 매입하고 노예들을 시켜 생산물을 거둬들였다. 이렇다보니 가난한 시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런 구조가 가속화되다보니 로마는 언제든지 폭동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으며, 그라쿠스 형제는 이를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원로원 인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라쿠스는 한낱 햇병아리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그라쿠스 형제에게 행한 일은 참혹하고 잔인했다. 때려죽이고 찔러죽였고 시신은 강에 던져버렸다.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금지해 버렸다. 한 가문을 그야말로 끝장내 버린 것이다.
아버지 티베레우스 그라쿠스에서부터 아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그라쿠스에 이르기까지 로마와 원로원은 일정부분 이들의 헌신을 받았는데,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너무나 말이 안되었다.
두 사람의 생애는 비극 그 자체다.
나는 그라쿠스가 위한다고 했던 민중의 존재가 허상은 아닐까고 생각했다. 너무나 이득에 조석변이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민중이다. 과연 그라쿠스 형제는 명성을 위해서 그렇게 젊은 나이에 죽어야만 했을까? 그들을 움직은 어떤 거대한 힘이 있을 것 같다. 편안한 자리를 차고 나간 그들, 그리하여 어머니 코르넬리아에게는 말년의 초연함을 선사한 그들. 사후에야 민중들의 마음에 살아난 그들. 그들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커다란 메시지를 로마사회에 남기고 갔다.
그것은 시민 각자가 획득하고 유지하고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자에게 휘둘려서는 안되고, 권력자에게 휘둘려서도 안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민중을 고달프게 하고 해롭게 한다면 민중을 똘똘뭉쳐 힘으로써 압제자를 끌어내라고 처단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것이 그라쿠스 형제였다.
그라쿠스 형제를 보면 '역사적으로 산다'는 것은 현세적인 영광을 누리는 데 있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보다 미래적이다. 다시 말해 민중이 보다 개화되고 의식이 고양되어야 역사적으로 살아간 인물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된다. 또는 역사적으로 산 인물들이 주장했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모든 역사적 인물들은 선구자들이다.
선구자는 외롭다.
"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