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대숲을 찾아서
이화엽|본지 편집국장
도시의 봄은 머뭇머뭇 아직은 서툴기만 하다. 봄이라 하는 기억의 실마리를 어디서 풀어야 할까, 여리디여린 풀잎, 씨앗이란 봄을 시작하려면 행여 그들의 생명이 다치지 않도록 지난봄의 일기장이라도 끌고 나와야 한다.
아니 봄이라는 것은 날것 그대로의 현장성일 것이다. 그래서 싱싱한 채 생생한 그것들을 삶지도 익히지도 말고 그대로 한 입 베 물어와 겨우살이 허기를 채워야만 하지 않을까 한다.
순천에 살면서 자주 순천만을 내다보는 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나무의 고향 담양에 가면 봄을 푸릇푸릇 갈무리 하는 사람들을 만날지 모르니 가보라는 것이었다. 날것의 봄이라, 카메라와 운동화를 챙기고 이른 아침의 주말을 싸서 배낭에 넣는다.
생각만으로 그리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을 만나고 무릇무릇 떠돌기 시작한 이 봄을 만질 것인가,
봄이여 푸른 날것이여!
->담양 지도 1,고속도로 사진2
남도로 가는 길은 높낮이가 없는 고속도로와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됐다. 조금은 느리게 더디게 오려는 봄을 읽어가려면 운전대를 느슨하게 풀어야만 할 것이다. 진주성과 하동을 지나고, 마침 함께 한 작가는 평사리의 추억을 한소쿠리 꺼내오기도 했다. 고즈넉한 악양리 차밭과 너른 지리산자락 아래 산새가 건강한 이유는 그들이 섬진강을 곁에 둔 까닭이라 했다. 머잖아 섬진강가로 매화가 수런수런 봄을 풀어낼 것이라고 그는 말하기도 했다.
느리게 읽기 더디게 흘러가기
->하동 섬진강 사진 찾기
어느새 겨울을 잊고 있던 것일까, 들추고 왔던 외투의 기억이 없다.
담양 시외버스터미널을 먼저 찾았던 건 어딘가로 떠나거나 돌아오는
담양사람들을 먼저 보고 싶은 순전히 개인의 취향이었다.
담양담양 담양스럽게 아담한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분조분 걷거나 도시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꽃집에서 길가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의 외출이 한결 여유로워 보인다. 얼핏 뒤를 보니 그들 곁으로 숱이 많은 대나무 숲, 도시길거리에서 휘엉청 서성인다. 대숲과 사람이 어울렸던 도시는 그래서 작은 마을을 닮아 있었다.
마치 담양을 지키는 수문장 대숲을 향해 인사라도 반듯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매우 높은 키의 대나무 어른 숲 앞에 서서 이방인은 잠깐 여행의 속내를 털어 놓기도 한다.
->담양 시내 입구 사진1,2
그렇듯이 담양에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외로 돌리면 가장 먼저 한국 대나무 박물관이 눈에 띄는데 이곳에 먼저 가서 대나무의 안부부터 챙겨야 할 것 같았다. 전국 유일의 죽제품 주산지가 담양이라면 죽세공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했을 것이다. 잠시 일행은 그곳에 들러 대나무의 다양한 면모를 관찰하고 관람한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참으로 많이 빚고 만들어 사용했던 옛 선인들의 지혜가 읽혀졌다. 대나무는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나지만 너무 더우면 물러지고 너무 추우면 잘 부러지므로 기후조건이 알맞은 담양에서 가장 잘 자란다는 향토해설사의 설명을 듣는다. 그래서 600여 년 전부터 담양 죽공예품이 이름났던 것이다. 참빗과 죽부인, 고구마나 곡물을 담아두었던 저장고, 문짝 방석 등등의 공예품을 만나고 밖으로 나오니 대부분 마을의 배경은 대나무로 담장이 우거져 있었다.
대나무 박물관, 박물관 앞집에서
->박물관 사진 1,죽세공예품 2,3
담양의 명물인 대통밥과 떡갈비를 맛보고 다음일정을 그려야 할 것 같았다. 고속도로를 무려 3시간이상 달려오면서 휴게소의 맑은 커피 한잔이 전부였으니 배고픔이 밀려오는 건 당연했다. 벌써 시간은 늦은 오후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박물관 앞집'이란 상호가 입안에서 편안하게 발음 되어 흘렀다. 정말 박물관 앞에는 ‘박물관 앞집’이 있었던 것이다.
넉넉한 마당과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드넓은 식당 안엔 단체손님들로 가득 매우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미리 예약이 되어 있었으므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 들어갔다. 대나무박물관에 가서 의식주의 식자를 뺀 대나무의 전부를 체험했다면 이곳 박물관 앞집에선 대나무 재료를 써서 만든 음식을 다양하게 맛 볼 수 있었다. 대통밥 정식이었다.
들깨에 버무린 죽순을 중심으로 각종 나물무침, 개펄에서만 난다는 토화젓과 반찬 가짓수는 대체로 간이 알맞고 자극이 없어 부드러웠다. 특별한 것은 죽순회와 대통에 담긴 대통주였다(죽통주라고도 한다). 유난히 맑은 피부에 환한 웃음과 상냥한 말씨로 일행을 맞아 주었던 서정숙씨(매니저)는 죽통주는 물론 죽초액에 대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미리 약초와 약재를 넣어 담근 술을 말갛게 걸러내고 주사기로 이를 흡입한 술이 대통주라면서 직접 작은 망치를 들고 개봉해 보여 주셨다. 실온에 1개월이상 숙성하고 중요한 건 공기가 안 통하게 밀봉해 두는 것이다. 대나무의 독특한 향이 그윽하게 우러나는데 대나무의 부드러운 속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대통밥은 먹고 나서 필요하면 가져가도 된다고 해 화분이나 예쁜 연필꽂이를 해도 괜찮겠다 싶었지만 어느 작은 마을 유치원에서 가져다 아이들 학습용으로 쓴다고 하기에 챙겨오지 않았다.
->박물관 앞집 1,2,3,4
아무래도 담양의 소쇄원을 놓치고 가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기가 곤란할 것 같았다. 소쇄원.
소쇄원으로 가는 길엔 메타쉐콰이어가 멀리서 온 손님을 친절하게 맞아 준다. 총천연색으로 사계절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한다는 메타쉐콰이어는 이제 연둣빛 봄을 살찌우기 위하여 겨우내 야윈 잎을 바람에 씻어내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거리 숲" 으로 그 운치를 이미 인정받고 있기도 한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숲길에서 잠시 마음을 서성인다.
소새원 입구에서 만나는 건 역시 울창한 대나무 숲이다. 사람의 마을은 드물고 저 원림 안의 대숲바람만이 넉넉했다. 옛 선비들의 정신과 심상이 아니었을까, 소쇄원 안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는데 둘러보는 광풍각이나 제월당, 우물 정원을 산책하면서 선비들은 지덕을 쌓기도 했으리라.
푸르디 푸른 봄, 바람에 흠칫 묻어나고
->메타쉐콰이어 거리1 소쇄원 입구2 안의 풍경 2,3
다시 도시로 돌아오기 위하여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대숲에서 마셨던 바람이 우릴 따라오는가 싶어 자꾸만 뒤를 돌아다본다. 아직 봄이 이르다고 말한 도시에 가거든 저들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 날것의 상징은 푸르디푸른 봄바람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댓잎 사이사이에서 소삭거리던 여린 봄바람 흠칫 옷깃에 묻어왔다.
봄이여 푸른 채 날것이여!
월간 '좋은만남 '4월호
첫댓글 예원 님의 세세한 안내로 앉아서 전통이 숨쉬는 담양을 자알 경험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만남'의 승승장구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