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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좋은 영월지 지면의 한계로 한자의 한글화로 출판되었으나 본 홈에서는 지면의 한계가 없기에 원문과 해역을 병기하고, 아래쪽에는 용어설명을 덧붙였고, 더 깊이있는 내용은 이해를 돕기위해 파일을 첨부합니다.】
김원식-희망영월 2018. 8월 원고-333년 전, 박태보(朴泰輔)의 六臣祠堂記 육신사당기.hwp
333년 전, 박태보(朴泰輔)의 <六臣祠堂記 육신사당기>
김원식 명예기자(문화·지질해설사)
영월장릉 장판옥(藏板屋) 자리에는 숙종 11년(1685년 7월)에 육신사(六臣祠)가 신축·완공되었기에
<영월선비 엄민도와 봉조하 송시열의 만남>으로 지어진<寧越郡六臣祠記 영월군육신사기>는 6월호에 말씀 올렸고,
이어서 박태보(朴泰輔)의 <六臣祠堂記 육신사당기>를 한자의 한글화로 요약하여 전하여 드립니다.
<六臣祠堂記 육신사당기>朴泰輔박태보
可以作可以無作者 가이작가이무작자。세상일 가운데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은
非事之至善者也 비사지지선자야。지극히 훌륭한 일이 아니다.
唯未作也 유미작야。오직 하지 않았을 때
人咸咨嗟太息以爲恨 인함자차태식이위한。사람들 모두가 한숨지으며 탄식하고,
旣作也 기작야。이미 하고 났을 때
人又快焉慊焉如癢者之得爬 인우쾌언겸언여양자지득파。
사람들이 후련하고 흡족하게 여기면서 흡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과 같고
渴者之得飮也 갈자지득음야。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야만
然後爲事之至善者也 연후위사지지선자야。비로소 그 일이 지극히 훌륭한 것이 된다.
泰輔始十齡 태보시십령。나는 열 살 때 처음으로
卽讀六臣傳 즉독육신전。<육신전>을 읽은 뒤,
得其發忠死義始末 득기발충사의시말。충심을 일으켜 의리를 위해 죽은 육신의 시말에 대해 알게 되었다.
當時未甚省事 당시미심성사。당시에는 그다지 분명하게 사리를 분별하지 못했으나,
不知胡然而氣塡臆而淚盈眶也 불지호연이기전억이루영광야。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속 울분이 북받쳐 까닭 없이 눈물을 흘렸다.
後因考外祖魯西尹府君遺文 후인고외조노서윤부군유문。훗날 외조부 윤노서 부군(尹魯西 府君)의 유집(遺集)을 읽어보니
有過寧越謁魯陵詩 유과영월알노릉시。영월을 지나다가 <謁 魯陵노릉을 배알하다>라는 시(詩)가 있었다.
其卒章云 기졸장운。그 시(詩)의 끝부분에서
誰解六臣同一體 수해육신동일체。“그 누가 육신과 상왕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리오!”라 읊조렸는데
盖傷陵下之無六臣祠也 개상릉하지무육신사야。曰 왈。대개 상왕의 능침 아래에 육신의 사당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嗟呼 차호。아아!
以六臣之死生 이육신지사생。육신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終始心於 上王 종시심어 상왕。시종일관 상왕에게 마음을 다하였다.
上王野死而螻蟻無薦 상왕야사이루의무천。상왕께서는 들판에서 삶을 마치시어 개미와 땅강아지를 막을 거적조차 없었다.
則其奔走衛從於焄蒿悽愴之際者 즉기분주위종어훈호처창지제자。
그렇다면 쓸쓸히 제향을 올릴 때 분주히 뛰어다니며 시위(侍衛)하는 일을
非六臣而誰也 비육신이수야。육신이 아니라면 그 누가 하겠는가?
然而祠屋無隣近之設 연이사옥무린근지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당은 인근에 마련되지 않았고,
祭祀乏一體之享 제사핍일체지향。군신을 함께 제사지내지 못했다.
世之小義拘節 세지소의구절。세상에는 하찮은 의리로 절문節文에 얽매인 자들도
皆有尸祝之依 개유시축지의。저마다 시축尸祝이 의지할 곳과
俎豆之薦 조두지천。제기祭器를 진설할 공간이 있는데
而六臣乃作羇鬼餓魂 이육신내작기귀아혼。유독 육신만이 굶주린 채 떠도는 혼령이 되어
恓惶欝抑於錦水之上 亦獨何哉 서황울억어금수지상 역독하재。억울하게 금강錦江가에서 번뇌하는 까닭은 또한 무엇인가?
則又邑然不寧 若病在己 즉우읍연불영 약병재기。이것을 생각하면 마치 내 몸뚱이에 병이 든 것처럼 마음이 울적하고 편치 않다.
天下之惡 一也 천하지악 일야。천하의 악행은 한 가지요,
天下之善 亦一也 천하지선 역일야。천하의 선행도 한 가지다.
其不忠於彼者 기불충어피자。자신의 임금에게 불충한 자를
亦吾之所甚惡也 역오지소심악야。나는 매우 악하게 여기거니와
甚忠於彼者 심충어피자。자신의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 자를
亦吾之所甚善也 역오지소심선야。나는 매우 선하게 여긴다.
是故求殺趙孟者 시고구살조맹자。이 때문에 조맹趙孟을 죽이려고 한 자는
智氏之國士也 지씨지국사야。지백智伯의 뛰어난 선비였고,
數窘漢高者 수군한고자。한고조漢高祖를 자주 곤경에 빠뜨린 자는
項羽之信臣也 항우지신신야。항우項羽의 믿을 만한 신하였다.
易其地平其心而觀之 역기지평기심이관지。입장을 바꿔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해 본다면
寧有彼我逆順之殊哉 영유피아역순지수재。어찌 피차간에 선과 악의 차이가 존재하겠는가!
敢問今時君世主將擇士而臣之乎 감문금시군세주장택사이신지호。
감히 묻겠노라. 만약 지금 세상의 임금이 장차 선비를 뽑아 신하로 삼고자 한다면,
得如六臣者 득여육신자。육신과 같은 자를 등용하는 것이
可乎否乎 가호부호。옳은 일인가, 그릇된 일인가?
因有幼主臨朝 인유유주림조。어린 임금이 조정을 맡게 되어
上下相疑 상하상의。상하가 서로 의구심을 품는다면,
則社稷之衛 즉사직지위。사직수호의 책무를
將於六臣而托之乎否乎 장어육신이탁지호부호。육신과 같은 자에게 맡기겠는가, 아니 하겠는가?
至於搢紳之士 지어진신지사。심지어 진신搢紳 선비가
砥名厲行 지명려행。이름과 행실을 닦으며
不忘溝壑 불망구학。시체가 도랑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는
以六臣爲矜式者 이육신위긍식자。육신을 사표로 삼는다면,
將禁而罪之乎 장금이죄지호。장차 그것을 금하며 죄를 주겠는가,
抑勉而進之乎 억면이진지호。아니면 앞으로 나오도록 권면하겠는가?
則六臣之忠之節 즉육신지충지절。그렇다면 육신의 충정과 절의를
又曷可誣哉 우갈가무재。또한 어찌 속일 수 있으리오!
然而二百年來 연이이백년래。2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朝廷之上 조정지상。조정에서는
諱言六臣 휘언육신。육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려하였다.
心實尊悅 심실존열。마음속으로는 진실로 존숭하면서도
而其口喑嗚 이기구암오。그 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이다.
卒未有謦欬於 黈纊之側 졸미유경해어 주광지측。그들은 임금의 귓가에 넌지시 말하여,
得顯奬明 득현장명。드러내어 표창하고
勸以恢國家正大之風 권이회국가정대지풍。분명히 권면함으로써 국가의 정대한 기풍을 넓히고,
伸後學依仰之誠 신후학의앙지성。우러러 앙모(仰慕)하는 후인들의 정성을 펼쳐야 했다.
而俾毅魄之未泯者 이비의백지미민자。또한 인멸되지 않은 씩씩한 혼백이
亦庶有棲依之所 역서유서의지소。의지하고 깃들 수 있는 곳을 마련해야 하나
甚矣 심의。이뤄진 적이 없으니 심하도다!
世道之隘也 세도지애야。새도世道의 궁색함이여!
今 上躬聖德懋聖學 금 상궁성덕무성학。지금 주상께서 성덕을 실천하고 성학에 힘쓰신바,
大公至明之道 대공지명지도。지극히 공정하고 명철한 도리가
興行於世 흥행어세。세상에 성대하게 행해지고 있다.
乃始罪六臣而知六臣 내시죄육신이지육신。처음에는 육신을 죄인으로 여겼으나 육신의 실상을 알고 난 후에는
謂學士大夫無傷於展其私敬 위학사대부무상어전기사경。학사와 대부들이 사사롭게 경의를 표해도 해로울 게 없다고 말씀하셨다.
於是露梁之祠先建 어시노량지사선건。이에 노량의 사당이 먼저 창건되었으나
然寂然數載 不聞於寧越也 연적연수재 불문어영월야。
영월에 육신의 사우가 건립되었다는 말은 여러 해에 걸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今觀察使洪公 금관찰사홍공。현 관찰사 홍공이
春廵屬邑 춘순속읍。봄에 속읍을 순시하다가
至寧越 지영월。영월에 이르러
祗謁魯山君廟 지알노산군묘。노산군의 사당을 배알했다.
撫想往事 무상왕사。지난 일을 더듬어 생각하고
徘徊感慨 배회감개。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강개(慷慨)한 느낌이 일었다.
因悟曰 是烏可無六臣祠哉 인오왈 시오가무육신사재。이에 무언가를 깨달으며
“어찌 이곳에 육신의 사당이 없을 수 있겠는가!”라 말했다.
會魯山君廟棟宇朽圮 회노산군묘동우후비。때마침 노산군의 사당은 처마와 마룻대가 썩고
不任風雨 불임풍우。비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公亟馳啓請易之 공극치계청역지。홍공은 곧바로 조정에 치계馳啓하여 교체할 것을 요청했다.
又指廟前一區曰 우지묘전일구왈。그리고 사당 앞의 조그마한 공간을 가리키며
是宜建六臣祠 시의건육신사。“이곳에 마땅히 육신의 사당을 세워야겠다.”하고는
又遍告于二十六邑之長曰 우편고우이십륙읍지장왈。스물여섯 고을의 수령에게 두루 통고하기를
今將建六臣祠于寧越 금장건육신사우영월。“지금 영월에 육신의 사당을 건립하려 하는데
盍濟其財力 합제기재력。소용되는 비용을 돕지 않겠는가!”하였다.
是年七月 시년칠월。그리하여 당년 7월에
魯山君廟告完 노산군묘고완。노산군의 사당이 완전해지고
而六臣之祠亦成 이육신지사역성。육신의 사당이 동시에 완성되었다.
爰以九月某甲 원이구월모갑。9월 모일,
陞祀六臣 승사육신。육신의 위패를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드렸다.
首東曰朴公彭年 수동왈박공팽년。가장 동쪽에는 박팽년朴彭年을
次西成公三問 차서성공삼문。다음 서쪽에는 성삼문成三問을,
次西李公愷 차서이공개。다음 서쪽에는 이개李塏를,
次西河公緯地 차서하공위지。다음 서쪽에는 하위지河緯地를,
次西柳公誠源 차서유공성원。다음 서쪽에는 유성원柳誠源을,
次西兪公應孚 차서유공응부。다음 서쪽에는 유응부兪應孚를
其配于南者曰戶長嚴君興道 기배우남자왈호장엄군흥도。각각 모시고, 남쪽에는 호장 엄흥도를 배향했다.
爲其奮義恬禍 위기분의념화。엄흥도의 경우 의리를 떨쳐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斂葬魯山 염장노산。노산군의 옥체를 염습하여 장사 지냈으니
誠節之壯 성절지장。그 정성과 절의가
亦六臣之徒也 역육신지도야。육신만큼이나 굳세기 때문이다.
舊廟新祠 구묘신사。노산군의 옛 사당과 육신의 새로운 사당은
相爲拱揖 상위공읍。서로 마주보며 공손히 읍揖을 하고,
陟降相從 척강상종。신령들은 서로를 쫓아
歆嗅相求 흠후상구。하늘을 오르내리며 흠향歆饗하고 있다.
荒壠野草之間 황롱야초지간。황량한 언덕과 잡초우거진 들판은
雖非殿陛位著之舊 수비전폐위저지구。비록 궁궐 섬돌에서 조회하던 예전 모습과는 다르나,
亦庶幾髣髴乎平日君臣之際矣 역서기방불호평일군신지제의。또한 평소 군신사이의 관계를 방불케 하기에 충분하다.
嗚呼 오호。아아!
玆土之宜有是祠 尙矣 자토지의유시사 상의。이곳에 사당을 두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거니와,
人之如渴如癢 久矣 인지여갈여양 구의。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치 목마른 듯이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今洪公乃克擧玆闕典 금홍공내극거자궐전。지금 홍공이 미흡했던 전례를 이렇게 거행한 것은
允於神理 윤어신리。신리에도 마땅하고
協於人情 협어인정。인정에도 타당하다.
使世之義士 사세지의사。더욱이 세상의 의로운 선비로 하여금
無復餘憾 무부여감。더 이상 유감이 없게 하였으니,
事之至善者 사지지선자。세상의 지극히 훌륭한 일 가운데
孰過於此 숙과어차。이보다 나은 게 무엇이 있겠는가!
抑是祠之宜有而未有者 억시사지의유이미유자。이 사당을 진즉 건립해야 했으나 이제껏 건립하지 못한 것은
非不能也 비불능야。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乃不敢也 내불감야。감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自有德音以來 자유덕음이래。주상께서 한번 말씀을 내리셨다면
宜若河决而東注 의약하결이동주。마땅히 터진 강둑에서 물줄기가 동쪽으로 흘러가듯,
馬馳而脫其羈馽 마치이탈기기칩。치달리는 말이 그 굴레를 벗어던지듯,
群趍並騖而就之 군추병무이취지。뭇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황급히 나아가야 한다.
顧其間爲觀察使若本郡之守凡幾人 고기간위관찰사약본군지수범기인。
그러나 그 사이에 관찰사 및 본 군 수령을 역임한 사람이 적지 않았건만,
拱手睨視 공수예시。모두 수수방관한 채
莫之肎擧 막지긍거。소신껏 거행하지 못했다.
乃知事之至善者必待人而行 내지사지지선자필대인이행。
이러한 점을 통해 지극히 훌륭한 일은 반드시 마땅한 사람을 기다린 뒤에 행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非公其誰能辦此 비공기수능판차。공이 아니면 누가 이 일을 주관할 수 있겠는가!
公以書命泰輔曰 공이서명태보왈。공께서 내게 편지를 보내 명하시기를
記實之文 기실지문。“사실을 기록하는 글을
惟子之託 유자지탁。맡길 사람은
泰輔已自齠年 태보이자초년。오직 태보 자네뿐이네.”라 하였다.
蓄此曠世之感 축차광세지감。나는 어려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이러한 감회를 품어왔다.
又喜魯西府君之志得行於今日 우희노서부군지지득행어금일。
게다가 외조부 윤노서부군尹魯西府君의 뜻이 오늘에야 비로소 이루어진 것을 기쁘게 여기며,
遂不敢固以陋拙辭 수불감고이루졸사。필력이 비루하고 졸렬하다는 이유로 감히 사양하지 못하는 바이다.
公名萬鍾 공명만종。공의 이름은 만종萬鍾이고
字汝受 자여수。자는 여수汝受이며
豊山人 풍산인。본관은 풍산豊山이다.
以甲子九月 이갑자구월。갑자년(甲子年 1684, 숙종 10)9월에 본도 관찰사로 부임하였다.
按是道 泰輔在屬邑 안시도 태보재속읍。나는 속읍의 수령이었는데
不敢猥以他政贊公知者 불감외이타정찬공지자。외람되게 다른 정무 때문에 공을 돕지는 못했다.
觀於六臣祠 관어육신사。식견을 갖춘 자가 육신사당을 살펴본다면
則公之政之大者 칙공지정지대자。공이 얼마나 훌륭한 정사를 펼쳤는지
斯可以得之矣 사가이득지의。충분히 알 수 있으리라.
十一年 乙丑九月 숙종 11년 을축 乙丑(1685) 9월,
通訓大夫行伊川縣監朴泰輔拜記 통훈대부 행 이천현감 박태보가 두 번 절하며 짓다.
舊本刓敞 구본완창 구본舊本이 손상되고 결락되었기에
曾孫和源追書 증손화원추서 증손 박화원(朴和源)이 추서追書한 뒤
屬東柏改刻 속동백개각 강원도관찰사(이겸재李謙在.1800~?)에게 부탁하여 고쳐 새겼다.
時庚戌也 시경술야 때는 경술년庚戌年(1850, 철종 1)이다.
165년이 지난 1850년에 박태보의 증손 박화원(朴和源)은 구본(舊本)이 손상되고 결락 된 것을 추서(追書)한 뒤 강원도관찰사 이겸재(李謙在)에게 부탁하여 <六臣祠宇記 육신사우기>라는 제목으로 판각되었는데 현재 ‘창절서원’에 보관되어있다.
【용어설명】
<六臣祠堂記 육신사당기>의 원문은 박태보(朴泰輔)의『정재집定齋集』권4/기記에 수록되어있다. 창절서원소장 판각과 장릉사보에서는 <육신사우기六臣祠宇記>라는 제목으로 되어있는데, 165년이 지난 1850년에 고쳐 새기면서 변경되었다.
박태보(朴泰輔)1654년(효종 5)~1689년(숙종 15) :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사원(士元), 호는 정재(定齋).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 1677년 알성 문과에 장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거쳐 예조좌랑. 1680년에 홍문관의 부수찬(副修撰)·수찬·부교리(副校理)·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교리가 되었다. 1682년 홍문관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마친 후 이천현감(伊川縣監), 부수찬·교리·이조좌랑, 호남의 암행어사 등을 역임. 1689년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해 주동적으로 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 도중 옥독(獄毒)으로 노량진에서 죽었다. 죽은 뒤 왕(숙종)은 곧 후회했고,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을 세웠다. 영의정에 추증되고 풍계사(豐溪祠)에 제향되었다. 1695년(숙종 21)에는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경기기념물 제41호)을 건립하여 추모하였다. 저서로는 『정재집(定齋集)』 14권, 편서로는 『주서국편(周書國編)』, 글씨로는 박임종비(朴林宗碑)·예조참판박규표비(禮曹參判朴葵表碑)·박상충비(朴尙衷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윤노서 부군(尹魯西 府君) : 윤노서(尹魯西)는 윤선거(尹宣擧, 1610~1669)를 지칭하는데 노서(魯西)는 윤선거의 호다. 그의 자는 길보(吉甫)이고, 호는 노서(魯西), 미촌(美村), 산천재(山泉齋)이며, 윤문거(尹文擧)의 아우이자 윤증(尹拯)의 부친이다. 부군(府君)은 남자(男子) 조상(祖上)의 높임말이다.
謁 魯陵노릉을 배알하다 : 윤선거의 유고집인『노서선생유고魯西先生遺稿』권2에【<謁 魯陵。敬次越吟 二首>. 蒼蒼松柏鎖幽宮。古廟空山寂寞中。木主並祠儀有得。楊州別域事難窮。偏知苦竹啼痕濕。不獨春花怨血紅。誰解六臣同一體。海家遺說欲無聰。三沐齋庵四拜陵。謾將遺迹訪山僧。徵諸國史心肝裂。說及氓傳涕淚凝。千乘之尊九章服。小碑何故一明燈。上王葬禮誰能講。興道千秋事獨稱。】시詩가 있다.
시위(侍衛) : 임금을 모시어 호위하다
시축(尸祝) : 제사에서 축문(祝文)의 낭독을 담당한 관원
금강(錦江) : 동강(東江)을 지칭하는데 조선시대에는 금강錦江이었기어 낙화암 옆에 있는 정자의 이름이 금강정(錦江亭)이다.
천하의 악행은 한 가지요,천하의 선행도 한 가지다. : 전유호(田惟祜)의 <無基貧竈沙蕩碑記 무기빈조사탕비기>『名臣經濟錄 명신경제록』권23에 “무릇 천하의 악행은 한 가지요, 천하의 선행도 한 가지다. 벌을 주어 악행을 징계하고 상을 주어 선행을 권면하는 것이 어찌 우리나라만 그러한 것이리! 또한 역대로 충후(忠厚.충직하고 순후함) 지극함이다.”가 보인다.
조맹(趙孟)을 죽이려고 한 자는 지백(智伯)의 뛰어난 선비였고, : 조맹은 전국시대 조나라의 임금 조양자(趙襄子)인데 진나라 지백(知伯)을 죽인 뒤 그의 머리로 술잔을 만들어 사용했다. 지백의 신하 예양(豫讓)은 임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스스로 벙어리가 되어 비수를 품은 채 때를 기다렸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처형되기 전에 조맹이 예양에게 “어째서 옛날 섬기던 주인을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유독 지백을 위해서만 복수를 하려 하는가?”라 묻자, “옛날 범씨와 중항씨를 섬길 때 그들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나도 그렇게 했지만, 지백은 나를 국사(國史)로 대우했기 때문에 나역시 국사의 입장에서 보답하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항우項羽의 믿을 만한 신하 : 항우의 장수 정공(丁公)을 지칭한다. 그는 초나라가 패망한 뒤 유방에 의해 참수되었으나, 항우와 유방이 대립하던 시절에는 여러 싸움터에서 유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일찍이 유방이 크게 패배하여 쫗기게 되었는데 그 형세가 다급해지자 그를 바짝 뒤쫓는 정공에게 애걸하여 목숨을 구걸하기도 했다.
搢紳(진신) : 지위(地位)가 높고 행동(行動)이 점잖은 사람
구학(溝壑) : 도랑과 골짜기. 죽어서 자신의 시체가 도랑이나 골짜기에 버림 받는 일.
시체가 도랑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는 : 『맹자』「등문공하滕文公下」에 “지사(志士)는 시신이 도랑에 버려질 것을 잊지 않고, 용사(勇士)는 자기 머리를 잃는 것을 잊지 않는다.”가 보인다.
앙모(仰慕) : 우러러 그리워하다.
世道(세도) : 세상(世上)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道理). 세상(世上)의 도의(道義)
노량의 사당이 먼저 창건되었으나 : 1679년(숙종 5) 육신묘 옆에 사당을 처음 건립했고 1691년(숙종 15) 육신의 관작을 회복한 뒤 ‘민절(愍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였다.
강개(慷慨) :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의기가 북받쳐 원통하고 슬프다.
치계(馳啓) : 임금에게 급히 서면으로 아뢰다.
읍(揖) : 인사하는 예(禮)의 하나.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린다.
흠향(歆饗) : 신명(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다.
통훈대부(通訓大夫) : 조선시대 문관(文官)의 정3품(正三品) 당하관(堂下官)의 품계(品階). 통정대부(通政大夫)의 아래이다
박화원(朴和源) 1811년(순조 11)~ ? 본관 반남(潘南), 자 예능(禮能), 증조부가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이다.
당시에 강원도관찰사는 이겸재(李謙在.1800~?)이다.
【출처·인용·발췌·참고 문헌】
『정재집定齋集』「권4 기 11」
『역주 장릉지속편』「권3 역주 장릉지보유」한국학중앙연구원 2011년.
『창절서원지』사단법인 영월창절서원 2016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한자사전』.『어학사전』.『영월군지』1992년.『영월군부읍지선생안』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문집총간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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