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하는 혼 (14) 제주대학교 조문부 前총장.hwp
공명하는 혼 (이케다SGI회장 대담록)
제14회 제주대학교 조문부 前총장
노고야말로 지도자의 조건
인간성이야말로 지성의 토대
조문부 박사는 대인배의 풍격을 갖고 있다. 공격의 칼날도 무뎌지게 하는 온화한 웃는 얼굴 속에 강철 같은 신념을 품고 있다.
“저는 세계 평화와 인간애를 위해 자애를 품고 행동하는 이케다 선생님의 모습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한번 맺은 우정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신의(信義)를 지닌 사람이다.
지난 9월 19일, 박사는 간사이국제공항에 내렸다. 박사 특유의 ‘웃는 얼굴’은 그대로였다.
곧바로 초가을이 한창인 오사카 가타노로 갔다. 간사이소카(創價)학원 방문은 1998년 그리고 2005년에 이어 세번째다.
박사는 상냥하면서도 예리한 눈동자로 학원생과 대화했다.
“노고가 바로 인생의 보배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세요. 인류사회의 과제를 여러분의 양어깨에 짊어지고 위대한 사명을 이루길 기원하겠습니다.”
한국의 국립제주대학교 총장을 맡았던 박사는 소카학원과 소카대학교를 ‘인간교육’의 이념을 공유하는 ‘형제학교’라고 부른다.
소카대학교와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한 지 16년이 되었다.
두 학교는 해마다 유학생을 교환한다. 박사는 제주대학교에서 어학연수가 열릴 때면 소카대학교 학생에게 SGI 회장과 맺은 우정 그리고 한일우호의 중요성 등을 전했다.
박사는 지인의 소개로 받은 책 한권을 읽은 것을 계기로 창가교육의 창립자 이케다 SGI 회장을 알았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맞선 마키구치(牧口) 초대 회장, 도다(戶田) 제2대 회장의 불굴의 신념에 깊이 감명 받았고 한국을 ‘문화 대은의 나라’라고 하며 한일우호의 길을 청년에게 말하는 SGI 회장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1998년 3월 18일, 소카대학교에서 SGI 회장과 첫 회견, 전부터 알던 동지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사는 “이케다 선생님은 생각했던 대로 일본인이 아니라 세계인이었습니다. 세계의 지도자였습니다” 하고 회상했다. 회견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케다 선생님이 제창하는 인간주의가 바로 인류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기의 ‘평화의 섬’을 목표로 하는 제주도에 그리고 우리 대학교에 꼭 와주세요!”
지난 9월 21일, 조문부 박사는 소카대학교를 방문해 “진심 어린 환영에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위대한 사람이 되세요” 하고 환영하는 학생들에게 답했다. 학생들 중에는 제주대학교에서 온 유학생도 있었다.
SGI 회장은 다음해 1999년 5월 16일, 아름다운 보배의 섬 제주도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조문부 박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을 지켰다.
17일, 제주대학교는 SGI 회장에게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제주대학교가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제1호 명예학위기였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반일감정으로 일본인에게 수여하는데 있어 신중한 교원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총장인 조문부 박사는 SGI 회장의 사상과 행동을 정중하게 이야기했다.
“이케다 선생님 같은 사람에게 명예박사학위를 드릴 수 있는 일은 우리에게 영광이지 않습니까.”
박사의 열정과 논리 앞에 신중론은 사라진다. 학교내 기관이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한국 정부의 교육부(당시) 승인을 거쳐 역사적인 명예박사학위 수여가 실현되었다.
17일 수여식과 축하 만찬회 그리고 18일 답례연, 박사는 세번이나 단상에 섰다. 축하 만찬회에서 “명예학위기 수여는 이케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인류의 문화·교육방면의 교류 추진’을 끝까지 주장하시고 그것을 중심축으로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남긴 커다란 발자취”라고 말했다.
◇
SGI 회장은 말한다. “조문부 박사의 인생의 발자취는 그 자체가 많은 청년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었습니다.”
1932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박사의 집안은 농사를 지었다. 일본의 착취로 땅과 물자를 모두 빼앗겨 생활은 어려웠다.
드디어 맞이한 1945년 8월 15일 ‘광복’. 그러나 1948년 섬에서는 ‘4·3사건’이 갑자기 일어났다. 남북분단에 반대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제주도 도민은 무력진압으로 8만명 이상이 사상했다. 계엄령으로 학교는 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박사는 초등학교를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중학교 진학을 한번 포기했다. 날마다 보초를 서며 짧은 휴식시간에는 책을 펴서 공부해 1년 반만에 중학교 3년 동안 배울 강의록을 끝냈다.
조국의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1950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러한 속에서 검찰청 급사(給仕) 등을 하면서 공부해 명문대학교인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박사는 어렵게 공부하는 속에서 생각했다. 왜 지도자는 고뇌에 빠진 민중을 구하지 않는 걸까. 민중을 슬픔으로 이끄는 것은 진정한 지성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박사는 말한다.
“지도자는 노고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으로 노고한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박사는 SGI 회장과 대담집 두 권을 발간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인물’이 지녀야 할 요건에 관해 박사의 생각은 명쾌했다.
“인류사회에 진력하기 전, 그 과정에서 ‘자신의 노고에 지지 않고 이기는 사람’입니다.”
‘창조력이 넘치는 인재’의 육성을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인간성입니다. 애정입니다. 감정이 바로 이성이나 지성의 움직임을 뒷받침합니다. 어떠한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으로 진정한 창조력이 솟아나지 않을까요.”
어렵게 공부한 청춘을 보냈기 때문에 고향에서 교육의 길을 걸으면서도 힘들어하는 학생을 보면 가만있을 수 없었다. 젊었을 적에는 월급의 반을 빈곤한 학생의 학비로 보태주었다.
서울에서 제주도로 소개(疏開)한 학생의 부모를 대신해서 1년 동안 숙식을 함께한 일도 있다. 그 학생이 나중에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교육부장이 되어, 1997년 박사의 제주대학교총장 취임식에 달려와 축사를 말한 일화도 유명하다.
SGI 회장은 ‘최고 인격의 교육자’가 박사이고 ‘감사하는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저는 처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박사처럼 늘 원점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진정한 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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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1일, 소카대학교에서 열린 ‘창가교육동지의 모임’에서 조문부 박사는 강연했다.
박사는 졸업생 수천명이 기다리는 기념강당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오늘은 이케다 선생님에 대한 넘치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강연은 약 30분 동안 이어졌고 모두 일본어였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졌다.
“이케다 선생님께서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인류사회의 일원으로서 인간의 가치를 느끼고 그 가치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일이 바로 생명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한 늘 이케다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만약 제가 죽은 후에 영혼이 남는다면 영혼이 남아있는 한 선생님께 감사와 진심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우정만큼 아름답고 존귀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박사의 말이 그리고 웃는 얼굴이 그렇게 가르치는 듯했다.
◆ 조문부
1932년 12월 13일, 한국 제주도에서 태어남. 서울대학교 졸업. 국립제주대학교 교수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제주대학교 총장을 맡음.
현재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정치학 박사. 도쿄대학교 객원연구원, 미국 예일대학교 객원연구원, 한국지방자치학회부회장 등을 역임. 국민포장을 수장.
‘법과 공실’ ‘한국지방자치연구’ 등 저서. 이케다 SGI 회장과 ‘희망의 세기를 향한 도전’ ‘인간과 문화의 무지개 다리’ 대담집 두권을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