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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롤모델
어느 날 존 케네디 대통령은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고등학생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습니다.특히
그 중에 한 학생에게는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습니다. 이
영광스런 순간을 경험한 학생은 케네디 대통령을 자신의 롤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언젠가 케네디 같은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갖게 된 학생은 그날부터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명문대에 진학을 한 뒤 교수가 되고, 교수가 된 뒤에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한 단계씩 계속해서 밟아나간 학생은 마침내 미국의 42대 대통령 빌 클린턴이
되었습니다. 클린턴은 케네디와의 만남을 통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갖게 되었고 평생 동안 그 꿈을
위해 노력할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여러 매체를 통해 종종 고백했습니다.
한 사람이 성장하는 일에는 롤모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공을 위한 롤모델도 중요하며 성품을
위한 롤모델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을 위한 롤모델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평생 닮고 따라가야 할 신앙의 롤모델을
정하고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믿음의 선조들을 따라가며 믿음의 후배들에게 본이 되게 하소서!
성경이나 신앙의 위인들 중 롤모델을 정해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꿈이 만든 변화
아무런 꿈이 없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조금의 의욕과 열정도 없던 청년은 그저 남들과 비슷하게 흉내나 내며 삶을 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 것을 보고 입시를 준비했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 2년제 대학을 나왔습니다. 전공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취직도 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가진
기술인 면허를 활용해 트럭을 운전하고 스쿨버스 기사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의 삶 속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영화를 공부하고 단편을 찍으며 모든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집에서도 쫓겨나 싸구려 모텔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고, 돈이 한 푼도 없어 다른 손님이 남기고 간 음식을 주워 먹어 끼니를 때우기도
했으나 영화를 향한 열정만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0대 후반에 뒤늦게 꿈을 발견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청년은 훗날 ‘아바타’, ‘타이타닉’, ‘터미네이터’ 등을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 최고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같은 환경과 같은 생각, 같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은
커다란 차이가 납니다. 또한 같은 꿈을 가진 사람이라도 자신의 위한 꿈과 하나님을 위한 꿈을 가진 사람은
더욱 큰 차이가 납니다. 하나님을 향한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을 사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저를 사용하여 주소서!
꿈이 있는 사람처럼 열정적으로 하루를 사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의 약속
시인 엘라 윌콕스의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시입니다.
「내가 탄 배, 항해 중에 돛대가 부러질지라도
돛이 찢어져 난파하여 돌아올지라도
나는 주님을 의심치 않으리라
그러나 내 이 모든 희망이 산산 조각 나더라도
여전히 나는 주님을 의심치 않으리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서
주님은 결국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신다네
상처입고 실족할지라도 더 큰 것을 얻게 되리라
실패함이 없는 주님의 계획을 나는 믿으리」
이 시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굳건한지, 세파의 어려움 속에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날, 지금 이 순간, 나의
삶 속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짐을 믿으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영원토록 변치 않는 주님의 약속을 가슴에 담아두게 하소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확신의 기대감
일본에서 가장 큰 세탁업체인 ‘일본 드라이클리닝협회’의
회장 이가라시 겐지씨는 젊은 시절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겐지씨는 이대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일단 허드레 일이라도 하며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장에 돈도, 묵을 곳도 없던 그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지금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모두 해결해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기도를 마치자 마음에서 기쁨과 호기심이 샘솟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기쁠 수 있었고, 하나님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주실지 궁금한 마음에 호기심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 하루가 지나기 전 한 남자가 겐지씨에게 다가와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세탁소
주인이었던 남자는 겐지씨에게 숙소와 음식, 그리고 월급을 주었고,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과 밑천을 바탕으로 훗날 겐지씨는 세탁업을 시작해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 응답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마음 자세가 다르고 걸음걸이가 다릅니다.
오늘도 응답하실 주님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오늘 삶 속에서 역사하실 주님을 체험하게 하소서!
문제가 있더라도 하나님께 맡김으로 걱정 없이 오늘을 보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믿음이 없는 기도
H. G. 웰즈의 단편 ‘성직자의
죽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저녁 예배당에서 열성적으로 기도를 드리는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 기도를 응답해 주소서’라는 말로 시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드리는 성직자를 보고 사람들은 정말로 믿음이 좋다며 칭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직자가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기도를 드리던 순간 갑자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시여, 제 기도를 응답해 주소서.”
“아들아, 내가 듣고 있다.”
그토록 바라던 하나님의 음성이었지만 성직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너무 놀라 죽고 말았습니다. 항상
응답을 바란다고 말로는 고백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의 기도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들어주시는 분입니다.
바른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시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듣고 응답하시는 주님을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소서!
기도가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참된 믿음
그리스가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수도인 아테네로부터 독립의 움직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독립에 대해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시민들은 모두 중앙에 있는 광장으로 모였습니다.
먼저 달변가로 소문난 에스키네스라는 사람이 연단에 올라가 그리스 독립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며 마케도니아의 폭정에 대해 분노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분노하며 공감했고 에스키네스의 연설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다음으로는 데모스테네스라는 사람이 연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말도 더듬거렸고, 차림도 볼품이 없었으나 온 마음을 다해 독립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지금이 행동할 때라는 연설을 통해 진정성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이 끝나자 광장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 왕을 몰아내자! 그리스를 되찾자!˝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에 마음을 움직인 시민들은 큰 함성과 함께 무기를 들고 마케도니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감탄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는 사람들은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고, 믿음으로 행동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사도 바울처럼 주님으로 인해 변화되고 행동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말씀을 가슴으로 믿고 행동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활력이 있는 교회
미국감리교회연합에서는 최근에 활력 있는 교회를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한국처럼 미국도 기독교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침체되어 있는 교회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사회에 영향력을 주며 성장하는 교회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이 교회의 노하우들을 연구해 다른
교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였는데 연구 결과 네 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첫째, 다양한 소그룹 활동이 있었다.
둘째,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인 방식이 조화된 예배가 있었다.
셋째, 성도(평신도)들의 리더십을 중요하게 여겼다.
넷째,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설교가 있었다.
어려운 시대에도 분명히 성장하는 교회들의 특징은 극단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교회도 아니었고 지나치게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춘 교회도 아니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갖고 이 땅을 살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처럼 서로가 잘 조화된 교회들이 성장하며 활력을 유지하는
교회였습니다.
한 쪽의 극단에 치우치는 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지키며 조화롭게 수용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실천하며 부흥하는 저희 교회가 되게 하소서!
말씀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교회를 위해 매일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실체가 없는 피해
판제와 슈테그만 박사는 ‘비용 요소의 두려움’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이 논문은 독일 사람들이 두려움 때문에 매년 지출하는 비용을 경제학적으로 계산한 것인데 그 내용에 따르면 1년에 80조원 정도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소비된다고 합니다.
-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마신 술, 30조원
- 수면제와 진통제와 같은 약, 15조원
- 불안 때문에 떨어진 능률로 인한 손해, 20조원
- 두려움으로 생긴 병으로 인한 치료 금액, 8조원
1933년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가 건설될 때도 숙련된 노동자들이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는 사고가 많았습니다. 낙상 사고를 막기 위해 정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밑에 그물을 설치했는데, 이후로는
떨어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떨어진 원인은 오직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고난에 대한 두려움은 고난 그 자체보다 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의 굳건한 약속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걱정과 두려움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겨내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두려울수록 더욱 주님이 주신 약속을 바라보게 하소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만큼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그리움
먹고 마시고 자고
소유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에 이른 이에게
찾아 드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리움입니다.
외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서 오는
초월적인 갈망!
곧 길과 진리와 생명
그 자체이신
유일하신 그분
우리 주님을 향한
거룩한 그리움입니다.
<이주연>
쓸데없는 것을 만드시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무꾼 할아버지는
손자를 데리고 숲으로 갔습니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팔
나무를 자르려고 간 것입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나무 고르는 법을 가르치려고
손자를 데리고 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길을 걸어가면서
나무의 생김새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키는 작아도 굵고 곧은 나무는
갑판에 까는 널빤지로 써야 한단다.
그리고 알맞게 휜 나무는
배 밑바닥의 휜 부분에 쓰고,
곧고크게 자란 나무는
돛대를 만드는데 쓰면 된단다."
이때에 숲길을 가다가 손자가
늙은 소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고는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나무는 쓸모가 없을 것 같습니다.
줄기는 짧고 휘어 있고
여기저기 옹이가 너무 많이 박혀서
어디에도 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런 나무는 베어버려야 하지 않겠어요."
손자는 이내 손에 든 톱으로
당장 베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자를 만류하며
나중에 생각해 보자고 하였습니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배를 만들 나무를
여러 시간 베었습니다.
마침내 지쳐버린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잠시 동안 쉬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나무 그늘로 데려갔습니다.
그 나무는 바로 손자가
쓸모없다고 베어버리자는
늙은 소나무였습니다.
손자는 그 나무의 그늘 아래서 쉬며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주연, 작자 미상의 글을 짧게 각색하여 적은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함석헌 선생님은 팔순 잔치자리에서
제자들에게 고백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여생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칠 생각입니다.”
기독교 대사상가이며,
믿음의 참 스승이었던 분께서
생애 마지막 과제가 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이었을까요?
기독교인의 모든 문제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에
문제가 있기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는 것은
영혼과 육신을 모두 그분을 위하여
그분처럼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가르침대로
그분의 가신 길을 따라
그렇게 죽고
그렇게 영생 부활의 길로
가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그 일상을
<이주연>
이가 말씀을 듣고
어느 분이 삶을 끝내려고 하다가
설교를 듣고 믿음을 회복하고
이제는 행복한 삶에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저는 말씀의 위력에 대하여
주께서 다시금 일깨우시는
음성으로 듣습니다.
"언제나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준비할 때에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예배에 참석하고
이 세상을 떠나겠다고
찾아 온 영혼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항상 종말론적 영적 긴장을 지니고
주 앞에 서라!"
주여, 깨어서 주를 섬기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말씀의 능력을 더하시고
어디서든 증언하게 하소서.
<이주연>
표현 불가능한 것으로부터의 출발
유대의 신비가 아브라함 요수아 헷셀의 글을 읽으며
오랜만에 쏟아지는 별빛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모르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아는 것에 대한 깨달음보다 먼저다.
지식의 나무는 신비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우리의 생각하는 머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개념도, 언어도, 이름들도 아니다.
이름을 붙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다.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깨달음,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탐구는 시작되어야 한다.
알려진 것들의 약속에 현혹된 철학자들은
흔히 고도의 이해할 수 없는 보물들을
시인이나 신비가들에게 넘겨주고 만다.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지 없이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도 없거니와
존재를 존재로, 가치를 가치로 보는 깨달음도 없다.
이성의 탐색은
알 수 있는 것들의 해변에서 끝난다.
그 너머의 광대한 영역은
오직 표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감지만이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
그것만이 경험과 이해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헷셀>
철이든 영혼
철이든 자식이
모시는 기쁨으로 살듯
철이든 영혼은
섬기는 낙으로 삽니다.
<이주연>
욕망의 열차에서 내려
죄란 무엇일까요?
어떤 계명을 어긴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쉬지 않고, 그럴싸하게
“처 자식을 위하여”,
“회사와 경제를 위하여”,
“나라와 겨레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피켓을 들고
제 욕망의 내리막길로 내닫는
일체의 분주함이 죄입니다.
눈먼 욕망의 열차를 타고
달려가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나타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는 “그릇된 마음들이여,
이제 그만 욕망의 불을 끄고 좀 쉬어라.
쉬지 못하니 내가 쉬도록 해주리라.“는
말씀은 아닙니까?
구원이 이 쉼(안식)과
한 통로에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이주연>
진실 게임
M 스캇 펙은 영적인 세계를 탐구한 정신과의사로서
최장기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가 된
<아직도 가야 할 길> 쓴 저술가입니다.
그는 대단한 영적 통찰을 지녔습니다.
그는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남들에게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가장 흔하고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거짓말은
부모가 "정말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과
자녀가 "정말 우리 부모가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거짓으로 인하여
인간은 가장 깊은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자신과의 진실 게임에서
스스로 진실해질 수 있을 때에
마음의 건강과 가족 간의 행복이 찾아듭니다.
<이주연>
정직한 마음의 소년
1990년대, 미국의 사업가 '케네스 벨링'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빈민가를 지나던 중 지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벨링의 비서는, 빈민가 사람이 주운 지갑을
돌려줄 리 없다며 포기하자고 했지만,
벨링은 지갑을 주운 사람이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습니다.
비서는 '지갑에 명함이 있으니, 돌려줄 마음이
있었으면
벌써 연락이 왔을 겁니다.'라고 종용했지만
벨링은 침착한 모습으로 계속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졌을 때 전화가 왔습니다.
지갑을 주운 사람은 남루한 차림의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이 돌려준 지갑에는 돈은 한 푼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지갑을 돌려준 소년이 주저하면서 말했습니다.
"혹시 돈을 좀 주실 수 있나요?"
비서가 그럴 줄 알았다며 소년을 비웃었지만
벨링은 웃으며 소년에게 얼마가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감사해요. 저에게 1달러만 주시면
돼요.
공중전화가 있는 곳을 찾았지만, 전화를 걸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니까 빌린 돈을 갚으려고요."
소년의 말에 벨링은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내 지갑에 돈이 있었는데 왜 그 돈을 쓰지 않았니?"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건 제 돈이 아니잖아요.
남의 돈을 허락도 없이 쓰면 안 되잖아요."
소년의 맑은 눈을 본 비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습니다.
감동한 벨링은 이후 빈민가에서 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학교와 아이들을 도왔습니다.
좋은 의도 나쁜 의도
왕이 한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하자 신하 두 사람이
죄인을 감옥으로 호송했다
절망감에 빠진 죄수는 감옥으로 끌려가면서 소리질렀다
"이 못 된 왕아!
지옥 불구덩이에 빠져 평생 허우적거려라."
이때 한 신하가 그의 말을 막았다.
"여보시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죄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소."
신하들이 돌아오자 왕이 물었다
"그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던가?"
그때 죄수의 말을 가로막던 착한 심성의
신하가 대답했다.
"예. 게다가 자신에게 사형을 내린 폐하를 용서해 달라고 신께 기도 했습니다."
신하의 말에 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 죄수를 살려주라고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때 다른 신하가 말했다.
"폐하. 아닙니다.
그 죄수는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폐하를 저주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그 신하를 나무랐다.
"네가 한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저 사람의 말이 더 마음에 드는구나"
"폐하, 어째서 진실을 마다하고 거짓말이 마음에 든다 하시는 겁니까?"
왕이 말했다.
"저 사람은 비록 거짓일지라도 좋은 의도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네 말에는 악의가 있구나.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이 분란을 일으키는 진실보다 나은 법이니라."
왕은 결국 죄수의 목숨을 살려 주었다.
어머니를 받든 사람
미국의 대통령 가운데 제임스 가 필드라는 대통령이 있는데
그는 취임식을 할 때 나이가 많아서 잘 걷지도 못하는 그의 어머니를
´어머니가 취임식에 안 가시면 저도 취임식에 안 나가겠다´고 고집하여
거의 업다시피 하여 취임식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군중 앞에 어머니를 앉히고는 대통령
취임식의 모든 영광을 나이 드신 어머니께 돌렸습니다.
그러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은 ´가필드는 과연 효자구나.
그러기에 축복을 받았다. ´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율곡 선생의 전기를 보면 5살 때에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게 되자
밤중에 사당에 나가서 ´신이여, 내 몸을 바쳐
어머니 병환이
나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하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11살 때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대꼬챙이로 자기 팔을 찔러 피를 뽑아 아버지에게 먹였다는
그런 기록도 있습니다.
미군이 필리핀 상륙전을 할 때에 어떤 섬에서 군함에 타고 있던
병정 한 사람이 웃옷을 벗고 바람을 쏘이다가
웃옷을 바다로 떨어뜨렸습니다.
함장에게 달려가 저 웃옷을 꼭 건져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함장은
시간이 바쁘다고 그냥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병정은 죽음을 무릅쓰고 다이빙을 해서 뛰어내렸습니다.
자살하는 줄 알았는데 웃옷을 붙잡아 가지고는 살려 달라고 해서 살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군법 회의에 회부가 되었습니다.
군법 회의에서 ˝어찌하여 너는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했느냐?˝고 묻자
그 병사는 젖은 웃옷 포켓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이것 이 우리 홀어머니의 사진인데 어머니의 사진을
물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들어갔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감동하여 그를 무죄로 석방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
“낚시꾼들이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언제인지 아는가?(중략)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낚시꾼이 큰 고기를 잡았다가 놓쳐버릴 때’라고 한다.”
하우석 저(著) ‘진심은 넘어지지 않는다’(리더스북, 36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머리 아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불량한 죄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구입니다. 내가 힘써 이룬 “앗싸!”도 좋지만, 남이
넘어질 때 느끼는 “고소하다!”도 통쾌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우리는 분명 불량자들입니다.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 책’에는
이 유명한 가문이 지켜 온 가훈이 나옵니다. 그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흉년 때 먹을 것이 없어 싼값에 내놓은 논밭을 사서 이웃을 원통케 해서는 안 된다.”
이웃의 불행을 내 발전의 디딤돌로 삼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오바댜서에는 하나님이 에돔을
심판하시는 이유가 나옵니다. 형제인 유다가 망하는 날 방관했고, 되레
기뻐했으며, 즐거운 환호를 질렀다는 것입니다. 타인의 불행에
눈감은 자에게는 하나님도 눈감으시나 봅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생명으로의 변화
삶이란 곧 변화입니다. 변화는 언제나 두 방향,
죽음과 생명으로 나타나지요.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속상하고 분노하고 피곤하고 아프고 늙고 병들고 절망하다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변질, 쇠퇴라고 합니다.
그런데 종종 생명으로의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육신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묵상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니 날마다 새날입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개혁, 갱신이라 부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변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18세기 개혁자 존 웨슬리는 81세 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난 일에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초부터 주말까지, 혹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난 피곤을 모르며 지내고
있다. 나는 글을 쓰거나 설교를 하거나 여행을 해도 피곤을 모른다. 오늘도
그렇다. 나는 내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쇠할 대로 쇠한 노인이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날마다 생명의 변화를 시도하여
속사람이 강건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당신도 생명으로의 변화를 시도할 때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와 강건을
누리는 새날을 살게 될 것입니다.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광야의 영성
고대 중국 은나라의 충신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자 수양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충절을 지키고자 한 행동입니다.
일제 강점기, 매하 양태승은 속리산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들어갔습니다. 당시 북에는 오산고보, 남에는 고창고보가 있어서 ‘북오산 남고창’이라 했습니다. 일제는
위안부와 학병 동원에 교사와 지식인을 앞장세웠습니다. 해직당하지 않으려면 창씨개명을 하라고 핍박했습니다. 많은 지식인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고창고보를 세운 양태승 선생은 “굶어죽을지언정 창씨개명은 못한다”며 속리산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10여년 전 ‘매하 양태승 평전’이
출간되고, 201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된 일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 치하에서 세속과 타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순수한 믿음을 유지하고 보존하려던
열성파들이 광야에 들어갔습니다. 이른바 광야의 영성, 사막의
영성을 추구하는 이들입니다. 광야에서 심신의 고통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몰두했습니다. 그들은 고행을 자초한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하나님만이 최고의 관심사였으며, 철저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너무 많은 것들로 믿음생활이 혼탁해졌습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모판이 살아야 합니다
모판은 그해 농사의 ‘바로미터’입니다. 모판이 건강하면 그해 농사가 잘됩니다. 신학교는 영어로 세미너리(seminary)라고 합니다. 세미너리는 라틴어 ‘세미나리움(seminarium)’에서 비롯됐는데, 모판(seedbed)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신학교는 다음세대 교회의 모판과 같습니다. 거기서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는 교육이 실패하면 미래 교회는 어둡습니다.
신학교를 이끄는 리더들은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겸비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의 신학교 총장과 이사장들 중에는 영성, 전문성, 도덕성으로 존경받는 분이 많았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존경스럽고 그분의
제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운 총장님들이 계셨습니다. 또 자신의 재산을 바쳐가며 신학교를 섬겼던 장로님들이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오늘의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배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신학교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추지도 못한 이들이 모판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역사 앞에 죄 짓는 일입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모판만은 병들지 말아야 합니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 교수이면서 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마르틴 루터는 영성과 전문성, 도덕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신학교마다
건강한 모판으로 변화되길 소망합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반대말 유희(遊戱)
젊은 시절 한때 재미있게 읽었던 노자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곡즉전(曲則全) 왕즉직(枉則直) 와즉영(窪則盈) 폐즉신(弊則新) 소즉득(少則得) 다즉혹(多則惑) 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입니다. 이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굽으니 온전하고, 구부리니 곧다. 우묵하니 채울 수 있고, 낡았으니 새로워질 것이다. 적으니 얻을 수 있겠으나 많으면 혼란스럽게 된다. 이러므로 성인은
이 모두를 하나로 품어 천하의 법으로 삼는다.’(도덕경 22장)
곧은 것만이 능사일까요? 때론 숙여야 할 때가 있지요. 웅덩이처럼
흠이 있고 파였으니 거기에 담을 수 있는 것이지요. 헐어내야 새롭게 세울 수 있고, 비워내야 채울 수 있겠지요. 주워 담은 것이 많아서 가득 차 있다면
그저 어지러울 따름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살펴봅시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느니라.”(전도서 3장)
주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이제껏 웃고 춤추고 사랑하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슬픔도 울음도 미움도,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 삶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감사하는 마음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생활이 매우 편해졌습니다. 이제는 컴퓨터 앞에서
일을 처리하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웬만한 일은 즉시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나치게 편리한 생활을
하면서 오늘날 우리는 즉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을 참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견디지 못하는 습성을 갖게 됐습니다.
현대인의 편리한 삶에 젖어 들면서 우리에게는 감사보다 불평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헬조선’이라는 용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불평하고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일삼는 사회 분위기가 어느새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팽배한 사회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메시지 성경에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무슨 일에든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생활방식입니다.” 그는 감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라고 표현합니다.
11월은 추수 감사의 계절입니다. 감사한 마음을 품고, 감사의
표현을 자주 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회복하면 어떨까요. 행복은
소유보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선물이라는 점을 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말(言)이 말(馬)보다 많구나
“전하, 지금 성안에는 말(言) 먼지가 자욱하고 성 밖 또한 말(馬) 먼지가 자욱하니 삶의 길은 어디로 뻗어 있는 것이며, 이 성이 대체
돌로 쌓은 성이옵니까. 말로 쌓은 성이옵니까.”
김훈 저(著) ‘남한산성’(학고재)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병자호란! 병자년에 청을 다시 불러들인 것은 말(言)이었습니다. 힘도 없으면서 명에 대한 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청나라를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여진족이 정묘년에 쳐들어 왔을 때도 조선은 별 대항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言)은 다시 기세등등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진족이 청나라를 세워 다시
쳐들어 왔습니다. 그래도 말(言)이 많았습니다. 성안의 말(言)들이 성 밖 청나라 말(馬)들보다 더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이 이파리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꾸짖으셨습니다. 행함이 없는 말, 식언(食言)하는 말, 믿음 없는 말, 사랑
없는 말. 이런 허무한 이파리만 가득한 인생인가 부끄럽습니다.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21:19)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모든 것을 사랑으로
크리스천이라면 놓쳐선 안 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는 제도나 조직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조금 다르더라도 한 교회 가족으로서 서로 포용하며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신앙이요 참된 교회입니다.
이런 신앙가족애를 잘 보여준 분 중에 고 이문영 장로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은 고려대 교수이자
민주화 운동가로 옥고까지 치르며 나라를 위해 애쓰셨던 분입니다.
중앙성결교회에 시무했던 장로님은 당시 교회를 담임하셨던 고 이만신 목사님과 신앙 노선이나 철학에서 큰 차이를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주일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드리고 목사님과 교회의 대의에 순종하셨습니다.
또한 목사님도 그런 장로님을 존중하고 성심껏 목양하셨습니다. 비록 생각이 다를지라도 신앙
안에서 서로 포용하고 이해한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에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 자유를, 모든
것에 사랑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 교회 가족이 되었기에 나이,
성별, 출신, 소유, 능력, 사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해하고, 더 자유하고, 더 사랑하며 사십시오.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