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사랑하는 회원동지들과 운길산과 예봉산을 산행하였습니다. 그날은 여러가지로 몸의 컨디션이 안 좋아 고전한 하루였습니다. 지난 주 첫날인 월요일(3월 31일)부터 감기에 걸려 헤매다가 조금 낫긴 했지만 콧속이 헐고 피곤해서 산행이 힘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토요일 아침엔 힘차게 청량리역으로 향했습니다. 역에서 송기훈 유한준 회원을 만나고 8시 30분경 도착한 팔당행 전철3번차칸에서 정병기, 부인, 김정호, 오창환, 김준기 회원을 만나 8인이 되고 9시 조금 지나 새로 지은 팔당역에 도착하니 김주홍회원과 부인께서 기다려 주어 우리 팀은10인이 되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양수리행 버스가 오고 우리는 전철탔던 여세로 연장승차, 200원에 중촌리 다리앞에서 하차합니다. 그 시각이 9시 45분쯤입니다.거기서 조안리 보건지소까지는 차편이 뜸하지만 거리가 가깝기에 튼튼한 다리로 고고싱합니다.
봄을 가득 이고 있는 동네를 지나 수종사 오르는 길로 등산을 시작합니다. 이 길은 차가 다닐 수 있게 만든 넓은길로 등산하는 이들에겐 차가 많이 다녀 좋은 길은 아니었습니다.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어서 화사한 봄의 정취를 더해 주는데 가는길에 현호색 군락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제법 넓은 길엔 차들이 힘겹게 오르내리지만 우리는 두세번 쉬면서 여유있게 수종사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10시 53분 수종사 일주문앞에 도달했는데 '雲吉山水鐘寺'라는 굵은 글씨의 편액이 반겨주고 그 문을 지나니 새로 조성된 부처의 전신상이 서 있었습니다. 거기서 3-4분 힘든 걸음을 옮기니 드디어 첫번째 목표지점인 수종사 앞마당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곳 절집 뜰에서 양수리쪽으로 한강을 내려다보는 경치는 천하절경이라고 제가 감히 주장하는데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흐려진 하늘 때문에 맑은 기운은 좀 부족한 듯 했습니다. 황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원래 절에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를 했었는 오늘은 웬일인지 그것이 안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기대하던 차 한잔은 없었지만 맑은 공기와 밝은 햇빛 속에 툇마루에 앉아서 잠시 쉬면서 우리는 힘을 회복하고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여기서부터의 산길은 제법 가파라서 회원들의 컨디션에 따라 속도차이가 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경우 근래에 없었던 난조에 빠지며 빌빌거립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산행 내내 저를 힘들게 했는데 감기를 몇일 앓은 것이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11시 50분쯤 해발 610m의 운길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잠시 쉬며 회원들 모두 사진찍고 사진찍히기에 바쁩니다. 마침 포도주가 있어 정상주를 한잔씩 마셔 우정의 산행을 기념합니다.
이제 길은 다시 급전직하로 내려가더니 다시 한 봉우리를 올라야 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힘들여 그 봉우리를 오르고 보니 거의 식사시간이 다 되어 봉우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각자의 도시락을 꺼내어 진수성찬의 향연을 펼쳤습니다. 근데 제가 꺼낸 것은 고작 동네에서 산 김밥 두줄, 와이프가 싸준 사과 몇 쪽은 아까 벌써 운길산 오르기도 전에 냠냠했더랬습니다. 회원들의 호의로 호의호식했기에 오늘만 날이 아닌지라 다음 번 갚을 것을 기약해 봅니다.
식사가 끝나고 봉우리를 한 두개 더 넘으니 작년 7월 천마지맥 종주 때에 왔던 새재고개에 도착합니다.(시간은 나중에 찾아서 기록할 예정입니다.)
새재에서 다시 약간은 급한 경사길을 따라서 올라가니 작년의 산행길이 소록소록 생각났고 특히 날이 맑아 사진이 잘 나왔던 기억과 길호군이 술 두병을 들고 불원천리 덕소까지 마중 나와준 일이 기억났습니다. 그날 꽤나 즐거워하며 통음했었는데 올해는 신체검사의 후유증으로 술을 두려워하게 될 줄 작년엔 정말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경동오비와 얽힌 추억이 이렇게 현재의 나를 강하게 하는 활력소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같이 흘린 땀과, 같이 웃던 즐거움이 또 하나의 추억으로 되돌아 올 걸 생각하며 발길을 옮깁니다.
한참을 가니 작년에 점심식사를 하던 바위산이 나타나 반가웠는데 그곳에서 또 한참을 쉬었습니다. 황사에 싸여 경치는 작년만 못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앞을 보니 이제 행글라이딩장소의 봉우리, 철문봉만 지나면 예봉산 정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엇습니다. 그리고 경사가 운길산구간보다 약간은 완만하여 견디기에 조금은 나은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파라글라이딩하는 곳에 도착하여 의자에 앉아 휴식합니다. 송기훈 회원과 다른 한 사람은 한강이 보이는 언덕위에 아예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휴식합니다. 철저히 즐기는 사람들의 자세처럼 보여 '프로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옆에선 간이주점을 차리고 술을 파는데 김주홍회원이 입맛을 다십니다. 저는 예봉산까지 참자고 부탁합니다.
오후 3시 34분 다음 봉우리인 철문봉에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 도착했습니다. 철문봉 정상에는 정씨형제들과 이 봉우리가 친밀한 관계를 가졌었다는 설명문이 적힌 간판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최고의 학자로 존경받는 정약용선생이 살던 곳이 이곳에서 멀지 않음을 알고, 우리가 가는 산길이 결국은 선조들의 업적을 찾아다니는 길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간길과 정맥길, 그리고 명산을 가다보면 우리 국토의 여기저기에 조상들의 체취와 숨결이 서려있어 그분들이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정도를 걸어 가거라. 어려우면 내가 도와주마'하고 말없이 격려하는 듯 함을 느낍니다. 무언 중에 그분들의 훈육을 받아들입니다.
이제 산행도 거의 막바지입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예봉산에 도착한 다음 예빈산과 승원봉을 넘어 천주교묘지까지 종주산행을 해야 하지만 산행을 기획한 유한준회원에게 사정하여 산행코스를 예봉산까지로 한정하였습니다. 빌빌거리는 저에게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5시 49분 오늘의 종점이자 최고점인 해발 690m의 예봉산에 도착했습니다. 황사 때문에 경치가 조금은 빛을 잃는가 했습니다만 산행이 거의 끝나가는 데다가 맑은 공기와 즐거워하는 산객들의 기분에 덩달아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김주홍회원의 배려로 막걸리 한 잔을 달게 마시고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습니다. 1시간을 조금 더 내려오니 동네가 나오는데 살구꽃 벚꽃, 목련꽃이 피어 '울긋불긋 꽃동네'가 되어 있습니다. 한쪽에선 젊은이들이 노상에서 고스톱을 치고 잇고 동네 어른들은 비닐 천막 안에서 막걸리잔을 돌리고 있습니다. 나른하게 잠이 오려는 시골동네의 정경이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조금 걸어 내려오니 팔당역 인근이 되었기에 거기서 음식점을 찾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두부집이 있어 10명의 회원 모두 왁자하니 그 집으로 들어가서 여흥을 즐겼습니다. 조금은 술이 과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마시는데 오늘은 주인 마님의 애교와 회원들의 농담이 잘 어울어져 진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술과 말의 잔치가 왕성했지만 어느 순간 모두들 훌훌 털었는지, 일어나서 팔당역으로 걸어가서 전철에 올라 집으로 향했습니다. (김주홍회원 등 4분은 승용차로 분당ㅉ똑으로 직행)
사진이 풍성하진 못하지만 실어 봅니다. 포토샵으로 조금씩 다듬은 것인데 언제나 처럼 촬영시각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산행을 상상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후기-
그날 먹은 술 때문인지 몸이 쇠약해진 것인지, 집에 와서 일찍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 다음 날까지 회복이 안되어 산소에도 못 갈 뻔 했으나 그래도 아침에 성당에 다녀왔기에 그분의 도움인지 겨우 춘천까지 다녀왔습니다. 오는 길에는 졸려서 길옆에 주차하고 잠시 수면까지... 감기의 후유증이 이렇게 센 줄 몰랐습니다. 늙어 가는 거겠죠. 자연도태의 와중으로....
첫댓글 형님 지금 컨디션은 어떻습니까?..빨리 원기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술을 삼가하고 근신하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 제주도 가면 산행 한번 할 수 있을 것 같아 맘이 설레고 있어 현재의 컨디션은 기고만땅입니다. 역시 산행계획이 약!
님의 몸은 어떤지 모르지만 사진만은 끝내줍니다. 그날 저는 큰조카와 둘이서 선산 뒤의 282봉을 올랐습니다. 옛날에 지게지고 나무하러 간 산에서 가까운 산으로 이번에 처음 올랐습니다. 감기, 빨리 떨구시기 바랍니다.
봄을 만끽하게하는 아름다운 화면에 선배님의 섬세함이 배어있는듯 합니다.
이교수의 섬세한 산행기 잘 즐겼습니다.....다시 그날의 감회가 새롭군요.... 감기 빨리 나으시고 제주도에서의 계획 즐기시길....
그런 사연이 있는줄 몰랐습니다. 겉으로 뵙기에는 표가 나질 않았더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