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6] 세월도 행복도 '뇌의 착시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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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1.12. 23:32
업데이트 2013.03.05. 11:49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 살길 원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계몽주의자 존 로크가 요구했던 '삶, 자유, 자산'이라는 기본 권리에 '행복'을 추가했고, 그때부터 '행복의 추구'는 인간의 본질적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행복한 복지국가' '모두가 다 같이 행복한 사회'라는 어젠다를 자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모두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걸까?
여기서 '행복'과 '오래'란 개념에 뇌과학적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시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알다가도 대답하려면 모르겠다"고 말했듯이, 시간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현대인에게도 미스터리다.
하지만 모든 세대와 문명은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럼 왜 어린이와 어른은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느끼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어른과 아이의 뇌가 세상을 샘플링하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론이 있다.
뇌 안의 모든 정보는 시냅스 사이 신경전달물질들의 방출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이론은 어린 시냅스일수록 신경전달물질들이 더 많기 때문에 같은 시간에 어른보다 더 많은 정보를 보낸다고 주장한다. 즉 정보전달의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은 느려진다. 마치 1초당 25~30장의 영상을 보여주는 보통 TV보다 수백~수천장의 영상을 보여주는 슬로 모션이 더 느리게 보이는 것과 같다.
세상을 더 빠르게 샘플링하는 어린 뇌가 결국 시간을 더 느리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뇌의 정보 샘플링 속도는 카페인 같은 화학적 물질이나 주의력을 통해서도 바뀔 수 있다. 결국 시간의 속도라는 개념 자체가 뇌가 만들어내는 착시 현상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양쪽 하얀 동그라미의 크기는 똑같지만, 더 작은 동그라미에 둘러싸인 왼쪽 동그라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비슷한 이유로 현대 뇌과학에선 행복 역시 뇌의 착시 현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많은 신경경제학 실험들이 보여주듯, 뇌는 절대값보다 상대적 비교를 통해 크기나 치수를 정의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사람은 나는 100만원 벌고 주변 사람들이 50만원 벌 때가 나는 150만원 벌고 주변 사람들이 200만원 벌 때보다 행복지수가 더 높다.
우리가 모두 다 같이 행복하고 오래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다 같이 행복하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자신의 과거 모습이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의 속도가 결국 뇌의 수많은 착시 중 하나라면, 우리는 집중과 몰입을 통해 적어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순간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도록 착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