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설명은
사피엔스가 호주에 도착했을 때
이들이 이미 불을 질러 농경지를 만드는 화전법에 통달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생소하고 위협적인 환경에 직면한 이들은
지나다닐 수 없을 만큼 무성한 덤불숲을 차근차근 불태워서 탁 트인 초원으로 만들었고,
그런 초원은 사냥감을 좀 더 쉽게 끌어들이는 터라 이들의 필요에 잘 맞았다.
이런 방법으로 이들은 불과 몇천년 지나지 않아 호주 대부분의 생태계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는 한 증거는 식물 화석이다.
45,000년 전 호주에는 유칼립투스 나무가 드물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하면서 이 종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이 나무는 화마가 휩쓸고 지나가도 금세 다시 살아나기 때문에
다른 나무들이 사라지는 동안 멀리까지 퍼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식생의 변화는 식물을 먹는 동물뿐 아니라 그 동물들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오직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 코알라는 행복하게 잎을 씹으며 새로운 서식지로 퍼져나갔다.
다른 대부분의 동물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호주의 수많은 먹이사슬이 붕괴했고, 약한 사슬은 멸종의 길을 걸었다.
세 번째 설명은
사냥과 화전 농업이 멸종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긴하지만
기후의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45,000년 전 호주에 닥친 기후변화는 생태계를 뒤흔들어 극히 취약하게 만들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생태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그랬던 것처럼 회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적 국면에 인간이 등장함으로써 가뜩이나 연약한 생태계를 심연으로 밀어넣었다.
기후변화와 인간의 조합은 대형동물에게 특히 파괴적이었다.
각기 다른 각도에서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여러 위협에 두루 적용될 훌륭한 생존전략을 찾기는 어려운 법이다.
추가 증거가 없는 한, 세 가지 시나링 중 어느 하나가 맞다고 결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만일 호모 사피엔스가 호주나 뉴질랜드로 내려가지 않았다면
그곳에 아직도 유대류의 사자, 디프로토돈, 대형 캥거루가 살고 있었으리라고 믿을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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