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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2권
20. 욕개
욕개부(欲蓋部)
[여기에는 세 가지 연(緣)이 있음]
20.1. 술의연(述意緣)
가만히 여러 경론(經論)을 살펴보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도(道)를 닦을 때에 모두들 이렇게 말한다.
“다섯 가지 탐욕은 바로 도를 장애하는 근본이니,
만약 그것을 끊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성인의 과위를 증득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을 알려고 하면 대략 세 가지로 기술할 수 있다.
첫째는 안의 다섯 가지 감관[根]이요,
둘째는 바깥의 다섯 가지 대상 물질[塵]이며,
셋째는 거기에서 생겨나는 다섯 가지 인식 작용이다.
이 세 가지를 말미암는 까닭에 능히 더러운 욕심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음이 훈련되어 순해지지 않은 사나운 코끼리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그런 코끼리를 타면 마음먹은 대로 가지 않고 성읍(城邑)을 멀리 벗어나서 텅 비고 넓은 들로 가는 등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처럼,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도 역시 이와 같아서 사람을 데리고 열반성읍(涅槃城邑)을 멀리 벗어나 나고 죽는 쓸쓸한 벌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아첨이나 일삼는 신하는 왕을 시켜 악한 짓을 하게 하는 것처럼
다섯 가지 감각기관도 역시 그와 같아서 늘 중생들을 시켜 한량없이 많은 악(惡)을 짓게 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못된 자식이 사장(帥長)과 부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온갖 악한 일을 짓는 것과 같이,
길들여지지 않은 다섯 가지 감각기관도 또한 이와 같아서 스승의 좋은 말과 가르침을 듣지 않고 무슨 악이든 다 짓지 않는 것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범부인 사람들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단속하지 못하여 항상 지옥ㆍ축생ㆍ아귀(餓鬼) 등의 해침을 받는 것도 또한 원수나 도적의 해로움이 착한 사람에게 미치는 것과 같다.”
또 『유교경(遺敎經)』에서 말하였다.
“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사람을 해치고 화를 초래하는 것은 그 재앙이 여러 대에 미쳐서 그 해(害)가 매우 무거우니 삼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까닭에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억제하고 따르지 않으며, 그것 지키기를 도둑을 지키듯이 한다. 그렇게 하면 가령 그것을 놓아주더라도 다 오래가지 못해서 그것들이 마멸(磨滅)됨을 보게 되리라.”
대체로 개(蓋)에 대하여 논하건대, 이것은 가리고 덮어버린다는 뜻이니 수행하는 이를 덮어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수행하는 이의 뜻과 성품을 어둡게 하고 침몰하게 하여 선정과 지혜가 밝아지지 못하게 하며 착한 사람을 덮어 없어지게 하나니, 이것은 도를 닦는 데에 곧 장애가 되기 때문에 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론(對法論)』에서 말하였다.
“이 개는 선한 성품을 분명하게 드러나지 못하게 하나니, 이것이 바로 개라고 한 뜻이며, 그 마음을 덮어 가리고 온갖 착한 성품을 장애하여 그로 하여금 작용할 수 없게 하므로 개(蓋)라고 말한다.”
앞의 다섯 가지 욕망은 바깥의 다섯 가지 대상 물질로부터 생겨나고 이 다섯 가지 개는 안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따라서 발생한다.
20.2. 오욕연(五欲緣)
[여기에는 따로 세 가지 연(緣)이 있음]
(1) 욕계고(欲繫苦)
대체로 논하건대, 다섯 가지 욕망이란 이미 그 뿌리가 있어서 곧 다섯 가지 욕망을 일으키고 중생들을 얽어매어 해탈할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범부인 사람은 다섯 가지 욕망에 얽매어 마왕 파순(波旬)으로 하여금 마음대로 데리고 가게 하나니, 그것은 마치 사냥꾼이 원숭이를 사로잡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선남자야, 비유하면 마치 국왕이 자신의 경계 안에 안주(安住)하면 몸과 마음이 다 안락(安樂)하지만,
만약 다른 사람의 경계에 이르게 되면 온갖 고통을 받는 것처럼
일체 중생들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능히 스스로 자신의 경계에 잘 머물러 있으면 안락함을 얻지만
만약 다른 사람의 경계에 이르면 곧 악마를 만나 온갖 고뇌(苦惱)를 받는다.”
자가 자신의 경계란 사념처(四念處)를 말하고
다른 사람의 경계란 다섯 가지 탐욕을 말한다.
다섯 가지 탐욕이란 남자와 여자의 몸 위에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느낌[觸] 따위가 바로 그것이니, 곧 이 다섯 가지 탐욕은 희망하고 반드시 누리려는 것이 평범한 이치이다.
다섯 가지 대상물질을 탐하여 집착하는 것을 욕망[欲]이라 하고
아울러 의식(意識)이 접촉하여 반연하는 경계를 법진(法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 대상물질[塵]을 바로 악마라고 말하지 않고 그것이 행해지는 곳에서 다시금 악한 도적[惡賊]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여섯 가지 큰 도적이 모든 인민(人民)들의 재물과 보살을 겁탈하는 것처럼
여섯 가지 대상물질인 악한 도적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의 좋은 재물을 겁탈한다.
마치 여섯 큰 도적이 만일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면 현재 그 집에서 소유하고 있던 것을 겁탈하되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아서 큰 부자로 하여금 졸지에 가난하게 만드는 것처럼
이 여섯 가지 대상물질인 도적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사람들의 감각기관에 들어가면 온갖 착한 법을 다 겁탈하여 착한 법이 이미 다 없어지면 가난하고 외롭게 되어 일천제(一闡提 : 齗善根)가 되고 만다.
그런 까닭에 보살은 여섯 가지 대상물질이 마치 여섯 큰 도적과 같다고 관찰 한다.”
(2) 욕장고(欲障苦)
무릇 논하건대, 욕과(欲過)라고 하는 것은 다섯 가지 탐욕의 폐마(弊魔)와 여섯 가지 대상물질의 악한 도적을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그 삿된 의혹[邪惑]은 부처의 성품을 혼미하게 하고 장애하는 것이라고 판단하셨다.
그러므로 『열반경』에서 말하였다.
“중생의 다섯 가지 인식 작용은 비록 일념(一念)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루(有漏)요, 또한 이것은 삿되고 전도(顚倒)된 것으로서, 모든 번뇌[漏]를 늘리고 키워서 모든 범부들이 빛깔에 집착하고 나아가 인식 작용까지도 집착하게 한다.
빛깔에 집착하기 때문에 탐내는 마음을 내고 탐내는 마음을 내기 때문에 빛깔에 얽매이고 나아가서는 인식 작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얽매이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얽매이게 되기 때문에 곧 나고ㆍ늙고ㆍ병들고ㆍ죽고ㆍ근심하고ㆍ슬퍼하는 큰 고통과 온갖 번뇌를 면할 수 없느니라.”
또 말하였다.
“만약 어떤 보살이 자신은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고 하면서 아무리 다시는 여인과 화합하거나 말을 하거나 희롱하거나 그 음성을 듣는 것조차도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도
남자들이 여자를 쫓아다닐 때 그것을 목격하거나 혹은 여자가 남자를 따라다닐 때 그것을 목격하면 문득 탐내고 집착하는 마음을 낸다.
이와 같은 보살은 그 탐욕의 법진(法塵)을 성취하여 청정한 계율을 훼손하고 깨뜨리며 범행(梵行)을 더럽혀서 그 계율을 잡되고 더럽게 하나니, 그는 청정한 계율을 구족(具足)했다고 할 수 없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갖가지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하는데, 노쇠해지는 모든 것 중에 여자로 인하여 노쇠해지는 것이 가장 나쁘다.
칼ㆍ불ㆍ천둥ㆍ번개ㆍ벽력ㆍ원수ㆍ독사 따위는 그래도 잠시나마 가까이 할 수 있지만,
아낌ㆍ질투ㆍ성냄 ㆍ아첨ㆍ아양ㆍ더러움ㆍ투쟁 ㆍ탐냄ㆍ질투 따위는 친근히 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여자와 소인(小人)의 마음은 천박하고 지혜가 얕아 오직 음욕만 친근히 하며, 부귀ㆍ지혜ㆍ명예 따위는 관찰하지 않고 오로지 나쁜 욕심만 실행하여 사람들의 선근(善根)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질곡(桎梏 : 차꼬와 수갑)ㆍ가쇄(枷鎻 : 형들과 자물쇠)ㆍ구금ㆍ결박ㆍ감옥 따위는 아무리 풀기 어려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오히려 풀기가 쉽지만,
여인의 사슬은 사람을 얽어매어 더러운 집착의 뿌리가 깊어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 온갖 폐단 증에서도 가장 중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게송과 같다.
차라리 뜨겁게 달구어진 쇠뭉치를
눈[眼] 속에서 서서히 굴릴지언정
더러운 마음으로써
삿되게 여색(女色)을 보지 않아야 하리라.
웃음을 머금고 갖은 교태를 부라면서
교만하고 수줍은 체하며
얼굴을 돌이켜 곁눈질을 하고
아름다운 말로 질투하고 시기하곤 하나니
요사스럽고 더러운 걸음걸이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음욕의 그물 펼쳐 놓으면
사람들의 몸이 모두 빠지고 마네.
앉거나 눕거나 가거나 서 있거나 간에
눈을 흘겨 보면서 아양을 부리나니
지혜가 엷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그만 거기에 취해 버린다.
큰 칼을 들고 달려드는 적(敵)
이것이야 그래도 이겨낼 수 있겠지만
여자라는 도적은 사람을 해치는데도
그것을 금지하지 못하는구나.
독기를 머금은 저 독사는
그래도 손으로 잡을 수가 있지만
사람들을 홀리는 여인들의 애정
부디 그것에 접촉해서는 안 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여인을 마땅히 보지 않아야 하겠지만
만약 그들은 꼭 보려고 하거든
반드시 어머니나 누이처럼 보아야 한다.
부디 자세히 관찰해 보아라.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메꾸고 쌓인 것이니
음욕의 불길을 끄지 않으면
마침내 그것에 다 타버리고 말 것이다.
여색의 허물도 이미 그러하지만 그 밖에 냄새ㆍ맛ㆍ느낌 따위도 으레 다 이와 같다.
일체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부터 영원히 나고 죽음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실로 모두가 여색(女色)의 결박을 풀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님이 되어 지혜의 눈이 없으니 나고 죽는 구덩이를 보고도 결국은 거기에 다 빠지고 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인(道人)이나 속인들은 탐욕의 근심거리를 관찰하지 않고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나니, 어느 때에 다시 돌아와서 이런 잘못을 면할 수 있겠는가?
마음은 항상 더러운 데 물들어서 잠시도 버리지 못하나니, 계율조차도 오히려 지키지 못하면서 어찌 선정과 지혜가 있어서 불성(佛性)을 보겠는가?
그러므로 『열반경』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악한 짓을 하고도 곧 후회하지 않으면
그것은 마치 우유가 곧 낙(酪)이 되는 것과 같고
또 마치 재로써 불을 덮어놓은 것을
어리석은 사람이 함부로 밟는 경우와 같다.
(3) 가욕고(呵欲苦)
『지도론』에서 말한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은 마땅히 다섯 가지 욕심을 꾸짖어야 한다.
‘슬프다. 중생들은 항상 다섯 가지 욕심에 시달림을 받으면서도 구해마지 않다가 장자는 큰 구덩이에 떨어져서 더욱 심한 고통을 받되, 마치 불로 옴[疥]을 지지는 것과 같느니라.
다섯 가지 탐욕이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은 마치 개가 마른 뼈다귀를 씹는 것과 같고,
다섯 가지 욕심이 투쟁을 더하게 하는 것은 마치 까마귀가 고깃덩이를 다투는 것과 같으며,
다섯 가지 욕심이 사람을 태우는 것은 마치 바람을 거슬러 횃불을 들고 가는 것과 같고,
다섯 가지 욕심이 사람 을 해치는 것은 마치 사나운 독사를 밟는 것과 같으며,
다섯 가지 욕심이 실속 없기는 마치 꿈 속에서 무엇을 얻는 것과 같고,
다섯 가지 욕심이 오래 가지 않는 것은 마치 임시로 잠시 동안 빌린 것과 같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다섯 가지 욕심을 탐내고 집착하며 죽을 때까지도 버리지 못하다가 후세(後世)에 이르러 한량없는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이 다섯 가지 욕심은 얻었을 때에는 잠깐 동안 즐거우나 잃어버렸을 때에는 크게 괴로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꿀을 바른 칼을 핥는 사람이 꿀 핥기만을 탐 하다가 혀들 상하는 줄도 모르는 것과 같다.’
그 다섯 가지 욕심이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 다섯 가지 일은 선가(禪家)에 직접적인 장애가 되는 것이니,
만약 선정을 닦으려는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만 할 것이다.
[이상 여기까지 세 문(門)은 다 다섯 가지 욕심을 관찰한 것이고, 이 뒤로 다섯 문은 특별히 다섯 가지 욕심을 꾸짖은 것이다.]
첫 번째는 색욕(色欲)의 허물을 꾸짖은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이 색욕 때문에 몸소 적국(敵國)으로 들어가 혼자서 음란한 여자인 아범바라(阿梵婆羅)의 방에 있었던 경우와 같다.
또 저 우전왕(優塡王)은 여색에 물들였기 때문에 오백 선인(仙人)의 손을 끊 은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 인연을 바로 색욕의 과실(過失)을 꾸짖은 것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는 성욕(聲欲)의 허물을 꾸짖은 것이다.
소리의 형상 같은 것은 멈추어 있지 않아서 잠시 들렸다가 곧 사라지고 만다.
어리석은 사람은 소리의 형상이 덧없는 것이어서 변하여 없어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음성(音聲)에 대하여 부질없이 즐겁다는 마음을 내어 이미 지나간 소리에 대하여 생각하고 집착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오백 선인의 경우와 같다.
그들이 산 속에 머물고 있을 때에 견 타라녀(臨陀羅女)가 설산(雪山)에 있는 어느 못에서 목욕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선인들은 그 노래 소리를 듣고 곧 선정(禪定)을 잃어버리고는 심취하여 열광석으로 미쳐 날뛰면서 자신의 폼을 가누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온갖 공덕을 잃고 그 뒤에 악한 세계에 떨어졌다.
지혜 있는 사람은 소리라는 것은 생겨나자마자 사라져서 앞의 소리와 뒤의 소리가 함께 하지 못하므로 서로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관찰하여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더러워지거나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사람은 모든 하늘의 음악으로도 오히려 혼란하게 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의 소리이겠는가?
이와 감은 따위의 갖가지 인연을 바로 성욕의 과실을 꾸짖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논(論)에서 말하였다.
“저 오백 명의 선언들이 날아다닐 때에 긴타라녀(緊陀羅女)의 노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집착하여 미치고 도취되어 모두들 신족(神足)을 잃어버리고 한꺼번에 땅에 떨어진 일과 같다.
또 성문(聲聞)들이 긴타라왕인 둔륜마(屯崙摩)가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하며 모든 법의 실상으로써 부처님을 찬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때 수미산(須彌山)과 모든 나무들이 다 흔들리고 대가섭(大迦葉) 등 여러 큰 제자들도 모두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면서 스스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천만(天鬘)보살이 대가섭에게 물었다.
‘당신은 가장 큰 덕이 있는 사람[耆年]으로서 두타(頭陀)를 행함이 제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억제하지 못합니까?’
대가섭이 대답하였다.
‘나는 하늘이나 인간의 어떤 욕심에도 마음이 기울어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보살의 한량없는 공덕의 과보 소리와 또 지혜로써 변화시켜 일으키는 소리는 참아낼 수 없답니다.
비유하면 마치 팔방(八方)에서 일어난 바람이 수미산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만약 겁이 다할 때에 부는 바람인 비람풍(毘嵐風)이 일어나 수미산에 불어오면 썩은 물처럼 되는 것과 같습니다.’
아수라의 거문고는 항상 저절로 소리를 내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여기엔 또한 산란한 마음이 없고 또한 거두어 들이는 마음도 없다.
이것은 복덕의 과보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법신(法身)보살도 이와 같아서 분별하는 것도 없고 또한 흩어지는 마음도 없으며 설법하는 모습도 없나니, 이것은 한량없는 복과 지혜의 인연 때문이니라.”
세 번째는 향욕(香欲)의 허물을 꾸짖은 것이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냄새에 집착하는 것은 그 죄가 적다”고 한다.
그러나 냄 새에 물들거나 집착하면 온갖 번뇌[結使]의 문을 열기 때문에 비록 또 백 년 동안 계율을 지켰다 하더라도 능히 끊어버려 한꺼번에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마치 어떤 아라한의 경우와 같다.
그 아라한은 항상 용궁(龍宮)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고는 그 발우를 사미(沙彌)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발우를 씻게 하였다. 그 발우 속에는 먹다 남은 밥알 몇 개가 붙어 있었다. 사마가 그 냄새를 맡아보니 매우 향기로웠고 그것을 먹어보니 너무나 맛이 있었다.
그는 곧 방편을 써서 스승의 승상(繩床) 밑에 들어가 상다리를 붙잡고 스승이 용궁으로 갈 때 승상과 함께 용궁으로 들어갔다.
용왕이 그 스승에게 말하였다.
“이 사미는 아직 도를 증득하지 못했는데, 왜 데리고 오셨습니까?”
스승이 말하였다.
“알지 못했습니다.”
사미는 음식을 얻어 먹고 또 용왕의 말까지 보았다. 그녀는 신체가 단정하고 묘한 향내가 나서 비할 데가 없었다.
사미는 마음 속으로 매우 애착하여 곧 나쁜 서원을 세웠다.
‘나는 마땅히 복을 지어 이 용왕이 살고 있는 궁전을 빼앗으리라.’
용이 말하였다.
“다음부터는 이 사미를 데리고 오지 마십시오.”
사미가 돌아온 다음부터 일섬으로 보시하고 계율을 지키면서 오로지 소원한 바를 갈구하면서 빨리 용이 되기를 원했다.
그 때 절 주위를 돌고 있었는데 발 밑에서 물이 나왔다. 그러자 스스로 반드시 용이 될 것임을 알고는 스승이 본래부터 살고 있던 못가로 가서 가사(袈裟)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못 속으로 뛰어들었고 곧 죽어서 큰 용으로 변하였는데, 복덕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곧 그 용왕을 죽이니, 온 못이 다 빨갛게 피로 물들었다.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스승과 여러 스님들이 그를 꾸짖었다.
그러자 사미가 말 하였다.
“내 마음은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마음의 모습도 이미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여러 스님들을 데리고 못에 가서 관찰하였다.
이와 같은 인연은 냄새에 집착하였기 때문에 생겨난 과실이다.
또 어떤 비구가 있었다.
그는 숲 속 연화지(蓮華池) 주위를 거닐다가 연꽃 향기를 받고 코로 느낀 것을 마음 속으로 집착하였다.
못에 있는 산이 말하였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저 숲 속에서 선정에 들어 앉아 있던 그 자리를 버리고 내 향기를 도적질합니까?
향기를 집착하기 때문에 모든 번뇌[結臥]가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못 속에 들어가 그 꽃을 많이 따고 뿌리도 캐고 줄기도 잡아당겨 낭자하게 해놓고 가버렸다.
그런데도 못의 신은 아무런 말 없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비구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너의 연못에 있는 꽃을 다 망가뜨렸는데도 너는 전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단지 못가를 거닐었을 뿐인데 , 어째서 갑자기 나를 보더니 향기를 도적질했다고 꾸짖는가?”
못의 신이 말하였다.
“세간의 악한 사람들이야 늘 죄와 번뇌[罪垢]의 더러움 속에 살고 있으면서 저 깨끗하지 못한 곳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므로 난 그들과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 같은 사란은 선정을 닦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향기에 집착함으로써 그대의 좋은 일음 그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꾸짖었던 것입니다.
비유하면 마치 흰 천은 선명하고 깨끗하므로 거기에 이물질이라도 묻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보지만 저 악한 사람은 검은 옷에 검은 점을 찍은 것과 같아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데 어느 누가 따지겠습니까?”
이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 인연을 바로 향욕의 과실을 꾸짖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 번째는 미욕(味欲)의 허울에 대하여 꾸짖은 것이다. 마땅히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나는 단지 좋은 맛만 탐하고 집착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죄의 고통을 당하되, 구리 녹인 물을 입에 머금고 타오르는 철환(鐵丸)을 삼키게 될 것이다.
만일 음식을 잘 관찰하지 않고 즐기는 마음으로 굳게 집착하면 깨끗하지 못한 벌레의 세계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어떤 사마의 경우와 같다.
그는 마음 속으로 항상 낙(酪)을 좋아했다. 모든 단월(檀越)들이 스님에게 낙을 공양할 때면 이 사미는 늘 그가 남긴 것을 얻어 먹고 마음속으로 애착을 느껴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버리지 않다가 목숨을 마치 고 난 뒤에, 이 남은 낙(酪)의 병(甁) 속에 태어나게 되었다.
사미의 스승은 아라한이 되어 스님들이 낙을 나눌 때에 말하였다.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하여 이 애락(愛酪)사미를 다치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 스님들이 말하였다.
“이것은 벌레일 뿐인데 무슨 까닭에 애락사미라고 말씀하십니까?”
스승이 대답하였다.
“이 벌레는 본시 내 사미였는데, 단지 남겨진 낙에 대하여 탐내고 애착하는 마음을 내었기 때문에 이 병 속에 태어난 것이라오.”
스승이 낙을 분배받자 마침 그 안에서 벌레가 나왔다.
스승이 말하였다.
“낙을 사랑하던 사람아, 너는 어찌하여 여기에 왔느냐?”
그러고는 곧 낙을 주었다.
또 한 국왕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월분왕(月分王)이었다.
그에겐 태자가 있었는데, 그 태자는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고 집착하였으므로 왕의 동산지가가 날마다 좋은 과실을 보내오곤 하였다.
동산 속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 위에는 새가 새끼를 낳아 가르면서 항상 향산(香山)으로 날아가 맛있고 향기로운 과일을 따가지고 와서 그 새끼에게 먹여 길렀다. 한 번은 여러 마라 새끼들이 서로 다투다가 과일 한 개를 땅에 떨어뜨렸다.
동산지기가 이른 아침에 나갔다가 이 과일을 보고 그 범상치 않은 과실에 이상한 느낌이 늘어 곧 왕에게 보냈다.
왕은 그 과일의 특이한 향기와 빛깔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태자가 그것을 보더니만 왕에게 달라고 졸랐다. 왕은 그 아들을 사랑하였으므로 곧 그에게 주였다. 태자는 그것을 먹어보고는 그 과일에 서 맛을 얻어 매우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 심히 애착한 나머지 남마다 그 과일을 얻고 싶어 하였다.
그래서 왕이 곧 동산지기를 불랴 그 과일을 구하게 된 동기들 물었다.
동산지기가 말했다.
“이 과일은 종자가 따로 없고 땅에서 주운 것이라서 어디서 난 것인지 유래조차 알 수 없습니다.”
태자는 울면서 아무것도 먹지 않자 왕은 동산지기를 재촉하고 책망하였다.
“너는 어디서든지 그 과일을 구해 오도록 하라.’
동산지기가 과일을 얻었던 곳에 이르러 새 둥지를 바라보다가 새가 그 과일을 물어오는 것을 알고는 몸을 가라고 살금살금 나무 위로 올라가서 엿보다가 빼앗아 오곤 하였다.
그는 어미새가 그 과일을 물고 왔을 때에 곧바로 과일을 빼앗아 보내기를 날마다 이와 같이 하였다.
그러자 어미새가 화가 나서 향산에서 독이 있는 과일을 물고 왔다. 그런데도 그 향기나 맛, 그리고 빛깔은 먼저번 과일과 꼭 같았다.
동산지기는 그 과일을 빼앗아 왕에게 보냈고 왕은 그것을 태자에게 주었다. 태자는 그것을 먹고서 오래지 많아 온몸의 살이 썩어 문드러지더니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와 같은 갖가지 연연은 바로 미욕(味欲)의 허물을 꾸짓은 것이다.
다섯 번째는 촉욕(觸欲)의 허물을 꾸짖는 것이다.
이 접촉은 곧 번뇌[結使]의 원인이요 이것은 마음을 얽어매는 근본이다. 왜냐 하면 나머지 네 정(情)은 각각 당연히 구분되지만, 이것은 온몸으로 집착하고 그것을 버리기란 어렵기 때문에 항상 중죄(重罪)를 짓게 된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본생(本生 : 全生)의 인연을 말씀하셨다.
“바라내국(波羅奈國) 산 속에 어떤 선인(仙人)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가을날 달밤에 요강 속의 소변을 씻어내다가 암수 사슴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곧 음심(婬心)이 발동하여 요강 속에 정액을 흘렸다. 암사슴이 그것을 먹고 즉시 새끼를 배었고, 달이 차자 새끼를 낳있다. 그 모습은 사람과 비슷하였는데 오직 머리에 뿔 하나가 있는 것과 그 발만이 사슴과 흡사할 뿐이었다.
사슴이 산고가 있자 선인이 살고 있는 암자 곁에 이르러 새끼를 낳았는데, 자기 새끼를 보고는 사람이라 여겨 선인에게 맡기고 떠나갔다.
선인이 나와 이 사슴 새끼를 보았을 때 저절로 본래의 인연이 기억나서 그것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고는 데려 다가 양육(養育)하였다.
그 사슴의 나이가 들자 부지런히 학문을 가르쳐서 열여덟 가지 대경(大經)을 통달하고, 또 좌선(坐禪)을 배우며 네 가지 무량심(無量心 : 慈ㆍ悲ㆍ喜ㆍ捨)을 수행하여 다섯 가지 신통(神通)을 증득하였다.
어느 날 산에 올라갔다가 큰 비를 만나 진흙탕에 미끄러졌는데, 그 발이 불편하여 땅에 쓰러지면서 물병[軍持]도 깨고 그 발까지 다치게 되었다. 그는 곧 크게 화를 내어 물병에 물을 담고 주문을 외워 비가 오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선인의 복덕과 모든 용이나 귀신들까지도 모두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비가 오지 않는 까닭에 오곡(五穀)과 오과(五果)가 다 나지 못했고 인민들이 궁핍(窮乏)하여 더 이상 살아갈 길이 없었다.
바라내왕(波羅奈王)은 근심하고 시름하고 괴로워하다가 모든 대관(大官)들을 모아놓고 비에 대한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어떤 현명한 신하가 의견을 말하였다.
‘전해오는 말을 들으니 산 속에 어떤 선인이 있는데 뿔이 하나 달린 선인이라고 합니다.
그 선인은 발이 불편하기 때문에 산에 오르다가 땅에 미끄러져 발을 다치고는 화가 나서 열두 해 동안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광이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만약 열두 해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는 끝장날 것이고 또한 백성들도 없게 될 것이다.’
왕은 곧 사람들을 모집하였다.
‘만일 누구든지 저 선인으로 하여금 다섯 가지 신통력을 잃게 하고, 내 백성이 되게 히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나라의 반을 나누어 주어 다스리게 하리라.’
그 나라에는 어떤 음녀(婬女)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선타(扇陀)였다.
그녀는 모습이 단정하고 큰 부자였는데, 이 모집에 응해 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 선인은 사람이 아닙니까?’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그는 선인(仙人)의 자식입니다.’
음녀가 말하였다.
‘만약 그가 사람이라면 내가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고는 곧 금 소반을 가져다가 좋은 보불을 담아 가지고 왕에게 말하였다.
‘제가 반드시 저 선인의 목을 타고 돌아오겠습니다.’
음녀는 즉시 오백 대의 수레를 구해다가는 오백 명의 미녀를 태웠고 오백 대의 사슴 수레에는 갖가지 환희환(歡喜丸)을 실었는데, 그 환희환은 온갖 약초를 조합하여 만들어가지고 거기에 채색까지 칠하여 여러 가지 과일처럼 보이게 했다. 그러고는 갖가지 큰 위력을 지닌 좋은 술을 준비했는데 색깔과 맛이 물과 같았다.
그녀는 나무 껍질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숲 속을 걸어갔는데, 그 형상이 마치 선인과 같았다. 선언이 살고 있는 압자 곁에다 초암(草菴)을 따로 잣고 그곳에 머물렀다. 일각(一角)선인이 나와서 돌아다니다가 그것을 발견하자 모든 여인들이 다 나와서 맞이하고 좋은 꽃과 미묘한 향을 선인에게 공양하니, 그 선인 이 크게 기뻐하였다.
모든 여인들은 고운 말씨와 공경하는 말로 선인의 안부를 묻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좋은 자리에 앉게 하였다. 그러고는 맛있고 깨끗한 술을 권하면서 그것을 맑은 물이라 하고 환희환을 주면서 그것을 과일이라고 하였다.
그는 그것 들을 실컷 먹고 모든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이렇게 맛있는 과일과 좋은 물은 처음 먹어본다.’
모든 여인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일심(一心)으로 선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에게 준 것입니다.
우리는 소원한 공덕으로 이 좋은 물과 맛있는 과일을 얻었답니다.’
선인이 여러 여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어떻게 피부색이 그리도 곱고 또 살까지 그렇게 쪘는가?’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이런 맛있는 과일을 먹고 이처럼 좋은 불을 마셨기 때문에 이와 같이 살이 쪘답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선인에게 말하였다.
‘당선은 어찌하여 여기에 머물러 살려고 하시지 않습니까?’
대답하였다.
‘나도 또한 여기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여인들이 말하였다.
‘우리 함께 목욕이나 합시다.’
선인이 곧 좋다고 허락하였다. 그리고 여인들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자마자 마음이 동요되었고, 곧 여러 여인들과 함께 서로서로 씻어주다가 애욕이 더욱 발동하여 마침내 음사(婬事)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곧 신통을 잃었고 하늘 에서는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큰 비가 내렸다.
그들은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술을 마시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이레가 지난 뒤에 술과 음식이 다 떨어지자 선언은 산에서 나는 물을 마시고 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서 먹었는데 , 그 맛은 그리 좋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먼저 것을 찾았다.
그녀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이미 다 먹었습니다.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가십시다. 여기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선인이 말하였다.
‘뜻을 따르겠다.’
그리고는 곧 그녀와 함께 떠나 성(城)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는 곧 길바닥에 누우면서 말하였다.
‘나는 피곤하여 더 이상 갈 수가 없습니다.
선인이 말하였다.
‘그대가 도저히 갈 수 없다면 내 목 위에 타라. 내가 너를 태우고 가겠다.’
그녀는 먼저 편지를 보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저의 지혜와 능력을 보러 오십시오.’
왕은 수레를 장엄하게 꾸미도록 직명하고는 그 수레를 타고 나가 그 선인의 모습을 보고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그녀가 왕에게 아뢰었다.
‘저는 방편의 힘 때문에 지금 이마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선언은 이제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그로 하여금 이 성 안에 살게 하시고 잘 공양하고 공경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왕은 그 선인을 대신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선인은 성 안에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봄이 점점 야위어 갔다.
그는 선정의 즐거운 마음을 기억하고는 세상의 욕심이 싫어졌다.
왕이 선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왜 즐거워하지 않고 몸이 점점 야위어가는가?’
선인이 왕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비복 다섯 가지 욕망을 얻었으나 늘 숲 사이의 한가롭고 조용함과 여라 선인들과 노닐던 곳이 저절로 생각나서 그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은 스스로 생각하였다.
‘만약 억지로 그의 뜻을 어겨 그 마음에 고통을 주게 되면 그 고통이 극심해져 곧 죽고 말 것이다. 본래에는 가뭄의 걱정을 없애기 위해 그랬을 뿐인데, 이제 그 뜻을 이마 이루였으니 장차 무슨 인연으로 억지로 그의 뜻을 빼앗겠는가?’
그라고는 곧 그를 놓아 보냈다. 선인은 이미 산 속으로 돌아와서는 정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다섯 가지 신통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의 그 뿔 하나 달린 선인은 곧 바로 지금의 내 몸이었고, 그 음녀는 바로 지금의 야수다라(耶輸陀羅)였느니라.
그 때 그녀는 환희환(歡喜丸)으로 나를 유혹하였었고 나는 번뇌[結]를 끊지 못했기 때문에 유혹에 빠졌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환희환으로 나를 유혹하려 해도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일 때문에 알아야 한다. 부드럽고 유연한 감촉의 법은 능히 저 선인도 동요시켰거늘 더구나 어리석은 범부이겠는가?”
이와 같은 따위의 갖가지 인연을 바로 촉욕(觸欲)의 과실을 꾸짖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다섯 가지 탐욕에 대하여 잘 꾸짖으면 곧 다섯 가지 덮개[蓋 : 煩惱]를 제거할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