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낙동정맥 13차(한티재~오룡고개, 역진) 영천시, 경주시 포항시. 산 행 일 : 2008. 04. 12.(토) 산행코스 : 오룡고개~도덕산 갈림길~배티재~봉좌산 갈림길~이리재~621봉~운주산~불랫재~545봉~한티재 (도상거리 17km) 산행참가 : 21백두. <산행지도>
지난번 낙동정맥 산행을 마치며 산행 종착지점인 한티 터널 소공원에서 싱그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지친 몸을 쉬었던 기억으로, 금번 산행의 종착지도 한티재로 하고 산행거리도 줄여서 조금 일찍 산행을 마치고서 봄놀이를 하자는 제안으로 인해 여러가지가 변했다. 먼저 한티재를 날머리로 하기 위해서는 남에서 북으로의 코스 진행이 불가피하고, 산행 종료 시각을 당기기 위해서는 전체 산행 거리도 줄여야 한다. 남에서 북으로의 역진 산행이야 별 문제가 아니나, 산행 거리 조정은 그다음 산행에도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사뭇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산행 시작 시점의 길찿기도 고려하여 아화고개~땅고개 구간을 늘이기로 하고 구간을 조정했다.
금번 산행이 화전놀이 산행으로 결정되면서 모두들 각자 한 가지씩 맡아서 준비를 하고, 나는 아이스박스 담당으로 정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양재까지 승용차로 운반하여 서여사님이 가져온 내용물을 담는 정도로 대충 면피를 하고, 그렇게 버스는 양재를 출발했다. 버스 기사님 GPS에 영천시 고경면의 석계초교를 목적지로 등록하고는, 이내 곤한 잠에 들었다가 문득 께어보니 버스는 영천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4번 국도를 타고 경주방향으로 가고 있다. 길을 잘못 든 것을 직감하고 목적지를 새로이 살펴보았더니 설정해 놓은 석계초교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닌 경주시 동남쪽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서둘러 다시 설정하고자 하였더니, 산행 출발지 부근의 석계초교는 벌서 폐교가 된 듯했다. 대충 고경면 석계리 몇 번지로 설정하고는 다시 출발하여, 26번 국도에서 진입로는 정확히 찾았으나 그 후 길에 새워놓은 덤프트럭과의 실랑이와 삼포 채석장으로 잘못 들어가서 돌려서 나오고, 우마차가 겨우 다닐 정도의 좁은 도로를 진행하면서 몇 번의 의심을 한 끝에, 겨우 목적지인 오룡고개에 도착한다.
04:22 몇 차례의 알바 끝에 오룡고개에 무사히 도착한 애마.
오룡고개 북측 옹벽 서쪽 끝나는 지점에 산행 들머리가 있다.
도덕산 갈림길 직전에 급경사를 오르다가 겉옷을 갈무리하는 백두들.
도덕산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하여, 아직도 날이 어두운 관계로 능선 우측에 있는 도덕산은 가지 않기로 하고 바로 좌측 낙동정맥 능선길로 접어든다.
<도덕산(道德山, 702m)>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일명 두덕산(斗德山)이라고도 한다. 주능선을 따라 남쪽으로 자옥산(紫玉山), 북쪽으로 봉좌산(鳳座山)이 이어지며 서쪽으로 삼성산(三聖山), 동쪽으로 어래산(魚來山)과 마주 본다. 산세는 평범하지만, 전망이 뛰어나 정상에 서면 멀리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에 사찰 도덕암(道德庵)이 있으며, 산 아래 옥산리(玉山里)에 조선시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이 기거하던 독락당(獨樂堂:보물 제413호)과 옥산서원(玉山書院:사적 제154호),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 등의 유적이 있다. 도덕산은 자옥산과 더불어 동방오현(五賢)(이황, 조광조, 이언적, 정여창, 김굉필)의 한 사람인 조선조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관계가 깊은 산이다. 산 이름도 옛날에는 이 산을 ‘도독산’이라 하였는데, 회재 이언적 선생이 이 산에서 공부하여 성공하였다고 하여 후인들이 ‘도덕산’으로 부르는 산이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삼성산 보다 좋은데, 동쪽으로 옥산지 건너편으로 어래산이 턱 버티고 있고, 옥산서원이 있는 옥산리마을 동네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덕산 기슭의 옥산리에는 이언적 선생의 뜻을 기리는 옥산서원(玉山書院, 사적 제154호)이 있고, 이언적이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집에 지은 사랑채인 독락당(獨樂堂, 보물 제413호)도 있다. 이언적의 호는 주희의 호가 ‘회암(晦菴, 어두운 집)’인 것을 따라 ‘회재(晦齋, 어두운 집)’로 지었다. 주희의 이 호는 “땅 속은 어둡지만, 그곳에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가 밝은 세상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뜻이다. 독락당(獨樂堂)이란 이름도 이언적의 '어두운 집'에서 나온 것이다.
이언적은 안강 인근의 강동면 양동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서애 류성룡을 배출한 풍산류씨의 집성촌인 안동 하회마을과 같이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강이씨가 어울려 사는 집성촌으로 고택(古宅)들이 보존되어 있다. 도덕산 정상에서 양동마을 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양동마을은 마을 뒷산(설창산)에서 ‘勿’(물) 자형 네 줄기로 갈라져 나온 언덕과 골짜기마다 한옥들이 넓게 펼쳐진 안강평야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있다. 이언적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계승되어 소위 영남학파의 선구가 된다. 그러고 보면 낙동정맥을 품고 조선유학이 발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대에 와서는 유학이라는 것이 쓸데없이 조상제사나 지내고 부모나 잘 모시는 고리타분한 명리학으로 받아들여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조선은 조선대로의 이념과 윤리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유학이었다. 요즘들어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는 예송논쟁도 당시로서는 주자학의 명분을 중시하는 논리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최근 신문에 난 기사를 미루어 짐작컨데 이언적 선생의 옥산서원이 있는 양동마을이 예쁘게 단장되어 찾는 이가 많다고 하는데 근처에 가는 길이 있으면 한번쯤 들러서 옛 조상들의 사상을 되새겨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배티재를 지나 완만한 능선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으로는 듬직한 천장산이 턱~억하니 버티고 있다.
삼포리에서 수동리로 넘어가는 수성 임도가 온통 꽃으로 단장되어 있다.
돌아본 수성임도 날머리.
봉좌산을 향해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하는 백두들..
지능선이 분기하는 조그만 분기봉 묘터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한다.
자욱한 안개가 드리운 봉좌산 갈림길에 도착하여, 시야가 좋지 않아 조망이 없을 봉좌산 답사는 나중으로 미룬다.
봉좌산 가는 방향 능선길 전경.
봉좌산 갈림길봉 내림길에서 바라본 낙동능선 모습<퍼온 사진> 우리는 옅은 구름으로 시야가 좋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장면이라 퍼 올려 본다.
이리재를 향한 내림길에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이리재 모습.
이리재 날머리 도착.
이리재 영천 방면.
이래재 포항 방면.
이리재에서 바라본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포항 방향 조망.
‘이리재’ 또는 ‘이리고개’라는 이름을 접하고 처음에는 이 고개에 '여우'나 ‘이리’들이 출몰하는 험한 고개로 짐작했는데 그게 아니다.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의 옛 지명이 ‘이동’으로, '이동 골짜기'가 '이리골'로 불려져 현재의 이리재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지도를 보니 봉계리에 상이동, 하이동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리재 운주산 방향 들머리 전경.
621봉 오름길에 돌아본 이리재와 봉좌산 모습.
내려다본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이리재 터널 구간 모습.
621봉을 향한 조금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는 백두들.
621봉 직전 바람 없는 곳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시장도 하려니와 꼭대기로 오르면 바람이 심할 듯하여 비탈진 장소에서 식당을 마련한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올라가니, 꼭데기 근처에서 라면으로 식사하는 분들이 보인다.
국물 좀 남겨주지...ㅋㅋ
621봉 정상 모습.
621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모습.
돌아본 621봉. 1분 거리인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 전경. 맑은 날이었다면 앉아서 쉬기에 좋은 장소일 듯하다.
돌탑봉(618봉) 전경.
가야 할 운주산 능선이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다.
"최민수 묘"라고 지도에 표시된 곳.
킹콩이 가지고 놀던 공깃돌이 여기에..ㅋㅋ
킹콩이 여기 앉아서 위 사진의 공깃돌을 가지고 놀았나 보다!
운주상 정상이 나뭇가지 사이로 가까워져 있다.
운암사에서 인비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쯤인 듯.
낙동길은 산판 사면길을 따라 이어지고,
우측 아래로 남계지 인듯한 저수지가 보인다.
잡목들이 어지러운 낙동길.
식탁바위. 잠시 전에 공깃돌을 가지고 놀던 그 킹콩의 식탁인가..ㅋㅋ
수성리 방향 갈림길을 지나다.
능선길과 사면길 그중에서 어느 길로 갈까? 우측 능선길로 가면 돌탑봉으로 이어지고, 좌측 사면길로 가면 절형장군묘를 거처 운주산으로 바로 가게 된다. 능선길과 사면길의 차이? 없음!
절형장군묘를 지나는데 앞쪽으로 운주산 정상이 지척이다.
돌탑봉을 거쳐서 오는 능선길과 다시 만나서 운주산 정상으로 오른다.
운주산 정상부 전경.
<운주산(雲住山, 806m)> 경상북도 포항시의 서북쪽에 있는 기계면, 영천시의 자양면과 임고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동북쪽은 형산강의 지류인 기계천, 서남쪽은 금호강의 지류인 임고천과 자호천 유역에 속한다. 멀리서 보면 구름이 머물고 있는 것 같아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운주산(雲柱山)이라고 기록한 경우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경주)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영남지도』(경주)에 처음으로 운주산(雲住山)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진다. 이어 『조선지도』(경주)에도 나오며, 『대동여지도』에서도 계속 운주산으로 표기된다. 하지만 『조선지도』(경주)에는 운주산이 영천군과의 경계선에 있는 것으로 잘 그려져 있는 반면에 『대동여지도』에는 경계선 동쪽에 있는 것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다. 운주산에 대하여는 구름이 머무는 산인지(雲住山), 구름을 받치는 기둥을 뜻하는 운주산(雲柱山)인지 해석이 분분하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산이 높아 산봉에 구름이 항상 끼어 있다 하여 운주산(雲住山)으로 부른다고 하는데,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 같다’고 하여 운주산(雲柱山)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꽤 많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다니는 구름을 기둥으로 받칠 일도 없고, 구름과 기둥과는 상용(相容)하지 않을 것 같으므로, 구름이 머무는 운주산(雲住山)이 맞을 것 같다. 어찌 되었던 오늘도 구름이 놀고 있어서 전망은 없다. 이곳 운주산은 팔공산, 보현산과 함께 영천의 3산으로 불린다. 원래 영천은 북쪽엔 보현산(1,124m), 서쪽엔 팔공산(1,193m), 동쪽의 운주산(806.2m)이 에워싸며 높이 솟아 있고, 남쪽엔 금박산(432m), 구룡산(675m), 사룡산(685m) 등이 버티고 있어서 산으로 포근히 둘러싸인 분지다. 이쪽 동네에는 분지형태의 도시가 많다. 대구도 전형적인 분지도시이고, 경주 또한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운주산 안내판.
운주산 꼭대기 전경.
운주산 정상 인증.
맑은 날 보면 이렇게 보인단다. <퍼온 사진>
다른 분들을 운주산 내림길에서 돌탑봉을 거치지 않고 시티재 방향으로 내려가는 우회길로 보내고,
나란히 돌탑봉에 올라서 인증을 남긴다.
돌아본 안국사 갈림길.
전망바위 갈림길.
춤추는 소나무.
진달래 꽃길에 웬 총각!
421봉에서 돌아본 운주산 방향.
성터 흔적인지, 묘지 흔적인지 짐작이 어렵다.
상도일 가는 갈림길이 이는 재.
310봉 삼각점.
불랫재.
불랫재에서 바라본 남계리 방향
불랫제 들머리 앞에 선 홍갑순님.
블랫재를 가로지르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우측(동쪽)으로 가면 ‘불랫’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불랫재의 불랫이라는 지명을 보고 희한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펀치볼’ 같은 영어식 이름이 아닌가 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지명검색을 하여보니, 옛날 성냥이 없을 때 삼대 째 내려오면서 화로에 불을 꺼뜨리지 않았다 하여 ‘불랫’이라 하였다는 설명이다. 전기나 성냥도 없던 그 옛날 불씨를 소중히 간직하는 것은 며느리들의 주된 소임이었던 시절의 예기다.
불랫재 날머리 전경.
불랫재 영천 방향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화령현 오름길에 돌아본 운주산과 불랫재 모습.
화령현 오름길은 제법 가파르다.
화령현에 거의 도착할 즈음에 돌아본 운주산과 낙동능선.
화령현이라 불리는 곳인 듯한데, 뭔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한참을 함께 걸었던 산새.(자세히 봐야 보임)
545봉인 듯한 봉우리가 다가온다.
545봉 정상에서 홍갑순씨 홀로 인증을 남긴다. 모두들 한티재로 빨리 가서 맛난 것 먹겠다고 내빼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끼리..ㅉㅉ
새싹이 돋아나는 낙동길.
구한티재길 날머리에 도착한 손점장님.
한티재 들머리.
한때 붐볐을 한티재길 전경.
돌아본 한티재 방향.
뒤에 남겨진 사람들!
한티재 능선의 묘지.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한티재 소공원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화전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한티재 서쪽 정자리 방향 전경.
지난 구간 마지막 봉우리였던 산불감시탑이 있던 봉오리 방향.
한티 터널 위 날머리 도착.
한티 소공원에 도착하여.
이러저러한 화전놀이 준비를 하여,
산신령께 감사도 드리고,
<손승천 총무님 왈> 회장님의 기운 넘치는 인삼과 찹쌀 동동주(종이컵에 담긴...), 홍갑순님이 준비한 정력의 술 오디주, 김영임님의 사랑가득 맛있는 야채와 우렁무침, 영양잡곡밥, 쑥버무리, 변순여님의 푸짐한 겉절이, 서분덕님의 정성 어린 족발과 김치, 오이소박이, 이형석님이 준비한 전통의 청국장 등등,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돗자리와 코펠, 버너 등을 준비해주신 회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금번 야유회 산행에서 우리 백두산우회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된 것 같아 너무 기쁘고 자긍심이 샘솟는 듯합니다. 백두 산우회 일원으로 산행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금번에 다소 부족했던 것은 더욱 노력해서 다음번에는 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번에 더 잘하면 먹는데 힘들어질 텐데..ㅉㅉ
최고 빨리 간 사람이 이제야 나타난다. 어디서 뭐 했는지 아무도 모름...! 주변 동네 아낙은 알지도..ㅋㅋ (농은 농으로...)
버스에서도 난리 났고, 영등포에서 지구가 벌떡 일어났다지요.
이날 이후로 버스 음주가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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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날 영등포에서 커다란 일이 벌어진 날이네요. 암튼 좋은 추억을 만듬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