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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5765 ♧ 이름: 김영배 ♧ 2009/5/12(화) 10:45 (MSIE6.0,WindowsNT5.1,SV1) 211.216.37.141 1024x768 ♧ 조회: 508 | |
"軍入隊 얘기(5)
내위로 올해 73세 되시는 형님에대한 얘기는 몇번 소개를 했었는데,형님은 논산군번 1025..."이다. 그해 12월28일쯤,청파동집에 형님 친구분이 찾아왔는데,그분이 용케 내형님이 양구 255 자동차 그분이 구자영 이라는 분으로 친구인 형님이 보고싶어 육본에 수소문해 양구에 있다는걸 알고 그곳엔 마침,기간병들이 신병들을 모아놓고 무슨...차량 정비하는 방법을 교육중였단다.마침, 날은 몹시추운데 내복도 못입고 군복 바지밑은 다 떨어져서 너덜너덜하고 굶주리고 추위에 덜덜 그러나 어제 형님에게서온 편지내용은 "잘있습니다.배도 고프지않고 춥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의 강경한 태도에 면회는 이루어 졌는데,뜻밖에 아버님을 만나게된 형님은 '아무걱정 마시고 당시의 일들을 친구분들이나 그런말을 하지, 형님은 당시의 군생활을 말씀하지 않는다.내가 자꾸 그런데 당시 형님보다 2년이나 먼저 입대한 강상완 이란 분이있다.형님은 1년 앞서 지원했으니 형님과 얼마나 친했던지,휴가도 같이받고 나의집에 같이 오셔서는 하룻밤자고 부여를 갔다가 휴가 끝나기 이틀전에 강상완 형님이 같이 군생활 하셨던 내형님 이력을 여러번 했었는데,참 내형님에대해 칭찬이 왜 이런 얘기를 하냐하면,당시 신춘균과 내가 그런 사이가 아니였나 생각한다..계급차이 없이 말이 식당이지...비오면 비새고 식탁이 모자라 그옆 땅바닥에 쪼구리고 앉아서 먹고...밥을 내가 하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3중대에 근무하는 신전우를 찾아갔을때 나를보고 반가워하며, "나중에 살아서 귀국하면 적어준 내주소로 연락을 해라" 그랬건만,이친구 그사진을 앨범에 끼워 나도 내 형님처럼,남아있는 생애를 신춘균.홍석진,조종학.김의성.이화웅등과 이제는 친구로 그런 아비규환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적과 싸웠던 전우가 아니던가!그때의 일들을 어찌 잊으리..... (여기까지 쓰다가 신춘균의 목소리라도 듣고자 대구로 전화를 하고선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1966년 새해가 되어서야 동두천 사단 사령부에 도착을했다.거기서 이틀을 자며 나의 기록카드를 도착한 다음날,반대쪽에서 가슴에 하사관학교 휘장을 번쩍이며 절도있게 걸어오는 하사 한명과 입대동기이고 신병교육중대에서 하사관학교에 지원해 갔었던..지금 수원사는 김의성이다. "누구 말이냐?' 하사관학교 연병장에 따불빽을 메고 줄지어선 약 650여명의 포로같은 지원병들..... 다시는 국졸들이 많아서 (아무리 국졸이래도 좀 똑똑하면? 풀수있는 문제들이다.)그런지는 매달리기 철봉은 폭이 1미터정도고 간격은 1야드정도인데 그게 50개다.왕복을 못하고 떨어져도 다음엔 콘셑드 건물안에서 신체검사를 하는데 가장 기본이 시력,청력이고 각 뼈의관절 뱃속의 그런데 각파트의 군의관들이 되게 폭력적이다.군대에서나 사회에서나 남들이 하는것 만큼만 하면 줄을서서 차례로 다음 파트로 가는 과정에 내가 시력검사를 마치고 청력검사 군의관 쪽으로 갔을때 나는 긴장해서 바라보다가 그애가 맞은자리를 움켜쥐고 다른쪽으로 갔을때,내차례가 되어 검사 난 순간 눈치를챘다."서울 입니다"했다간 앞에 애처럼 공매를 맞을게 틀림없다.그애가 무슨 이유로 그당시 분위기에 "서울입니다"했다간,"이놈의시키 서울이 다 네놈집이냐?:하며 공연히 공매를 최종 합격을한 애들은 강추위에 덜덜떨며 밖으로나와 땅바닥에 벗어놓은 자신의옷을 입었다. 소위 두명 중사 2명,그들이 나타나서는 2개조로 우리들 앞에 서더니 호명을 하고 각각 200 여명씩 당시는 1군하사관하교 교육기간이 16주,4개월로 일반하사나 장기하사도 교육기간이 같다. 중대장은 (실명으로 쓰겠습니다.본인들이 보시더라도 이해 하실것으로 믿습니다.)육사 출신으로 세분 구대장님은 말없이 매서운 눈초리로 대신했고,그리고 인사계...이분이 하사관학교에서 그- "늬들이 이곳에 오기전에 이곳 사정에대해 어느정도 알것이다. 지금까지는 늬들을 부모가 키워 그런데 더 간떨리는 상대가 나의 1구대 선임하사다.나와 동갑인데 먼저 하사를 달았고 조교겸 어쩌면..손보다 발이 더-자유자재다.졸업할때까지 나와 애증의 나날을 보낸 사람이다. 하사관학교는 소대라고 하지않고"구대"라고한다,경례구호도 9사단에선 "북진"였는데 학교에선 나는 1구대 소속으로 초장부터 구대장생도가 됐다.만장파란한,고달픈 근무생도의 일정이다. 당시 일반하사 봉급이 800원 병장이 400원이다.우리 생도들은 모두가 병장 계급장을 달고 교육을 각 페이지마다 20개의 줄이쳐저 있는데,맨 윗줄에는 제목을 쓰는데 좌로부터 3센티 간격을 띄우고 만약에 수양록 내용이 남을비방 하거나 장난식으로 쓰면 벌점이 달라진다.그러나 그것보다 벌점이 당일 교육이 끝나고 중대에 도착하면 생도 이름이 적혀있는 게시판에 벌점이 적혀있다.그것을보고 첫날 내무반 침상 3선에 도열 시키곤,개인 지급품을 나눠주는데,그과정이 살벌하다,일장복 2벌 나의 총기번호는 "961647"이다.지금까지 그 총기번호를 기억하는것은,사흘 밤낮을 닦아도 1년은 모든것을 지급받은후에,교장 신흥량 대령님이 박장우 대령으로 교체됐는데,입교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체격에 버금가는 후덕한 분이다.나중에 내가 월남서 애로사항에 처했을대 나와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처음엔 일반학인데,군인이란 무엇인가,군인의대한 정신,군인의 그런데,교과서를 갖고 배우는 과정이라 밖에선 안되고 건물 안에서..앉아서 교육을 받으니 모두가 잠이 부족하니까 따듯한 실내에서 교육이 고문을 받는것 같다. 교육보다는 가합과 빳다로 시간을 하사관학교 뒤쪽 산으로가면 얕은 저수지가 두개있다. 제일 깊은데가 가슴 깊이이다. 다른 교육도 위험한것은 선임하사가 먼저 한다.그러니 우리들도 처음엔 멈칫 거리다가 우르르 제일 고달픈게 내무생활인데 동기들 때문에 애매한 근무생도들만 기합을 받고 빳다를 맞는다. 시트커버를 모포 두장위에 놓고 나머지 모포를 그위에,그리고 그위에 베게를 놓는데,1구대와 통로에 놓여있는 군화.훈련화.실내화도 한쪽에서보면 일직선으로 앞부분과 높이가 맞아야하고, 이때,선임하사의 기분에 따라서인지,원래가 그런지는 몰라도 "기상"이다. '잠잘때 군기가 없다"에선 애들을 관물 앞으로 다가가게하고 뒤로 돌아서게 하곤,"엎드려 뻗쳐!" 20초도 안돼서 여기저기 우당탕 소리를내며,넘어지고...그렇게 고달픈 교육의 나날이다. 김영배: 지금 이곳 대관령에는 밖에 15분정도 서 있으면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비가 옵니다.윗글을 올리면서 지금의이곳 생활이 히이든다고해도 "그때만 하랴!"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우선 배 고프지않고 잠자는데 기상시켜 기합주는 사람도 없고 ㅎㅎ -[05/12-10:50]- 장영호: 훈련 하면 나같이 많이 받은 사람없다고 좌부 합니다 하사관이 되기위해 53주의 교육을 받았읍니다 1년이죠 그때의 고생 말도 하기 싫읍니다 그래도 그시절이 그립네요 다시 갈수있다면 좋겠고요 이제 중년의 늙막에 멋진 추억 입니다 -[05/12-10:53]- 이상수: 김영배 선배님 군대이야기는 몇날몇일 밤낮으로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수통꼭지에 대가리박고 뒷짐지고 있으면 한쪽 끝에서 툭 치지요 그러면 도미노현상으로 한쪽 침상 모두가 다 자빠지고나서보면 수통꼭지기 머리한가운데 푹박혀서 빠지지는않고.... 그래도 그런 기압 받았을때가 그립습니다. -[05/12-11:05]- 박용환: 강원도홍천 제1야수교 1구대에서 운전교육중 아침에 식당으로 밥타먹으러갈때 군가를 7개정도는 불러야 식당앞에도착 후다닥 밥을먹은건지 삼킨건지는 몰라두 우짯든 바로 식당앞에 집결시켜서 양은그릇 두개를 구정물에 씾은건지 담근건지 모를정도루 하구선 직바루 1구대까지 구보루(먹은걸 소화시킨데나 뭐레나.ㅋㅋ)도착시켜서 내무반으로 들여보내놓구선 침상 3선에 세워논다음 즉시 수통마게를 분해시켜서 관물다이 위루 엎드려 뻩쳐를 시키구 수통마게에다 머리박어를 시킨다음 양손은 허리에..ㅋㅋ10여분 정도만되면 여기저기서 끙끙대는데.그걸 구대장이란늠이 옆에서 듯고는 군기가 빠졋다는 이유로 맨끝에서 발루걷어차면 우루루루~~!!넘어지면서 어이쿠!!수통마게가 머리에박혀서는 빠지지않는걸..ㅋㅋ뎃글이 넘~기네요 -[05/12-11:20]- 백동기: 성묘때 함께 다니며 대부님이라고 부르는 해군상사 출신의 77세된 집안 웃분이 계시는데 이분 말씀이 육군으로 입대를 했으나 워낙 배가 고픈 관계로 해군에 지원 평생 근무했다고 하면서 그당시 육군과 해군의 후생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 정도로 느겼젔었다고 하니 형님의 비참한 그 모습 충분히 이해할것 같습니다. -[05/12-12:56]- 심상수: 고생스러웟든 것은 피교육생들이 다겪은 일이지만 2군 하사관학교 교육시 훈련도중에 야간 경계 근무중에 졸다가 엠원소총을 3구대 2내무반장 한태 뱃기고 그러고도 졸다가 늦게서야 총을 잃은것을 알고는 허둥대다가 모두집합시킨 상태에서 너 빳다를 백대 맞을래 아니면 퇴교를 할래 하고묻자 빳다를 맞겠다고 업드리니 엠원소총을 분해하여는 패기시작을 하는데 눈뜨고 못보겠습디다 .지금그동기생이 36년을 군생활을 맞히고 2002년도에 제대했는데 지금도 그때를 상기할대면 그놈 원주에서 만나 앙값음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중사를 늦게달고 상사는 더늦게 달았으니 혼줄을 내줬다고합니다 -[05/12-13:17]- 황진순: 강원도에 갈때 김전우님께 안부전화 드려야 하는데 전화번호를 적어두질못해 인사도 못햇습니다.죄송합니다..그리고 오옴리에 있는 전사자명부는 저가 알기론 월남에서 전사하신 전우님 명단만 있지않나 생각합니다.항상 건강하시길 빌며 저역시 그시절 추어을 떠올리며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05/12-13:24]- 차경선<: 오늘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며칠을 두고 쓰신건데 단숨에 읽어버리기 미안하네요. 암튼 힘든 그시절의 얘기 입니다. 건강하세요~~ -[05/12-14:42]- 최성영: 70년대 초반 예비군 동원훈련을 원주 1하사관학교 에서 받아 MP학교의 지옥같은 교육을 받은 나의 눈에도 후보생들의 교육훈련 강도가 상당함을 느꼈습니다. 군기엄정한 부대이니 후배 교육생을 의식해서 협조해 달라고 별을 단 학교장께서 당부 했던 기억 납니다. 하교앞 개울을 상류쪽으로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 각개전투 훈련을 받는데 준비해간 중사 계급장 부착하고 열외 참관만 하기도 했습니다. -[05/12-15:29]- 김영배: 재미없는 軍生活 얘기를 ..그것도 별로 재미없이...썼는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사실대로 쓰다보니 너무 딱딱합니다,황진순 전우님,저는 5월21일까지,..그날밤 회식까지 ..시간이 안되고 그날이 지나면,약 한달간 여유가 있습니다.제 전화는(011.9031.8275)입니다.최성영 선배님,하사관학교 개울이 참 원망스런곳 입니다. -[05/12-19:37]- 홍석진백마66: 밤마다 어느구실이 됬든 기합을 받지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이룬것은 다같은 피교육생 들이라면 다격은 것이나 나를 다시 놀라게 한것은 지금도 M1소총 총기번호를 암기 하고 있다는것이 나를 더욱 주눕들게 하는구만 !! 그렇게 수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말은 나에게 할기회가 없었지.? 다음에는 무엇을 갖이고 나를 놀래케 할것인가.? 오늘은 피곤하여 이정도로 ... -[05/12-20:53]- 수색대: 낙동강변 삭풍부는 엄동설한 안동36사단 신병교육대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엄한 줄 알았는데 원주 하사관 훈련의 강도가 더 한것 같습니다. -[05/12-21:04]- 최현득: 어제 신춘균 전우와 만나서 농담을 했습니다 김영배 전우라면 총번도 외울거라고 했는데 드디어 총번이 나오네요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습니다 하사관 학교 훈련이 장교훈련 못지 않게 빡시다는 예기는 많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05/12-21:13]- 조석영: 글을 읽으며..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재밌게 웃기도 합니다.(죄송합니다).당시 신검받는 상황이 정말 원시적이군요.가운데 다리 새는가 집중검사를 했다니???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는지? 훈련소부터 근무생도하시느라 야삽으로 빳따도 많이 많으신거 같은데.. 혹시 지금 자국 남은거는 아니신지요? 신검받을 때 고향이 서울이라고 했다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을 두둘겨 팼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갑니다. 그 군의관의 적은 북한군이 아니고 훈련병인가? 정말 화가 납니다. 정말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05/13-00:09]- 홍 진흠: 친구들중에 하사관 학교를 거쳐 장교가 된 사람이 몇 있습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장교훈련이 더 힘든다고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장교훈련은 신사적인 기압이라면 하교대는 한마디로 무식한 훈련(?)이라고 하드군요. 때문에 더 힘든다고도 해요. 어쨋던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사관학교는 어디서나 "인간재생창" 소리로 입교시부터 겁을 주드군요. -[05/13-00:49]- 정재성: 김영배 전우님은 시쳇말로 걸어다니는 컴퓨터 같습니다. 글내용도 내용이지만 당시의 스쳐간 그 많은 인물들의 관등성명을 어떻게 그렇게 다 기억하고있습니까? 설사 원래 성격적으로 기록을 습관화 하셨더라도 그자체가 혀를차고도 남을 일입니다. 하여간 그 열정이 참 대단하십니다. 현장감 넘치게 묘사하신글 잘 읽었습니다. -[05/13-09:59]- 김병장: 軍入隊얘기(5) 실감있는 내용 잘 읽었습니다.다음 (6)번을 기대합니다...저는 아무리 기억을 되 살리고자 노력해도 훈련시절(쫄병때)기억이 안납니다. 건필하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요. -[05/13-21:29]- 류지현: "인간 대장간" 인간 이기보담 군인을 만들고 다듬는곳이다. 옛생각이 물씬 나며 또 기다려 집니다. -[05/14-11: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