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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5717 ♧ 이름: 김영배 ♧ 2009/5/7(목) 00:38 (MSIE6.0,WindowsNT5.1,SV1) 211.216.37.159 1024x768 ♧ 조회: 482 | |
"軍 入隊 얘기" "신병교육 6주" 깜깜한 밤중, 중대사전에 집합한 우리에게 중대장의 훈시가 있었다. 받고 28연대 예하 중대로 가게된다."그리곤 9사단,특히 28연대의 자랑이 대부분으로, (실젠지 아닌지는 모르지만,그러나 급조된 얘기는 아닐것이다.) 6.25때 백마고지에 관해서 한참 28연대의 무훈에 관해 얘기를 하고는,바로앞이 삼팔선이라고 했다.박도경 중대장은 평안도 사람으로 사정없이 사투리를 한다. 그리곤 우리들을 교육시킬 기간병이자 조교들에 대해서도 유능한 군인이라고 추켜 세우다가 갑자기 뒤쪽 언덕에 앉아있는 제대병들중 하나를 불러서는,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대봐라!" 그러는거다. 그러니까 지목당한 기간병이, "넷,병장 이 ㅇㅇ" 라고 하고는, 말하자면 고참들인데 그날 그들이 재수가 없다.알고보니 직속상관들이 바뀐게 며칠 안된거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버벅거린다.일등병이나 상병을 시켰으면 그러지는 않을거다. 낼모레 부대 떠나는 고참들이 그런 문제는 사실,관심이 없을수도 있다. 그러다가 우리 신병들을 향해서, 그소리에 난 속으로(말도 안되는 소리.저런 정신없는 중대장 이라니 군생활하기 힘들겠다) 못본 애들이 대부분이다.우리는 조용했다.그럴수 밖에..... "이거이.. 신병들이래 모두 뻥구라들만 온것 아니갔어! 큰일났군,정말!? 모르갔어!!" 그러며 후러쉬를 우리들 쪽으로 비춘다.무척 성이나 있다.그때 그런데 나는 손을 들었다.자신은 없지만, 내가 손을 들었을때,불빛이 우연히 나에게 비춰졌었다.그래서 내가 바로 지목 당했다. 막사에 들어갔을때,난 벽에걸린 "직속 상관 관등성명을 봤는데 참모총장 이름이"김용배"로 적혀있길래, (저사람이 김해김씨면 내 형뻘이다.그런생각을 했고 1군사령관 중장 김계원이고 사단장 이름이 소장 이소동이다.연대장은 이름이 대령 조양률"여서 (이름 부르기가 쉽지않다)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생각해가며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대대장 중령 이영우,중대장 대위 박.... "그만..누구또 아는 사람있나?" (만약에...김준태 병장님이 이글을 보신다면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싶다.나한테 너무도 잘해주셨고 나때문에 중대장에게 정갱이에 살이 모두 까지도록 쪼인트를 맞은거에 대해 죄송하고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덩치가 큰 분이다.>) 재수없이 그일로 인해서 나와 조종학은 교육을 마친후, 조교로 자충됐다. "라노비아"잘불러서 인기가 좋았다.제대후,시청앞에서 우연히 만나곤 그후에 소식을 모른다. 2중대에 도착 첫날밤을,자게 됐는데,내무반 내부는 말이 군대이지,초가집이다. 내무반안은 석유를 넣어쓰는 대한등이고 삼팔선이 바로앞이라고 그래서인지 등화관제를 한다. 동초는 막사양쪽 밖에 30미터지점을 교통호로 가면 개인호가 있는데,그곳에서 한시간씩 선다. 동초를 나가는 사람은 기간병으로 주번사관이 첫 근무자에게 (우리들이 보는 앞에서) m.1 8발들이 실탄 클립을 넣으면 한발이 약실에 장진 되는데 그렇게 하곤 잠금쇠를 잠그고 준다. 즉- 잠금쇠를 풀고 방아쇠를 당기면 발사가 되는데,그런장면을 바라본 우리 신병은 으스스 한기를 느꼈다. 물론 훈련소에서 실탄 사격을 했지만,밖에 근무자에게 그렇게하는것을 처음봐서 그렇다. 밖에 동초 근무지를 나중에봤고 근무도 해봤지만 정말 그곳에,밤에는 근무자가 있어야하는 위험한 자리다. 실제로 새볔두시에서 네시 사이에 북쪽에서 넘어온 놈들이 아군의 목을 잘라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우리가 있게될 지역을 살펴보게 됐는데,민간인 사는곳으로 말하면 완전 村이다.정말 촌도아닌 두메산골..민간인을 볼려면 북한 민간인을 보는게 더-빠른 첩첩산중에 죄지은사람 귀양갈 그런 오지이다. 막사는 비탈길에 진흙과 갈대 자른것을 반죽해 만든 브록크를 쌓았고 지붕은 갈대로 엮었다.뒷쪽 언덕엔 장교 숙소가 시골에 초가 변소깐처럼 생겼다.중대 막사 앞엔 요새 초등학교 쬐끄만 운동장 같고 계속 아랫쪽으로 차하나 겨우다니는 비포장도로 그리고 비탈길로 더내려가서 개울가 옆에 쓰러질듯이 있는,1종창고와 그리고 비오면 새는 엉성한 식당이 있다. 논산과 금마 훈련소는 거기다 비교하면 완전 대궐이다.기간병옷도 다떨어져있고,이건뭐 전쟁에진 패잔병 집합소같고 난민촌은 "저리가라"다, 피 유- 한심하다. 눈에 보이게 어떤높은 사람이 다-떼어먹는지 보리밥이 반그릇정도이고 그래도 국물이 있는 국이있고 금방 밭으로가려는 김치 몇 쪼가리...나중에 집에"가라"고 해도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방향이 종잡을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창살없는 감옥에 갇힌거와 흡사했다.그곳에서 우리는 또 교육을 받았다. 어떤 고참 병장이 그런말을 했다. 교육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그냥-사역이다.돌을 날라서 무너진 축대를 쌓고 문짝 수리하는데 못이 없어서 철조망을 잘라서 못을 만들고,그런데 철조망 조차 없어서 산으로 올라가면 깊은산으로 한참가면,언제 쳐놓았는지는 모르지만,철조망이 있고 버텨놓은 앵글이 있다.그것을 뽑아와야한다. 가져가 팔면 돈이된다는데 윗사람이 시키는거다.앵글에 감겨있는 철조망을 풀거나 잘라야 앵글을 뽑는데 연장이 있을리없다.연장 이라는게 스푼인데,스푼이 미제라야 한다 스푼은 개인 지참으로 수통에 꼽고 다닌다. 스푼 손잡이 부분 끝에 고리식으로 타원형 구멍이있는 부분을 자르면 U字가된다.그 부분을 철조망에 걸고 비틀어 헐겁게 만들거나 철조망을 야전삽 모서리로 때려 강제로 자르거나 해야한다.참 힘이든다.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고.. 제대하는 선배에게 미제 스푼을 물려받으면 행운이다.참-군대좋다.어두워지면 무조건 막사로 다 들어가야한다. 밖에는 돌아다닐수도 없고,이제는 빈대와 싸움이다.고참들은 잘때 ddt 를 자는 주변에 城을 쌓아 놓지만 이 는 디디티 성을 넘어오고 여름에 빈대는 머리가 좋다. 천장에서 사람에게 떨어져 피를빤다. 더워도 잠은 자지만,빈대 때문에,잠을 못잔다. 농약을 뿌려서 군인들이 죽었다해서 농약도 못뿌리고.그외에 약은없고..그렇게 15일쯤 됐나...연대에서 장교 한명과 하사관 몇명이 왔다. "1군 하사관하교 지원자"를 뽑으러 온거다.나도 물론이지만 서울 동기들이 몽땅 지원했다.그런데 나와 조종학이는 중대장이 지원서를 찢어 버리면서 "늬들 두명은 안돼"그러는거다. 중대장은 첨부터 우리두명을 자대 자충을 목적으로 했기에 그렇게 된거다. 며칠후, 정든 동기생들이 떠나가니 참 허전했다.이건뭐 군대 생활이 아니라 매일 사역이 연속이다. 진지보수에 비에 무너진 탄약고 다시짖기 도로보수..끝없는 일,일,일이다그래도 군대라고 군가도 가르친다. ~승리에 깃발로 뒤덮힌 아침, 조국에 하늘은 맑게 피였네~ 젠장... 사역을 많이 하신거 같습니다. -[05/07-05:12]- 사단장 이소동 * 연대장은 조양률이 아니고 최명재이고 * 대대장 이영우 * 중대장은 조<><>가 아니고 한상목 대위님으로 바뀌여서 66년 당시 교육을 받고 파월을 했든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는 28사단 82연대에서 왔기에 다르다. -[05/07-07:46]- 1대대장만,파월됐고,내가 알기론 최명재 대령은 1군 다른 연대에서 차출되어 온 분입니다. 박도경 중대장은 파병을 거절해서 한상목 중대장과 김한익.기동복.황귀지부 소대장은 28사단에서 왔습니다. -[05/07-08:19]- 그런데 어쩌코롬 아랫나이는 기억이 없는데요 한두살이레두 더 드신분들이 기억력이 (이것을 똑똑하다 할순읎구) 많으신건 뭔일이신지요?~~오늘도 아침부텀 즐겁게 시작합니다.ㅎㅎㅎ -[05/07-09:42]- 다시 집으로 되돌아 갔다가 나오는데 누구는 수십년전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까지 훤히 꿰고있으니..... 조거 혹시 엉터리 이름을 대시는건 아니겄지??? (또 의심병 도졌다고 차공수님깨 야단 맞을라) ㅎㅎㅎ 김영배 전우님 그냥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05/07-10:05]- 암튼 정말로 힘든시절의 군대였습니다. 그런 과거를 딛고 지금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국민들의 귀감으로........... -[05/07-10:07]- 그시절엔 탈영병들이 많았는데 열악한 근무조건 춥고 배곺프고 빈데 그리고 고참들의 횡포 진지구축등의 어려움이 주된 원인이 였습니다. 저는 묘한 사연으로 육군 이면서 육군참모총장이 직속상관이 아닌 부대에서 서울과 싸이공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63년에 수방사에 전입 되었는데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대장 박정희 였고 주월사는 합동참모본부 예하부대 여서 의장 대장 서종철 군사령관 중장 채명신 이였습니다. -[05/07-10:19]- 김영부대위,조상식대위,이은필대위님은 기억이 나는데 잠시 2개월 같이 근무한 중대장님은 "기씨"라는것 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정말 놀랍습니다...부럽고요...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요. -[05/07-10:28]- 준장 정병주 그리고 초대 특전사령관 소장 조문환, 그다음 소장 조천성,그리고는 가물 가물 합니다. 팀장은 너무나 많이 바뀌어서 대위 전성기. 대위 전병기... 다음글이 또 기다려 집니다. -[05/07-10:33]- 이제 훈련소 이야기 시작했으니 배출되어 자대 배치받고 월남가고 귀국하는 동안 애환이 담긴 글 다 쓰려면 몇달은 실히 걸릴꺼고 쓰는 분이야 힘들겠지만 읽는 우리는 재미 쏠쏠, 즐거움을 선사한 대관령 김영배 전우님 건필! 바랍니다. -[05/07-11:34]- 컴을 켜보니.댓글 다신전우님들 사연에..사실 뭐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건 아닙니다.49제때 절에가면 "반야심경과 회심곡"을 스님이 합니다. 그분들도 하도 많이 하니까 적당히 빼먹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사에 참석하신 가족들이야 경황이 없고 조문객들은 여유가 있으니까,착실한 신도일경우 같이 외웁니다.그러면 아는거지요.여기 베트벳에 쓰는 글들도 기록에 남는것이고 저랑 65년도에 훈병시절과 제대할때까지 기억을 하는 동기들이 우연히 이글을 본다면,만약 거짖으로 쓴다면, 순-거짖말이라고 할게 뻔하고,당장 들통이 납니다.그당시 연대장이나 대대장 아니면 선임하사님들이 읽으실수도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썼던 천자문 143쪽 "천토회맹"을 쓰는과정에서 몇사람의 등장 인물이 생각이 나지를 않아 계속 못쓰고있는 실정입니다.그것을 거짖으로 이름을 다르게 쓸수는 없습니다.이제 세사람만 기억이 나면, 쓸것입니다.전우님들이 좋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김치찌개가 탈것 같애서 식당으로 (그리고 아는척해서 죄송)내려갑니다 감사합니다. -[05/07-12:33]- 그때가 아니였냐고...`` 와 있었고. 영배 전우는 신병교육생때 첫 만남이 였지요. 처음부터 의기가 상통해 가까워 졌지, - 그 때 나는 외로워었고, 한참동안 옛일을 회상하니 ``아~~ 이사람을 이제야 ``...하고 탄식하듯 했소이다. 영배전우 기억처럼 반반 교 사역에 38선 지역을 헤매고 다인 일이 전부었다. 지뢰위험표시로 위험을 앉고 있었고 ... 나도 조금은 기억이 나누만.!!! 오전교육 오후 사역이 반복되고... 일주일에 몇번 씩 전중대를 반으로 나누어 하나는 -나무부대 하나는 숯부대로해서 갈라져 출발해 저녁녁이면 -나무부대는 마른 싸릿대 나무를 한 짐 씩 등짐 메고 날려 와었지. -숯 부대는 몇일 전에 가마에 구어놓은 숯을 꺼내 숯가마 -[05/07-20:05]- 대가집 머슴마냥말이야...그것을 한 달에 한번씩 군트럭에 실어 어디론가 살아져 버리고 했었다오? 그것이 벌써 44년 전 일인데...영배전우에 확실한 기억이 대단하다 할 수밖에... 군입대이야기에 한참 착각에 빠져 그 곳을 해매던 중. 말미에 젠장~~~하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오 -하나도 꾸밉새 없고 생생한 군이야기는 다크!야 다크! 시리즈 4후 속편을 기대 하겠소 작가 선생!!! 제대후 오늘 까지 를... -[05/07-20:28]- 고맙습니다. -[05/08-03:39]- 하여간 대단 하십니다 삼가 고수로 모시겠습니다 -[05/08-15:20]- 집에 우리국군이 진격하면서 아버지도 잠시 짬을 내어 들렀지만 아무도 없기에 "대한민국 육군 중위 조양률 다녀갑니다"라고크게 방을 써놓고 나온것을 평생 한으로 생각하셨습니다.그랬기에 그 죄스러운 마음으로 부모님을 뵙기전까지는 결혼을 안한다결심하셔서 대한민국 유일한(아마) 총각 대령이셨죠.68년 결혼하셔서 저를 낳긴하셨지만요. -천만다행이죠-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는것은 참 중요한것 같습니다 -[01/17-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