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9일 연중 제4주일>
‘세상’을 향한 선전포고
사람들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라고들 묻는다. 그것은 자기가 사는 이유를 찾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까닭이다. 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인지 궁금해할까? 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할까? 물론 자기를 아는 것은 삶에 관한 질문임과 동시에 세상에 관한 질문인데, 왜 사람은 이런 질문 속에 있는 걸까?
‘나’라고 하는 ‘의식’(자의식)을 가진 인간에게 자기 존재에 관한 질문, 삶과 의미에 관한 질문은 어쩌면 당연한 질문이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매력적인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아무리 회피하고 살아도 죽음을 앞둔 누구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사는가?’라고 자신에게 묻고,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물으며 그 답을 찾아 헤맨다. 어쩌면 인간의 온갖 번뇌도 이런 질문을 피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부추기는 욕망대로 살고 싶기도 하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그 까닭을 찾아 살고 싶기도 한 인간의 두 마음에서 온갖 번뇌는 피어오른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는 세상 사는 것이 두렵고 버겁고 힘들다. 또 어떤 이는 세상을 피해 도망쳐버린다. 요즘 ‘자연인’이 증가하는 추세도 이를 반영한다. 세상에 푹 젖은 ‘세속인’의 삶보다는 ‘자연인’이 낫다고 할지 모르지만 둘 다 세상에 굴복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오늘 복음은 그 유명한 행복 선언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자기 전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본다. 매우 훌륭한 결단이요, 행동이다. 그러나 더 훌륭한 행동은 마음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이다. 세상의 재물에 의지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서 재물이란, 재산, 명예, 학벌 등 여러 의미가 있다.
‘슬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세상에서 위로받는 사람들은 슬프지 않을 것이다. 이미 받을 상을 받았으니 그들은 세상이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언제나 존재했고 ‘아웃사이더’였다.
‘온유한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뜻밖의 ‘땅’이 나온다. ‘땅’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약성경에는 ‘약속의 땅’이 나온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땅’을 물려받는다. 그리고 그 ‘땅’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신다. 강직한 사람은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겠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일 것이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단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 모두 이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의로움이요, 하느님의 정의다. 물론 벗이나 민주화, 국가와 사회 역시 하느님의 뜻 속에 포함된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급기야 ‘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는 사람들’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ㄴ)
요약하자면, 세상을 쫓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뜻을 좇으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가난에 쪼들리고, 슬퍼 울며, 아무것도 차지하지 못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이 실상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온갖 사악하고 간악한 생각과 방법으로 세상을 차지하는 사람들보다 의롭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실상은 인생을 잘 사는 것이다. 세상 물질에 세속화되지 않고 불의한 방법으로 남을 착취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의를 위하여 박해받을 줄 알면서도 피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하느님의 사람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예수님의 제자와 다를 바가 없으니 얼마나 복된 일인가? 지금 당장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지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이 전부가 아닐진대 어찌 지금 당장만 보고 살아가겠는가?
많은 사람이 세상을 두려워한 나머지 세상에 굴복하거나 세상에서 도망친다. 세상에 굴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과 숭고한 생명을 세속의 보물을 위해 제물로 바치는 꼴이다. 그들은 ‘자기’를 버리고 세상이 주는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누린다. 많은 사람에게 세상의 재물과 명예와 권세는 매우 매력적이며 유혹적이다. 친구를 배반하고 형제를 고발하며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모함하고 음해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자기 인격과 생명의 숭고함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에 이미 나타난다. 하느님의 거룩한 빛이 아닌 사악한 빛이 감돈다. 고난 속에서도 ‘평화’가 감도는 얼굴빛이 아닌 부유하고 세력이 느껴지는 가운데 어둠이 자리하고 있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거룩함’을 주지 못한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래서 세상을 지배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 헤맸던 것이 ‘불로초’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삶과 존재를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많다. 돈과 영혼을 바꾸는 사람들, 권력과 양심을 바꾸는 사람들, 명예와 자신을 바꾸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몸부림친다. 참된 행복은 우리 삶의 목표다.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세상을 향하여 선전포고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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