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제 짐을 쌀 때가 되 가고 있어 우선 버릴 것들을 버리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쓸데없는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책상 서랍 속에 펜과 볼펜이 열 개가 훨씬 넘는데 오래 안 써서 이젠 나오지도 않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밖에 많은 잡동사니들을 정리해서 버려야하는데 왜 버리기가 아까운지 선뜻 휴지통에 넣어지질 않습니다.
책도 많이 버려야합니다. 해마다 참고서들은 다 버렸는데도 아직 책상 위에 여러 권이 꽂혀 있어 그것을 정리했습니다. 읽지도 않는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는데 그걸 언제 읽겠다고 그렇게 가지고 있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져 올 것도 몇 권 있어서 집에 와서 또 버릴 책을 정리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책이 책장에 가득합니다. 제가 읽지 않는 책이라면 다른 사람이 읽을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수십 권의 책을 꺼내어 묶어서 내어 놓고 있습니다.
어떤 책들은 여러 번 읽어서 표지가 반질반질한 것도 있고 어떤 책들은 한 번도 읽지 않은 것들입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받아 놓았던 다른 분들의 석사, 박사 학위 논문을 보니 옛날 생각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제가 전공한 것이 아니면 그 내용의 1/10도 알지 못하는 것들인데 그게 무슨 전리품이나 되는 것처럼 책꽂이에 빼곡하게 장여놓고 자랑스러워했는지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은 다 빛이 바랜 이야기들인데 학위를 받기 위해 그 논문을 쓰느라 쓰는 사람들은 엄청 힘이 들었던 것인데 검은 색 딱딱한 표지 속의 글자를 보니 예전에 타자로 쳐서 인쇄를 한 그 글자들이 왜 그렇게 낯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툭하면 정치인들 ‘논문 표절’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받은 논문들은 그런 얘기가 절대 나오지 않을 것들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석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았던 논문도 먼지만 잔뜩 뒤집어쓰고 책꽂이에 꽂혀 있어 오늘 다 정리해서 버렸습니다. 그때는 그걸 남에게 주는 것을 무척 아까워했던 것이지만 지금 보니 초라하기 짝이 없고 촌스런 것이 제가 이런 책을 다 내었나 싶습니다.
많은 시집들, 소설, 수필, 교양서적,,, 그거 다 책꽂이만 차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진작 버렸다면 이사할 때 힘이라도 덜 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1년은 조금 짧다고 생각한다면, 3년 동안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책들은 집에 있으나마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책들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오늘 들었습니다.
예전엔 서울 집집마다 ‘장식용 책장’이 거실에 있고 무슨 금박을 입힌 세계문학전, 한국문학전집 등이 세트로 들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집들이 없을 가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선배 선생님이 당신이 소장하고 있는 5000여 권의 책을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날마다 고민이라고 하시는데 그 책들은 저처럼 간단하게 버릴 책이 아니라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이제 꼭 필요한 것, 꼭 쓸 것이 아니라면 버리는 것도 삶을 낭비하게 않게 만드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